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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오피니언 > 발행인칼럼 등록일 2006-06-26
작성자 관리자 (admin)
신학 어떻게 가야하나?
학문적으로서의 신학의 딜레마는 진보할수록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이야기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지식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지식이 발전하는 것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지식적인 것은 대중에게는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런 상상을 이야기했다. 만일 난해한 신학자인 폴 틸리(Paul Tillich)가 주님이 이 땅을 떠나시기 전, 마지막 날에 예수님를 만났다면, 그리고 예수께서 가이샤랴 빌립에서 베드로에게 물었던 중요한 질문을 폴 틸리에게 묻는다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폴 틸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은 모든 존재의 존재론적 근거입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목적론적 근거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을 것이다. “뭐야!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우리는 마치 어려운 낱말들을 늘어놓는 것이 신학의 발전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신학은 어려운 문제를 오히려 단순화시키고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First Presbyterian Church

또 하나는 할 것이 없어 상상의 나라로 간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아는 목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박사 논문을 써야 하는데 무엇을 써야할지 쓸것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경의 거의 모든 분야를 서양에서는 오래 동안 다루어 왔기 때문에 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과 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박사 논문으로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사고를 해야하고 새로운 주장을 해야 하나의 논문으로 인정받기가 쉽다는 것이다. 결국 성서신학이나 조직신학 분야는 발전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어설프게 이야기하다가는 전통적인 신학사상과 달라지기 때문에 이단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학문에 비해서 새롭게 발전하는 영역이 좁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은 어떻게 가야하나?
나의 어머니는 글을 모른다. 그런 연유로 교회 가는 것을 싫어하셨다. 거기다 노래하는 것도 취미가 없으셨다. 교회 가서 그야말로 꿔다 논 보리자루 모양으로 앉아있다 와야 하는데 자존심이 강하셔서 그러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하나 하나 이야기를 드리면 예수님에 대해서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 모습 속에 자신이 들어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기독교가 너무 고급 종교화되지는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나도 무슨 많은 연구를 해서 선교를 해야한다고 생각한 사람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그 연구라는 것이 교회의 문을 낮추는데 초점이 맞아야 한다. 교회는 특정 엘리트 집단의 장소가 아니다. 누구 나가 하나님을 마음 편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선교해야 하는 대부분의 지역은 우리보다 훨씬 교육이 낮을 뿐만 아니라 문맹률 또한 높다. 오늘날 이슬람 지역에서 기독교가 전달되지 않는 이유중의 하나가 교회의 벽이 높다는 것이다. 높고 높은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이 무지한 인간들을 위해서 성육신 하신 과정을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이제 기독교의 신학자들이 할 일은 서양과 미국을 통해서 들어온 신학이 어렵게 발전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좀더 쉽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발행인 :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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