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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서아시아 등록일 200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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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개관
5000년의 아프간 역사
1. 간단한 아프간 역사

아프간은 자신들의 역사를 약 5000년으로 잡고 있다. BC 3000-2000 경 현재의 칸다하르에서 아프간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BC 2000-1500년에 아리안 족이 이주하면서 철기문화를 전수하고 카불이 주요 도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BC 600년경 서남, 중앙아시아에서의 활발한 포교활동에 힘입어 조로아스터교가 전국에 걸쳐서 확장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가 BC 522-486 아프간을 점령하자 계속 칸다하르에서 저항이 계속되었고 페르시아를 이어 그리스의 알렉산더가 아프간을 점령을 했으나 계속적인 저항으로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했다. 이후 계속 독립국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AD 60년에 와서야 쿠산 왕국의 지배하에서 높은 불교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AD 652년 아랍의 확장과 더불어 이슬람이 유입되어 이후 이슬람 왕국이 시작된다.
중간에 징기스칸의 침공을 겪기도 하였지만, 이슬람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1219년에서 1221년 사이)에 징기스칸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수로를 파괴하고 비옥한 토지를 사막으로 바꾸어 버렸다.오랜 무갈 제국의 지배에서 독립하기 위해서 투쟁하여 1793년에야 비로소 독립과 더불어 중앙아시아, 인도, 아라비아해까지 계속 영토를 확장하게 된다(아프마드 샤 압달리 왕). 그러나 그 아들 티무르 샤에 수도를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이전하면서 근대사가 시작된다.


1800년대 제정 러시아와 대영제국이 서로 정복하려고 경쟁하다가 영국이 일시적으로 아프간에 괴뢰정부를 세워 통치를 했지만 저항에 부딪혀 1878년 완전히 물러갔다.
1878년, 아미르 도스트 무함마드의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러시아에 외교상의 교섭을 제안했다. 이로 인해 영국은 인도 동맹군과 함께 침공했고 카불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들은 강제로 영국군 주둔을 승인하는 조약을 아프가니스탄 정부에게 체결하도록 했다.
굴욕감을 느낀 아프간인들은 저항했다. 그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영국 군대와 싸웠으며, 영국인과 인도 동맹군을 살해했다. 오래지 않아 6만 명의 아프간인들이 영국과 싸우기 위해 봉기했다. 영국인 이교도들에 대한 성전을 천명한 어느 무슬림 종교지도자가 이들을 이끌었다. 그는 요즘 화제가 되는 '가지스'(ghazis)라고 알려진 자살 특공대와 협력했다.
영국군은 자신들이 계속 카불을 지배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아미르 도스트 무하마드의 손자를 왕으로 계승시킨 후 아프간주둔을 포기하고 떠났다. 1919년,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완전한 독립을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아프간 지도자인 아마놀라는 소련과의 동맹관계를 발전시켰다. 결국 아마놀라는 러시아가 영국보다는 믿을 만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1873년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와의 국경을 확정지었고 아프가니스탄의 영토보전을 인정하기로 약속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첫 번째 독재자인 블라디미르 레닌은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를 반대한다고 천명하였다. 이 호감 가는 관계는 1970년대까지는 성공적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다.


197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라이벌인 미국에 호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쿠데타로 소련의 영향은 약해져갔고, 그 후 지방의 시민군은 더 대담하게 저항했다. 소련이 지지했던 몇몇 정권이 실패한 뒤, 소련은 1979년 크리스마스에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려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1980년대에 아프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사들을 돕기 위해서 미국, 파키스탄, 사우디 아라비아는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군사 지원을 쏟아 부었다. 아프간 게릴라들과 10년 간의 전쟁 끝에 1989년, 소련의 헬리콥터가 미국의 스팅어 미사일에 격추된 후에야 2월 15일에 비로소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무자헤딘들 자신들 속에서 분쟁이 일어나서 국토가 피폐되면서 역시 외국의 도움을 받은 탈레반이 정권을 쥐게 되었다.
탈베반은 북쪽 연합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외의 전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후 미국과 연합군이 2001년 9.11테러 이후 침공하여 탈레반 정권이 물러갔다. 2001년 말쯤 아프간으로부터 온 중요 리더들과 디아스포라 리더들이 독일 본에서 모여서 아프간 정부가 세워지기까지 과도정부(AIA) 구성의 합의를 보았고 (2001.12.22) 하미드 카르자이가 그 의장이 되었다.
AIA는 2002년 6월에 로야 지르가(국가 대 회의)를 열어서 비밀투표를 하여 카르자이를 과도정부 수반이 되고 국가명을 (과도 이슬람 아프가니스탄 TISA).로 명했다. 이 과도정부는 18개월후 로야지르가를 열기로 했고 24개월간의 통치와 국민투표를 지휘하기로 되어있다.
2002년 12월 TISA는 탈리반으로부터의 자유 1주년을 기념하고 거기에 더하여 아직 잔존하는 세력들과 탈리반 요소들을 뿌리 뽑기 위해서 모든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후 2003년 12월 말부터 약 3주간 로야 지르가를 통해서 이를 다시 확인하고 2004년6월에 국민투표로 총선을 치르도록 결의를 했다. 아직 탈리반은 남쪽도시 칸다하르와 중부 지역을 통해서 테러의 기회를 엿보고 있고, 외국인들을 비롯한 정부요인들을 테러하겠다는 편지를 자주 보내면서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거의 전 국민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와 그동안 서로 갖고 있는 반목과 질시, 원수 맺는 것에 진저리를 내고 있다. 다만 지난 전쟁을 통해서 이익을 본 몇 계층들이 불안을 조성하기 위해서 탈리반 잔존 세력들에 아직 자금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동안 숙원사업인 카불-칸다하르 도로 정비사업이 미국과 일본등의 도움으로 지난 12월 말에 건설되었고, 13시간 이상 걸렸던 길이 6시간으로 줄어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건설사업이 계속될 전망이다. 서쪽 칸다하르-헤랏, 동쪽 카불-잘랄아바드의 길을 2004년-2005년에 건설할 계획이다.
현재 아프간치안을 위해서 나토군들이 점점 카불에서 지방으로 배치되고 있고, 몇 년동안 훈련시키고 배출된 아프간 정부 군인들 역시 함께 배치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치안은 갈수록 안정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2. 지리
1) 위치
서남 아시아 지역에 있으며 국경은 북쪽으로는 우즈벡(137KM),투르크메니스탄(744KM),중국(76KM),타직스탄(1206KM)이 동남쪽으로는 이란(936KM) 서남쪽으로는 파키스탄(2,430KM)과 연결되어 있고 바다가 없는 내륙에 위치해 있다.
고도는 258M(아무다리야)에서 노솩(7,485)까지 다양하다.
2) 기후
여름에는 고온이지만 습기가 없어 기온에 비해서 체감온도는 높지 않다. 겨울에는 북쪽에는 춥고 다습하지만 남쪽은 오히려 겨울이 지내기가 좋은 날씨다.
가장 더운 계절 : 7월, 평균 최저16 ~ 최고33℃ (고산지라서 여름에도 시원)
가장 추운 계절 : 1월, 평균 최저-8℃ ~ 최고 2℃ (대신 겨울에는 아주 추움)
여름이 되면 황폐된 땅으로부터 날리는 엄청난 흙먼지가 사람들을 많이 괴롭힌다.
3)자원
국토의 총면적은 647,500 sq km이지만 오래동안 전쟁으로 황폐되어 있고 개발되지 않아서 당장 자원화 시키기가 쉽지 않은 상태이다. 산림이 적어서 물이 적고, 조그만 홍수에도 기름진 흙이 씻겨 내려가므로 산림개발이 시급한 문제다.
이곳의 어느 선교단체가 산림개발 계획을 했지만 여러 문제로 철회한 일이 있다.
자원은 가스,기름,석탄,철, 주석등 여러광물들을 다량 매장되어 있으며 질이 좀 떨어지지만 대리석이 많다.
4) 인구 및 통계
총 28,717,213 (2003.7월)명이며, 인구분포는 0-14가 41.8%,15-64가 55.4% 65세 이상이 2.8%로 평균수명이 46.97살 이다. 평균 18.9세로 그만큼 젊은이들이 인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외부문화에 수용능력이 큰 것을 감안할 때 앞으로의 아프간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
출산률이 평균 5.64명인 반면에 유아사망률이 평균 14.2%로 아직 아주 높다.
인종별 %는 Pashtun 44%, Tajik 25%, Hazara 10%, minor ethnic groups (Aimaks, Turkmen, Baloch, and others) 13%, Uzbek 8%다.
많은 수의 아프간 난민들이 이웃나라에 있기 때문에 곧 일시적인 인구변화가 있을것으로 예상된다.
5) 언어 : 파쉬투 35%, Afghan Persian (다리) 50%, 투르크(우즈벡,투루크메니탄)11%, 30 소수부족언어 4%, 대부분 두 언어를 함.
6)종교 : 모슬렘 수니파 84%, 모스렘 시아파 15%,(민속 모슬렘에 가까운 경우-모하멧 머리털에 얽힌 이야기) 기타 1%, 사단이 하늘에서 쫒겨난 곳이 카불이다
7)수도 : 카불 , 그 외 주요 도시들 : 잘랄라바드(파키스탄 국경과 가깝다), 칸다하르(남 부 도시로 파키스탄의 남서부지역 국경과 가깝다), 헤랏(서부도시로 이란과 가까움), 마자르이샤리프(북부도시로 우즈벸과 가깝다)

3. 정부형태,법,체계:
공식명칭은 Transitional Islamic State of Afghanistan 이고
32 도로 나뉘어져 있으며 '월리'라는 도지사의 통치하에 있음. 현재 이 도지사들의
영향보다는 각지역의 지방유지들의 영향이 크다.
과도정부수반인 카르자이 대통령과 각 장관들도 아직 일시적이기 때문에 정부의 공식 적인 조직이 되어있지 않다. 본 협정에서는 법체계는 이슬람원칙과 국제적인 표준, 법원칙에 맞추도록 되어있는데, 로야 지르가에서 다른 종교(불교,유대교,기독교)의 존재를 인정했고 종교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되어 있는 가장 큰 상징은 국기에 있다. 검정,빨강,초록 삼색 바탕에 빨강 색에 금색 모스크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암흑기를 모 를렘이 피를 흘려 평화(초록)쟁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4. 경제 상황:
지난 수십년동안의 전쟁과 폐쇄정책등으로 극히 가난하여 현재 대부분의 경제가 외국구호기관에 의존되어 있는 형편이다. 일부가 양,염소,소등을 키우긴 하지만 농업도 많이 피폐한 상황에 있다. 소련에 점령당한 때는 난민이 전 인구의 1/3이 되는 4-6백만명이 된 때도 있었다 한다. 그래서 국가의 경제상황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으며 모든 생활수준도 계속 낮아졌다. 아직 대부분 국민들의 형편은 직업을 갖고 있지 못해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많이 보인다. 아직은 주변국가의 자금 지원으로 지어지기 하지만 무너진 건물을 보수,수리하는 것에서부터 새로 건축하는 것이 나날이 발전되어 가고 있다. 무역과 건설과 관련된 경기가 가장 활발하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많은 자금들을 지원하고 있어서 앞으로 여러 방면에서 경제가 성장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런 자금들을 이용해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경제를 건설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1)개인 GDP는 2002년 현재 700불이다.
현재 종사하는 직종이나, 산업 인구등은 확실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다.
2) 수출입
소규모 섬유생산,가구,시멘트,카펫,가스,석탄, 넛 종류,양가죽등을 파키스탄 26.8%, 인 디아 26.5%, 핀란드 5.8%, 독일 5.1%, 아랍에미레이트 4.4%, 벨기에 4.3%, 러시아 4.2%, 미국 4.2% (2002)등으로 수출한다.
수입은 주로 식료품을 비롯한 생활용품이 주를 이루고 있고, 무역대상국으로는 파키스 탄 25.1%, 한국14.4%, 일본 9.4%, 미국 9%, 케냐 5.8%, 독일 5.4% (2002)등이다.
3) 통신등 그 외
현재 전화사정이 여의치 않으나 전쟁당시 위성통신이 발전되었고 인터넷 카페가 아주 많이 생겼고, 앞으로도 계속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4)사회기반시설
철도는 24.6Km 이며,
고속도로는 21,000 km 비행장은 47개이나 현재 10개 정도만 쓰여질 정도로 정비되 어있다.


5. 환경
1) 주거
대 가족 제도의 생활/ 가까운 친족이 대부분 이지만 가까운 이웃도 더러 함께 거주한 다. 본채외에 Annex 라고 하는 해가 들어오지 않는 방향으로 지어서 주로 여름에 쉼 을 얻도록 지은 공간을 갖고 있다.
2) 결혼
양측 집에서 일단 따로 잔치를 하다가 점심 식사가 지난후 신랑이 오고 신부측 집에서의 잔치가 끝나면 신랑집으로 떠남
결혼을 하려면 많은 행사비용과 지참금 때문에 노총각들이 많다.
3)식생활
아침에 '넌'이라는 빵을 사서 감자등 간단한 야채로 끼니를 때우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잔치때는 아주 많은 음식들을 차려서 먹는다.
방문 및 초대 방문: 2-3번 정도 강권하면 진짜 초청

6. 놀이,음식에 대해서
1)놀이
*부쉬카쉬 : 마상에서 벌어지는 게임으로 아프간으 대표적인 가을-겨울나기 게임임.
두 팀을 나누어서 잃어버린 낙타를 상대방 팀에서 찾는 게임.
*상 장기 : 둥근 돌멩이로 다른 돌멩이를 맞추는 게임.
*상 칠 버지 : 우리나라의 공기놀이와 비슷함.
* 연싸움 :
2)아프간 음식
* 볼러니 :감자, 파를 속에 넣고 만든 펜케이크 모양의 아프간 음식
* 어솩 : 파스타와 파로 만드는 아프간 음식
* 부러니: 가지, 토마도와 요구르트로 만드는 음식
* 팔라우 : 쌀에 건포도,양 혹은 소고기와 기름을 적당히 섞어 만든 음식
* 쇼나헛: 주로 길가에서 파는 간식용: 나쿠트 건과를 삶은 것과 으깬 감자, 쌉쌀하게 고추물이나 다른 양념을 섞어 먹는 것.


7. 국가, 사회적 현안
1) 해묵은 분쟁의 불씨가 언제 다시 붙을지 모르는 불안과 이슬람 과격 단체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2) 지난 전쟁으로 인한 교육받지 못한 한 세대들의 문맹을 어떻게 해결 할것인가 하는 것과 갑작스럽게 열린 문으로 수많은 음란물이 들어오 는 것은 마치 합병증과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 반면에 그런 젊 은이들의 문제가 여러 가지 가능성도 갖고 있다.
3) 난민문제
현재 난민들이 이웃나라(파키스탄,이란)에 워낙 많이 몰려있기 때문에 긴장이 있고, 이란은 이라크의 미군 점령으로 인하여 많이 불안해 하는 상태이긴 하나(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상품들을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의 슈퍼마켓' 이라고 까지 했다.
4) 파키스탄과의 화해
그러나 미국의 원조와 설득으로 얼마전 파키스탄 수상이 와서 테러문제 등 여러 가지 현안을 논의하는 평화논의가 한창이다. 여기에는 파키스탄 대통령 무샤라프가 최근에 암살의 위협을 몇 차례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최근의 소식
미국과 다국적군.
부시는 대선을 앞두고 이라크에서의 손실을 아프간에서 만회할 생각으로 최근 상당히 적극적으로 지원을 약속함. 15억불 추가 지원.
미국은 동남북에서 치안유지 적극적이고 이제 다국적군에게 치안유지를 맡기고 3월부터 대 테러전에 전념하려고 병력을 더 많이 투입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할 수 있으면 이곳으로 군대를 보내려고 하고 있고 특히 독일은 아주 적극적임. 파키스탄의 협조가 현재로서는 아주 밝음. 봄 공격을 앞두고 올 들어와서 자살폭탄 사건이 카불에서 세 차례 있었음. 이를 최후의 발악으로 보는 시각과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대체로 최후의 발악으로 봄. 국민들의 지지가 적음.
아프간정부
국제적 관심. 2002년 말의 동경서약을 다시 확인하는 원조서약회를 3/31-4/2까지 독일의 베를린에서 국제회의를 가짐. 지난 본 회의에서 함께 묶어서 하려고 함. 6월이후 정치 일정, 치안,원조를 위해서 회의. 이 회의에 대해 유엔 사무총장, 미 국무장관등 최고위층들이 참석할 예정 향후 7년간 예산이 50억불 정도 필요한데, 이중 30억불은 세수를 통해서 확보할 것이라고 Report를 내 놓았음.
그러나 6월의 선거에 많은 어려움이 있음. 유권자 등록 사업: 유권자 1천만주에서 10%미만의 등록률. 그중에서 25%가 여성. 그것도 카불의 등록율이 높음. 이를 위해서 예산을 늘이고 4/17까지 유권자 등록 기간으로 설정하고 치안과 기금 마련. 선거를 위해서 4-5만의 내외국인 선거관리위원이 필요한 것도 문제임. 각 지방의 군벌들의 정당참여는 무장해제 참여시만 허락한다는 법을 공포했다.
무장해제 사업
치안유지를 위해서 무장해제를 쿤두즈라는 곳에서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4,500명정도가 참여를 하는 미미한 결과.
국군,경찰 양성 -적은 봉급,훈련 때문에 탈영한다는 소식. 현재까지 7천명 정도 양성 2010년까지 7-10만정도 양성계획. 이 사업이 아주 중요함.
지방재건계획
8개 정도 신설해서 각국이 지원하고 있고 16개 지역으로 확대할 생각.
한국인
한국대사관이 있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등 한국 NGO는 9단체가 활동하고 있음.
한국군이 카불 외곽 소도시 바그람에 약 230명정도 있음. 교민은 약 120명에서 130명 정도됨. 한국은 베르린 회의에서 소정의 지원을 할 생각.

출처 : 아프가니스탄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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