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session_start(): open(/tmp/sess_20bbef911159fe9c0ef1723de3baa945, O_RDWR) failed: Read-only file system (30) in /home/mission/public_html/include/config.inc.php on line 14

Warning: session_start(): Cannot send session cookie - headers already sent by (output started at /home/mission/public_html/include/config.inc.php:14) in /home/mission/public_html/include/config.inc.php on line 14

Warning: session_start(): Cannot send session cache limiter - headers already sent (output started at /home/mission/public_html/include/config.inc.php:14) in /home/mission/public_html/include/config.inc.php on line 14
로그인 | 처음으로 | 기사입력 | 리포터(선교기자) 가입 | KCM 홈
 
   특별호 12호 바이블 웨이 [05-08]
   제375호 [05-07]
   제374호 [10-30]
속보(긴급기도제목)
선교현장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서아시아
 CIS(중앙아시아)
 중동
 동유럽
 서유럽
 북아프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태평양
 북미
 중남미
 비거주, 순회
 외국인 근로자
선교소식
선교단체
푸른섬선교정보
AFMI
교계, 문화
오피니언
목회, 신학
청년, 대학생
기획, 특집
포토/동영상
해외한인교회
선교학자료
해외일반
한국일반
주앙교회
미션매거진을 만드는 사람들...
facebook 미션매거진 편집회의
섹션 선교현장 > 인도차이나 등록일 2005-11-04
작성자 없음 ()
태국 촌부리 센터
촌부리선교센터 내에는 은혜의 집(고아원), 평화의 집(마약재활원)등의 사역이 진행
초기사역모습

촌부리선교센터 대표 김 정웅 선교사

촌부리선교쎈타와 태국선교를 위해 그간 기도해 주시고 저희 쎈타를 방문해 주시며 단기 사역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전반적인 안내를 드리고자 아래의 글을 마련했습니다.

일반적인 태국과 태국선교의 배경

동남아의 중심지인 태국(Thailand)은 인구 6천4백만이 더 되는 상하의 나라요, 불교가 가장 꽃이 핀 나라중 하나이며, 각처에서 공사가 한창인 나라입니다. 1828년 기독교 복음이 처음 들어 온 후 17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신교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 정도인 60여만을 헤아리는 기독교의 불모지와도 같고 가장 복음전파와 효과적인 선교전략이 필요한 나라이면서도 한국교회들의 관심이 소홀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1956년부터 한국에서 최 찬영 선교사 가정과 김 순일 선교사 가정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약 180여 가정의 한인 선교사들이 각 방면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1976년에 태국 선교사로 파송 받은 김정웅선교사 가정은 한 Term을 마친 후 Deerfield, Illinois 주에 있는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의 선교 대학원에서 선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효과적인 선교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한국 지구촌 선교회를 태국의 선교사들과 1987년 9월 3일에 창립하고, 1999년 5월 PWM과 합해 GP 선교회의 소속으로 현재는 방콕에서 약 110킬로쯤 떨어진 곳, 공업단지 촌부리도(道), 농야이군에 위치한 촌부리 선교쎈타 30만평이 더 되는 땅에 아름다운 건물들이 놓여 있으며 인근 사람들에게 “무니티 까올리”(한국인 재단)로 불려지며 한국인의 긍지와 얼을 담고 선교사로 저희 내외와 광주새순교회의 파송을 받은 이혜진 선교사가 함께 태국인 들에게 사랑의 봉사와 기독교적인 복음 전파와 훈련에 기여하며 동남아는 물론 지구촌 복음화를 위한 선교쎈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쎈타를 시작하게 된 동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다는 당신들이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돕지 않느냐?” 는 태국 마약관계 고위 책임자의 입에서 나온 말에 도전을 받고 쳉마이에서 2년간 마약 재활원을 운영하던 저희 선교회에 오랜 교포이신 이종혁 사장과 한유순권사께서 태국에서 얻은 수익들을 태국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돕기 위해 땅을 사서 기증하시겠다는 제안을 받고 여러 차례 선교사들이 의논을 거친 후에 현재의 땅을 기적적으로 구입하게 되고 1988년 10월 15일에 기공식을 한 후 1년 후인 1989년 10월에 정부에서 “지구촌 기독교 사회 복지 재단”이란 인가를 받은 후 11월 1일 준공식을 하게 되었다. 은혜의 집(고아원)과 평화의 집(마약재활원), 축복의 집(유치원)과 훈련원, 수양관 및 기도원, 직원들과 인부들의 숙소 등 13동의 건물을 지어 하나님께 바치며 촌부리 도지사와 마약 퇴치기구의 총책임자와 국내외의 관계자 500여명이 모여 한국이 6,25동란시 태국군의 도움을 받아 빚을 졌는데 피의 도움을 받은 한국이 이제 이 재단과 쎈타를 통해 이 은혜의 일부라도 보답을 하게 되었다고 할 때 도지사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런 도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태국을 계속 도와 달라는 부탁과 감사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눈물과 기도와 협력의 열매

땅을 기증 받고 준공식을 했다고 하니 말은 간단 하지만 사실 이 일이 이뤄지기까지는 많은 분들의 기도와 수고, 헌금들이 모여서 협력하는 팀 선교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정림건축의 마스터플랜을 헌금해 주심과, 은행에서 융자한 땅 값을 그간 매월 1,200불씩 은행에 이자와 원금상환을 위해 지불해 오다가 얼마 전에 특별 헌금을 지원 받아 겨우 다 갚았고, 공사비도 보이지 않게 들어간 것만도 많고 기본 건물들의 공사비도 선교사들의 합심 금식 기도의 응답으로 한 걸음씩 나가게 되었다. 1989년 2월 일차 공사비약 5만불을 지불하기 2주전 회계의 잔고는 240불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희 선교사들이 돌아가며 금식기도로 주님께 매어 달릴 때 신실하신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으로 이곳 저곳에서 십시일반으로 오병이어와 같은 헌금들을 모아 1차 공사비를 지불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렇게 하기를 6회에 걸쳐 한 후에 1989년 11월 1일 준공식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우리선교회의 신학교대지를 구입하기 위한 모금과 건축을 위한 모금을 하기 위해 전기는 물론, 수도시설이나 화장실은 기본 시설이 안된 상태에서 급히 서둘러 준공을 하게 되었다. 준공식후 일반적인 개척 교회 경우처럼 이제 더 이상 지원이 없더라도 자립이 가능한 줄 알고 일체의 후원이 단절된 상태에서 고아들 24명과 직원들의 급료, 마약중독자들 15명 내외를 계속 먹여 살리며 직원들의 급료와 함께 훈련원과 영농의 일군들의 일당을 지불해 가며 거의 7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생활을 이끌어 가는 일에 정식 쎈타를 위한 후원금은 월 100불에 불과하여 나머지는 선교사들의 선교비를 쏟아 부어 유지해야 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한국에 든든한 후원이 있어 재정에 걱정이 없는 줄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가 기도로 2000여명의 고아들을 먹여 살리듯 기도와 선교사들의 희생이 따르는 일이었다. 경상비의 부족뿐 아니라 거기에 부족한 시설들을 확장해 나가는 공사들은 오직 믿음으로 만 가능한 일 들이었다. 전기공사비를 포함한 은행의 부채를 갚기 위해서는 부득불 방콕에 있는 선교회의 사무실 겸 회장의 숙소로 사용하던 콘도를 팔고 저희 가정이 쎈타로 이사해 와서 원래 유치원으로 건축한 건물을 임시로 개조하여 우선 살고 있으며 아직 고아원의 인원과 인근 주민들이 적어 정식 유치원은 개원을 하지 못하고 재정도 부족하여 시작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런 중에도 여러분들의 숨은 기도와 후원을 통해 여기 까지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현재의 시설 규모

현재는 훈련원의 3층 예배당을 비롯하여 화장실과 식당, 집회지 강사 숙소와 선교사들이 거할 일부 방들이 지어지고 기도원에도 4동의 건물이 지어지고 고아원과 재활원외에도 저수지와 축구경기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고 있으며 다른 교회와 기관들이 와서 수양회나 쎄미나 등을 할 수 있는 기본 시설들이 갖추어 져 있으며 앞으로는 500여명의 회의와 숙식이 가능한 훈련원을 계획중이다. 현재 본당에는 20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예배당과 100명분의 침대와 필요시 150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하며 기도원에도 30여명이 모여 별도 집회를 할 수 있고 지방 신학교 과정인 Good Shepherd Institute이 2년전부터 개교되어 운영되고 있고, 축구경기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이 완공되고 부대 시설들이 보강되면 훨씬 많은 청소년들을 유치하여 전도하는데 크게 활용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수지 중앙에는 조그마한 섬(요한이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던 곳의 이름을 따서 밧모 섬이라 명명함)과 반자연 반인공의 수영장이 준비되어 있고, 입구에는 태국 지도 모양의 연못을 차고 태국과 인근 지역을 위한 기도를 하게 하는 시설과 흔들다리와 청소년들의 극기 훈련을 위한 기본 시설들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고무나무 약 1만 그루와 티크나무 약 2만 그루와 일부 과실수들이 잘 자라고 있으며 그간 다녀가신 분들이 기념 식수한 꽃나무들이 여기 저기서 예쁘게 꽃을 피우며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일이 있기까지는 한국의 각 선교단체들과 사랑의 봉사단의 정기적인 방문과 미주지역의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의 단기 선교사들이 와서 고무나무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는 수고가 있었으며 남녀 노유 본국과 미주 지역성도 님들의 숨은 기도와 눈물어린 헌금들이 있었음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14년 혹은 16년간 한번도 한국도 가보지 않던 형제들이 휴가를 얻어 이곳에 와서 한 달간 봉사하며 고아들과 재활원생들과 지내며 그네와 농구 대들, 또 기도원을 지어 바친 형제 자매들의 봉사가 아니었던들 오늘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지 음은 손이 모자라 나무를 제때 심지 못하고 왕실에서 하사한 사태 방지용 나무를 받아 놓고 겨우 심었으며 예산 관계로 일군들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더욱 한국 교회 단기 선교 팀들의 봉사와 전도가 필요한 데도 다른 나라들에만 관심을 쏟게 되는 일에 아쉽기만 합니다.

태국 단체들이나 교회들의 수양회 장소로

주말이나 기회가 되는대로 일부교회나 가정들, 선교사들이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영역을 재충전 받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태국의 방학이나 연휴가 되면 여러 교회들이 수양회 장소로 사용하고 기도원에서 몇 주씩 금식 기도를 하는 사람들 수효도 점점 늘어가고 있으며 태국의 영적인 산실로 자라게 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와 쑥, 근대와 맛이 있는 파파야도 잘 자라고 있으며 바나나와 야자들도 따먹을 수 있으며 아이들의 실습 장으로도 쓰일 수 있고 넓은 공간이 있어서 관심 있는 자들은 주말을 이용 가족들이 화초나 채소들을 심어 자라는 모습도 보고, 고아들과 재활원생들과 함께 운동이나 음악을 하며 저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며 신앙적으로 재충전을 받을 수도 있는 적합한 자리이기도 하다.

촌부리 센타 앞에서 천사합창단 태국전통의상을 입고


촌부리천사들의 합창단

95년 3월 21일 태국복음주의연맹(EFT) 총회 첫날 저녁 예배시 우리 고아원 은혜의 집 아이들 25명이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총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이들은 몇 명을 뽑은 것이 아니라 은혜의 집에 있는 아이들 전부가 단원이 되어 그간 열심히 연습하여 합창으로 태국어, 영어, 한국어 3개국어로 찬양을 한 것이다. 부모가 안 계시거나 이혼하여 버리고 간 아이들, 마약이나 술주정뱅이로 양육이 불가능한 부모들이 할머니에게 맡겨 양육을 받다가 양육이 불가능하여 교회를 통해 우리 시설에 보내 온 불우한 아이들, 몽족(Hmong Hill Tribes)이 처음 고아원에 왔을 때는 화장실 사용도 모르고 네 살 짜리 꼬마가 혼자서 빨래를 한다고 물만 축여서 널어놓고 태국 말도 잘 못하고 학교에 가서도 뒤로 쳐지던 아이들이 이제는 제법 건강하고 공부도 잘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 속에서 잘 자라 공부하고 신앙으로 자라 가며 찬양을 통해 자신들의 정서 순화는 물론 앞으로 교회나 기관들을 방문하여 찬양하고 96년 3월 29일부터 5월 15일까지 1차 한국 순회 공연, 2000년 4월 7일부터 5월 7일까지 2차 순회 공연을 하고 돌아 왔으며, 한국말과 영어도 시간이 있는 대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전용차가 있어서 태국내 교회들의 초청에 응할 수가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들이 자라서 태국의 지도자들이 될 날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기르고 있다. 이들의 생활비(월 50불씩)를 돕거나 중고등학생이 되어 학교에서 모두들 간식비를 가지고 다니는 데 저들의 간식비(월 10불씩)을 돕고자 하시는 분은 연락해 주시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100명 정도를 양육할 수 있는 시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약중독자가 신학생으로

태국에 100만이 넘는 마약 인구 중에 기독교 신앙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이 센터내 “평화의 집”에 와서 새벽 기도로 시작하여 생할 훈련과 직업 훈련, 작업과 운동 기타 짜여진 프로그램들을 통해 밤 10시까지 배우고 습관을 익혀가며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도 자랑스럽기만 하다. 사실은 다른 시설들에서는 극히 실적이 저조하고 재 중독 되는 일이 많은데 우리는 예수님을 소개해 주고 삶의 목표를 신앙으로 지도해 줌으로 ‘뚜이’라는 청년은 고아원의 보모‘애’와 만나 좋은 가정을 이뤄 나가고 쏨싹은 신학을 졸업하고 쏨싹과 뚜이는 각각 다른 곳에서 우리보다 더 큰 규모의 마약 재활원을 운영하고 쁘라싼도 신학교에서 오는 3월에 공부를 마치면 우리 센타내 교회에서 봉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열매들 때문에 법무부와 내무부 산하 단체들이 시범 기관으로 견학을 오기도 한다. 태국은 마약의 산지이고 어디서나 손쉽게 싼값으로 구할 수가 있으며 산족들은 마약을 재배하는 중 아프면 마약을 상용하다가 중독이 되고 일반 약은 몇 시간씩 걸어가 비싼 돈으로 사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며 어떤 곳에서는 일을 시키고 일당을 마약으로 주기도 하며 올 때는 단벌 옷도 제대로 없이 왔다가 치료받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흐믓하기지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기간들을 참지 못하고 귀가해 버릴 때는 안타깝기만 하다. 예수님이 참 구주가 되시기에 믿음 생활만 바로 하면 치료가 가능하나 신앙 외의 다른 방법은 거의 없다. 이런 기관이 태국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데 후원자들이 모자라 아쉬운 입장이다. 저들도 운동은 물론 음악으로 순화되어 학교나 기관들을 순회하며 간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중독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으며 각종 직업 훈련들을 시키고 신앙과 영어, 한국말도 겸해 가르쳐 한인업체들과도 관계를 가져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내 젊은 사명 자들 가운데 저들의 친구가 되어주며 사랑으로 돌봐 주고 영어나 한국말과 기타를 가르치며 저들을 돌봐 줄 장기나 아니면 단기 봉사자들도 크게 도움이 되며 한인 가정들 가운데 전문적인 기술을 저들에게 단기라도 지도해 주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보람이 있을 것이며 재활원생들이나 고아원생들과 자매결연을 맺어 돕고 관심을 표해 주면 크게 격려가 될 것이다.

선한목자 훈련
김정웅 선교사 기도하는 모습

태국 교회를 위해서 어린이 캠프와 교사대학, 교회개척 쎄미나와 지도자 훈련 프로그램들을 진행해 온 쎈타 훈련원에서는 최근에는 태국의 부흥은 교역자와 교회내의 구역예배 인도자와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삯군이 아닌 선한목자의 자세와 마음을 소유할 때 가능함을 절감하고 1993년 5월부터 선한목자 훈련을 매 2개월에 한 주간씩 한국과 태국인 강사를 초청하고 선교사가 강의하는 과정을 통해 2년간 연속 지도하여 12주 과정을 마친 자로 한국교회를 방문하여 한 주간씩 한 목회자의 밑에서 견습을 하는 일을 두 교회씩하고 한 주간은 가나안 농군학교 훈련과 한 주간의 견학을 마친 후 수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재 4회 졸업생을 냈고 오는 2003년 6월에 한국연수를 마치고 논문을 내면 2004년 1월에 5회 수료식을 가질 예정이다. 야간 버스나 열차를 10시간 이상씩 타고 와서 방콕에서 다시 모여 3시간 정도씩 걸려 와서 계속되는 강행군인데도 진지하게 강의에 임하는 저들을 보며 태국교회의 장래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며 어떤 산족교회 전도사나 또는 시골교회 자비랑 전도인은 전혀 자기의 생활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도보로 전도하며 훈련에 참가하는데 교통비도 없기 때문에 특별 신청을 하여 교통비를 지원해 주기도 합니다. 각자 부담하는 등록비가 5불밖에 안 되기 때문에 요지음은약 90여명을 위한 경비가 약 1,000불씩 지불됨으로 월 50불씩을 후원해 주시면 특히 어려운 몇분의 교통비와 훈련비를 도울 수가 있습니다. 현재 태국은 2010년까지 각 군단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 교역자 수는 1000명도 미치지 못한 상태로 평신도들이 크게 활약하지 않으면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 훈련은 아주 중요하며 월 20불이면 한사람의 훈련경비를 도울 수가 있으며, 또한 시골의 교역자들은 설교시간이 되면 설교준비를 할 수 있는 자료들이 거의 전무한 상태이고 현재 주석도 별로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설교자료를 모아 매월 제공해주는 설교자료후원을 위한 경비도 프안 푸남 월간지를 통해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그 외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오는 단기 선교 팀과 선교 헌신자들을 훈련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선교현장을 잘 모를 때 오는 실수를 막기 위해서 선교 헌신자는 물론 선교 관계자들도 직접 선교지에서 현장을 보며 선교사들의 강의와 실습을 통해 구체적인 준비를 하기 때문에 매년 1,2월과 7, 8월에 단기 선교 팀들이 태국에 오면 선교사들의 강의들과 쎈타에서 구체적으로 봉사할 기회를 가지고 기타 선교지와 중요한 관광지도 보고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들을 가지고 가게 됩니다. 앞으로 인근 인도차이나지역 교회 지도자들도 초청하여 훈련시켜 보내는 일도 계획하고 있는데 이일은 영어로 진행되어 질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헌신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짬롱 전 방콕시장 일행 가나안 농군학교 훈련안내

1990년 일가상(김용기장로)을 받은 짬롱 씨므앙 전 방콕시장의 시상식에 한국교회를 견학하고 있던 태국교인들과 함께 참석 축하하고 그 뒤로 매년 가나안농군학교측의 부탁과 짬롱의원측의 부탁을 받아 그의 추천을 받은 태국의 정신 지도자들 200여명 이상을 가나안 농군학교에 가서 훈련하는 일에 통역으로 수고하며 저들과의 관계에 힘썼으며 92년에는 짬롱의원 내외와 분남 방콕 교육담당 부시장도 함께 가서 직접 훈련에 참여했으며 일부 일정은 서울시장, 현대 정세영 회장, 고려합섬 회장및 경제실업인 연합회 특강을 하는 일에는 이순교 선교사가 통역을 맡기도 했으며, 철저한 불교 개혁 도들인 그들이 이런 훈련을 통해 기독교를 이해하게 되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생기고 돌아와서도 배운 바를 직접 실천에 옮기며 저들이 지도하는 강의에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성령께서 저들 가운데 역사 하실 때 태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큰 저력이 있는 것을 보며 구체적으로 짬롱 전시장이 신자가 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농군학교의 프로그램에 의해 주일예배에도 몇차례식 참석했습니다. 94년에도 태국내의 각분야의 지도자들 50명이 9월30일부터 10월13일까지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훈련을 받는데 통역을 하며 도왔습니다. 지역 교회 지도자 님들께서 갈 때마다 따뜻한 사랑으로 환영과 접대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태국에 복음의 열매가 실제적으로 맺는 일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미얀마 국경 지역내 카렌족 선교

지난 1976년 12월 처음 선교를 시작할 때 인근 좀븡지역의 전도처를 돌볼 때 반보라는 카렌족 마을에 분르언이란 전직 면장이 신앙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분의 동네 이름만 알고 30킬로를 달려가 그에게 전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가 예수를 구주하고 세례를 받은 후 그가 오래 살며 전도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우리에게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러 가실 때 인근 주민들이 기독교가 무엇이기에 65년 믿은 불교보다 일년 믿은 기독교식으로 장례식을 해 달라는 유언을 하는가 ? 라는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다. 사실 그는 그 지역의 추창격인 어른이셨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곳의 가난한 카렌족 선교를 위해서 그의 사위 되는 짜런목사를 중심으로 그 지역 복음화를 위해 힘쓰는 중 매일 저녁집회를 40여 일 간 계속 하는 가운데 그 마을의 오순절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반보 교회 외에 후웨이행이란 곳에 방주교회를 개척하여 태국과 한국교회및 뉴욕 할렐루야 선교회 등의 후원을 받아 아름다운 예배당을 짓게 되고 93년 1월에는 국경 지역인 따꼴랑에 목포 제일교회의 후원으로 따꼴랑 제일교회를 개척, 예배당을 지어 헌당식과 함께 짜런전도사의 목사 안수식도 베풀어 현지인 지도자를 세워 주게 되고 큰 아들 싼띠도 신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 1월 9일에 결혼을 하게 되고 둘째 죠이 전도사도 장학금을 주어 신학을 2003년에 졸업하고 그간 5년간 센터내 교회에서 좋은 훈련을 받고 갔다. 짜런 목사는 카렌족 자치정부의 중앙 정보부장을 지냈던 자로 지금도 그 일을 해 주기를 원하고 있지만 주님의 일을 위해 거절했으나 동족의 아픔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있습니다. 남쪽 빠뎅교회와 후웨이행에는 젊은이들을 훈련하는 일을 위해 정기적인 훈련원을 운영하던중 현재는 한준수 선교사 가정이 저들을 집중적으로 돕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경에 있는 브로커들이 소녀들에게 좋은 직장을 주겠다고 꼬여 나쁜 곳으로 팔려 가는 것을 다시 돈을 지불하고 구출해 주기도 했다고 하며 저들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국제적으로 전혀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음으로 나라 없는 설음을 당하고 있는 카렌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렵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수가 많음을 감사 드립니다.
장례비로 시작된 선교

중학교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나니....”란 말씀이 도전을 받아 복음을 주는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한 후 20여 년간의 훈련을 통해 1976년 9월 14일에 태국 선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 때만 해도 선교에 대한 인식과 후원들이 어려워 후원자를 찾지 못 하다가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공산화되고 주태 미군들이 철수하는 해에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 선교의 열매가 많거나 적거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주님께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게 중요하며, 생사는 주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사명 다 하기까지는 불러 가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선교비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리라는 확신으로 떠나고자 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남서울교회가 개척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교회 형편상 도저히 선교비를 도울 수 없는 상황에서 선교비는 돕지 못하나 장례비 조로 월 300불씩을 돕기로 한 것이 중심이 되어 여러분들의 협력선교에 힘입어 오늘까지 선교를 하고 촌부리 선교쎈타도 지구촌 선교회 선교사들이 팀이 되어 이끌어 나가다가 현재는 각자의 사역들이 확장되어 네 팀으로 나누어 자기 분야들을 책임지고 나가게 되어 센터의 재정적인 면에서는 많은 부분을 혼자 모금해야 되는 부담이 있지만 장례비로 지금까지 일을 시키신 주님께서 앞길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지금도 전진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이 협력할 때 기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촌부리 선교쎈타를 방문하신 분들은 협력의 힘으로 이루어진 일들과 과수나 꽃나무 한 그루에도 헌금한 자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되며 하늘 나라에 기록 될 더 영광스런 그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더불어서 하는 선교

선교는 선교사 한사람의 열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나라 교회 지도자들이 움직여야 하고 지도층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는 그 나라의 복음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교계 지도자들과도 긴밀한 교제를 갖는 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현재는 태국복음주의 연맹(Evangelical Fellowship of Thailand)의 15인 중앙 위원중 하나로 총회에서 뽑혀 오랫동안 봉사했으며 총회와의 관계개선과 타 선교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해 태국에 맞는 선교전략을 수립하고 단합된 모습으로 한국선교가 태국에 기여하기를 모색하여 과거에 지나친 경쟁심이나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독불장군처럼 일하는 가운데서 생기는 문제들도 줄이고 서로의 장단점을 살려 하나님의 나라와 태국교회를 위하는 일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특별한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1999년 11월에는 인도차이나 한인선교사협의회를 구성 초대회장으로 태국을 비롯하여 베트남,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5개국의 한인선교사들이 매년 11월에 모여 수련회를 통해 재충전과 협력을 다짐하고 있으며 2000년 7월에는 세게한인선교사회 회장으로 피선되어 2년간 10,000여명이 넘는 한인선교사들을 대표하여 한국과 미주의 선교지도자들과 협력의 길을 다지고 2002년 6월 12-24일까지는 캐나다 선교대회를 통해 선교사는 물론 캐나다 모든 한인교회들을 선교 동력화 하는 일에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가졌습니다.

쎈타의 비전

“선교학 박사 학위를 받고서도 지금은 촌부리쎈타에서 초야에 묻혀 고아들과 마약중독자들, 태국인들 속에 파묻혀 살며 시간을 보내느냐?” 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지만 이런 삶에 보람을 느끼며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잘 기르지 않으면 진정한 좋은 일꾼들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멀리 보며 이일을 해 나가며 앞으로는 이곳이 유치원부터 기독교 종합대학교가 될 수 있는 그날을 바라보며 태국인 동역자들과. 한국인 선교 동역자들과 평신도 선교사들이 힘을 모아 이 엄청난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우선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선물로 주시고 특별하신 은혜로 키워 주신 두 아들 바울과 다니엘도 미국의 Wesleyan과 Caltech을 졸업하며 자기들에게 주신 소명에 따라 아빠가 공부한 Trinity신학교를 졸업하고 바울은 96년 7월 27일 결혼을 하고, 나성감리교회에서 교육목사로 목회를 하고, 둘째 다니엘도 97년 7월 26일 결혼하여 버지니아주의 밀워키교회에서 영어 담당 목사로 일하며 Trinity 신학교에서 구약학 Ph.D. 과정을 하는데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정웅 선교사님 이순교 사모님

현재 긴급하게 필요한 선교사들
1. 태국 목회자 훈련에 소명을 가진 목사 선교사
2. 쎈타의 살림살이를 맡아 해 줄 총무로서의 평신도 선교사
3. 행정과 비서업무를 담당해 줄 평신도 선교사
4. 쎈타사역 전체의 경리를 맡아 줄 경험 있는 평신도 선교사
5. 출판과 홍보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선교사
6. 고아원에서 근무하며 사랑으로 지도해 줄 자매 선교사
7. 마약재활원생들에게 각종 기술을 가르쳐 줄 선교사들로 단기도 가능함
8. 약 20만평의 땅에 영농과 과수, 화훼, 축산 등을 지도해 줄 농업선교사
9. 기타 유치원부터 종합대학 과정을 준비하기에 필요한 요원들이 필요하오니
한번 들려주시고 좋은 조언과 지도를 바랍니다.

연락하실 곳: GP 한국사무실 대표전화 443 - 0883, 팩스 443 - 0449
태국 연락처: REV.DR. JUNG WOONG KIM
P.O. BOX 18 BANBUNG, CHONBURI 20170, THAILAND
전화: 66-1-823-4187, 66-38-219-241 (팩스)
후원구좌 : 외환은행 077-13-16617-5
kimjungw@cnet.net.th

이 귀한 일에 시간을 내셔서 직접 방문해 주시고 직접 간접으로 동참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그간의 기도와 사랑의 후원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촌부리 선교쎈타에서 사랑의 빚을 진 선교사
김 정 웅, 이 순 교 드림

프린트 메일보내기
관리자 모드TOP

Warning: Unknown(): open(/tmp/sess_20bbef911159fe9c0ef1723de3baa945, O_RDWR) failed: Read-only file system (30) in Unknown on line 0

Warning: Unknown(): Failed to write session data (files). Please verify that the current setting of session.save_path is correct (/tmp) in Unknown on lin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