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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2-01-30
작성자 관리자 (admin)
여호와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스바냐)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 2:3)

*주) 아래 본문은 실제의 설교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내용상의 차이가 아니라 글과 문장의 차이입니다.
즉 아래 내용을 숙지하되 설교는 본문 중심으로 자유롭게 선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1. 여호와에 대한 신앙
스바냐는 자기보다 약 40년에서 외쳤던 이사야(740-681)에게서 많은 교훈을 얻은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념이나, 남은 자의 사상 등은 이사야 예언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는데, 스바냐서 에서도 유사한 사상적 흐름이 발견됩니다.
하지만 이사야의 예언에서 크게 영향 받았다 할지라도, 스바냐의 예언은 이사야의 예언과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연대적인 차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예언의 강조 점에 대한 차이입니다.

즉 스바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지하여 유다와 열방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였습니다. 또한 스바냐는 개인적인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였는데, 이는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리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즉 인간의 자만을 고치는 길은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훗날 신학자들은 스바냐에게는 청교주의자라는 별칭을 붙였습니다(Patersom). 그만큼 스바냐는 ‘칼빈’(Calvin)의 청교도적 생활 요구의 원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스바냐는 후대에 ‘칼빈주의’의 근간이 되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강조한 면에서 ‘칼빈’의 선구자였다고 평가합니다.

2. 심판 선포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여호와의 성결과 관련시켰습니다. 곧 여호와의 성결이란 그의 완전한 도덕적 순수성이 그의 초월적 존귀성과 결합된 것을 말합니다. 또한 여호와의 성결에 있어서 도덕적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점은 아모스가 지적한 바다(암 4:2). 즉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정의와 의를 요구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암 5:24). 그러나 성결의 문제와 심판을 동시에 취급하고 강조한 예언자는 이사야입니다. 그는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라고 했으며, 성결과 의를 영원히 결합시켰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결과 의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사 1:2, 4-6, 11-15). 이러한 심판은 아모스의 ‘여호와의 날’(암 5:18-20) 선포에서도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사야에서는 이 ‘여호와의 날’의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사 2:6-22). 이러한 사상은 스바냐에게서 심판의 절정으로 나타납니다. 학자들은 이로 인해 ‘구약성경에서 가장 지독한 책’(Smith)이라고 부르며, ‘스바냐의 사상이 너무 심판으로 기울어져 있다’(Sellin)고도 합니다.
그만큼 스바냐의 심판 선포는 아모스나 이사야의 심판 선포보다 보다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즉 “모든 것이 파괴되고 시들고 타 버렸다. 초목 위에 한 방울의 이슬도 없고 새들의 노래도 들을 수 없으며, 한 송이 꽃도 볼 수 없고, 어디에나 불이 이글이글 타고 연기가 자욱하며, 어둡고 침침하고, 집은 파괴되고, 궁궐은 황폐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스바냐의 심판 선포는 아모스나 이사야와 다르고, 나훔이나 하박국 선지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넓은 폭까지 세밀하게 다루었습니다.
즉 스바냐의 심판 선포는 전 세계적인 심판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주요 관심은 유다 였지만, 그가 본 하나님은 유다와 세계 만국과 자연과 역사를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분이시며, 특히 도덕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들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이방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을 미워하고, 적대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스바냐의 심판 선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스라엘도 다른 이방인들과 다를 바 없으며, 이방인들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점에서 스바냐의 예언은 범세계적이고, 철저하고, 최종적인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3. 남은 자 사상
이사야와 스바냐의 남은 자 사상은 사실 아모스의 남은 자 사상에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이나 범위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즉 아모스는 ‘요셉의 남은 자’라고 말함으로써 북 이스라엘을 지칭하였습니다(암 5:15). 또한 아모스는 그들이 여호와의 은총을 입어 고난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 범위에 있어서조차 이스라엘을 넘지 못하였습니다.
반면에 이사야는 유다의 단순한 잔존 이상의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즉 그는 자신의 작은 아들의 이름을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뜻의 ‘스알야숩’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이사야는 초기 예언에서부터 남은 자 사상에 대한 소망을 품었으며, 아들의 이름을 미래의 불운에 대한 표적과 예표로 삼았습니다(사 8:18). 이러한 사상은 또한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 의심할지 모르지만 포로 후의 히브리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범세계적으로 남은 자들이 살아남아 순결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사 8:16, 28:16). 이 점에 있어서 이사야는 아모스의 한계를 극복하고 남은 자 사상에 대한 범세계적인 소망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바냐의 예언 가운데서 남은 자 사상은 마지못해 선포한 듯한 인상을 줍니다. 즉 이사야는 심판 사상과 남은 자 사상을 연속시켜서 심판을 하나님의 은혜의 일부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심판을 강조한 나머지 사랑을 생각지 않았으며, 이사야보다는 아모스에게 치우친 스바냐는 하나님의 심판 사상에 치우친 예언을 하였습니다.
때문에 그는 남은 자 사상을 말할 때에도 심판을 빼놓지 않고 언급하였으며, 구원을 받을 남은 자라 할지라도 불로 받는 것과 같은 구원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스바냐의 예언은 다분히 윤리적이란 점이 드러납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http://blog.kcm.kr/ 는 지난 설교와 녹음설교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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