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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2-02-05
작성자 관리자 (admin)
온 마음으로 주를 구하라(예레미야)
렘 29:11-13


예레미야는 B.C. 640년경 예루살렘 동북방 2마일 지점에 있는 아나돗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B.C. 626년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렘1:2). 그때 그의 나이는 20세도 안 되는 젊은 나이였으며 내성적이며 소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후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의 환상을 보았는데 이 환상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시야왕이 새로 발견된(주전 621년) 율법 책에 의하여 종교 개혁을 시작하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의 거민 들과 모든 유 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렘 11:1-17). 그러므로 타락한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렘 11:18-12:6). 요시야 왕이 죽은 후 율법은 실행되지 않았고 백성의 생활은 621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희생 제물이나 드리는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고작 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종교 생활을 꾸중하였으며(렘 7:21-26). 성전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으로 그들의 안전과 존속을 망상하는 백성을 책망하였습니다(렘 7:4, 10). 이러한 예레미야를 백성들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리석은 민중은 언제나 의로운 충고를 멸시하고 자멸의 길을 가는 것을 봅니다. B.C. 605년에 갈그미스 전쟁 직후(렘 46:1-12)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확실히 예언하였습니다. B.C. 605년 말, 감금되어 있던 그는 처음 20년 간의 예언을 그의 서기(바룩)에게 받아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전에서 백성에게 낭독해 주도록 하였습니다(렘 36:1-10). 후에 여호야김 왕이 이 두루마리를 읽는 것을 듣고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화로 불에 태워 버렸습니다(렘36:21-26). 하나님은 또다시 예레미야에게 타버린 그 두루마리에 기록 된 것을 다시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기록이 현재의 본서의 렘 1장부터 렘 25장에 있는 내용입니다.
여호야김 왕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그는 7년 동안 고난과 실망과 여러 가지의 내적 갈등 속에서 신음하였으며 끝내는 영적 신앙의 승리를 맛본 영웅적인 긴 은거 생활을 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B.C. 587년에 예루살렘을 포위 하였을 때 유다 왕 히스기야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 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예레미야는 항복할 것을 종용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예루살렘이 함락되었고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따라 선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후에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 가다가 석방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이 총독 그다랴를 죽인 후 예레미야도 바벨론의 복수를 피하여 백성들과 함께 애굽으로 피난갔습니다(렘 40:7-43:7). 그 후의 그의 행적을 알 길이 없으나 애굽에서 죽은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예레미야는 수난의 예언자이였습니다.


예레미야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신관이 뚜렷한 사람입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법신론, 다신론에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신관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를 자기의 교양을,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사업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만 힘들고 교회 오는 것이 귀찮으면 안나오던가 자기를 알아주는 교회, 대접하는 교회로 가버립니다. 조금만 싫으면 떠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성도가 될지 의문스럽습니다. 예수님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고통과 절망이 연속되는 험한 시대에 살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생수의 근원) 렘 2:13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절망하고 약해진 자들을 위로하며 소생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토기장이) 렘 18:1-12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만드시고 움직이시며 사용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 살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였는데 그 까닭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뜻이 아니고, 그 역시 하나님의 지배 하에 있는 한 작은 피조물이요 도구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3) 하나님을(남편)과 아버지(렘 3:14, 19)로 하나님을 묘사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예례미야의 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 31:3)

예레미야는 철저한 유일신론자였습니다.
그는 다른 신들을 "허탄한 것"(렘 2:5), "신 아닌 것"(렘 2:11),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 개인적, 정신적, 신앙을 강조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느 예언자 보다 개인적 신앙을 강조한 예언자입니다(렘 31:29-30). 이렇게 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집단적인, 그룹 적인 신앙으로 안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냐 하면 그 집단에 하나님이 희망을 걸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개별적으로 구원받는 것은 맡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모두 구원받을 수 있을 만큼 인정되면 단체로 이야기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희망이 거기서 끝났기 때문에 개인적인 구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래서 신앙 생활에 있어서 사람의 내면적 상태를 중시하였습니다.
참 신앙은 성전도 아니고, 제 물도 아니며(렘 7:1-15, 렘 26:1-24), 가나안이라는 땅도 아니고(렘 29:1-14), 할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렘 9:25-26).

오늘 본문의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셋째, 죄와 회개를 강조한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가장 강하게 회개를 외친 예언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사용한 회개의 낱말은 '슈브'라는 말인데 "돌아오다, 돌이키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2)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2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렘 4:1-2)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렘 18:11)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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