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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CIS(중앙아시아) 등록일 200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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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으로의 선교여행
최소한 3끼는 식사를 기차 안에서 때워야 하는데
이곳에 영주권을 얻지 못해 카잔으로 이주해 간 리타자매로 부터 그곳에 한번오기를
여러 번 연락받고 용기를 내어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여러 할 일이 있고 꼭 함께 가기로 한 라리사 부부의 시간도 맞추어야 하고 말이다. 그래서 어렵게 시간을 냈는데 라리사자매가 계단에서 발을 허딛어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또 한동안 연기했어야 했었다.
드디어 카잔으로 가는 길, 이곳 뻬쩨르부르그에서 바로 가는 기차는 이틀에 한번 홀수 날에만 있다. 그것도 웬만한 기차역마다 서는 완행이라 27시간을 가야하는 좀 지루한 길이었다. 모스코바를 거쳐 가면 시간은 좀 단축되지만 모스코바에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보태면 비용만 더했지 별 시간단축은 없기에 우리는 바로 가는 것을 택했다.

카잔의 차 없는 거리에서 리타와 라리사 자매


최소한 3끼는 식사를 기차 안에서 때워야 하는데 대한 부담으로 어쨌든 빵이라도 사가지고 가면 배는 굶지 않으리라고 빵을 많이 샀다.
생각보다 가는 길은 새로운 낮선 곳에 간다는 기대에 그런대로 지날 만 하였다. 함께 여행하는 타타르학생과 말벗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펜싱선수로 뻬쩨르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하고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청소년 학생들의 면면이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타타르인과는 완전 달라 나의 인종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하였다. 그들은 몽고, 타타르라고 하는 등식의 동양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노란 갈색머리에 파란 눈의 아이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몽고고원의 패권자였던 타타르는 작은 몽고족의 테무진의 출현으로 몽고에 복속된 후 칭기즈 칸의 서역으로에 대 정벌에 몰리며 그들은 대륙을 휩쓰는 정복자가 되었다. 사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진출한 그들이 수백 년 수많은 민족들을 정복하고 거쳐가는 동안 자신의 혈통을 지켜 왔을리 없었겠지만, 그들 속에 나와 같은 몽고리안의 피가 흐른다는 희미한 생각에 보다 정이 가 말을 붙여 보았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몰랐다. 그리하여 나의 호기심에 의한 우리의 대화는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타타르를 건설한 카잔 칸국은 몽골-타타르부족이 선주민인 핀-우골계의 민족들과 함께 볼가, 까마강 유역에서 볼가 불가르국을 건설한 튀르크계 소수 원주민들을 13세기 전 후로 해서 흡수하여 형성 발전된 부족집단이다. 15세기 전반에 그 때까지의 볼가 강 유역을 지배하던 불가르국을 대신하여 거의 같은 지역과 주민을 지배하게 되었다. 카잔칸국은 건국 이래 모스크바 대공국과 계속 싸움을 벌여오다가 16세기에 접어들어 러시아의 압력이 강해지자 크림파와 러시아파로 분열되어 내부항쟁이 계속 되던 중 1552년 이반4세에 의해 러시아제국에 병합되었다.

현재 타타르인은 1944년 이후 강제 이주 후 흩어져 사는데. 타타르스탄, 바쉬키르스탄의 자치공화국 그리고 러시아의 아스트라한과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살고 있다. 타타르 자치 공화국의 총 인구는 약 380만 명으로서 민족구성은 타타르인 47.6%, 러시아인 44.0%, 추바쉬인 4.3%, 기타 소수민족으로 통계되어 있다.
카잔은 타타르 민족의 자치 공화국인 타타르스탄의 수도이다. 인구 백 오십만의 카잔은 올해로 도시설립 천년의 기념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카잔의 크레물린


우리가 까잔 역에 도착했을 때 주변은 이미 어두웠다. 눈은 폴폴 날리고 있었으며, 내리는 데 찬바람이 스쳐 이곳이 추훈 곳임을 느끼게 하였다. 역은 붉음 벽돌로 고색 찬연하게 우뚝 서있으나 프렛 폼이 따로 없었다. 울타리도 없다. 사람들이 정차한 기차에서 내려 여기저기 철로를 넘어 도시로 사라진다. 아들과 함께 마중 나온 리타 자매가 반가움에 눈시울을 적신다.
집으로 가는 길, 리타자매가 우리에게 알려준다.“카잔”이란 중앙아시 언어로 솥이란 말인데 이곳이 솥같이 생긴 분지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단다.

인구 백 오십만의 카잔은 구도시를 계발하고자 신도시를 만들어 이주시키고 있어 도시개발과 함께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았다. 구 도시는 타타르 특유의 장식들이 잇는 건물들도 보였으나 러시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형태의 도시 모습이었으며 고층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도시외곽은 수많은 새로운 대형 아파트가 세워져 있었다. 도로는 넓으나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았고, 물론 차선도 없는데다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 차들이 서로 경주 하듯 질주하여 다닌다. 물가는 대체로 상 뻬쩨르부르그 보다 3분의 2정도는 싸게 느껴진다. 상 뻬쩨르부르그의 95년~97년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자원과 진취적인 민족성을 생각하면 이 도시는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현재도 까마즈 트럭 자동차 공장의 트럭생산은 러시아내에서 독점적이라하니 자치공화국이라는 이점과 함께 러시아내에서 앞으로 크게 발전할 지역중에 하나가 될것이다.
배타적인 종교문제가 남아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볼가 강을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유럽에서 가장 긴 강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러시아의 어머니 볼가, 혹은 러시아의 젖줄이라 불리는 볼가는 모스크바 북서쪽에서 발원하여 한참 내려오던 볼가 강은 이곳 카잔에서 아주 넓어져 까마강(일명 카잔강)과 만나 남쪽으로 흐른다. 볼가 강이 있어 여러 운하로 연결되어 발틱해로 이어지는 상뻬쩨르부르그에서부터 모스크바를 거쳐 카스피해까지 대륙을 가로질러 거의 5000키로 해상운송이 가능하다. 그리고 돈강으로 연결되어 흑해로도 흐른다.
얼어붙은 볼가에는 눈이 덮여 아마 묶여 꼼작 못하는 여객선들이 없다면 설원을 연상할 만큼 넓게 펼쳐져 있었다. 어름이 해빙되면 이곳에서 배를 타고 남쪽의 여러 도시를 거쳐 카스피 해로 들어가는 입구 아스트라한에 이를 것이다.
카잔은 러시아 혁명의 대부인 레닌을 키운 곳이기도 하다. 크레믈린으로 가는 길, 까잔 대학교 전면에는 젊은 날의 모습으로 서 있는 레닌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이곳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까잔 중심에 우뚝서있는 크레믈린은 까잔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백색의 성곽으로 둘러쳐진 크레믈린은 화려하지도 않고, 엄하지도 경계하지도 않아서 소박하고 깨끗해 보였다. 아무나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중심에 정교회가 자리 잡고, 그 옆에 대통령궁이 있었다. 그리고 한견에 이곳이 이슬람 지역임을 선포하듯 새로 지은 듯 아직 공사 중임을 나타내는 여러 칸막이 넘어 높은 첨탑을 강조한 거대한 이슬람 사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카잔 고려인 모임


우리는 고려인이 경영하는 카페에서 이곳에 사는 고려인들을 초청하여 식사 대접 하였다. 이 연락은 리타자매의 사돈 부인인 올랴가 맡아서 하였다.
30여명 모인자리에 나는 <전도 폭발>에서 사용하는 복음을 제시 하였다. 모두들 귀를 기우려 주었다.
하나님은 이곳에 교회를 세울 수 있는 토양을 만드셨다. 한 고려인 가정의 쌍둥이 중 하나인 열일곱 살 난 딸, 베르니카의 병을 위해 두 차례나 초대받아 기도하며 그 가정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다. 중국에서 온 조선 동포 한 가정도 예비해 주셨고, 그를 통한 타타르인 기독교인 유도사범을 알게 되어 타타르인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도 주셨다.
나는 리타자매가 영업하는 카페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선교는 역시 하나님이 하심을 새삼 깨닫고 은혜에 감사했다.

이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한 것처럼 한 여인이 이곳에 살기 어려워 옮겨간 터에서 목음을 전하여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자 목회자를 초빙하는 것은 사도행전적 복음전파의 역사라 할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모스크바를 거쳐 왔다. 훨씬 기차도 깨끗하고 좋았다, 카잔에서 전송나온 사람들로 인하여 마음이 따뜻하여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그곳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온전히 세워졌서 그 지역 구원의 방주와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망대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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