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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아프리카 등록일 2011-11-07
작성자 관리자 (admin)
노록수 선교사 페이스북에 시설확장을 위해 봉사팀 요청
남아공과 레소토 국경마을, 샤워시설,화장실,벽돌쌓기등을 봉사해주시면
남아공과 레소토 국경마을에 거주하며 선교하는 노록수 선교사입니다.
최근 선교센타로 쓸 이웃집을 구입하였는데 현지목회자 컨퍼런스개최와 에이즈고아 양육을 위해 시설 개보수가 필요합니다.
단기선교팀이 오셔서 샤워시설,화장실,벽돌쌓기등을 봉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조직
담임목사/ 노록수 목사
협동목사/ 르띠까 목사

설립년월일 / 1997년 6월 1일

설립배경
1995년 3월에 남아공에 파송된 노록수 선교사는 사역지를 물색하다가
남아공 내의 작은 흑인 자치국가인 레소토에 한국인 선교사가 아무도 없음을 파악하고
레소토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마침내 기도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1997년 6월1일에
현재의 현지인 동역자 목사인 르띠까 목사를 만나 함께 개척을 시작하였습니다.

설립 후 현재까지의 상황
1997년 6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개척교회는
처음 15명 정도의 회중들이 6평 남짓한 벽돌방에 모였으나
3개월 정도 지나면서 부흥되기 시작하여 텐트를 구입하여 예배하였고
텐트생활 1년여만에 한국의 대양제일교회(김상석목사님)와
온천교회(안용운목사님)의 도움으로
1998년 10월에 아담한 예배당을 지었고
현재 300여명의 출석성도와
300여명의 학생을 둔 초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록수선교사 생명을 건지다

2008년 10월 9일 목요일 오전 10시 로녹수 선교사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일곱 번을 굴렀습니다. 그 차에는 그의 장남 로 하영군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흑인 교회의 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집이 있는 픽스버그를 출발하여 100km 가량을 달려서 베델레헴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한적한 2차선 도로가 구비구비 이어지는 길입니다. 앞에 가는 차들이 속력이 늦어서 추월하려고 했습니다. 오른 쪽으로 신호를 넣고 앞차의 오른 쪽으로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앞 차도 그 앞에 있는 차를 추월하려고 오른 쪽으로 들어왔습니다. 앞차는 뒤에서 로 선교사의 차가 추월하려고 들어 오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로 선교사는 급히 브레이크를 밞았습니다. 속도를 높이며 추월하려고 회전을 하다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게 되자 자동차는 중심을 잃고 회전하게 된 것입니다.
로 선교사의 차는 아스팔트 위에서 세 번 그리고 길 아래로 굴러 내리면서 네 번을 굴렀습니다. 로 선교사는 첫 번 충격에 정신을 잃었고 아들은 구르는 모든 과정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구조대가 와서 이들을 급히 인근 도시 베델레헴으로 옮겼습니다. 일차 응급 치료를 하였으나 이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어서 큰 도시 불름폰테인으로 다시 환자를 옮겼습니다. 이 두 도시 사이의 거리는 250Km이지만 엠불란스는 네 시간을 달렸습니다. 뼈를 부르뜨린 환자이기 때문에 충격을 줄이기 위하여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의식을 회복한 로 선교사는 네 시간 동안의 고통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일곱 군데 갈비뼈가 부러지고 많은 외상에서 피를 흘리는 아픔을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그는 그 아픔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것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름폰테인에 와서도 여러 번 병원을 옮겼습니다. 병원마다 전문적으로 검사하는 곳이 달라서 여러 번 옮긴 것입니다. 로 선교사는 이틀 밤과 낮을 옮겨 다니며 뼈를 추스리지 못한 체 고통 가운데 지냈습니다.지금은 Rose Park 종합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습니다.
내가 로목사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것은 포트 엘리자베트에서 수업을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금요일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계속하여 로목사의 위급한 소식을 들었으나 주말인지라 비행기 좌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 로목사가 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동차로 집을 출발하였습니다. 1000km이상을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중간에 날이 저물어 한적한 도시 여인숙에서 눈을 붙이려고 했습니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아직 한창 일할 젊은 사람입니다. 로목사를 살려 주십시요. 그에게 과거 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요. 이 아프리카를 위하여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아프리카를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에게 새 날을 주시옵소서.”


새벽에 다시 차를 달리기 시작하여 주일 오전 10시 병실에서 로목사를 만났습니다. 산소 마스크를 하고 많은 플라스틸 호스를 달고 있었습니다. 몸으로 들어오는 것과 몸에서 나가는 것을 위하여 달고 있는 호스는 모두 10개나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인지라 두 사람만 면회가 허락되었습니다.
나는 로목사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뻣습니다. 나는 몇 달전에 스낼른보쉬에서 이런 사고를 목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내 앞에서 주행하던 차 앞에 갑자기 흑인 아이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운전자는 급히 방향을 바꾸었으나 달리던 충격으로 차가 네 번을 굴렀습니다. 흑인 아이는 살았으나 운전자는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 사고를 본 것을 기억하며 로 목사의 경우와 비교를 해 보았습니다. 로 목사님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으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로목사는 나에게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어야 하겠지요.”이것이 사고가 나기 직전 로선교사와 그 아들 아영이가 나눈 마지막 말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 신실하신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켜 그의 생명을 구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오전에 30분 정도 대화를 하고 나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하여 병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 나는 다시 로목사를 만났습니다. 이 번에도 한 30분 정도 대화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선교 사역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목사님 탄자니아에 가실 일이 있으면 나를 함께 데리고 가 주십시오” 로 선교사가 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탄자니아에 있는 콩고인 난민촌에 신학교가 시작된다는 말을 그가 기억한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로 선교사님이 지금 하고 있는 성경 연장교육을 11월 달에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 선교사의 생명을 건지신 하나님께서 빠른 회복을 주실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너무 위중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로목사의 회복을 자기들의 한계 밖의 일이라고 말을 합니다. 김은혜 사모에게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의사들이 말을 합니다. 한꺼번에 남편과 아들을 잃을 번 하였던 사모는 지금 객지에서 병 시중하는 것과 사역이 겹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상황입니다. 그리나 그녀가 보여주는 의연한 모습은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의 증거일 것입니다.
박영호목사를 비롯하여 불룸폰테인에 있는 한인 교회와 또한 근처의 동역자들이 어려움을 당한 선교사를 정성껏 도와주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현지 선교부에서도 포체르스토름과 이스터 런던에서 동역자들이 병상을 방문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위하여,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위하여, 그리고 식구들을 위하여 로목사를 건강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아프리카 지역장 김 형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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