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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서아시아 등록일 2006-07-13
작성자 관리자 (admin)
네팔 왕국에 하나님 왕국의 씨앗 뿌리기(보즈라즈 바타 목사)

글 보즈라즈 바타 목사
번역 희년선교회 이정미(자원활동가)

네팔은 아시아의 두 강대국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입니다.
물리적인 영토의 크기는 약 평방 141,000 킬로미터이지만 28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국토는 14개의 지구와 75개의 행정구로 나뉘어져 있고 다양한 계급 사람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의 대다수는 브라만 계급과 Chhetris(성직자 계급 전사, 통치자 계급)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다른 카스트 계급 사람들과 더불어 아리아인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존하는 많은 계급들은 다양한 부족과 인종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몽골-티벳 부족처럼 생겼으며 역사적으로 힌두인이 아니지만 인도에서 건너온 힌두인들의 네팔 정복으로 인해 힌두인의 종교를 따르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이곳의 크리스찬들의 대부분은 힌두교에 대한 반발심을 가진 몽골-티벳 부족 출신인 것 같습니다. 네팔에서 진짜 힌두인들은 대부분 복음을 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며 행정, 교육, 사업, 사회 그리고 정치에서 그들이 가진 독점적인 높은 지위에 따른 만족스런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힌두인들은 네팔이 계속 세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가 공식 국교인 나라이길 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거나 선교를 하는 일은 주로 Rai, Tamanng, Magar, Prajaand 등과 같은 소수민들에게 집중되고 있을 뿐 주류인 힌두-네팔인들에게는 모든 집중적인 선교사역이 소홀히 되어져 왔으며 이 계급 출신인 네팔인 목사들과 설교자들만이 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계층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몇몇 실질적인 사역을 해왔습니다.

1996년부터 사나운 공산주의자들의 반정부 폭동이 일으킨 국가적 경제난 때문에 많은 중산층들이 사업과 일자리, 그리고 안전을 잃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일자리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네팔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으며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중앙아시아, 유럽 그리고 남동 아시아 국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유럽, 오스트리아, 남미에 사는 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네팔인들은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팔사람들은 과거에 식민지 통치를 받거나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산업적인 주요 주둔지나 밀집지역으로 지배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농업국가 이기 때문에 모든 국민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일했고 자신이 주인이었습니다. 고용된 일꾼들도 공정하게 존중을 받으며 대우를 받았습니다. 남한, 말레이시아 그리고 몇 중동 국가들이 산업연수생으로 네팔 노동자들을 초청을 때 그들의 기대와 꿈은 에베레스트 산만큼이나 높았던 것입니다!

한국에 오는 것은 평범한 네팔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곳에 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계속되는 내전으로 그들의 사업과 생계를 잃어버린 중산층 출신들뿐이며 그들은 그들의 운을 시험해볼 새로운 기회를 찾았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산업연수생 비자를 얻기 위해 주선기관에 5000에서 8000 가량의 미국 달러를 지불할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네팔사람들의 기준에 의하면 그들은 돈과 존경과 더 높은 위치를 소유했었던 사람들이며 네팔에 있을 당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기독교라는 것은 그들이 인도와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했던 것처럼 다른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는 외국의 종교였습니다. 1990년 이전에 이러한 사람들은 기독교를 박해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그것을 또한 자랑스럽게 여겼었습니다. 그러한 자부심과 새로운 꿈을 가지고 그들은 삶에 있어서 더 큰 성공과 많은 돈을 벌고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불행하게도 네팔을 떠날 때 그들이 가졌던 그 꿈과 자부심은 한국에 와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도착 후 그들은 바로 고용기관으로 옮겨졌고 그곳에 그들을 공장의 경영주들이 와서 가격을 매기기 위해 전시되듯 보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고대 노예시장의 노예들처럼 줄지어 서거나 앉아야 했고 자부심 높은 네팔인들에게 이것은 그들이 생각하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최악의 모욕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최악의 것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일단 일할 곳을 찾고 난 뒤 충격과 모욕은 더 깊어졌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그들의 논밭이나 사업장에서 일해 왔었습니다. 네팔인들은 매우 느린 속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주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시간을 가지며 여유를 잃지 않지만 한국인 업무 담당자들은 그들의 민족성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한국인 감독관이 네팔 근로자에게 네팔에도 태양이 있을까! 라는 농담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한 네팔 근로자가 한국 사람들이 그의 가족을 보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의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가족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대신 그 한국인은 그에게 놀라워하며 물었습니다. “당신 나라에 카메라가 있군요!” 이런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차이 때문에 네팔사람들은 그들의 직장에서 최악의 경험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잔인한 폭력과 불쾌한 말들, 욕 그리고는 참기 어려운 고통들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기본적인 한국어들을 알아가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한국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가장 낮은 종류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유색 피부를 가진 외국인들에게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이 매우 깔보는 태도를 가지며 그들에게 사용하는 언어도 매우 인종차별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스리랑카 친구와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리 둘은 모두 대학원 학생들이었고 검소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중년의 한국 남성이 우리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습니다. “ 공장노동자들이 옷 잘 차려입고 여행을 다니고 부끄럽지도 않아? 못사는 나라 사람들 주제에.” 등과 같이 말입니다. 그 칸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당황해했지만 그 사람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나는 적어도 그 외국인에게 그 제정신이 아닌 남자의 행동에 대해 사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차에 탔던 모든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그럴만하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지하철이 멈췄을 때 우리는 열차 밖으로 내려야만 했습니다. 또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온 Raja라는 이름의 제 친구가 서울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 한 한국인 남성이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 이것 봐, 어느 가난한 나라에서 왔지?” 이러한 일들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우리에게 발생했을 때 신경 쓰진 않았지만 진짜 노동자들에게 이런 일들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자부심 강한 네팔인들에게는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의 자부심과 꿈들이 산산조각난 후 네팔사람들은 서로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동료 네팔인들을 찾기 시작했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네팔인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희년 네팔 공동체입니다. 희년 네팔 공동체는 한국에서 최초의 네팔인 친목회이며 지금까지 한국에 거의 모든 네팔인들이 희년의 쉼터에서 살았거나, 교회에 출석했거나, 의료지원을 받았거나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모든 네팔인들이 이것이 일종의 교회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에게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전해주는 황금 같은 기회를 줍니다.


그들은 네팔의 미래를 위한 아주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일단 이곳에 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고 잠시 동안 모든 모멸들을 견디고 있지만 네팔의 상황이 평화로워질 때 많은 이들이 서둘러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대부분의 네팔 사람들은 네팔에서 복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으며 들어보았다고 해도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년 공동체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희년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기꺼이 믿기 원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 중 몇 명만이 복음을 말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대부분은 받아들였으며 몇 명은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과 목표는 성경적인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가치관을 바꾸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태도만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큰 성공이 될 것입니다. 네팔로 돌아간 뒤 그들은 주변에서 그들에게 사역해줄 기독교 공동체를 찾을 것이며 결국 적대적인 힌두인 중산계층의 한가운데에서 크리스천 공동체의 영향력을 수호하는 얼굴이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그들이 머무는 기간은 최대 3년입니다. 이 기간동안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가지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합니다. 제가 다소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많은 한국 교회들과 선교회들이 그들의 영혼을 구하고자하는 순수한 비전을 가지지 않은 채 외국인들을 복음화하려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의 보여주기나 행동 그 자체를 위해 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특별히 네팔 사람들의 마음은 매우 호의적이어서 누군가가 교회에 초청할 때 그들은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교회에 오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세례를 받음으로 한국인 친구를 기쁘게 만듭니다. 한국교회와 사역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복음전도에 그들이 성공했다고 자랑할 수 있어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행복해하지만 실제로 세례를 받아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작년 한 교회에서 일곱 명의 네팔인들이 세례를 받았지만 제가 그들을 만나보았을 때 그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며 교회의 돌봄을 받기 위해 세례를 받았을 뿐 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역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며 그리스도를 그들 자신의 구원자로서 진심으로 알게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희년 네팔 공동체의 목사가 되어 주선미 선교사와 함께 사역하게 된 것은 저에게 특권입니다. 우리의 목표, 희망 그리고 꿈은 단순히 한국에 있는 수천 명의 구원을 보는 것이 아니라 네팔 전체의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 한국에서 이 네팔인들과 접촉해서 그들이 돌아갔을 때 그들이 그들의 마을과 지역에서 복음화의 열쇠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을 제시하기 원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많은 이들의 기도와 도움, 격려, 그리고 재정적인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네팔인의 구원을 위한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이런 이유로 기꺼이 희생하기 원하는 친구와 후원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라고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한국에 있는 네팔인들이 구원을 받고 그들 나라 전체의 복음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을 믿습니다. 네팔 왕국에서 하나님 왕국의 씨앗을 뿌리는 이 멋진 기회를 위해 함께 기도와 믿음에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Bhoj Raj Bhatta 목사가
희년 네팔 공동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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