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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2-07-02
작성자 관리자 (admin)
연약함을 감사하라(고린도후서)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바울의 13권의 서신 중에서 가장 자서전적인 성경이 고린도후서입니다. 그 다음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 책이 갈라디아서입니다. 이 두 권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울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두 지역의 교회 모두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서 상당한 오해를 가지고 도전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이야기할 때 상당한 흥분과 감정의 억제도 제대로 안 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책이 고린도후서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바울의 모습 때문에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가장 인간적인 책, 자서전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여러 가지 오해를 풀고자 노력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화해를 시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가지고가야 할 헌금 모금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는 화해의 신학, 화해의 서신으로도 부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현재 고린도후서가 왜 쓰여지게 되는지에 대한 배경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1)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에 처음으로 고린도를 방문하여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교회를 개척합니다. 이 당시 고린도는 로마의 4대 도시중의 하나였으며 아가야 지방의 행정 수도였습니다(행 18:11). 바울은 이곳에서 처음에 디도 유스도를 만나 함께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그 때 바울의 모습에 감동한 디도 유스도는 자기의 집을 예배의 처소로 드리고 이곳을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져 갑니다(행 18:7-8). 그 다음에 중요한 인물이 고린도 지역의 회당장이었던 그리스보를 그리스도께 인도한 사건입니다. 이 일 후에 고린도지역에 많은 성도를 얻게됩니다(행 17:16-34).

2)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복음을 전한 바울은 에베소로 이동합니다(행 18:-28).
3)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고전 5:9)에서 지금은 없는 서신을 고린도 교회에 보냅니다.
4) 바울이 '글로에의 집 편'(고전 1:11)으로 고린도교회가 분쟁가운데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5) 거의 같은 시기에 고린도교회가 이교 문화에 물들어 예배의 질서가 훼손되고 있다고, 바울에게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받습니다(고전 7:1).
6) 이런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접한 바울이 편지(고린도전서)를 써서 디도 편으로 보냅니다.
7) 이후 디모데를 특별히 사명을 주어 고린도교회에 파송합니다(고전 4:17, 16:10).
8) 이후 바울을 대적하는 거짓 사도가 일어나 고린도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고후 2:5-11, 7:8-13). 그러자 젊은 디모데는 매우 당황하게 되고 이 소식을 에베소에 있던 바울에게 달려와 전합니다.
9) 디모데의 다급한 소식을 들은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린도를 잠시 방문합니다. 이 방문의 결과는 바울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주었습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고후 2:1)라고 말합니다. 이 방문으로 바울은 '가슴 아픈 방문'을 하고서 다시 큰 문제에 빠져있던 에베소로 돌아옵니다(고후 12:14, 13:1-2)
정확하게 이 때 바울이 무슨 문제로 고린도교회를 방문했으며 가슴아픈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릅니다. 그런데 고후 5:2, 5, 13로 보아 근친상간에 문제를 놓고 바울과 대립하고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이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모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이 일로 편치 않았으며 근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고후 2:5-11, 7:11). 그래서 바울은 디도를 단단히 설득한 다음(고후 7:14) '준엄한 편지'를 보냅니다.

10)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잠시 방문한 결과, 성과 없이 아픔만을 가져다 주고 마쳤지만 편지는 강력하게 씁니다. 자신의 온 몸을 던지는 마음으로 펜을 잡습니다. 만일 이 서신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고린도교회는 제대로 세워지기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강력한 편지는 고린도후서 10-13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준엄한 편지' 또는 '눈물의 편지'라고 부릅니다. 이 때 편지를 전달한 사람은 디도였으며 바울은 후에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고후 10:10)

11) 바울이 에베소에서 드로아에 도착했으나 디도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도중에 디도를 만나기 위해서 마게도냐로 갑니다(고후 2:12).
12) 바울이 디도를 만나 적대자들의 반란이 가라앉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고후 7:6-16).
13) 바울은 이곳에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하여 디도 편으로 고린도교회에 보냅니다.


고린도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서두의 인사와 환란 중에서도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을 언급한 바울은 자기의 행동을 설명하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근황에 대하여 전해 줍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전에 직접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그만 방문하지 못한 채 '눈물의 편지'를 써 보내게 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한 나머지 그들을 위해서였노라고 해명한다(고후 1:1-2:4). 그리고 바울은 계속하여 화해와 사도직의 위대함(고후 2:5-11; 5:18-21) 등의 주제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는 매우 흐뭇한 어조로 그 모든 불쾌한 감정과 역경에도 불구하고(고후 4:7-18; 6:3-10)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자신의 유일한 삶의 보람이며, 이제는 이 보람에 대한 기쁨 외에 또 다른 흐뭇한 일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고린도 교인들과의 화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7:2-16).

두 번째 단락(고후 8, 9장)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모금 운동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여기에서 바울은 연보의 원리, 목적, 방법, 그리고 축복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락(고후 10-13장)은 고후 1-9장까지의 어조와는 사뭇 다른 어조로 자신의 사도성과 사역의 정당성에 대해 변증하였습니다. 물론 비평학자들은 이 단락을 '눈물의 편지'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앞에서와는 전혀 다른 어조로의 급전환 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바울은 아주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 비난하는 대적자들에게 따끔한 반박을 하며, 자신의 사도적 자격에 대해 대적자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변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단락에서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마지막 문안 인사를 포함합니다(고후 13:11-13).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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