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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2-07-02
작성자 관리자 (admin)
그리스도와 십자가(고린도전서)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고린도
'헬라의 광채요 장식'이라 불리던 옛 고린도는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뭄미우스(Mummius) 에 의해 B.C. 146년에 완전히 파괴되고 소수의 신전들은 기둥만 남게되었습니다.
그 후 정확히 100년 후인 B.C. 46년에 로마의 황제 쥴리어스 시이저(Julius Caesar)는 항구와 군사도시로 육성하여 새로운 고린도시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인들을 이주시켜서 도시에 활력을 얻게됩니다. 고린도는 이후 계속하여 번창하였고 바울시대에는 아가야(Achaia)라는 로마 행정 구역의 수도였으며 그 지역 총독의 거주지가 되었습니다. 고린도는 로마 제국의 4대 도시 중에 하나로 상업, 문명, 부패함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새 도시는 발전하여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규모에 있어서 아테네에 버금가는 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방탕의 도시로 유명하게 되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가장 방탕한 도시'(Chrysostom)로 불렸습니다. 이렇게 고린도가 불명예스러운 도시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고린도는 항구 도시로서 언제나 선원들이 들끓었고 선원들을 상대로 한 매춘과 향락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고린도인들의 상당수가 노예 계급이었고, 따라서 도덕적인 수준이 낮았으며, 노예 상호간의 정욕의 만족을 위해 도덕적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세 번째는 종교가 성적 타락의 도구가 되었다는 점인데, 이는 고린도를 가장 심각한 타락의 도시로 만든 요인 중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즉 고린도에는 많은 이주민들이 몰려와 정착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각각의 신상들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고린도는 하나의 신상 박물관처럼 다양한 종교적 혼합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고린도 여인"이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었고, "고린도의 축제"는 그야말로 사치와 방종의 밑바닥이었습니다. 고린도는 비너스(Venus) 여신을 숭배하는 본거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굽과 아시아에서 건너온 신비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현대의 고고학적 탐사 결과에 의하면 고린도에는 '이시스'(Isis), '세라피스'(Serapis), 부르기아의 여신 '마그나 마터'(Magna Mater), 수리아의 신 '아스타르테'(Astarte), 에베소의 '아데미'(Artemis)의 신전, 그리고 '헬리오스'(Helios)와 '아프로디데'(Aphrodite)등 여러 신들의 신전과 유적들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더욱이 이들 신들에 대한 예배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는 성적인 음란 행위였다. 즉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수천 명의 직업적인 창녀들이 사랑과 정욕의 신인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일종의 여자 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Strabo). 그들의 예배는 성적 음란의 예배였으며, 그들에게는 성적 행위가 종교적 헌신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바울이 전도여행 중 고린도를 방문한 때는 바로 종교적 혼합주의가 만연되었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시기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종교적 타락과 부패의 도시 고린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벵겔'(Bengel)이 지적한 것처럼 기쁘고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중에 마게도냐로부터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51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전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처음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그의 집에서 숙식하며 장막지기로서 노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노동의 과정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의 생활과 전도에 감동되어 개종하게됩니다. 여러분! 직업에 충실해야 합니다. 직업전선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린도 전도는 그들과 함께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강론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의 회당 강론은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계속되지 못했고, 다시 '디도 유스도'의 집을 집회 장소로 삼아 활동했습니다(행 18:1-11).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에 1년 반을 머무는 동안 끈질긴 저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크고 은사가 넘치는 교회를 세웠는데 거기에는 유대 개종자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포함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대교 회당장이었던 그리스보(행 18:2-8)의 개종은 일대의 사건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보가 개종을 하니까 유스도, 아굴라, 브리스길라, 글로에, 스데바나, 가이오, 에라스도 등이 따라서 개종하여 고린도교회의 초기 주역이 됩니다.

한편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활동에 대한 끈질긴 방해는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으로 부임한 직후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이 바울을 불법 종교의 전파라고 총독에게 고소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불법 종교라고 규정한 기독교는 유대교와는 달리 로마법의 재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총독 갈리오는 바울이 전파하는 것이 유대교의 다른 유형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서 유대교인들끼리 유대법에 대해 싸우는 것을 중재하는 일이 자기의 임무는 아니라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였습니다(행 18:15).
갈리오 총독의 이 같은 결정은 물론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10여 년 후에 황제의 칙령으로 기독교가 박해를 받기 이전까지 기독교를 보호하는 규정으로 일반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바울에게 용기를 갖게 했으며, 마침내는 고린도 교회를 떠나 에베소로 갈 때에도 흡족해하고 떠납니다.

그러나 바울이 에베소에서 활동하는 동안 고린도 교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매우 근심스러운 것들뿐이었습니다(고후 11:28). 즉 그것은 음행과 분파주의와 사랑의 결여, 은사의 남용 등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서신을 보냄은 물론 곧 디모데의 방문을 맞이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되고 발전된 고린도 교회는 초대교회사 속에서 하나의 기적으로 간주됩니다. 왜냐하면 죄악의 소굴에 복음의 씨가 뿌려졌고, 그것을 통해서 교회가 생겨나 번창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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