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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소식 > 선교정보 등록일 2012-01-16
작성자 관리자 (admin)
선교의 3대 원리
우동수 선교사
‘지식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잠언 19:2)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잠언 24:6)

... 선교준비의 11년 동안 주님께서는 평생 선교의 방향과 원리들을 보여주셨다. 주로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정리된 생각들이었다. 구약의 족장들과 선지자들, 신약의 사도들의 행적 특히 사도 바울의 선교사로의 사역이 길잡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세가지를 우선 열거하자면 첫째, ‘소련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둘째, ‘말씀의 기초에 세워진 교회 중심의 선교’ 셋째, ‘참된 제자인 지도자 세우기’를 들 수 있겠다.



첫째, ‘소련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사도 바울이 로마제국의 동쪽 끝인 예루살렘과 소아시아 지역을 시작으로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로마제국 전체를 자신의 선교지로 삼은 것 처럼 나의 소명은 소련 제국을 향한 것이었다. 단순히 한 지역과 도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제국으로의 소련의 변화와 이로 말미암은 세계선교의 새로운 전개가 부름의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광활한 소련의 한 지역 또는 한 도시에 정착해 사역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을 일이었다. 그래서 바울처럼 제국의 동에서 서로의 선교행적을 그리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선교준비 기간 중에는 늘 소련 전역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처음으로 소련에 발을 딛게 되었을 때는 주변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소련 전역의 주요도시를 답사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 생각했던대로 전부를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처음 생각에는 사할린에서 출발하여 극동의 중심도시인 하바로브스크, 시베리아 중심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 중앙아시아의 중심도시들인 알마아타와 타쉬켄트, 카프카즈에서는 그루지야의 트빌리시, 유럽 쪽에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모스크바를 돌아볼 생각이었으나 당시 한국의 파송단체의 귀국 재촉으로 트빌리시와 키예프는 돌아볼 수 없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마음에 걸린다.

이후 실제로 선교가 진행된 지역은 극동에서는 사할린, 전 러시아와 시베리아의 중심인 노보시비르스크, 소련 서쪽 지역으로는 카프카즈의 러시아 소치 접경의 압하지야이다. 물론 정착한 도시와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과 소련 전역을 염두에 둔 선교 포석이었다. 구체적인 선교지 선정에는 선교 미개척지인지와 주변지역으로의 선교파급 효과, 정착의 여건 등이 고려되었다. 따라서 가는 곳마다 개척선교사로 새로운 선교지를 일구어야 했고, 인구가 집중된 소련의 남부지역을 타겟으로 하여 벨트로 연결하는 형상이 되었다. 또한 이는 소련 내의 주변지역으로의 선교파급의 효과만 아니라 소련을 통해 남쪽에 국경을 접한 이웃국가들로의 선교의 전파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또한 정착의 여건도 실제적인 문제였다. 예를 들어 동일한 시점에 어느 지역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선교의 효과는 별 차이를 찾을 수 없는데 그 비용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심지어 거주를 위한 비자나 영주권 등의 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실제로 소련 선교개방 초기인 90년대 초에 모스크바나 뻬쩨르부르그 등의 러시아 유럽지방의 대도시에는 부동산이나 물가가 엄청 났다. 시베리아나 극동의 도시들에 비교하면 몇 배의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선교 효과 면에서는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이었고, 수도와 중심도시라는 특수 상황에 거주 허가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 대부분이 고비용에도 불구하고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경제위기 시 철수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나의 현재의 정착지인 카프카즈의 경우도 그렇다. 2014 동계올림픽 개최도시로 선정된 소치는 소련 몰락 후 러시아의 거의 유일한 휴양도시로 부상하여 부동산과 물가가 엄청나다. 선교의 베이스로 쓸만한 개인주택은 2-3백만 달러나 유로를 호가하고 휴양지라 물가도 비싸다. 또 외부인의 전입에 대해서도 민감하다. 그러나 바로 코 밑의 압하지야는 지금까지 안정되지 못한 여러 면이 있으나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러나 소련 전역을 염두에 두고 동쪽 끝에서 서쪽까지 방랑하는 선교는 개교회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는 한국교회에게는 거의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실제로 이것이 이유가 되어 파송하고 후원하는 교회를 찾기 어려웠고, 또 이를 지속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경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자립하는 현지교회들을 세우고 이들이 직접 선교에 나서도록하는 계기가 된 것이 감사하다. 선교사가 파송하고 후원하는 본국교회들만을 쳐다보지 않으니 현지교회와 교인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설 수 밖에… 또 개척한 선교사가 또 더한 미개척지로 떠나가니 이들이 선교의 동참자와 후원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둘째, ‘말씀의 기초에 세워진 교회 중심의 선교’

러시아를 중심한 동유럽, 구소련은 공산주의 무신론의 본거지였으나 그 이전부터 동방교회, 러시아정교회의 텃밭이었다. 무신론 공산진영의 모태인 소련제국으로의 부르심은 아이러니칼하게도 기독교회의 탄생지인 예루살렘과 동로마제국을 포괄하는 동방교회의 지리적 배경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가장 전통적인 종파로 말 그대로 유일하게 초대기독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정(正)교회’를 그 종교적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구소련 진영의 아르메니아는 세계최초의 기독교국가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는 나라이며, 러시아는 988년에 기독교의 원조인 동방정교를 국교로 공인한 이후 천년이 넘는 교회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무신론제국의 모국인 러시아, 소련이 기독교 진영으로 구분되는 모호함이 있다. 심지어 선교현장에서 만난 러시아인 중에는 그 자신이 러시아 최고의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공산당원인 동시에 러시아정교회의 신자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자신이 신자임과 동시에 무신론자라고 하는 어불성설이 성립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이들의 종교적 배경에는 생명력을 잃고 형식화되어 조직이나 제도, 문화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과 머리로는 무신론이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면서도 정교회 신자로 자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현대의 온갖 사조나 물질적인 유행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기독교인으로 자부하는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원인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정교회 자신의 사상과 신학에 그 문제의 뿌리가 놓여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러시아를 중심으로한 슬라브민족 전체의 문화의 틀에는 정교회의 사상과 전통이 놓여 있다. 그러나 정교회, 동로마제국의 비잔틴 문화의 뿌리에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기독교 사상이나 세계관이 아닌 고대 그리이스 문화의 뿌리에서 어어져온 플라톤과 그 후계인 신플라톤주의의 ‘영육이원론’이 그 세계관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마디로 영적이고 종교적인 세계와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세상은 별개이고 또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것이 성스럽다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교회는 현실의 삶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세상에서 자신의 영적인 의미를 찾지 못하는 교회는 권력의 시녀로 탐욕스럽게 세상의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로 전락하여 심지어는 자신의 신자인 양떼들을 탈취하는 양의 탈을 쓴 이리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실제로 러시아 역사 상 뾰뜨르 대제 이후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교회에 의해 러시아 황제 치하에서 일어났고 급기야는 공산당 소련 정권에 의해 정교회와 성직자는 황제, 부르죠아지와 함께 3대 인민의 적으로 박멸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 ‘차르(황제)의 부활’로 불리는 현재 푸틴의 권력 아래의 러시아에서 이러한 일은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구소련에서의 선교는 단순한 복음전파 이상의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을 직시하여야 한다. 바로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 바른 기독교세계관의 기초에 세워지는 일이다. 이러한 변화의 수고 없는 사역은 러시아 천년의 교회 역사가 결국에는 치욕의 결말을 맞이한 흐름에서 벗어져 나갈 수 없다. 단순히 교회를 개척 설립하고 이를 확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 교회가 어느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하는가가 천년의 교회 역사를 뒤로 하고 새로이 선교의 필요를 안고 있는 구소련선교의 핵심과제이다. 세상에 뿌리박은 교회,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져 가는 일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역할과 사명을 다하는 교회가 자리잡히고 이를 통해 세상이 새로와 지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 20년의 선교의 시간이 흘렀음을 이 순간 되돌아 본다. 단순히 미개척지에서의 선구자적인 개척사역이 아니라 러시아 전역에 바른 말씀과 신학 사상에 뿌리박고, 사회와 민족을 새롭게 하는 교회의 기초가 세워지도록 곳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교단을 조직하는 일이 이것이다. 사할린과 시베리아에서의 사역 기간 동안 단지 한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 지역의 각 도시와 지방에 개혁주의 신학사상에 바로 세워진 장로교회들을 설립하고 이들을 공의회, 노회, 이후에는 전 러시아를 아우르는 통합된 교단으로 세우는 것이 나의 과제였다. 사할린에서 나의 1년여의 사역 중 설립된 각 도시의 10개처의 교회들이 지금은 수십교회가 되어 두개의 노회가 되었다. 시베리아에서도 여러 지방과 주에 수개의 교회가 설립되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공의회를 조직하였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1997년 10월 1일부로 옐친에 의해 신종교법이 러시아에 공포되고 1999년 말까지 이를 시행하던 때의 일이다. 그 법의 핵심 내용은 교회등록 연수가 15년이 되지 못한 모든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교회와 선교활동을 불법화하고, 선교사들을 내모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모든 선교가 불법화되는 위기였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선교사들이 침례교나 오순절 등의 전통적인 현지 개신교단으로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현지교회들과 이들의 신앙을 백번 존중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말씀의 토대나 신학사상으로 보아 자신의 사회와 민족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전통적인 러시아 개신주의 교파들도 그 뿌리는 영육이원론의 비잔틴 문화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의 심성과 삶의 뿌리에 이러한 이교적 세계관이 놓여있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문화는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도 같이 삶의 바탕 뿐아니라 그 자체가 되는 것을 본다. 인간은 실로 문화의 자식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한다. 그러기에 문화를 새롭게 하는 것은 참으로 심각하고 벅찬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마침 사할린에서 개척선교사로 접했던 초기 교인들의 증언의 기억을 더듬고, 한국교회사의 연해주 선교의 실마리를 찾아 역사적인 자료들을 찾아 내어 합법적으로 전 러시아를 아우르는 현지 전통개신교단과 동급의 러시아장로교단을 1999년에 설립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를 근거로 흩어진 러시아의 복음주의 및 개혁주의 교회들을 연결하여 하나되게 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 굳건한 말씀 중심의 교회의 기초가 가시적으로도 마련된 것이다.

또 하나 ‘교회를 중심으로 한 선교’는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선교에의 반성이자 살아 역사하는 교회로의 선교하는 교회, 선교사 자신에게의 외침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선교사가 선교현장에서 더 이상 선교사임을 망각하고 단순한 목회자로 전락하고 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선교하는 교회가 선교를 유행의 흐름이나 목회의 한 방편으로만 치부하고 마는가! 온 세상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주님의 영광이 선포되야 하는 것을 잊고 있는가! 선교는 온 열방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위해 오늘 이 지상에서 지속해야할 모든 신자와 교회의 과제이다. 선교는 더 이상 일부 선교사나 선교단체의 과제가 아니다. 구속받은 전 하나님 백성의 삶 전부이자 지상 목적, 과제이다. 또한 이는 선교사에 의해 선교현지에 세워지는 선교현지의 교회의 동일한 모습이어야 한다. 말씀의 기초 위에 선교하는 교회는 성경적 선교의 핵심에 있다.

셋째, ‘참된 제자인 지도자 세우기’

또하나의 선교의 원리는 개인적인 신앙체험을 통해 내 마음에 자리잡은 제자로서의 지도자를 향한 비전이다. 대학생선교단체에서의 철저한 성경공부와 신앙훈련을 통한 나 자신의 변화의 체험이 그 기초였다. 또한 신대원 입학 준비 중에 접한 선교사, 복음 전도자, 크리스천 사상가로 복음주의 기독교회를 시대의 과제 앞으로 이끌어낸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신앙공동체 ‘라브리’를 통한 교훈이 있었다. 대학시절 접했던 우리 시대의 화두와도 같았던 아놀드 토인비의 저서 ‘역사의 연구’의 ‘주제인 ‘창조적 소수’도 그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준비된 한사람이 없이는 결코 세상의 의미있는 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온 세상에 말씀을 들고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선교에는 그 일꾼으로 천국의 제자인 교회의 지도자와 세상을 이끄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필수이다. 하나님은 돌들로도, 천사들로도 한순간에 이 모든 일들을 하실 수 있으셨지만 사람을 창조의 정점으로, 구속사의 핵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꾼들로 세우셨다. 따라서 준비되고 세워져 쓰임 받는 하나님의 종들인 지도자 없는 하나님의 역사와 선교를 생각할 수 없다. 특별히 선교의 핵심이 말씀의 바른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사람을 세우고, 교회를 세워가는 것임을 염두에 둘 때 한 사람, 한 영혼을 참된 제자로 지도자로 세우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또 주님의 뜻이 교회를 통해 세상을 부요케 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세상을 이끌어갈 지도자로 신자들을 세워가야할 필요를 보게 된다.

실제로 선교현장을 돌아볼 때 한순간 교회가 세워지고 신자들이 모이는 듯 하다가도 선교사들이 철수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수고들이 흔적조차 남지 않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선교사나 선교사를 보낸 입장에서는 그저 씨를 뿌리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동참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을지 모르나 바울의 선교를 돌아보면 두어 주 사역한 곳에서도 교회가 든든히 세워질뿐만 아니라 이들이 제자들로, 선교의 동역자로 세워지는 일들을 보게 된다. 사도행전의 선교는 다름 아닌 제자들을 세우는 일이었다. 단순히 교인이나 신자가 아니었다. 물량적인 선교의 방편으로는 수를 늘릴 수 있을지 모르나 각 영혼을 새롭게 하여 심지를 세울 수는 없다. 바로 세워진 한사람 한사람의 제자들로 하여 교회는 든든히 세워지고 이들이 세상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하나 오늘날 기독교회의 세상에서의 역할을 반성해 볼 때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세상을 섬기는 교회로서의 위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섬겨 구원하고, 이 땅에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아들을 보내셨다. 또 그 아들 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건물로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주님의 분명한 사명은 세상에 있었다. 교회가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는 모든 신자들이 주님의 세상을 향한 분명한 뜻을 깨닫고, 세상으로 나아가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로의 삶과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제자를 세우는 사역과 연관해 특별히 기독교회의 역사적 뿌리인 동방교회의 이원론적 세계관의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지상에서의 사명을 망각케 한 소련, 동구권의 오염된 기독교문화 아래서는 사회와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영적군대로서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워지지 않고는 선교의 목적을 결코 이룰 수 없다. 또한 이는 동구권만이 아니라 세상과 야합하여 물질, 물량주의에 떨어져 더 이상 세상을 변화시킬 동력을 상실한 서구, 한국교회에서도 동일하다. 소련제국의 변화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하는 소명의 내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는 다행히 회심과 동시에 대학생 선교단체의 말씀 훈련의 기회와 쉐퍼 가족과 그 제자들의 ‘라브리’, 기독교세계관을 한국에 심고자 애쓴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의 양승훈, 강영안 교수님들의 책자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유럽의 라브리 지부들을 순회하고, 안식년에는 캐나다 밴쿠버 소재의 기독교세계관대학원에서 양승훈 원장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교우하였던 것을 지나칠 수 없다. 소명과 동시에 말씀을 1:1로 또는 소그룹으로 가르치고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하다. 모교회 청년 시절부터 총신대원에 입학해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때로는 짧게 반년, 길게는 한지역과 교회를 18년을 섬기며 어느 곳에서나 제자들인 사역자들과 지도자들을 세울 수 있었다. 심지어 짧은 사역의 기간 동안 오히려 더 많은 제자를 세우는 결실을 보게 되었던 것도 돌이켜 보게 된다. 아마 시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집중하였던 것이 그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후반기 20년 선교의 핵심을 온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를 세우는 일에 두고자 한다. 구소련권 최고의 휴양지인 흑해 연안 카프카즈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및 전 구소련권에서 모여들 지도자들을 세우고, 카프카즈 및 인근 중동의 수많은 미전도종족을 일으켜 이들을 제자와 사역자로 세우고자 한다. 이들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 사도들을 세우셨던 방식대로 공동체를 통하여 훈련하여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자 한다. 또한 오늘날의 세상의 교회들이 정말 말씀대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감당하는 일을 위하여 전 세계 크리스찬 지도자들과 함께 하는 세계기독교포럼을 조직해 진행하고자 한다. 카프카즈는 중동을 코 앞에 두고 동서 냉전 이후 남방의 해양세력과 북방의 대륙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이다. 또 유라시아 대륙 북방의 기독교 세력과 남방의 이슬람, 이교세력이 부딪치는 영적 전쟁의 최전선이다. 이제 그 결전의 서막이 떠오르고 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과 가나안이 3개 대륙의 통로가 되었듯이 21세기의 가나안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남방과 북방을 잇는 다리 형상의 카프카즈가 그 역사의 교차로가 되어질 것이다.

이제 이러한 선교의 기초와 원리 위에 주님께서 북방을 뒤흔들어 세상에 이루시는 변혁의 역사를 살펴 보자. 소련제국의 동쪽 끝 사할린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카프카즈로 이어지는 필자의 선교의 여정에 독자들을 초청한다. 2011.10.31

우동수 선교사 (http://www.facebook.com/groups/153012731424123/)
본인의 선교회고록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페북 '세계 최고 장수촌 압하지야' 그룹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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