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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CIS(중앙아시아) 등록일 2006-06-05
작성자 관리자 (admin)
카프카즈의 나라들
여러 자치공화국들이
들어가는 글

난리와 전쟁의 소문이 끊임없이 들려오며 민족이 민족을, 나 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지역이 있다. 복잡한 인종구성으로 인한 갈등,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 국가부활을 주장하는 민족주의 자들의 외침, 영토 회복을 요구하는 소수 민족들의 테러와 시위 가 그치지않는 지구촌 최대 분쟁지역의 하나가 바로 카프카즈 지역이다. 카프카즈는 영어로는 코카서스(Caucasus), 러시아어 로는 카프카지야라고 불리운다.
국제 관계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도 중 요하지만, 카스피해에 매장된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로 인해 경제적인 면에서도 매력적인 카프카즈! 이로 인해 미국과 구라 파 국가들이 주도권을 잡으려 앞다투어 진출하고 있다. 구소련 때만해도 이 지역의 절대 맹주자였던 러시아는 기득권의 약화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여기에 카프카즈의 튀르크 민족주의 부활을 외치는 터어키, 종교적인 면에서 이슬람 정체성을 자극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이란, 사우디까지 가세하여 카프카즈를 향한 외세의 각축전 역시 카프카즈 내부의 상황만큼 혼란스럽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세계 선교계에서도 수많은 미전도종족이 살고 있는 이 영적 최전선 카프카즈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1. 카프카즈의 나라들(Country, Autonomous Republics of Caucasus)
Caspian Sea

카프카즈는 터어키 북서쪽, 흑해(Black Sea)와 카스피해(Caspian Sea)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3000m 내지 5000m되는 험한 산들로 형성된 카프카즈 산맥이 그 중앙을 가로 지르고 있다. 카프카즈는 카프카즈산맥을 축으로 북부 지역이 북카프카즈(North Caucasus), 남부 지역은 트랜스카프카즈(Transcaucasus)라고 일컬어진다.
북카프카즈는 러시아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종족들로 구성된 여러 자치공화국들이 자리잡고 있다. 카스피해 연안에서부터 흑해 연안까지 위치한 순서대로 보면 다게스 탄 (Dagestan) 자치공화국, 체첸(Chechen) 자치공화국, 잉귀쉬(Inguish) 자치공화국, (북)아세티 아(North Ossetia) 자치공화국, 카바르디노-발카르(Kabardino- Balkar) 자치공화국, 까라차 이-체르케스(Karachay-Cherkes) 자치공화국, 아디게(Adygey) 자치공화국 등이 있으며 카스 피해 북단에 칼묵(Kalmyk) 자치공화국이 있다.
트랜스카프카즈에는 과거 구소련 연방이 붕괴되면서 독립한 인구 750만명의 아제르바이 잔(Azerbaijan)과 520만명의 그루지아(Georgia), 350만명의 아르메니아(Armenia) 세 국가가 있다. 그리고 그루지아 內에도 압하즈(Abkhaz)와 (남)아세티아(south Ossetia)등 두개의 자 치공화국이 있다.
이러한 공화국들에는 그 나라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종족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할 뿐 아니 라 많은 러시아인들과 소수의 다양한 종족들도 더불어 뒤섞여서 살고 있다.

2. 카프카즈의 言語群(Languages of Caucasus)
카프카즈의 언어들은 크게 알타이계(Altaic), 북카프카즈계(North Caucasian) 그리고 인 도-유럽계(Indo-European)등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첫째 알타이어계(Altaic)로서 카프카즈 대표적 언어인 오구즈 튀르크계열(Turkic-Oghuz) 의 아제리어(Azebaijani)가 있으며, 큽착 튀르크계열(Turkic-Kipchak)로는 쿠믹(Kumik), 까 라차이, 발카르, 노가이어(Noghai) 등이 있다. 몽골계로는 칼묵어가 유일하다.
둘째 북카프카즈어(North Caucasian) 계열중 가장 큰 언어집단은 인구 80만의 체첸 (Chechen)이며, 다게스탄(Dagestan)자치공화국은 크게보면 7개의 언어종족으로 구성되는데 약 50만명의 아바르(Avar), 약 28만의 다르긴(Dargin), 21만의 레즈긴(Lezgin), 9만여의 랒츠 (Laks) 그리고 8만의 타바사란(Tabasaran)등 5개 언어가 여기에 속한다. 그 밖에 압하즈, 아디게, 카바르디노어, 체르케스어등이 있다.
셋째 인도-유럽어(Indo-European)중 Balto-Slavonic계열의 러시아어(Russian)는 과거 정 치적인 영향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 영토인 북카프카즈에서는 절대적 으로 사용되는 언어이다. 그리고 아르메니어(Armenian)도 이 그룹에 속하며, 이 그룹중 인 도-이란어(Indo-Iranian) 계열에 속하는 언어로는 탈르쉬어(Talish), 타트어(Tat), 쿠르드어 (Kurdish), 아세틴어(Ossetic)등이 있다.
한편 그루지아어(Georgian)는 Kartvelian계에 속하는 또다른 계열의 언어이다.

3. 카프카즈와 국제 관계
복잡한 카프카즈의 분쟁속에서도 국제 관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두 지역은 북카프카즈 의 체첸과 트랜스카프카즈의 아제르바이잔이다. 체첸의 독립 운동은 러시아 연방 전체에 파 급되는 민감한 문제이다. 체첸 문제의 해결 방향이 러시아내 소수 민족들의 독립과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 모델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카스피해 석유로 인해 급격히 부상하고 있 는 아제르바이잔의 안정적 성장이 카프카즈 전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안정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특히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한 국제 관계 역학구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국제적인 군사적 요충지로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냉전시대에는 소련의 흑해 함 대 남진을 막는 유일한 요충지였던 터어키의 위상은 매우 컸다. 그러나 소련 붕괴이후 터어 키의 전략적 중요성이 오히려 감소된 반면, 미국과 유럽의 러시아 및 이란에 대한 효율적인 견제 가능성 때문에 트랜스카프카즈의 위상은 군사적인 면에서 한결 높아졌다. 아르메니아 와 아제르바이잔 전쟁을 통해 러시아는 계속해서 지역 주도권을 탈환하고자 고심하였다. 결 과적으로 카프카즈의 아르메니아를 축으로 러시아는 남북으로 러시아-아르메니아-그리이스 -키프러스로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세력권을 형성했고, 이에 대항하여 아제르바이잔은 오일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까지 끌어드려 우크라이나-그루지아-아제르바이잔-터어키 세력권으 로 블럭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물론 이 대결의 중심은 카프카즈이다.
둘째,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국가들을 연결하는 카프카즈는 위치적으로 범튀 르크 민족주의(Pan-Turkism)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터어키의 진출이 매우 활 발하며 그 입김이 크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터어키의 애정은 끝이 없다. 동시에 아제 르바이잔도 가까운 형제국 터어키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는 터 어키의 경제적 힘이 미약하여 현실적으로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튀르크 민족주의 부흥과는 관계없이 현실적 영향력은 터어키의 우방이며 초강대국인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아르메니 아와의 분쟁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석유 자원을 매개체로 한 분쟁 해결 실마리를 찾으려 노력중이다.
셋째, 카프카즈와 이란 관계를 보자.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수출에 거의 실패 한 이란은 그나마 같은 이슬람 시아파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은 "우리는 이슬람 형제"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아제르바이잔에 관련 된 국제 이해관계 속에서 늘 러시아와 같은 입장을 취함으로서 아제리 튀르크 민족주의자들 과 일반 아제리인들에게까지 그 이미지가 좋지는 않다. 예를 들면 현 아제르바이잔(북아제 르바이잔)과 이란 서북부(남아제르바이잔)를 포함하는 아제리스탄을 1813년 귤르스탄 조약 과 1828년 투르크멘 차이 조약에 의해 러시아와 함께 영구 분할했으며, 카스피 해를 둘러싼 이해 관계속에서 아제르바이잔과 상반되는 견해의 러시아와 항상 공동 입장을 취하고 있고, 카라바흐 분쟁에서도 자신들의 흑해 진출을 위해 오히려 기독교국인 아르메니아에게 무기를 전해주는 통로로 이란을 허용하였다. 어쨌든 체첸, 압하지아, 카라바흐 분쟁등을 기화로 더 욱 활발해진 이란, 사우디등 이슬람 국가들의 진출은 이슬람 부흥을 가져와 카프카즈는 기 독교계 슬라브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이 충돌하는 영적 최전선이다.
넷째, 카프카즈는 지정학적으로 중동과 동아시아,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고 있다. 특히 과거 실크로드의 한 줄기였던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아를 잇는 트랜스카프카즈 루트는 지중 해-흑해-카스피해-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유통(transportation)의 요충지로서 전통적으로 황 금의 다리(Golden Bridge)로 불리고 있다. 이 루트를 지나는 차량들의 유통비(transportation Fee)로만 아제르바이잔은 96년도 GNP의 50%이상을 벌어들였다.
이렇듯 카프카즈 내부적 분쟁 상황과 더불어 국제 관계의 역학구도도 복잡하다. 경제, 정 치, 군사 그리고 종교적인 면에서까지 외세들의 주도권 다툼은 매우 치열하다. 러시아와 미 국, 구라파 세력,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의 보이지 않은 힘겨루기를 보면, 과거 역사 가운데 행해졌던 카프카즈에서의 열강들의 각축전을 다시 보는 듯하다. 분단되어 있는 상황이나 지 정학적 요충지에 자리잡음으로 인하여 강대국 사이에서 고통받는 한반도의 우리 입장과 매 우 유사하다. 카프카즈의 석유는 현재 이들에게는 현재 대단한 희망이지만 국제 역학관계가 흔들릴 경우 얼마든지 저주와 불행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4. 카프카즈의 宗敎
카프카즈의 종족들은 대부분 이슬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아제 르바이잔을 비롯하여 체첸, 잉기쉬, 다게스탄등이 이슬람이 강하다. 한편 그루지아, 아르메니 아 그리고 일부 아세티아 민족이 기독교권이고, 칼묵은 라마불교권이다.

4.1 카프카즈의 기독교
카프카즈의 기독교 유입은 이슬람 형성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스키타이 제 국(BC700-BC200)과 사르마트 제국(Sarmat,BC200-AD200)에 이어 카프카즈는 고트족의 침 입을 받는다(AD200-AD375). 동고트족들은 흑해로 부터 발트海에 이르는 대국가를 이루면 서 카프카즈 지역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4세기 경에 카프카즈 서쪽에 있던 많은 민족들 이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지금의 그루지아를 형성했다. 당시 現 아제르바이잔 서북부에 위치 한 개밸래를 중심으로-아제리의 고대 원주민 중 하나인-우딘 민족이 알바니아라는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알바니아는 이미 로마로부터 기독교가 유입되어 카프카즈 최초의 기독 교 국가가 되었다. 그후 사산조 페르시아, 아랍, 11세기 셀축 터어키에 의해 이 아제르바이 잔 지역은 카프카즈 이슬람 종주국으로 완전히 변모하였다. 한편 고대와 중세의 이란어를 사용하는 사르마트인의 한 지파인 알란(Alan) 부족은 1세기 경부터 카프카즈에서 활동하다 가 후에 사르마트 제국을 무너뜨리고 북카프카즈의 지배자로 등장한다. 아세틴(Ossetia)의 선조인 알란 제국은 4세기경 비잔틴 제국의 유세티안(Eusetian) 1세가 보낸 선교사들과 그 루지아에 의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10세기 경에는 기독교가 공식 종교로 자리 잡 았으나 13세기 몽골의 침입에 의해 알란제국은 붕괴되고 깊은 산악지대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들의 후예인 아세틴 민족들은 카프카즈 산맥을 경계로 현재 그루지아내의 남아세티아와 러시아 연방의 북아세티아로 나뉘어져 살고 있다. 남아세티아는 기독교를 지금도 믿고 있으 나, 14세기부터 정착하기 시작된 카바르딘 민족들과의 접촉으로 북아세티아의 일부는 이슬 람이 되었다. 그러나 카프카즈의 기독교 전파는 이슬람의 유입으로 인해 그 힘을 잃기 시작 하였다.

4.2 카프카즈의 이슬람
최초의 이슬람의 유입은 639년 페르시아를 점령한 아랍 칼리프 세력이 아제르바이잔에 진출하고 642년 다게스탄 지역을 정복한 후 계속해서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루어졌 다. 이후 이슬람은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의 승리, 볼가강을 따라 남북으로 형성된 모피의 길, 그리고 실크로드를 통한 상인들의 꾸준한 활동, 셀축 터어키등의 영향으로 12세기까지 볼가강 주변지역, 우랄지역, 중앙아시아 전역을 이슬람화시켰다. 그러다가 13세기 몽골의 지 배를 받았지만, 이슬람은 지속적으로 팽창하여 결국 오스만 터어키 제국의 영향으로 15세기 말에는 카바르딘인, 발카르인, 까라차이인, 동부 체르케스인들이 이슬람화 되었고, 16세기 경 에는 카프카즈 북서부 지방과 압하즈, 크리미야 전역, 카스피해 북부, 노가이 한국, 카작 지 역, 서시베리아 지역까지 이슬람의 영역은 팽창되어 갔다. 그러나 17세기 말부터 러시아의 진출은 북카프카즈 지역의 이슬람 세력을 추방하기 시작했다. 이들에 대한 기독교화의 강제 조치로 많은 자들이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했으며 내부적으로는 반러시아 저항 운동의 강력 한 정신적인 지주로 이슬람은 자리잡았다. 18세기 북카프카즈 이슬람 수피계 낱시반드들이 주도했던 이슬람 저항운동(Murid Movement)은 체첸인, 서부 체르케스인, 압하즈인들을 호 전적인 무슬림이 되게 했으며, 낱시반드가 진압된 후 남은 수피계 무슬림들이 1865년 경에 잉기쉬인들을 이슬람화 하였다. 비록 러시아 정교와 공산주의 하에서 이슬람은 잠복기를 갖 고 있었으나 소련의 붕괴 후 카프카즈의 여러 민족과 종족들 내에서 이슬람 부흥운동이 강 하게 일어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카프카즈에서는 러시아, 아르메니아, 나고르노-카라바흐, 북아세티아의 러시 아 정교 세력과 아제르바이잔, 압하지아, 체첸, 잉기쉬 이슬람 세력이 대결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한편 러시아 정교의 그루지아는 자국내에서 독립 운동을 하는 이슬람 압하지아에 대 해 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으나 카프카즈 이슬람 종주국 아제르바이잔에 대해서는 경제적, 정치적인 요소로 인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있는 등 종교적인 차별 정책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수도인 트빌리시에는 그루지아인, 러시아인, 아제르인, 아르메니아인 들이 큰 갈등없이 공존하며 살고 있다.

5. 카프카즈의 분쟁들
5.1 카프카즈 분쟁의 성격

카프카즈의 분쟁은 아주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양상을 띠고 있으나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카프카즈 민족의 반러시아 저항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인한 슬라브 민족 러시아와의 충돌이다. 둘째는, 기독교(러시아 정교)와 이슬람 세력간의 종교적 대결이며, 셋째는 카프카즈 소수 종족간의 갈등(Ethnic Tension)이다.

5.2 카프카즈 민족주의와 반러시아 저항운동: 아세티아-잉기쉬 분쟁, 체첸 전쟁
반러시아 저항운동의 대표주자인 체첸은 러시아와 끊임없는 충돌을 계속하여 왔다. 북카프카즈의 체첸, 잉기쉬 등 이슬람 민족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자 200년 전부터 싸워 왔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기에도 체첸 민족과 러시아 간에는 치열한 갈등이 있었다. 러시아의 지배에 저항한 체첸인들은 이를 이슬람 聖戰인 지하드로 규정하고 해방운동을 전개했다. 1917년 10월 혁명과 內戰 시기에는 인접 다게스탄과 함께 다게스탄-체첸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 스탈린베리야의 숙청바람으로 체첸-잉기쉬 지역을 중심으로 카프카즈 전역에서 10만 명 이상의 지식인과 간부들이 체포되어, 처형되거나 강제 이주를 당했다. 1944년엔 체첸인, 잉기쉬인 약 50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다. 이러한 조치에 대항하여 수행되었던 山岳 게릴라 투쟁과 강제이주 과정에서 23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그러나 1957년 흐루시초프의 개혁 노선에 편승한 수피 타리가스(Tariqas)단체의 꾸준한 투쟁으로 체첸, 잉기쉬 민족의 명예회복이 되었을 뿐 아니라 1956-57년 사이에는 고향복귀가 이루어졌다. 이후 추방되었던 잉기쉬 민족들의 귀환은 이미 땅을 차지한 새 거주자 아세티아인들과의 재산과 영토 소유권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이것이 아세티아와 잉기쉬 분쟁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1991년 무렵 소련이 아세티아에게 양도한 프리고로드니(Prigorodnyi) 지역은 인구의 약 60%가 잉기쉬인, 나머지는 아세틴인과 코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92년 영토 반환을 거절하는 아세티아에 대해 프리고로드니를 찾기 위해 체첸-잉기쉬 공화국이 군사적 공세를 취한 것이었다. 1992년 11월 러시아 정교 계열의 아세티아와 이슬람 계열인 잉기쉬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 러시아가 아세티아를 편들며 개입하였다. 이 분쟁 역시 러시아의 개입 그리고 이슬람과 기독교의 반목으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잉기쉬 한 마을 주민을 완전히 학살하였고 6만여명 이상의 잉기쉬인들을 추방하였다.
한편 체첸은 1991년 8월 러시아의 三日天下 쿠데타 이후, 10월 체첸의 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Dzhokar Dudayev)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체첸의 독립을 선언하여 독자적인 행보를 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아세티아와 잉기쉬 분쟁을 시발로 눈의 가시같았던 체첸을 위협하였다. 1994년 체첸 사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위협에 체첸과 카프카즈 민족연합(KNK)의 즉각적인 군사동원이 이루어졌다. 약간의 소강 상태를 가진 후 러시아는 94년 12월 체첸에 전면적인 군사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고, 참혹한 전쟁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내다가 1995년 1월 25일 러시아는 군사작전의 종결을 발표했으나 전쟁은 게릴라전 양상으로 계속되었다.

5.3 전쟁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 압하지아 분쟁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을 중심으로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전쟁은 1988년 슘가이트 사건이후 시작되었고 1992-93년 격화되었다가 1994년 휴전 회담이후 소강상태에 들어 갔다. 전쟁중 터어키와 여타 이슬람 국가들은 아제르바이잔을 편들었다. 특히 터어키는 아제르바이잔에 재정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아제리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반면에 러시아는 아르메니아를 도왔다. 1천명 이상 아제리 민간인이 비참하게 피살된 것으로 알려진 호잘르 시에 대한 아르메니아 공격시 러시아 육군 제366기계화 연대가 투입하여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고, 93년 여름 카라바흐 공세때는 40대의 탱크로 구성된 기갑부대까지 동원시켰다. 영토 분쟁으로 시작된 이 전쟁의 배후에는 카프카즈 지역의 기득권을 상실치 않으려는 러시아의 충동질로 인해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으로 심화되었다. 카프카즈에서 터어키와 아르메니아는 원수지간이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대립, 20세기초 터어키인들이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과 연관된 아르메니아와 터어키의 반목이라는 중층의 역사가 깔려 있다. 어쨌든 아르메니아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은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까지 높혔다. 이 전쟁으로 아제르바이잔은 영토의 20%를 점령당했고 약 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여 세계에서 4번째로 난민이 많은 나라가 되었다. 그루지아 공화국내의 압하지야 분쟁도 러시아가 그루지아에 대한 기득권을 얻어내기 위해 압하즈 민족들을 자극한 경우이다. 1978년 압하지야 공화국이 그루지아로부터 분리 러시아 연방에 귀속하겠다고 시작하면서 분쟁은 확대되었다. 그루지아는 러시아의 압하지야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CIS에 가입함은 물론 러시아 군사주둔 등을 허락하였다.

5.4 분쟁의 결과: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 심화
분쟁이 발발할수록 심화되는 문제점은 종교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이슬람의 부흥을 가져 온다는 것이다. 체첸과 러시아의 분쟁에서도 보듯이 분쟁이 격화되자 두다예프 정부는-모스크바와 어떤 절충도 거부하는-체첸 민족주의 집단에서도 가장 과격한 파벌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온건 세력은 在野로 밀려났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전쟁도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분쟁으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부흥과 반기독교 정서가 심화되고, 아르메니아에서는 정교를 제외한 모든 타종교를 불법화하고 추방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정체성 강화를 꾀하는 데 예외없이 종교는 이용되었다. 종교는 위협으로 다가오는 이교도의 세력과의 싸움을 정당화시키는 심리적 위안과 자긍심을 제공한다. 이러한 환경 조성은 결국 기독교 선교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5.5 카프카즈 종족간의 갈등(Ethnic Tension)
북카프카즈의 자치공화국들의 인구 구성을 보면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이 거주함으로, 또 1980년대까지 토착 민족들의 언어 교육, 이슬람 예배, 문화활동들을 제한 받음으로 인하여 -이슬람이 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카프카즈 소수 민족과의 분쟁 가능성은 항상 상존하고 있었다. 한편 토착 소수 민족간의 갈등도 때로는 심화되기도 한다. 까라차이-체르케스 공화국도 13만의 까라차이 민족과 4만 여명의 체르케스 민족간에 오랜 갈등과 불화가 있다. 스탈린 시대 고산지대의 까라차이 민족과 구릉 지대의 체르케스 민족을 하나의 행정구분으로 묶은 것이 반목의 원인이 되었다. 대립과 위기 상황은 현재 표면에서 사라졌으나 종족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존재한다. 또 약 37만 명의 카바르딘 민족과 7만여 명의 발카르 민족간의 분쟁은 카바르디노-발카르 자치공화국에서 독립하려는 발카르 민족 지도자들의 발상에서 일어 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발카르인들은 분쟁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연합 정부 상태에 큰 불만을 표시하지 않으므로 일단락되었다. 이외 아제르바이잔에서 탈르쉬 민족의 독립 운동이 1994년 격렬하게 일어 났었다. 같은 이슬람이지만 튀르크계의 국가인 아제르바이잔내에 약 40만의 이란계 탈리쉬 민족은 이란 국경에 접한 아스트라, 랭캐란 지역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 독립 운동은 폭동이 일어난 직후 곧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었다.

5.6 카프카즈의 불안정한 현재, 불확실한 미래

(1)까라차이 체르케스 공화국:
1998년 1월 28일 까라차이 체르케스 공화국의 수도인 체르케스에서 6000명의 공장 근로자들이 반정부 데모를 하였다. 이것은 이 지역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데모 군중의 요구는 1979년부터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러시아 정부의 임명에 따라 대통령이 되어 장기 집권중인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이었다.

(2)체첸 공화국:
1998년 3월26일 체첸 국회는 공화국의 명칭과 수도의 이름을 바꾸었다. "무서운, 위협적인"(terrible, threatening) 의미의 현재의 이름 Grozny는 러시아가 1824년 체첸 침략 당시에 전진기지를 세우며 지었던 이름이었다. 이 도시는 94-96년 전쟁시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현재 재건중이다. 현 대통령 마스하도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첸 국회는 헌법을 개정하며 수도의 이름을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조하르(Djohar)로 하고 공화국명을 Chechen Republic of Ichkeria로 바꾸어 러시아로부터의 영향력을 떨쳐 버리려 하였다. 한편, 1998년 5월1일 엘친의 전권을 가지고 파견된 발렌틴 블라소브 특사가 잉기쉬의 아씨노프스카야에서 체첸인에 의해 납치되었고 아직까지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이는 북카프카즈의 불안을 조성하고 현재 진행중인 러시아와 체첸과의 평화협정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고 있다. 96년 체첸에서 러시아군의 철수이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납치되었으며 이로 인해 러시아 정부는 체첸공화국에서 인질범들을 소탕하지 못함으로 인해 비난해 왔다. 98년 5월18일 체첸의 제일 부총리 샤밀 바사예브는 체첸과 다게스탄의 전략적 합병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로써 크레믈린이 주도하는 북카프카즈의 인종분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첸의 외무부 장관 오브라디 우드고브는 이슬람국가를 제안하며 19세기 샤밀시대의 국경으로 돌아가야 함을 주장하였다. 5월26일 체첸 수도 조하르(Djohar)에서는 체첸-다게스탄 국민의회가 구성되었고 샤밀 바사예브가 초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에 대해 98년 6월 5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의 21개 공화국 수반들의 모임에서 엘친은 체첸-다게스탄 독립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을 발표했다.

(3) 다게스탄 공화국:
98년 5월21일 러시아 두마의 부의장이며 다게스탄 소수민족의 지도자, 무슬림 운동의 지도자이며 Laks 종족인 나지르 카칠라예프의 추종자 300명이 다게스탄의 수도 마하츠칼라 정부청사를 포위했다. 다게스탄 수상 Khizri Shiksaidov는 청사를 점거하고 시위했던 이들에 의해 감금되었었다. 동시에 약 2000여 명의 데모군중이 국회의장, 수상, 내무부 장관 등 몇몇 고위직의 사임을 요구하며 비상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로 인해 국경의 군대는 비상대기중이며 수도 마하츠칼라로 가는 모든 길은 봉쇄되었었다. 더구나 체첸 넘버를 단 차가 경찰에 발포하여서 경찰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하여 긴장감은 더하였다.

(4) 아세티아 및 기타 공화국 사건들:
98년 5월31일 북아세티아의 수도인 블라디카프카즈에서 부수상이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사망했으며 동행했던 러시아의 사업가도 피살되었다. 6월9일에는 북아세티아의 질기 지역에서 5명의 버스승객의 납치가 있었고 그외 또다른 지역에서 6명의 북아세티아인이 납치되었다. 98년 5월 19일에서 25일 사이에 그루지아의 압하지아 공화국의 갈리 지역에서는 그루지아 게릴라들과의 충돌이 있었다. 6월1일 그루지아의 세르바드나제와 압하지아의 아르진바는 분쟁을 그치기로 합의했고, 이에 앞서 그루지아는 러시아가 압하지아에 중무기를 제공한 것에 대해 비난하였다. 이상은 올해 카프카즈에서 발생했던 사건의 일부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빙산의 일각을 통해서도 카프카즈의 -특히 북카프카즈의- 불안전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카프카즈의 나라들


6. 카프카즈의 선교접근전략
6.1 카프카즈의 관문종족(Gateway People)

(1) 대표적 관문종족-아제리 민족
북카프카즈의 이슬람을 이끄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체첸 민족도 중요한 종족이지만 카프카즈의 가장 대표적 관문 종족은 의심할 여지없이 아제리민족이다. 아제르바이잔은 한국보다 약간 작은 영토(86,100sq km)에 약 770만 명 (7,735,918명;1997년 7월 통계)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인구의 대부분은 아제리 민족이며 러시아 민족은 2.3%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의 약 700만 아제리 민족보다 약 3배가 넘는 2200만명의 아제리 민족이(95년 통계상에는 이란 인구의 약 24%인 약 1700만명) 이란의 Tebriz市를 중심으로 북서부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다. 그밖에 터어키, 그루지아(아제리 국경에서 Tiblis까지 이르는 마르네울리, 볼니스 지역), 다게스탄(특히 Derbent市)등에도 200만명이 넘는 아제리 민족들이 퍼져 있다. 다시 말하면 아제리 민족은 전세계적으로는 약 3200만명에 가까운 대단위의 미전도종족이다. 그러므로 카프카즈의 이슬람 종주국이며 관문종족인 아제르바이잔의 아제리 민족을 제외한 카프카즈 복음화는 상상할 수 없다. 아제리 민족을 통해 카프카즈 선교는 시작되며, 현실적으로 적극적 선교가 불가능한 이란에 접근할 수있는 유일한 대안도 아제리 민족이다. 특히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전쟁이 발생한 이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살던-아제리어를 구사할 수 있는- 20만명의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북카프카즈의 빠티고르스키와 스타브로폴 지역으로 많이 이주하여 북카프카즈에서도 아제리어는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언어이다. 한편, 아제리 민족과 같은 튀르크계에 속하는 노가이와 쿠믹, 까라차이, 발카르 민족 등이 북카프카즈에 살고 있다. 특히 아제리어는 노가이어, 쿠믹어와는 상당 부문 유사하여 대화가 가능하므로 정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잇점이 있다.

(2) 북카프카즈의 관문언어(Gateway Language)-러시아어
북카프카즈에서 관문종족을 꼽는다면 인구 74만의 체첸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카프카즈는 소수 미전도종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양상을 띠고, 러시아내의 자치공화국의 주민으로서 모든 의사 소통을 러시아어로 하기에 어느 한 민족을 관문종족으로 선택하는 것이 다른 선교지보다는 의미가 없다. 당연히 관문언어(Gateway Language)라 할 수 있는 러시아어를 정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개 카프카즈의 소수 민족들은 같은 민족들 가운데서는 보통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민족들은 러시아어를 사용하기에 "러시아어=관문언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 지역을 접근하는 것이 옳다. 러시아어를 배제한 사역은 있을 수도 없고 소수 민족 언어로 접근하는 것 자체는 소수민족 분열주의자로 의심받기 쉽다.

6.2 카프카즈의 관문도시들(Gateway Cities)
전 카프카즈의 관문 도시로서 당연히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Baku)가 일순위이다. 바쿠는 카프카즈 전체를 볼 때도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이다. 이 지역은 마치 독수리의 눈과 같이(아제르바이잔 영토는 독수리처럼 생겼고, 바쿠는 눈의 위치에 해당) 사단의 중요한 요새라 할 수 있다. 원유로 인해 많은 외국인들과 상사직원들이 드나드는 이곳은 카프카즈 선교를 위한 전초 도시이다. 이곳에서 다른 소수 미전도종족들의 지도층도 만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그루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를 꼽을 수 있다. 그루지아는 참으로 복음에 소외되어 있는 지역으로 기독교 사역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루지아인 자체도 기독교인이라고는 하지만 러시아 정교의 형식적 신앙에 머물러 있고, 약 60만의 그루지아內 아제리 민족을 향한 베이스로도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루지아인, 아제리인, 아르메니아인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트빌리시에서 긴장감을 조금은 누그러뜨리며 전열을 정비할 수 있다. 북카프카즈를 두개의 지역으로 분리한다면 중부에서 카스피해 연안의 동부 지역까지 이슬람이 강한 잉기쉬, 체첸, 다게스탄을 한 그룹으로, 중부에서 흑해연안에 이르는 서부 지역의 비교적 이슬람이 약한 아데게, 까라차이-체르케스, 카바르딘-발카르, 아세티아를 다른 한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다게스탄의 수도 "마하츠칼라"는 다게스탄 전체와 아직은 열리지 않은 체첸 선교를 준비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이나 북카프카즈 이슬람 본산이 있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도시이다. 중서부 지역을 위해서는 카바르딘-발카르 공화국의 수도 "날칙"이 중요한 도시이다. 특히 이 주변에는 만명에 가까운 고려인들이 살고 있어서 한국교회에게는 전략적으로 매우 의미있다.

6.3 카프카즈에서의 교회개척
이곳은 종교 비자를 가지고 활동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곳이다. 그러므로 전문인 선교를 통한 제자 양육을 속히 이루는 것이 사역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지인을 통한 현지인 복음화를 해 나가야 한다. 소아시아나 중앙아시아에 비해 카프카즈의 선교는 늦게 시작되었고 기독교 사역자의 수도 많지 않은 현실이다. 특히 북카프카즈의 경우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두개의 공개 교회와 몇 개의 지하교회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북카프카즈의 경우 각 공화국에 아주 적은 신앙공동체만이 존재하고 있다. 교회 개척에 있어서 트랜스카프카즈에서는 종족단위가 크고 독립된 국가이므로 토착 현지인 교회를 목표로 해야 한다. 토착 현지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지극히 복음적이다. 그러나 북카프카즈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자신의 민족끼리 자신들의 언어로 예배드리는 것은 현지 정부 입장에서는 매우 민감한 사항이다. 그러므로 북카프카즈에서는 Multicultural Church를 목표로 여러 민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 형태를 지향해야 한다. 특히 기존의 신실한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슬라브 문화를 뛰어넘어 어떻게 카프카즈 이슬람 미전도 종족 사역에 동원되느냐가 사역의 열쇠이며, 한국교회의 경우 고려인 복음화와 더불어 현지 선교동원을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는 북카프카즈 복음화에 매우 중요한 전략으로 대두된다.

마치는 글
카프카즈 지역은 슬라브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충돌하는 영적 최전선중의 하나이다. 과거 뿐만 아니라 현대 역사 가운데서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러시아와 체첸 전쟁에서 보듯이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충돌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슬람 국가들은 많은 물량 공세와 메카 방문 초청, 이슬람 기금을 통한 유학 주선, 이슬람 사원의 신축, 이슬람 선교사 파견과 이슬람 신학교 개설 등을 통해 이 지역에 이슬람 부흥을 주도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카프카즈에서의 영적 변화는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이 지역에 살면서 수많은 종족들을 만나 보았다. 한번도 자신들의 주장을 외쳐 보지 못했던 민족들! 강포한 자들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잊혀진 종족들! 열등민족으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눌려 살아가야 할 이등민족들이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전혀 발전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카프카즈의 거민들! 한 번도 세계교회 가운데 제대로 중보되어지지 못했던 소외된 족속들! 과거 가나안 땅의 정탐꾼들은 두 명이 어깨에 매고 올 정도의 큰 포도송이를 가지고 와서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했었다. 거기에 비하면 이 땅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아니다. 단지 영적 어두움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수많은 미전도 종족들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필요한 수많은 미전도 종족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카프카즈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겔22:30)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실망시키실 수 없다. 우리는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카프카즈의 압제받는 거민들이 멸망받지 아니하도록 헌신해야 한다.

출처 : 주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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