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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학자료 > 논문 등록일 2012-04-30
작성자 관리자 (admin)
태국 현지 리더십과 한인 선교사간의 확고한 동반자 관계설정을 위한 실제적인 제안
GMS/TEAM 김문수선교사
서론
GMS/TEAM 김문수선교사

문제제기
본 주제는 현재 한국선교사들이 중세시대의 크리스텐덤적 선교관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인과 18세기이후 서구선교사들이 범했던 실수인 제국주의적 선교, 선교사중심의 선교, 물량중심의 선교, 교회 건축 중심의 선교, 쎈터 중심의 선교를 다시 제현하고 있는 한국선교의 문제를 점검하여 보고, 초대교회의 성경적 교회, 선교적 교회로 돌아가려는 선교의 바른 원리를 찾아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특히 태국교회가 한국선교단체와 선교사에게 많은 기대를 표하는 시점에서 주태한인선교사회가 선교전략회의를 본 주제로 개최함에 치하를 드린다.
태국 현지 리더십과 한인 선교사간의 확고한 동반자 관계설정을 위한 실제적인 제안은 아래의 2가지의 상황에 따라 연구와 조사가 구별되어야 한다.
첫째. 선교지의 리더십, 재산권이 이양이 마쳐졌거나 진행되고 있는 선교단체 또는 선교사의 경우 태국 현지 리더십과 한국 선교사간의 동반자 관계설정에 대한 유형.
둘째. 서구선교의 후발대로 선교지에 도착하여 기존 단체와 직접사역은 하지 않고, 선교사 자신이 독립적으로 개척사역에 임하면서 현지 사역자들과 사역을 함께 동역하는 경우에 있어서 동반자 관계 설정의 유형.

주제에 대한 전제
1) 선교(Mission)
선교는 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이다. 허버트 케인은 우주는 사랑의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측량 할 수 없으며 불변하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의 하나님이라 부른다.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의 계획과 인간 세계를 다스림의 원리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통하여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었다,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명령은 다음에 오는 모든 세대와 민족을 피조물을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허버트 케인은 선교는 하나님의 본질에 뿌리를 두고, 그리스도의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제자들에게 한 명령으로 유효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최초의 아담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그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돌보게 하셨던 명령과 돌봄은 신약시대에 이르러 모든 민족을 품고 땅 끝까지 나갈 것을 명령하는 선교가 있어지게 되었다.
2) 선교의 명령(The Great Commission)
선교명령은 하나님의 자기백성을 구속하시려는 본질적인 기대와 그의 기대하심에 순응하여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의 명령에 의하여 되어졌고, 제자들을 보내실 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하신 말씀을 받아 아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르는 이들을 너희는 가서(전도를 포함한 선교 명령),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 주고(구원받은 교회공동체, 교회를 세움), 예수님의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교육) 지켜서(제자의 도리, 배가의 원리) 제자가 되게 하라는 명령은 오늘날 교회의 직분과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의 복음을 다양한 형태로 전하기를 원하는 사역자들에게, 특별히 복음의 땅 끝인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에게는 더더욱 거부 할 수 없는 주의 지상명령인(The Great Commission) 것이다.
3)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이현모교수는 겔더의 견해를 소개 하면서 선교는 하나님의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요, 선교의 명령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의 의무이며 사명이다. 모든 성도들의 의무와 사명의 결과로 교회가 생성되고, 교회는 다시 선교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선교의 산물이고, 교회는 선교의 주체가 아니고, 선교가 교회를 생성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겔더는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를 이루기 위해서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해되어야 선교적 교회라 했다. 겔더는 교회와 선교를 같은 실체로 보았고, 교회와 선교는 공통의 개념 속으로 합병될 필요가 있으며 이 때문에 교회론과 선교론은 상호 관련되고 보충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현모교수는 교회의 본질에는 네 가지 이미지를 포함해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도의 교제, 성령의 창조물이다. 이를 종합하면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라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를 실행하기 위해서, 성령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성도들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선교적교회는 구속하기위해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은 은혜와 사명의 발로로 세워진 교회가 지속적으로 배가해 가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공동체를 선교적 교회라 할 수 있다.
4) 선교의 주체자
선교의 주체자는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단체나 선교사가 아닌 하나님이 자신이시다.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해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고, 그들은 명령의 이행, 집행 방법, 예산, 관리, 보고등을 보내신 하나님께 알려야 할 의무를 가진다.
요한네스는 독일 윌링겐 대회 (Willingen IMC, 1952)에서의 선교의 큰 잇슈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였다. 보냄을 받은 선교사가 선교현지에서 수행하는 사역은 하나님의 행하심에 참여하는 것이 선교이며, 하나님의 듯인 그리스도의 임재를 선포하고 증거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교의 역사와 신학을 돌아볼 때 많은 인간중심의 선교, 교회 중심의 선교를 하였음을 부정 할 수 없다.
최근에 선교잡지나 교회 웹사이트, 선교사들의 선교편지를 보면 “우리의”교회, 선교사, 선교사역, 선교지역, “선교센터” 사역, 집중, 중심으로 라는 단어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요한네스에 의하면 Missio Dei 는 선교가 하나님의 사역이고, 하나님의 프로잭트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는 선교사 개인이나 선교단체의 사역이 아닌 하나님의 본성에 의한 하나님의 독자적인 사역이라는 것이다. 단지 교회와 선교단체, 선교사는 주의 명령을 수종들기 위해 위임 받았음을 의미 한다. 실제적으로 우리 주변에 우리선교사, 우리교회 선교사, 우리선교지역, 우리교회 선교 프로잭트, 000선교사 쎈터, 00교회 프로잭트, 선교 보고란에 선교 쎈타에 집중하기로---. 쎈타를 통하여 진행할일들을 열거 하는 선교보고는 지난 선교사역에서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선교사들에게 너무 익숙하게 사용했던 용어들이 아닌가? 이러한 용어들에 대해서 요한네스는 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가 아니고, 자신의 사역, 파송교회의 사역이라는 것이다.
모든 은사와 사역에 뛰어난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고전13장 2.3절에 모든 비밀, 지식, 산을 옮길 만한 믿음, 너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너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사역자세)이 없으면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고 너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는 무서운 말씀이 오늘날 선교지에서 “우리와 나의 사역”에 익숙한 우리에게 주시는 마지막 심판대에서 듣게 될 경고를 미리 해주신 것이다.
5) 동반자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태웅박사는 동반자적 선교(Partnership Mission)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게 쓰여 졌으나 1992년 세계복음주의협의회 선교위원회(WEF-MC)마닐라 대회에서는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동반자적 선교의 의미를 좀 더 보편적이며 초문화적으로 정의를 내렸다고 했다. 그는 동반자적 선교는 교제나 협력 이상의 것이며 병합 이하의 것으로서 특정한 관계와 책임감을 부여받은 둘 이상의 존재들이 협약에 의해서 소정의 선교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동반자선교에 대해 몇 가지를 제안했다.
1) 동반자적 선교는 성서를 기초로 이루어져야 한다.
2) 동반자적 선교는 매우 다양할 수 있다.
3) 동반자적 선교는 단순히 교제나 협력 차원을 벗어나서 책임감을 가지고 하되 병합까지는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4) 동반자적 선교는 상호 존중과 신뢰의 관계 속에 둘 이상의 개체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 복음화의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힘을 합해서 더욱 더 효과적인 사역의 결실을 얻게 하는 것이다.
선교사를 형제, 동역자, 동반자라 불리웠던 태국기독교총회에서 사역을 하였던 한국전쟁이후 최초의 한국선교사였던 최찬영은 동반자라는 의미를 선교하는 교회와 선교지 교회를 나누어 생각하던 서구중심의 가부장적 선교의 자성으로 동반자, 선교동역자(Fraternal Worker) 즉 상하가 없이 서로 동등함, 사역에 대한 결정권을 오히려 현지 교회측이 갖는 것을 의미 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선교동역자의 의미를 서구교회, 선교단체들이 피 선교지 교회를 어린교회라고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모든 교회가 독립된 교회로 독자적인 선교정책을 수립하고, 필요에 따라 돕는 것인데 이러한 목적으로 파송되어 현지교회의 지도를 받으며 사역하는 선교사를 선교사역 동역자라 부른다고 했다.
6) 선교단체, 선교사의 사역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선교사를 보냄과 계획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임을 전제하면 그 사역을 위한 모든 자원, 재원은 보내신 분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으로 그 프로잭트에 순종하며 수종을 들었던 선교사, 선교단체, 현지단체까지도 그 소유권을 주장 할 수 없다. 모든 사역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심을 인정하고 함께 수종들 때 하나님께서 그의 질서대로 세우실 것이다. 그와 함께 종국적으로 선교지의 주도권은 현지교회와 사역자가 갖도록 해야 하고 빠르게 진행이 될수록 우리는 선교사역의 1차적인 성공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선교지에 있는 잇슈는 파송단체와 선교사가 현지교회와 현지사역자에 너무 일방적인 주도권 행사, 장기적인 집권, 리더십 이양의 초보 단계에서 머무는 등 마지막 선교과제로 가는 여정이 정체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7) 부정적인 동반적인 선교활동에 대한 확고한 관계
선교 현지에서 리더십이양의 요구등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면서도 남은 종말의 시간에 현지교회와 선교사들, 특히 한국선교사들이 동반자 관계를 확고히 해나가는 방안이 있는가?
허버트 케인은 전 아프리카 교회 협의회의장이었던 Cannon Burgess Carr의 말을 인용하기를 “ 모라토리움은 착취구조에 대한 논쟁이다, 왜 누군가로 하여금 나의 인간성을 빼앗아가게까지 하면서 그의 영혼을 구원해야 하는가?” 미국과 유럽인들의 인종적, 정신적 교만을 증대 시켜주기 위해서 왜 내가 무력한 존재로 기술되어야 하는가라 하였다고 했다. 오늘 선교지 현장에서 미국인선교사, 유럽선교사 그리고 이미 한국선교사들이 사역하는 곳에서도 이러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칼빈은 우리 신앙인의 기본자세를 코람데오(Coram Deo)라 했다. 시편16편8절의 내가 여호와를 내 앞에 항상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요동치 아니하나이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인 존 낙스의 무덤에는 이런 묘비가 쓰여져 있다고 한다. “여기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워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신전 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부패했던 교회와 신앙인들을 향해 개혁을 외치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을 높이며 살아갈 것을 외쳤던 외침이 오늘날 선교단체와 선교사에게 들려져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요하네스 베르카일 화란 자유대학 선교학교수는 선교사의 동기를 순수한동기와 불순한 동기로 구분을 했는데 자신들의 주제를 우상화했던 선교사 전기 작가들 때문에 선교 동기에 대한 오해가 발생했다고 하면서 선교사의 선교동기를 전면적으로 재 점검이 필요하다 하였다.
1) 순수한 동기들
(1) 순종의 동기 2) 사랑, 자비, 그리고 동정의 동기 (3) 영광의 동기
(4) 종말론적인 동기 (5) 긴급함 (6) 개인적인 동기
2) 불순한 동기
(1) 제국주의적 동기 (2) 문화적 동기 (3) 상업적인 동기 4) 교회 식민주의
순수한 동기들은 주의 부르심에 순종함, 선교지의 영혼들을 보면서 사랑과 자비, 동정을 갖고 사역에 동참하게 되기도 하고, 이방인들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자 하는 열정, 종말적인 동기, 긴급성 그리고 개인적인 열망에 의하여 선교사역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순한 동기의 선교사역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순한 동기들은 다른 국가나 민족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시도에 선교가 사용되어지는 의도된바가 아니더라도 각 선교단체, 각 나라의 깃발을 꽂기 위한 선교동기, 선교사의 문화를 우월 시하여 선교사의 문화를 강요하며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동기, 리빙스턴의 밀림의 지도가 본래의 의도는 아니나 노예상인들에게 들려져 현지인들을 죽이고 노예를 팔아버리는 악행에 쓰여 진 것, 윌리암 케리의 열정적인 인도선교에는 그가 자비량으로 사역을 하면서 동인도 회사의 직원으로 그 동인도 회사의 당시의 식민지적 착취에 대한 간접적인 동조하는 결과를 보면서 국가적, 동인도회사 입장에서는 선교를 불순한 동기로 이용하는 것이 된다. 교회 식민주의로 각 나라 또는 선교단체, 선교사 개인이 자기들의 단체의 이름과 교리, 교단의 형태를 세우기 위해 강요하는 경우들을 불순한 동기라고 볼 수 있겠다.

선교사 또는 선교단체가 선교현지교회 도는 선교현지단체와 확고한 동반자의 길을 가는 길은 선교의 주체가 선교단체나 선교사가 아닌 그리고 선교 현지 교회 또는 선교 현지 단체도 아닌 Missio Dei-하나님의 의한 신적인 선교가 되어져야 하고,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수종드는 수종자로써 하나님앞에 서기를 힘쓰는 코람데오(Coram Deo)의 자세가 필요하다.

A. 태국 현지 리더십과 한인 선교사간의 동반자적 관계 유형

1. 동반자적 관계가 이미 형성된 선교사와 단체간의 관계에서의 제안
태국의 선교역사가 184년(1828년)이 되었기에 C.C.T교단이나, 남침례교, OMF, 오순절일부교단은 이미 리더십이 이양되어 선교사와 동반자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유형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성숙된 동반자관계를 갖거나 유지시키는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태국CCT교단과의 협정을 맺고 있는 한국선교부는 예장통합(PCK) KGAM(오영철), WMP(신홍식선교사)가 있는데 그 중 통합측(PCK) 선교사회 정관의 일부를 보면
태국내에 단일한 한 개의 선교회를 조직한다.
본회는 태국 안에서 갖는 모든 공적인 사항에 예장총회(PCK)를 대표한다.
본회는 태국 현지 교단과 협력하여 복음 사역을 감당한다.
본회는 태국기독교 교단(CCT)이 요청한 선교사를 총회에 요청한다.로 되어 있어 강한 교단적 배경의 조직과 함께 태국 현지교단과 협력하여 그들의 요청에 의하여 선교사가 사역하게 되는 형태이고, CGN TV에서 방영된 CCT 교단장과의 인터뷰의 내용을 보면 CCT내의 모든 선교사는 총회 관할 아래 있기에 사역을 위해서는 태국어 습득, 태국문화이해 그리고 파송교회 또는 선교부가 현 교단과의 관계를 잘 가져야 할 것을 강조 했다.
상기의 두가지 예는 먼저 선교사 또는 파송단체와 현지교단이 형제관계로 계약을 맺으나 현지교단이 주체가 되어 선교사를 초청하고, 사역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과 선교사의 사역에 대한 관리를 하게 됨을 말해 주고 있다.

CCT와 협력 사역을 하는 최승근목사는 그의 논문에서 동반자 선교를 하는 선교사의 자세로와 동반자 선교로써의 제안을 하였는데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다.
1) 섬기는 자세, 2) 포용성과 유연성을 갖춘 자세, 3) 상호 배움의 자세
4) 책임감 있는 자세, 5) 인내와 끈기로 계속하는 자세를 열거하였다.
그의 논문에서 다시 동반자 선교를 위한 10가지의 제안을 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다.
1) 개별 선교사역을 지양하고 현지선교사회 중심의 사역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2) 선교현장의 건전하고 견실한 협력자를 찾아 선교협정을 맺어야 한다.
3) 현지선교사회도 동반자 선교를 위한 내적인 준비를 하여야 한다.
4) 선교사회 회원 간의 빠르고 신속한 의사소통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5) 협력의 사역을 다양하게 개발하여 다양한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6) 선교협정을 맺은 현지교단(교회)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요청하여야 한다.
7) 현지선교사회는 현장선교사들의 갈등과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도와야 한다.
8) 현지선교사회는 다양한 현장사역을 묶어 시너지효과가 나타나게 해야 한다.
9) 현지교단과 정기적인 교류를 통해서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협력할 사역을 구체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10) 현지선교사회는 신임선교사에게 동반자 선교의 핵심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라고 하였다.

필자는 최승근선교사의 현지교단과 협력으로 사역을 하는 선교사로서 현지교단과 관계를 많은 경험과 사례를 가지고 깊이 연구한 것에 높은 가치와 태국선교전략에 기여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소속단체인 통합교단선교부에 대한 내용에 국한하고 있고, 태국에서 사역하는 약 90%이상의 선교사가 태국기독교총회가 아닌 EFT, 남 침례교,
단독 사역등으로 다른 단체와 사역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앞으로 태국선교를 향한 다양한 사역을 하는 한국선교사의 전략 또는 자세에 대한 것을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운 점이 있다.

필자는 선교단체든 선교사 개인적이든 동반자 선교를 위해 준비 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존재 이유가 선교이고, 선교를 통하여 또 다른 교회를 계속하여 세워져야 하기에 이러한 선교적 교회의 이해와 철학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함께 동반자적 관계를 가지는 형태를 제안을 하고자 한다.
1) 형제적 동반자 관계
태국 복음화의 동역자로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헌신함을 보여 줄 때 같은 동역자로서, 그리스도안의 형제로서의 관계를 가지고 사역을 할 수 있다. 최찬영선교사는 선교동반자의 개념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리스도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동등한 관계를 갖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고 하였다
실제로 필자가 사역하였던 CCT의 방콕의 6노회, 우돈타니의 13노회, 치앙라이의 2노회, 치앙마이의 1노회가 교단, 노회, 교회간의 자매결연 또는 유대 관계를 갖지만 교회지도자와 노회의 경제적, 영적인 상황에 따라 형제의 동생, 형으로 관계설정이 교차되는 것을 보았다. 선교단체 및 선교사가 현지교회와의 단계적인 과정을 통하여 형제적, 동동한 관계를 맺고, 서로의 경험과 문화를 존중해 나갈 때 효과적인 동반자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이 감성을 가지고 있기에 각 선교단체와 선교사가 진심을 가지고 형제애를 나눌 때 사역에 대한 동역자의식, 문제에 대한 동일한 감정을 갖게 될 때 형제적 관계가 되어 질 것을 확신한다.
2) 영적인 동반자 관계
한국교회의 영성을 함께 공유하고 나눈다는 의미에서 기도, 말씀, 목회사역의 경험들을 함께하는 것이다. 동반자 관계에서 문화적 우월함, 재정적인 부담률에 따른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는데 이는 인위적인 불평등한 리더십이라 한다면 여적인 동반자 관계는 모든 나라와 다양한 차이가 있음에도 수용 할 수 있는 형태의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교회가 세계 모든 교회(서구교회를 포함하여) 동역할 수 있는 것은 한국교회의 영성을 나누는 것이다. 세계교회가 공통적으로 한국교회에 기대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급성장했던 영적인 경험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적인 동반자적 사역은 말씀과 기도, 전도, 선교, 교회성장, 훈련에 각 분야에 해당 될 것 이다.
3) 지적인 동반자 관계
선교사가 이미 교육받은 신학교육을 바탕으로 목회자 양성하는 사역에 동역하는 것이다. 비록 언어와 문화가 다르더라도 하나의 성경을 가지고 같은 하나님을 섬김으로 인해 성경적인 지식, 신학적인 지식을 함께 공유함으로 동반자적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적인 동반자 관계는 선교단체의 파워보다는 각 개인의 지적 능력에 따른 동반자적 사역이다. 그러나 지적 동반자관계는 신학교사역, 훈련사역, 도서출판사역등이 해당되나 많은 재정이 드는 경우 리더십이 재정적 투자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4) 사회봉사의 동반자 관계
태국교회가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 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 사회봉사의 동반자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 맹목적인 구제활동은 오해가 있을 수 있으나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베푸는 구제 활동은 현지교회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좋은 배경이 될 수 있다. 참고로 선교사의 리더십이 이양되고, 목회사역 및 교회사역이 현지교회에 이양된 단체들이 선교사들의 유효 노동력과 재정이 사회 복지 사역에 과다하게 투자되므로 교회의 부족한 사례금과 교회 행정에 부적응한 현지 사역자들이 높은 사례금과 안정된 복지 정책이 있는 NGO 단체에 몰리게 되는 기현상이 있다. 실제로 선교단체가 사업을 하려 할 때 기독교인이 적은 태국사회에서 기독교인 직원을 교회와 연결된 사역을 위해서는 신학교를 졸업했거나 교회 사역의 경험을 있는 이를 선호하게 된다. 사회봉사의 동반자 사역으로 고아원, 기숙사, 에이즈환자, 마약재활원, 교도소사역등이 해당된다.
5) 선교활동의 동반자 관계
선교적 교회를 세워 감에 있어 태국교회가 주변국가에 선교를 하고, 선교사를 파송, 후원하는 것이 아닌 교회의 본질, 존재 가치를 선교에 두고, 선교하는 교회를 계속하여 배가하는 선교적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이미 경험된 선교의 노하우를 함께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동반자적 사역을 함께 할 수 있다. 특히 태국은 비슷한 문화 또는 인접한 여러나라를 가지고 있다, 라오스(문화와 언어의 유사, 난민), 베트남(지리적, 난민) 미얀마(역사적, 지리적, 경제적-노동자), 캄보디아(역사적, 지리적, 경제적-노동자), 말레시아(지리적, 언어, 종교적), 중국(역사적, 같은 언어의 부족들, 이민자), 그 외에 태국의 노동자의 취업, 이민자들로 인한 노동자 교회가 있는 나라(한국, 싱가폴, 대만, 홍콩, 말레시아, 미국)들이 있다. 이들을 향한 태국인의 선교를 안내하고 도전을 주면서 함께 선교의 동반자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겠다. 이미 한국교회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선교에 다양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선교현지교회가 스스로 선교에 대한 시야를 열어가도록 돕고 그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사역이 가능하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김명혁교수는 2000년 세계 선교사 대회를 앞두고 대담한 자리에서 지난날의 과오와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돈과 프로젝트 위주보다는 섬김과 나눔과 동일시의 삶이 동반되는 선교, 경쟁과 중복보다는 동역과 협력이 이루어지고 구조 조정과 재배치가 단행되는 선교, 선교사 사역 위주보다는 현지인 지도자 양성과 현지인 교회 설립을 지향하는 토착화 선교를 모색, 교회와 단체 간의 선교협력을 모색하는 등의 의미를 두었다. 그는 새 시대의 선교에 대해서 몇 가지를 제시했다.
1) 협력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사 파송 교단간의 협력과 동역, 선교사 파송 선교단체간의 협력과 동역을 의미하며, 교단과 선교단체간의 협력과 동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선교지에서의 모든 유관 기관간의 협력을 의미한다. 경쟁과 중복을 자행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재배치와 선교의 구조조정이 과감하게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2) 섬김과 나눔이 있는 삶의 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돈과 프로젝트 위주의 선교를 지양하고 이제는 현지인들과 같이 되고 현지인들과 함께 살며 현지인들을 섬기며 현지인들과 모든 것을 나누는 "성육신적" 삶의 선교를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3) 다양한 문화매체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전문적 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4) 선교사 중심이 아닌 현지인 중심적 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사가 가서 선교사가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선교사 주도적 선교를 지양하고 현지인들이 복음사역을 주도하도록 현지인들을 훈련하고 현지인들의 지도력을 개발하는 토착화 선교를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5) 동북아시아 중심적 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6) 나그네 의식을 가진 디아스포라 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향 의식와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삶은 선교와 역행하는 삶이다. "왕국"건설도 하나님 나라 확장과는 역행한다.
선교의 모든 전문가들의 선교적 동반자는 파송교회나 선교단체의 정책이 아닌 현지교회와의 관계, 물질적, 문화적, 신학적 우월의식을 버리고 섬김과 나눔의 성육신적인 선교, 선교사나 선교단체가 중심이 아닌 현지인 중심의 선교, 그들의 지도자에 의해 진행되는 선교를 마지막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선교 적 과업임을 말하고 있다.

B. 선교사의 주도적인 사역에 의하여 현지교회가 참여하여 동반자의 관계를 갖는 경우이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선교사들이 사역하는 현장은 태국기독교총회(CCT)와 남침례교 총회가 아닌 태국 기독교연맹(EFT), 독립적 사역을 하고 있다. 사실 이미 태국기독교 총회는 함께 사역했던 선교사들에 의해 리더십이양이 완료된 상황이다. 그러나 태국복음화가 관계로 새로운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이 입국을 하였고, 그들은 다시 초기의 개척부터 시작되므로 현지교회와 함께 하는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갖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선교사의 주도적인 사역에 의하여 현지교회와 현지 사역자가 참여하는 동반자의 관계를 갖는 경우이다. 이는 어려운 동역의 관계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선교사가 시작한 사역으로 인해 주인 의식이 너무 강하고 후에 동참했거나 수동적 위치에서 후원을 받는 현지 동역자는 고용인의 자세가 되기에 수평적인 동반자적 관계를 갖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태웅박사는 동반자 선교를 위한 원칙과 과정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동반자 선교의 원칙
1) 서로가 지배하지 않고 신임 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가 신임하려면 서로가 협의 사항을 이행 할 수 있는 능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2) 서로 공신력이 있는 결정과 조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3) 각자 책임의 한계가 명확해야 한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합의점이 잘 이루어지고,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에 대해서 명확한 지침들이 서 있어야 한다.
4)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서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관계가 분명치 않은 두 단체나 혹은 개인들 간에는 최소한도 복음주의적인 입장에서의 동반자적 선교는 기대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상호간에 좋은 교제와 신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훌륭한 동반자적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먼저 깊은 교제부터 시작해서 협력을 하고 여기서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하고, 그 다음 더 깊은 차원의 동반자적 관계로 넘어가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5) 공동의 목표가 달성된 후에는 관계가 종결되어야 한다.
그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그 관계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가능성이 있고, 어떤 목표를 놓고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했는데 상호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반자적 선교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 과감하게 동반자적 선교를 종료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6) 동등한 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배하는 자세라든지. 강요하는 자세라든지, 상대방을 간섭하는 자세 등은 동반자적 선교를 효율적으로 하는 데 모두 다 해로운 요소들이다.

이태웅박사의 구체적인 원칙이 매우 명확하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동반자관계가 유지 되려면 서로의 약속을 감당할만한 능력이 전제되어야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현지 사역자가 사역과 부르심에 대한 자부심이 없이 수동적일 경우 동반자적 관계가 지속 또는 발전이 어렵게 된다. 책임 한계와 목표에 있어서도 초기부터 구체화 되어 있지 않으면 각자의 문화와 신앙경험, 교회 환경 때문에 가지고 있는 기준이 서로 다르기에 차후에 오해 내지는 불화의 소지가 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뿐만 아니라 공동의 목표가 완성되거나 서로의 약속 불이행으로 종료에 대한 시점을 부정적인 부분만이 아닌 긍정적인 부분까지 언급하는 것은 이태웅박사의 선교에 대한 선견지명에 찬사를 보낸다.
이태웅박사는 최종적으로 동반자관계에 있어서 동등한 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명시하였다, 모든 단체에 각각의 주권에 대한 불평등한 관계가 늘 있어 왔고, 특히 선교단체나 선교사에 의하여 시작된 현지교회의 동등한 주권의 명시는 선교의 매우 초보적인 개념이면서도 동반자적 선교롤 가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결단의 과정이며, 이로 인한 장기적인 동반자적 관계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되는 것이다.
동반자 선교를 진행함에 있어서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이태웅박사는 맥카우간 (Paul McKaughan)이 말한 5가지 과정으로 설명하였다.
1) 지도력 확보-초기부터 지도력의 결정, 과정의 협의
2) 목표설정-목표에 대한 명확한 표현이 필요
3) 과정에 대한 협의-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과정으로 해결 할 것인지 미리 협의. 4) 관계와 의사전달-교제 및 투명한 의사 교환 등을 통한 관계 확립.
5) 조직력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진행되는 사역에 대한 조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협의이다.
맥카우간은 멕시코에 15년간 사역을 하고 현재 The Mission Exchange의 대표로서 이미 40년간 리더십이양을 통한 동반자 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서양적 사고 속에서는 이처럼 구체적인 진행과정을 구체화하고 명시 할 필요가 있으나 동양인들은 초기 체면문화 때문에 어려우나 그러나 이러한 관계 설정은 운전 시 안전 밸트와 같아서 안전하고 편함을 주게 된다.
선교단체나 선교사가 현지 리더십과 확고한 동반자 관계를 가지려면 초기단계부터 바른 리더십 이양에 대한 준비와 단계가 필요하다.
고신훈련원부원장이며 러시아 선교사였던 신성주목사는 타문화권사역에서 현지인에게 효과적으로 리더십을 이양하는 세 가지 중요한 선교정책을
1) 삼자원리(Three-self Principle) 핸리 밴
2) 교회개척운동(The Church Planting Movement CPM)
3) 단계적 철수 모델(The Phase-out model)로 제시하였다,
사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해외선교의 목표는 선교사들에 시작된 사역들이 토착화되어 현지에 뿌리 내리게 하는데 있다는 사실에 동의 한다.
1) 삼자원리(Three-self Principle)
핸리 밴의 주장으로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립, 자치, 자전으로 상징되는 현지인 교회의 정착이며, 그 후에는 선교단체와 선교사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선교의 안락사 (The euthanasia of a mission)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선교사들이 대규모 쎈터를 운영하며 사역하는 위험을 경고하였다. 쎈타 사역 또는 교회에 에너지를 다 쏟으므로 실제적으로 해야 할 선교사역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앤더슨은 선교사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기에 선교사의 첫 번째 의무는 한 지역의 교회를 모으는 것만이 아닌 가능한 빨리 현지인 리더십을 세워서 스스로 책임져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지인 교회목사가 토착교회를 발전시키는 열쇠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밴은 경제적 자립을 먼저 앤더슨은 자력전도를 더 중요시 하는 차이가 있었다.
필자도 교회의 자립이 재정적인 자립을 전제로 하였으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들을 세워 가면서 교회의 자립은 재정적인 안정에 있지 않고 교회 지도자들의 복음 전도의 비전에 따라 스스로 자립코자 하는 의지, 믿음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로 교회에 재정적인 여유가 있을 찌라도 목회자나 지도자가 전도와 신앙에 문제가 있을 경우 곧 교회가 와해되고 자립의 의지를 잃어버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롤랑알렌(Roland Allen)은 선교사의 인종주의. 종교적 우월의식. 그리고 가부장주의는 자율적인 교회 형성의 적이라 하였다. 선교사의 첫 번째 의무는 자기들의 사역을 이어 갈수 있는 현지인 지도자를 키우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사역에 적합한 현지인 리더를 아직 양성해 내지 못했다고 해서 사역을 현지인에게 물려주지 않고, 계속 머물며 자기들이 사역을 주도 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자연적으로 적합한 현지 리더를 나오도록 인도하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알렌도 선교사들이 현지에 큰 기관이나 큰 건물, 교회당을 세우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선교사로 하여금 새로운 사역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하고 현지인이 선교사의 리더십을 대신하는 것을 가로 막기 때문이라 했다.
롤랑알렌은 중국선교를 하면서 자신의 사역이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서 사도바울의 짧은 시간 내에 리더십을 이양하며, 성령을 의지 하고 현지교회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전적으로 강조하였다. 사실 현지교회의 사역자나 교회의 상황은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의 상황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고, 거기에 문화적 차이와 성령님의 현지교회를 향한 성장의 단계가 있기에 모든 선교현장의 교회를 획일적으로 일정을 잡을 수가 없다. 주님도 승천 시 아직도 의심하고, 불확실한 것 같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성령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그가 오시면 능력을 받고, 땅끝까지 나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우리가 누구이기에 주님의 승천 시 보다 더 뛰어난 선교의 열매를 기대 한다는 것인가?
2) 교회개척운동(The Church Planting Movement CPM)
1994년 인도에서 사역하는 데이비드와 잰 완슨의 보고서로부터 시작된 급성장하는 교회와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중국등에서 일어나는 교회개척운동이다. 데이비드 게리슨에 의하면 하박국1장5절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가지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가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1994년에 인도의 선교보고서 수천명의 새 신자, 백 여개의 도시와 마을 그리고 촌락에 교회가 세워졌고, 1년 후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교회들이 폭발적인 성장, 라틴 아메리카, 중국의 교회들이 급성장하는 것을 현상을 교회개척배가운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1)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교회 개척운동의 10가지 특성
불안한 사회분위기(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족의 위협, 전쟁난민),
외부와 고립(중국, 캄보디아, 마사이영토, 중앙아시아, 인도 바하르주등),
회심에 따른 큰 희생(핍박은 교회를 순수하게 한다),
두려움 없는 담대한 믿음(공산당의 위협, 이슬람의 위협),
가족 회심(가족 관계를 통하여 회심되고 전해진다),
새신자들의 즉각적 편입(회심자가 교회사역에 즉각적으로 동참하게 함),
모국어로 드리는 예배(전통교회의 문화가 아닌 그들의 문화, 언어 형식으로 예배),
하나님의 기적(각종 기적, 평안의 사람),
지도자 현장 훈련(새로운 지도자를 끈임없이 현장에서),
고난을 당하는 선교사들(폐쇠되고, 열악한 지역, 보호 받지 못하는 상태)
이러한 특성들은 초기 한국교회의 성장이 있었던 사회적 정황과 일치 한다. 주변의 상황이 그들을 하나님만을 의지 할 수 있는 분위기로, 거기에 나타나는 기적을 통한 확신과 위로, 담대함이 수반되고, 외부에서 사역자와 리더 공급이 어려우므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하면 짧은 시간에 사역자가 세워지고 그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기적과 능력으로 자발적인 리더십이 생기에 되는 것이다. 그들이 금식과 기도로 이러한 어려움을 이기고,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면서 담대한 믿음으로 선교에 대한 종말론적인 의식으로 헌신하게 되어 큰 열매를 갖게 되는 것이다. 외부의 도움이 없이. 신속하게 지도자가 세어지고 더 배가되는 모습을 보며, 오늘날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이 염려하는 현지인에게 사역과 재산을 위임하는 것에 대한 염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2) 일곱가지 치명적인 죄악(사역의 방해요소)
데이비드는 교회개척배가운동이 진행됨에 있어서 방해요소를 제시한다.
①모호한비전(매모임과 훈련시 명확한 비전을 확인되지 않으면 흩어지고 좌초한다),
②성경의 변개(성경과 다른 예배형식, 교회전통, 직책의 권위를 주장할 때),
③순차주의(단계적 진행을 고수하는 이성적인 논리속에 갖칠 때),
④맛 잃은 소금(죄와 타협하여 기독교인 본분을 잃어버린, 논쟁으로 변명하는),
⑤사탄의 사탕(돈-목회자의 사례, 교회 건축비, 봉사-봉사를 위한 목적이 없는 봉사, 기독교 연합의 염원으로 전도사역을 뒤로하는 것),
⑥외부인의 탈취(외국인 주도권을 갖는 방법으로 현지인의 문화를 외국 문화 형태로 바꾸도록 강요, 외국 자본을 의지하는 사회보장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 현지인 스스로가 재생산 할 수 없도록 교회 생명안에 외국적인 요소를 주입하는 것),
⑦하나님을 탓함(사역에 대한 열매가 없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방법을 무시함으로)
이상의 교회 개척운동의 10가지 특성과 7가지 치명적인 죄악 또는 사역의 방해요소는 놀랍게도 선교사의 물질, 신학, 가르침, 교회 전통등이 고려되지 않거나 오히려 교회개척운동의 방해요소로 곱고 있음을 볼 때 선교사들이 현지 사역자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기존 쎈터와 큰 건물에 거할 때 교회 개척 운동의 원리에 의하면 선교의 확장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다. 비전은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확인되어져야 하고, 성경과 다른 예배형식, 교회전통, 직책의 권위를 초월하며, 기독교인의 본분을 지켜 죄와 타협치 않는 교회들의 자세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 돈-목회자의 사례, 교회 건축비, 봉사-봉사를 위한 목적이 없는 봉사, 기독교 연합의 염원으로 전도사역을 뒤로하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행사와 프로그램에 시간과 물질을 바치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며, 외국인 주도권을 갖는 방법으로 현지인의 문화를 외국 문화 형태로 바꾸도록 강요, 외국 자본을 의지하는 사회보장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 현지인 스스로가 재생산 할 수 없도록 교회 생명 안에 외국적인 요소를 주입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오늘날 크리스템덤적 선교형태에 머물러 있는 선교사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끝으로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방법을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섭리에 맡기는 태도를 말해준다.
필자는 하나님의 교회개척배가 운동에 대한 책을 보면서 왜 태국교회에 이러한 기적인보고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 마음 아파하던 중 크리앙삭목사가 개척한 태국 소망교회에 대한 글과 그 사역자들의 인터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부분적이나마 선교적 교회비전을 가진 태국사역자에 의하여 진행된 태국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태국소망교회에 대하여는 다른 부분에서 상세히 다룰 기회가 있겠다.
3) 단계적 철수 모델(The Phase-out model)
Tom A. Steffen는 미국 바이올라 선교학교수이며, 15년간 NTM 필리핀선교사로 사역을 하였는데 그의 경험을 통하여서 선교 현장의 선교사들이 당장 필요한 사역을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필드 전체를 복음화 하기위한 전략을 가지고 사역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사역하는 있는 선교사들은 전도나 제자 훈련 사역등 매일 매일의 현장 사역에 파묻혀 그 지역전체를 복음화 할 재생산 할 수 있는 현지인 리더를 준비시켜 선교사들은 서서히 철수하며 또 새로운 사역을 반복적으로 배가하는 전략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단계적 철수의 원리를 연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톰 스테판은 선교사의 사역을 6단계의 역할로 배우는자. 전도자, 가르치는자, 상주하는 조언자, 정기 또는 비정기적으로 순회하는 조언자, 현장을 떠나 있는 비 거주 조언자의 단계로 나누었다.
톰 스테판의 6단계의 철수의 원리는 이미 모든 선교사들이 이와 같은 또는 좀 조정된 형태의 모델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각각의 단계를 규정하거나 결정하는 것을 선교사 자신의 판단에 의지하기에 여전히 어느 단계에서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거나 더 진전이 없을 때는 현지교회와 단체의 토착화가 요원한 경우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프로스트(Michael Frost)와 허쉬(Alan Hirsch)는 성육신 원리가 있는데 요.1:14과 13장 및 빌.2:5-11에 잘 나타나고 있다.
1) ‘낮아지심’(전략), 2) '자기를 비우심'(kenosis, 낮아짐의 비결)), 3) 배움(준비), 4) 문화를 넘어감(cross-cultural, 상황화), 5) 수용자 중심(receptor-oriented, 성육의 이유), 6) 예수님의 성육의 완성은 '십자가'인데, 그것의 핵심은 ‘섬김’(servant leadership)이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한 것 같이 자기 몫을 다 한 후 다음 세대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사라지는 7) 리더십 이양(leadership succession)이 선교적 교회의 성육신 원리가 지향하는 클라이맥스이다.
GMS초대 사무총장이었고, 필리핀선교사로 사역했던 김활영선교사는 SIM의 Harold Fuller의 정리한 사역단계인 개척자의 단계(Pioneer stage) 부모단계(Parent stage) 동역자 단계(Partner stage) 참여자 단계(Participant stage)이다. 선교부와 현지교회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으로 비유하여 보았다, 즉 선교의 모든 것을 성장한 자식 같은 현지교회에 이양하므로 선교가 완성되고, 제4단계가 끝나는 시간을 선교의 이양시기로 본다. 랄프 윈터는 선교사가 이 4단계를 지켜 볼 수 있으면 가장 행복한 선교사라 했다고 한다. 김활영에 의하면 랄프 윈터는 선교의 첫 시대는 이 4단계의 과정이 잘 진행이 되었으나 제 2시대나 마지막 시대는 상황이 다르게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구 선교뿐 아니라 한국선교도 선교 후발 주자로써 어느 선교지는 이미 제4단계가 상당히 진척된 현장에 배치 받는 (태국CCT, 일부 선교단체들)선교사들은 이미 선교사보다는 형제 동역자로 초청되어졌기에 리더십 이양의 문제는 이미 지나버리고 단지 형제 동반자로써의 관계를 잘 유지하며 선교 사역을 이룰 것인가 과제이다. 리더십 또는 재산권이양의 문제를 선교부가 진행하면 객관성을 갖지만 한국선교사의 경우 대부분이 후원교회의 거부권과 함께 선교사 개인의 각 단계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김활영선교사는 필리핀의 예를 들면서 선교부에 속하였으나 개별적으로 사역을 진행한 한국 선교사가 많기에 짧은 선교사역의 역사와 함께 정책의 부재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선교사들은 전문적인 사역을 나누어 하기 보다는 모든 사역을 한 선교사가 맡아서 하고 있고, 특히 목사선교사의 경우 선교부의 정책보다는 개교회의 후원을 받아 사역을 하였기에 파송교회에서 재산에 대한 염려와 선교사가 새로운 사역을 하게 될 경우 추가로 재정적인 부담하게 되는 요인등으로 리더십 이양의 시기를 늦추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는 것이다.
조동진목사도 이 4단계 이양의 모델에 문제가 있다고 선교사와 현지교회는 부모와 자식관계가 아니라 선교사는 산모가 아닌 산파로서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시고 선교사는 주님의 지체인 교회가 자라고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성령께서 붙잡고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다. 선교사가 교회를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선교사를 사용하셔서 교회를 탄생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태어날 때부터 주님의 교회이며, 현지교회의 소유이다라 하였다.
필자는 조동진 목사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선교사가 교회 개척 초기부터 현지 동역자 또는 교인들과 함께 구체적인 교회 운영 메누얼을 작성하고 단계적 시기를 정하여 서로가 동역자로, 동반자로 시작되어 현지교회가 이해하는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이양이 진행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선교적 교회론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교지 교회를 자립하게하고, 선교단체가 현지교회와 동반적인 사역을 함께 해 나가는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침례교신학대학 이현모교수는 선교 한국 강의에서 선교적 교회를 소개 하면서 스티븐 베반스(Stephen Bevans) 의 글을 인용하였다. 교회가 세상 어디에나 모든 곳에서 선교를 이해하고 수용할 때 교회로 이루어진다. 즉 교회란 예수의 제자들이 점차 자신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선교지에서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이 고민하는 것은 선교지교회의 재정적인 자립, 전도의 자립, 행정적인 자립이 어느 부분부터 혹은 어느 단계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고 이러한 문제를 잘 해결할 때 본 전략포럼의 주제인 동반자 관계가 확고하게 되어 함께하는 선교가 될 것이다.
필자는 서구선교의 후발대로 선교지에 도착하여 기존 단체와 직접사역은 하지 않고, 선교사 자신이 독립적으로 개척사역에 임하면서 현지 사역자들과 사역을 함께 동역하는 경우에 있어서 동반자 관계 설정의 과정을 제안하고 싶다.

김문수선교사의 동반자 관계 사역의 과정
1) 사역 초기부터 사역과 비전을 나누어지고 동반자관계로 출발하는 것이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 존재하고 선교를 통해서 교회가 배가되는 선교적 교회 비전이 먼저 동의되어야 한다. 당연히 초기에는 선교사가 사역을 주도하게 되고, 재정도 부담 할 수 있는 경우 많으므로 지도력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초기에 선교사가 나가기를 원하는 형태의 비전 구체적으로 반복하여 알리고 현지 사역자로 하여금 선교적교회 비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 할 때 장기적인 동반자 관계로 갈수 있을 것이다.
2) 사역 초기부터 선교적 교회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사역에 대한 분담, 책임을 명시 또는 점진적인 매뉴얼을 작성하여 진행을 하는 것이다.
동양적인 사고로 조금은 어려워도 초기 단계부터 사역에 대한 분담, 책임을 협의하여 함께 진행하되 현지 동역자의 상장과 변화를 기대하면서 점진적인 업무 분담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 사역 초기부터 리더십 이양에 대한 로드맵을 가지고 함께 동역을 하는 것이다. 초기부터 계획 되어진 리더십의 분담과 이양에 로드맵을 가지고 있을 때 현지 사역자도 장래에 대한 희망도 가지게 되고, 더 최선을 다 하게 된다. 여기에 어려움은 현지 동역자의 능력과 성장이 따라오지 못하더라도 원래 계획대로 진전을 하고, 나머지는 그를 인도하시는 성령의 속도에 맡기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좌절하고 실망하며 현지 사역자와 불화 내지는 결별을 하게 된다.
4) 현지 동역자와의 마음을 함께 나누는 형제 관계를 가지고 사역에 동참하는 것.
동반자 관계의 장기적인 유지를 위해서는 선교사와 현지 동역자간에 인간적인 친분과 형제애를 가질 수 있다면 다른 행정적인 문제도 덮을 수 있을 것이다.
5) 선교사가 사역을 함에 있어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성령님과의 동행하는 영성
성령님과의 동행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를 현지 동역자와 함께 나누어야 견고한 동반자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6) 선교사와 현지교회 지도자가 선교의 지상명령과 교회배가 운동에 대한 같은 철학을 가지고 서로를 의지 하고 보완하는 동반자적인 자세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결론
필자의 작은 경험과 소견을 몇 가지 현지 리더십과 한인 선교사간의 확고한 동반자 관계를 위한 실제적인 자세 제안을 하였다.
-. 사역 초기부터 선교적교회의 비전을 나누어지고 동반자관계로 출발하자.
-. 사역 초기부터 사역에 대한 분담, 책임을 명시 또는 점진적인 매뉴얼을 작성하라.
-. 사역 초기부터 선교지교회의 주인은 현지교회임을 인식하고, 리더십 이양에 대한 로드맵을 가지고 함께 동역을 하는 것이다.
-. 현지 동역자와의 마음을 함께 하는 형제 관계를 가지고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 선교사가 사역을 함에 있어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성령님과의 동행하는 영성으로 행해야 한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황과 하나님의 교회를 직접 인도하시는 성령의 방법에 맡기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현모교수에 의하면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 다원주의 사회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극히 조심해서 자신을 성찰하지 않으면 어느새 교회는 크리스텐덤 개념을 붙잡고 있는 제도적 교회가 되어있거나, 아니면 매력(attraction)을 내세우는 자발적 교회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본질을 유지하기 위한 피나는 투쟁이 있어야 선교적 교회 개념을 붙잡을 수 있다고 했다.
선교사역은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하나님의 선교(미쇼 데이)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일을 겸손히 수종들면서 하나님의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선교적교회를 배가해 가는 비전을 현지 지도자들과 함께 하는 동반자적 관계를 갖는 것이다.

끝으로 태국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동역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부디 눈을 크게 뜨고 크리스텐덤의 교회전통, 건물, 사역자의 권위, 선교사의 우월 의식, 쎈타사역에 안주하는 등을 의식을 버리고 계속하여 또 다른 새 교회와 주의 공동체, 주의 사역자들을 세워가는 비전을 가진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 사도행전적 선교적 교회를 회복하는데 헌신하자,
그리고 좋은 동역자를 찾기 보다는 현지 사역자를 그리스도안의 형제로, 주의 지상명령을 성취하도록 주신 동역하는 동역자로서 존중하고, 사역에 대한 고용인과 고용주의 의식을 갖지 말고, 동역자의 개인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에 대한 무한한 인내, 이해, 배움의 자세를 가지게 될 때 헌신된 평생을 함께 할 현지 리더십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경험과 타 지역의 경험을 절대화하지 말며, 현재 보다 미래를 같이 준비 하는 동반자의 자세를 가지고, 사역과 개인 신상에 대해 서로 마음 문을 열고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 하는 동반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선교에 있어서 교회관은 John R.W. Stott가 언급한 대로 “반드시 선교적이면서 동시에 종말론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고는 교회를 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그렇다. 교회의 확장과 배가는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위에 놓여있다는(마3:10) 주님의 종말론적인 긴급성으로 선교와 교회배가를 보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선교지의 교회 배가 사역은 주의 지상명령의 수행의 일환이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과 일꾼 양성에 있으며, 현지교회가 그 주도적인 역할을 빠른 시일 내에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예수님께서도 마28장17절에 승천하기 전 제자들을 보는데 아직 의심 하는 자가 있었지만 다시 오실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떠나신 것처럼 선교사역의 성공은 상호 아쉬움 가운데 배움, 양육, 협력, 위임, 돌봄, 떠남의 단계를 가지게 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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