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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학자료 > 등록일 2011-12-21
작성자 관리자 (admin)
카프카즈 압하지야의 최초 정탐보고서
압하지야 우동수 선교사

압하지야, 압하지야!!!

이곳 카프카즈의 압하지야는 자연과 사람들의 외모에 있어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납니다. 세계 최고의 장수촌으로 백과사전에 나와 있고, 최근에도 이와 관련된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고 한국에서도 번역될 정도입니다. 세계 여러군데를 다녀봤으나 이곳 보다 더 아름다운 천연 그대로의 자연환경은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이곳 사람들을 보면 왜 이스라엘이 그렇게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가나안 사람들과 연혼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입니다.

압하지야 민족은 그 기원이 저주받은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후예로 그중에서도 가나안에서 멸망 당하고 쫓겨난 가나안 7족의 대표격인 헷족속입니다. 이들은 수십 세기를 죄악과 저주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가나안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쫓겨난 후에 한동안 지금의 터키 서부 소아시아에 헷왕국을 이뤄 지하도시를 건설하고 숨어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쫓겨나 지금의 흑해 연안의 카프카즈까지 밀려왔습니다. 허나 이곳에서도 고대 그리이스와 로마의 식민도시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는 운명이었습니다.

사도 열심당원 시몬이 순교하며 선교했고, 안드레도 이곳에서 사역했습니다. 6세기에는 이들이 놀랍게도 기독교왕국을 이뤄 번영을 구가하며,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카프카즈의 종주민족으로 자리를 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다시 이곳으로 오스만 터키제국의 침략의 손길이 미쳐 강제로 이슬람을 강요받고, 지금의 터키와 시리아, 요르단 쪽으로 강제이주를 당하고 거의 멸족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단순히 멸족만이 아니라 문화, 역사, 문자까지 말살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비운의 역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러시아 제정 시 다시 전쟁과 침략을 겪게 됩니다. 러시아도 계획적으로 인종말살과 강제이주, 추방의 정책을 폈습니다. 러시아정교를 강요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끄라스나야 빨랴나'는 '붉은 들판'이라는 뜻인데 압하지야민족이 러시아를 대항해 마지막 항전하다가 모두 피살되어 그 피가 강을 이뤘다는 역사에 따른 지명입니다. 이것은 불과 백여년 전의 사건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루지야 출신인 스탈린이 소련을 장악하고, 압하지야를 러시아에서 그루지야로 강제병합시키고는 그루지야민족을 압하지야로 이주시켜 우대하면서 압하지야인은 거의 노예취급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원주민인 압하지야인은 그 수가 5만 정도 밖에 남지 않게 되고 그루지야인은 30만에 달했습니다. 터키 등의 중동 전지역에 흩어진 압하지야민족은 80만이 된다고 합니다. 그루지야인이 쫓겨난 지금도 25만의 인구 중 아르메니아인과 러시아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련이 무너진 후 1992년 초 압하지야는 그루지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그해 8월 그루지야의 침공에 의해 1년여 독립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인구 5만의 압하지야인들이 3백만의 그루지야를 대항한 민족의 존망과 목숨을 건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암암리의 지원과 체첸과 오세티아 등 북카프카즈의 타민족의 도움과 결사적인 항전으로 93년 9월 말에 이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소련 시절 최고의 휴양지로 명성을 얻었던 모든 것은 파괴되어 버리는 손실을 입게 됩니다. 전기, 수도, 도로 등 거의 모든 기간시설과 산업이 무너져 방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후에는 외부와는 전혀 단절된 고립된 상황에서 숨을 할딱이는 고난의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이곳의 여자들은 과일을 러시아 쪽으로 내다 팔아 겨우 연명하고, 남자들은 러시아의 카프카즈 갱단이나 청부 살인조직의 킬러로 살아가는게 유일한 생계의 수단이 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술과 마약, 자살이 삶과 죽음의 일상적인 방식이 되었습니다.

수년 전부터 러시아 쪽으로의 통행이 재개되고, 2007년 7월에는 국경 바로 너머 인근의 러시아 소치(아들레르)에서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가 결정되면서 해빙의 봄을 맞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루지야의 폭탄테러가 이어지더니 2008년 8월 8일 북경올림픽 개막일 새벽에 벌어진 그루지야의 인근 남오세티아 침공의 민족말살 전쟁의 소용돌이에 다시 휩쓸리게 됩니다. 저도 그 전쟁 당시 이곳에 있었고, 하마터면 폭탄테러에 죽을 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올림픽 개최를 앞둔 입장에서의 조직적인 개입으로 5일전쟁으로 그루지야는 물러가게 되고, 그틈에 압하지야는 되찾지 못했던 남부 산간지역의 영토도 회복하게 됩니다. 전후 러시아의 독립인정과 방위조약 등 지원이 이어졌지만 아직도 국제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고립무원의 처지입니다.

압하지야는 죄와 저주, 이로 인한 고난과 멸망을 운명처럼 간직한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가련한 민족입니다. 이들은 이제 완전히 이교화되어서 동물들로 피의 제사를 드리며, 예전 가나안민족의 자녀들을 불로 지나가게 하는 등의 의식을 치루고, 집집마다 저주의 제단을 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전쟁으로 인해 응어리진 공포와 잔인한 복수의 영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내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자기방어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내면입니다. 속이고, 빼앗고, 죽이는 것이 이들의 덕입니다. 집집마다 AK소총과 권총, 수류탄이 항상 준비되어 있고, 축제일이면 모두 총을 들고 나와 하늘에 대고 쏘아대는 것이 이들의 축하와 여흥입니다. 심지어 이곳의 정교회나 이슬람 사원에서 무슨 문제가 일어나면 총을 들고 죽이거나 쫓아내는 것이 해결의 방편입니다. 사람들끼리도 서로 어떻게든 기선을 잡기 위해 위협하고, 무슨 불법이나 무례를 저지르는 것을 권리로 알고 살아가는 일상입니다. 아예 법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자연과 이곳 사람들의 외모 속에 감추어져 있는 실상입니다.

이곳 종교의 현황은 말씀드린대로 이교의 영이 지배하는 것이 실상이나 명목 상으로는 70%가 정교회, 30%가 이슬람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압하지야민족은 이슬람, 아르메니아와 러시아계는 정교회에 밀착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개신교의 상황은 소련 시절에 휴양지를 찾아 이곳으로 이주한 러시아, 우크라이나인들이 수도 수훔에 침례교회로 회집한 것이 모태가 되었습니다. 92년 전쟁 직전에는 300여명 수용의 에배당을 건축하고, 300명에 가까운 재적회원이 회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92-93년의 독립전쟁 중 교인들이 이곳을 탈출하기 시작해 미국과 이스라엘, 호주 등지에 난민으로 이민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행열은 전후에도 이어져 교인의 3분의 2가 이민으로 떠나갔고, 이 대열에서 낙오된 사람들만이 이곳 교회에 남게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이 교회가 믿음으로 이 땅과 민족들을 감당할 여지는 전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100여명의 교인들도 소련 시절 제대로 된 신앙교육이나 훈련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던 지도자에게 남겨져 대부분이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잘못된 종말론에 빠지는 등 이단에 휩싸여 교회는 내부 분열의 홍역을 지금까지 겪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분열의 과정의 결과 현재 40명 정도가 교회에 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서 러시아에서 몇몇 가정이 이곳으로의 사역을 위해 이주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2-3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거나, 남아 있어도 사역이나 가정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으며 지내는 형편입니다. 현재는 이래저래 압하지야 전체에 교회와 신앙그룹을 포함하여 십여개의 모임이 있지만 그 회집 인원이 40명을 넘기는 곳은 없고, 4-5명에서 십여명이 모이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또 모이는 민족의 면면은 러시아, 아르메니아계가 대부분이고 압하지야 원주민들의 자체적인 회집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몇 명이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압하지야인들에게는 오히려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이 뿌리를 내리고, 크리슈나이트가 극성스럽게 포교를 하는 것이 오늘의 실상입니다. 현재 압하지야민족은 선교적으로 비접촉 미전도종족으로 분류되고 있어 외국선교사의 도움 없이는 자체적으로 자립적인 교회를 세울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러시아, 슬라브계의 사역자들은 자민족의 테두리를 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교회의 선교적 동참의 필요와 당위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구약시대 죄악과 저주의 땅 가나안으로 택한 민족 이스라엘의 처소를 삼고, 복지를 이루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온 세계에 알리시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압하지야 이 땅은 참으로 젖과 꿀이 흐르며, 무화과와 포도가 열매를 내는 지상낙원과 같은 땅이 분명합니다. 또 구약시대 가나안이 세계문명과 대륙들의 통로가 되었듯이 지금 이곳은 영미를 중심한 서구문명의 해양세력과 구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한 북방 대륙세력의 가장 첨예한 이해가 대립하는 각축의 장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곳 카프카즈와 바로 코 밑의 중동이 이 시대의 황금인 석유의 최대 이권이 놓인 지역입니다. 그리고 압하지야 이 땅이 바로 그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2014 소치올림픽으로 카프카즈가 세계 앞에 그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압하지야의 디아스포라와 쿠르드 등 이곳과 중동에 산재한 미전도종족들을 통해 이미 세계선교 최후, 최대의 결전을 준비해 오고 계십니다. 오늘 저는 세계선교의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전쟁의 포연과 나팔소리를 들으며 이곳에 있습니다. 아직은 선발대로 유일하게 외국 선교사로 이곳에 있지만 곧 하나님의 영적 군대가 이리로 파송될 것을 바라 봅니다. 아마 이 문서가 최초의 구체적인 이 시대의 가나안인 카프카즈 압하지야의 정탐보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출전의 나팔이 울렸으니 하나님의 군대의 출정을 선포합시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외친 여호수아의 믿음으로 이제 함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또한 간절히 기도하기는 불신세대의 이스라엘처럼 가나안을 앞에 두고 광야에서 멸망 당하는 일이 한국교회와 열방 크리스천들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믿음으로 이 땅 압하지야, 카프카즈와 중동의 수많은 미전도종족들을 향하여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압하지야 민속합창단의 공연 모습! 아카펠라의 힘있는 노래가 특별합니다.

압하지야의 우리 동네 브집마을의 독립기념 전승기념비 제막식 광경! 압하지야 국기와 얼마전 사망한 직전 대통령 바갑쉬의 모습이 보이네요.

10세기에 건축된 압하지야 삐쭌다 예배당! 기독교 문화의 유산이 곳곳에 남이 있습니다. 4세기의 기독교 최초의 니케아교부회의에 이미 이곳에서 주교를 파견했다고 합니다.


출처 : 우동수 선교사 2011.12.21 / woodongs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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