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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2-08-26
작성자 관리자 (admin)
선한 일에 본을 보이라(디도서)
딛 2:7-8


"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7-8)

디도서 서신은 바울이 로마에서 첫번 옥에 갇혔다가 풀려 나온 뒤 마게도냐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디도는 이방인의 한 사람 이었으며 바울과 함께 역사 한 청년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형편이 낙담적입니다. 새로이 설립된 교회로 교인들은 품행이 경솔한 것을 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짧은 서신 가운데서 여섯 번이나(딛1:16, 딛2:7,14, 딛3:1, 8, 14)선한 일에 대해 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는 윤리적 해석(딛1:12,13)과 특히 할례당의 논쟁(딛1:10)이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교회에서 디도는 목회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른바 이신칭의 교리만을 주장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수가 있습니다. 구원은 분명히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는 행동이 뒤 따라 갑니다. 당연히 믿음이 있는 자는 선한 행실을 할 것에 대해서 디도서에서 6번이나 지적합니다.

그레데라는 말은 '거짓말하다'는 말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하도 거짓말을 잘하니까 거짓말을 변형시켜 '그레데'라고 불렀습니다.
옛날부터 섬은 우상과 거짓이 육지보다 더 많았습니다.

제가 이번주에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왔습니다. 울릉도에 교회가 40개가 있습니다.
울릉군이 동쪽의 섬임에도 불구하고 31.7% 라는 높은 복음화율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1889년에 불필요한 경쟁을 막고 선교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선교연합공의회를 조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교연합공의회 초대회장인 아눌서 선교사가 제안한 선교지역 분할안(네비우스 선교방법)의 영향이 컸습니다. 한편 1889년 한국에 온 캐나다의 독립선교사 M.C. 펜윅은 최초의 침례교 선교사였는데 함경남도 원산에 자리잡고 다른 선교회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지역(만주·간도·시베리아·몽골 등)에 복음전도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한국 선교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 당시 장로교가 선교대상 지역으로 정하지 않은 지역을 들어가려다 보니 침례교가 장로교보다 먼저 울릉도에 도착하여 선교한 것입니다. 현재 울릉군에는 40개의 교회가 있는데 이 중에 감리교가 2개, 침례교가 17개, 장로교(통합, 합동, 고신 등 합계)가 17개 교회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1-3)고 말합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인사말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말합니다. 전도의 사명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딛 1:5), 디모데가 해야될 일이 분명합니다. 장로를 세우는 일입니다. 장로는 청지기로서 감독의 역할도 해야 했습니다. 청지기(헬:오이코노모스) 집을 다스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인을 대신하여 집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교회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계승은 디도서(목회서신)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계승이 디도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삶을 몇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있습니다. 바울 자신의 삶에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특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권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특권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편지를 보낼 당시는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많이 있었고 특별히 노예가 많았습니다. 많은 노예 중에 누구의 노예인가를 따지면 노예의 신분이 결정됩니다. 평범한 시민의 노예와 시이저의 노예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같은 노예이지만 시이저의 노예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만왕의 왕이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권세는 대단한 권세입니다.
왕의 노예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데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특권입니다. 종이라는 말은 좋은 뜻은 거의 없습니다. 자유가 없고 주인의 손에 조종당하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종이라고 밝히면서 주저하는 것이 없습니다. 비하하는 것도 없습니다. 아주 자랑스럽게 종이라고 밝히고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귀한 자랑거리요 재산인 동시에 디도에게 전해주고 싶은 삶의 특권이었습니다.

두 번째 특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입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아서 보내신 그 분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냄을 받아 예수님을 대표하는 사신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특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특권을 가진 자신의 삶을 디도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디도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울이 자신의 삶을 전승해주고 싶어했습니까?

1) 디도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레데섬에 있는 교회를 디도에게 맡겼습니다. 자신의 후임자로 인정할 만큼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라디아 2:1에 보면 바울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에 갈 때 두 사람을 데리고 간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사람은 바나바요 다른 한사람이 디도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간 이유는 사도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핍박하던 시절(회심전)의 사울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종 된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이때 디도가 동행자가 되었다는 것은 디도를 어느 정도 신뢰했는가 잘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디도는 위로와 기쁨을 선물하는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에 보면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맡은 사람이 디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을 중재한 사람이 디도였습니다. 디도는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화해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고후 7:6,7을 보면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도 보면 위로와 기쁨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디도는 위로의 사신인 동시에 기쁨의 사신이었습니다. 이것은 디도가 어떤 사람인가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입니다.

3) 디도는 어려운 일도 자원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헌금을 걷는 일을 위해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냈습니다. 이일을 디도가 잘 완수했습니다. 헌금을 맡길 만큼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헌금을 걷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목회자의 사역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역이 헌금에 대한 사역입니다. 디도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잘 완수했습니다. 남이 피하는 일을 자원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바울은 헌금에 관한 일을 디도에게 맡겼습니다.

1:5-9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디도가 이어받을 신앙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디도는 그레데를 방문할 때 동행했습니다. 떠날 때는 바울만 가고 디도는 남아서 교회를 돌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디도가 그레데 교회를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디도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중 제일 먼저 장로에 관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수염이 난 사람"이란 뜻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를 인격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수염을 기를 만큼 나이가 들었고 수염을 길러도 천박하지 않을 만큼 인격적 성숙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감독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장로의 직무는 감독하는 것입니다. 장로나 감독은 동일한 말인데 감독은 직무를 나타내는 말이고, 장로는 인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인격과 직임을 감당할 능력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6절부터 지도자의 자격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도자는 순결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순결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대인관계에서 순결해야 합니다. 대인관계에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대인관계라 함은 먼저 불신자가 포함됩니다. 딤전 3:7에도 외인에게서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외인이란 바로 교회 밖의 불신자를 말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교회뿐 아니라 불신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딤전 3장에서도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 교회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있습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순결입니다. 개인적인 순결은 모두 11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깨끗한 사람입니다.
고집대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딛 1:7)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헬:아우다데) '스스로'와 '즐겁게 하다'의 (헬:헤도마이)의 합성어입니다. 즉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8절 마지막에 "절제하며"(헬:엥크라테)는 문자 적으로는 '능력 안에', '권능 가운데'의 뜻으로 성도가 육체의 욕심을 자제하는 일은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1:10-16
교회의 생명은 순결에 있습니다. 순결은 말씀을 지키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순결을 보호하는 말씀을 바른 교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순결은 교리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얻어집니다.
디도가 섬기는 그레데 교회에는 교회의 순결을 무너뜨리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할례당이었습니다. 바울은 할례당을 구별하는 특징을 다섯 가지로 말해줌으로 이런 함정을 피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
첫째는 불순종입니다. 10절은 복종치 아니라고 라고 말합니다. 바른 교훈을 말하는데도 꼭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교회의 순결을 저해하는 무리들입니다.
둘째는 헛된말을 하는 것입니다(10절). 헛되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뜻입니다. 바른 교훈에 반대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꼭 무의미한 말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래서 14절에서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을 좇지 말라고 말합니다.
셋째는 속이는 것입니다(10절). 속임수는 진리의 반대입니다. 속일 수 있다는 것은 인격이 거짓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은 인격적으로도 결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넷째는 더러운 이득을 얻고자하는 것입니다(11절). 오늘날 이단이라고 규정되는 집단들은 모두 영리목적입니다. 돈을 얻기 위해 진리를 팔고 속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섯 번째는 가정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11절 하반 절은 집들을 온통 엎드러 치는도다고 말합니다. 이단들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대표주자는 그레데인입니다.
바울은 거짓이 가득찬 이단들을 대응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첫째는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11절). 입을 막으라는 뜻은 말할 자리를 만들어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도자들에 대한 대응법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를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여 그 진리를 확신하고 붙들고 전하고 자기 삶에 적용 시킬 `줄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2:1-5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 교회의 목회자로 세웠습니다. 바울은 그레데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성숙할 것인가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 가운데 축적된 교훈들을 바탕으로 디도가 그레데 교회에서 목회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자신의 신앙의 유업을 전해주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디도서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디도서를 읽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교회의 성도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성도들을 다섯 부류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늙은 남자에 대한 교훈입니다. 늙은 남자란 나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네 가지의 교훈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절제입니다. 이것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가르칩니다. 절제라는 글자의 뜻을 풀어보면 맑은 정신입니다. 나이 들어서 제일 추한 것은 정신이 흐려져서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신이 흐려지면 판단력이 없어집니다. 나이 많은 남자들이 정신이 흐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모세는 죽는 날까지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둘째는 경건입니다.
셋째는 근신입니다. 근신은 절제와 비슷한 뜻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자기의 욕망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포기할 것을 포기할 줄 아는 능력이 근신입니다. 나이 많이 들면 욕심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고 특별히 명예에 대한 욕망이 강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는 믿음과 사랑 다음에 소망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인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망과 인내는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평생의 소망이 가장 가까이 있는 시기인 동시에 끝까지 인내할 시기입니다.

2:6-10
본문에는 젊은 남자와 종들에 대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젊은 남자에 대한 교훈은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근신입니다. 근신은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에게도 주어진 교훈입니다. 근신을 여러 번 강조하는 이유는 가장 기초적인 덕목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경건입니다. 늙은 남자에게도 경건을 가르치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조건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범사에 선한 일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본을 보여야 할 사람은 디도입니다. 디도는 범사에 본을 보여 선한 교훈이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이런 본을 바탕으로 젊은 남자에게 경건을 가르치라고 말합니다. 젊은 남자들에게 교훈하는 경건이란 선한 일을 통하여 교훈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젊은 남자들이 말씀을 따라 살면서 책망 받을 것이 없고 이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선한 교훈이 살아 역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경건이라고 말합니다. 젊은 남자들에게 경건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디도가 본을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앞서 살펴본 말씀 중에서 젊은 여자들은 늙은 여자들로 하여금 교훈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디도는 젊은 목회자 였습니다.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말한 것처럼 디도에게도 이와 같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2:11-16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백성'(14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백성'이란 말은 "둘러싼다"와 "나는 있다"는 두 단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말입니다. 이 두 단어를 종합해서 풀어보면 '자기 백성'이란 "둘러싼 복판에 내가 서있다"는 뜻입니다. 무엇으로 둘러싸여 그 가운데 내가 서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관심과 긍휼과 돌보심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기 백성'입니다.

3:1-8
디도서는 그레데 교회에서 목회하는 디도를 위해 기록한 편지입니다. 디도를 통해 그레데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자리 매김을 할 것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레데는 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거짓말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레데가 어떤 지역인가를 알려 주는 것이고 그레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거짓과 위선이 가득한 그레데 사람들에게 그레데 교회라는 이름이 어떻게 자리 매김을 할 것인가는 교회의 생명과 관계된 것입니다. 순결한 교회로서 계속 유지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입니다. 이런 그레데에서 디도는 하나님의 교훈을 통해 성도들을 교훈하고 디도를 통해 교훈 받은 성도들은 그레데를 변화시키는 것이 바울의 바램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디도서를 기록한 목적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신앙의 전승입니다. 신앙의 전승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순결한 교회를 유지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순결한 교회를 유지한다는 말에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어떻게 불순한 교회인가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순결함을 유지하는 교회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사회에서 어떤 인정을 받는가의 문제로 결론이 내려집니다. 이것은 사회에서 해결할 문제라는 말입니다. 우리끼리 있을때는 신자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회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들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디도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주님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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