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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CIS(중앙아시아) 등록일 2011-11-07
작성자 관리자 (admin)
압하지야 브집 마을에서
우동수 선교사
압하지야 소식 2011.10.23.


고요한 새벽입니다. 지금은 새벽 3시경. 일상대로 눈이 떠졌습니다. 간혹 견공들의 짖는 소리가 들려올뿐 아직 새벽닭도 기척하긴 이른 시간인가 봅니다. 오랜만에 글로 소식을 전할 생각에 바로 자판 앞에 앉았습니다.

흑해 해변의 압하지야, 이곳에서 지난 여러 달은 마치 초야에 묻혀지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농부로 밭을 일구어 여름내 땀흘려 일하고 수확을 거두고, 익어 지천인 과일들을 여러가지로 저장하고 나누며, 부화기에서 병아리를 산란하여 아이들 돌보듯 닭을 키우며 지냈습니다. 쉽지 않았던 가시덩굴과 잡초, 소들과의 전쟁도 지났습니다. 아직까지 성사된 일이 하나도 없는 사업도 하였습니다. 하나하나 수월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야 저의 삶에서 고요 가운데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을 배워가고 있나 봅니다. 스스로 들레이는 부산함에서 벗어나 잠잠히 주님의 손 아래 머무는 삶의 걸음입니다. 때로는 따분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니 벌써 이곳의 일상이 익숙해진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내가 친히 가리라’ 약속하시고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말씀대로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신 그 약속이 제 심령과 삶에 이루어짐을 느끼게 됩니다.

이웃들에게 전해지는 구원의 역사

엊그제께는 두집 건너 이웃인 압하지야인 전공 ‘지마’와 ‘아녜따’ 집에 세탁기를 설치해 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 소식을 전했던 어린 아홉 자녀를 둔 스스로 무슬림이라 지칭했던 바로 그 가정입니다. 작년에 지마와 아녜따 부부는 각각 죽을 고비를 한번씩 넘겼습니다. 남편 지마는 일하는 변전소에서 수리중이던 변압기가 폭발했는데 모든 것이 날라가는 와중에 기적적으로 철판이 지마의 몸을 덮어 약간의 화상을 입고 살아난 일이 있었습니다. 아녜따는 소식을 전한대로 암 수술 후 살아날 소망이 없었는데 일어나 모두를 놀라게 하였지요.

그런데 이 가정에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 둘째 딸인 ‘아시다’가 우리가 전해준 어린이 성경과 신약을 읽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엄마 아녜따와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녜따도 아시다가 읽어 주는 성경을 들으며 왜 성경을 읽으면 마음이 뜨거워지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 가정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캐나다에서 지나던 우리 둘째 딸 한나가 이곳에 와서 석달을 함께 하며 이루어진 일입니다. 캐나다에서 건강이 안좋아져서 그곳의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결정이 난 후 안식 겸 요양으로 우리와 함께 머물렀습니다. 한나가 이곳에 있는 중에는 엄마를 도와 이웃들과의 교제와 현지 목회자 사모님들과의 큐티모임에도 통역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하루는 우리가 아녜따 가정을 함께 방문하던 중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집 세살배기 막내가 부엌에 있던 경유를 마실 것인줄 알고 들이켰던 것이지요. 한나와 우리 막내 예레미야가 비상약을 구하러 이웃집을 헤매 해독제를 찾아 먹이고는 겨우 진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던중 한나의 눈에 띈 것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손님으로 가면 사랑방에 머무르다 오게 되는데 그 난리가 났으니 아이를 침실에 눕혀 놓고 돌보게 되어 마침 밖에 비가 여러날 내려 말리려고 걸어둔 아이들 양말을 본 것이지요. 그런데 그 많은 아이들의 양말이 모두 다 구멍이 나 너덜너덜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집에서 돌아온 후 한나는 여러 주 동안 아이들 양말을 시장을 갈 때 마다 사서 모으고 엄마와 함께 뜨개질을 하여 다음 번에 갈 때 선물로 전하였습니다. 그무렵 아시다에게 성경도 전한 것이지요. 그런데 거의 1년 가까이 저희 부부가 이것 저것을 챙겨 그 집을 돌아보아도 우리가 가면 아이들이 부끄럽고 서먹서먹해 구석에 숨고 별 반응이 없던 것이 한나가 양말을 전한 후 정말 사랑을 느끼게 되었는지 마음을 열어 처음으로 아이들이 우리 집에도 놀러오게 되었습니다. 한나와 제 아내가 큰딸 에스더의 결혼 준비를 하러 시베리아로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6월 말에 그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아시다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하고, 아녜따는 가슴이 뜨겁다는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저께 세탁기를 설치해 주는 일도 여러 사연이 있었습니다. 한나가 와서 지나던 그 무렵에 마침 이곳의 마을사무소에서 어려운 다자녀의 이 가정을 위해 선물로 6킬로그램 용량의 삼성 자동세탁기를 전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그 많은 아이들의 빨래를 모두 손으로 하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거의 반년을 이 세탁기를 설치하지 못하고 방구석에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집 설비가 제대로 되어있지가 않아 연결할 상하수도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이곳은 배관공을 찾기가 어렵고, 또 설치를 위해서는 적지않은 배관과 부속, 설치비가 드는 것이 문제였지요. 심지어 선물로 받은 세탁기를 팔아버릴 생각까지 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지난 봄부터 만나 교제하게 된 오세티아인인 ‘게오르기’ 선교사 가정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세티아는 우리집 뒷산 카프카즈 산맥을 넘어 북카프카즈의 러시아와 그루지야에 걸쳐있는 민족입니다. 최근에 알고보니 그 선교사의 아버지인 ‘하즈비’가 전기며 배관, 용접, 자동차 수리까지 못하는 것이 없는 기술자였습니다. 마침 예수님을 막 영접한 아시다와 그 집을 돌볼 현지 사역자로 그 가정을 연결할 참이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아시다와 아녜따에게는 친척들이 찾아와 성경을 못읽게 하고 뺏어가는 등 핍박이 이미 시작된 형편이었습니다.

저의 가정이 배관의 여러 자재와 부속을 마련하고, 하즈비는 설치의 일을 맡아 그저께 드디어 세탁기를 연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데는 이를 계기로 그 두 가정을 연결하자는 아내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하즈비가 지마와 저와 함께 세탁기를 설치할 동안에 제 아내와 게오르기 선교사의 어머니인 ‘아자’는 아녜따와 아시다와 함께 차를 마시며 교제를 나누도록 했습니다. 설치가 완료되어 세탁기가 돌아가게 되었을 때는 함께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마침 세탁기 설치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병아리 부화의 일로 알고 지나게된 옆집의 압하지야 민족의 사촌뻘되는 종족 ‘아바진’ 민족인 ‘류바’도 방문하여 함께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류바는 제 아내가 전도의 말을 꺼내려고만 하면 자기는 무슬림이라고 하던 차였습니다. 앞으로 이들을 위해서 게오르기 선교사 가정이 이렇게 연결되어 함께 돌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들이 믿음 안에 잘 세워져 가고, 성도의 교제와 현지교회로 잘 연결되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현지 목회자들과의 교제와 협력

게오르기 선교사 가정처럼 이제 이곳의 여러 목회자 가정과 교제하며 협력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지난 연초에는 제 오십되는 생일이 있었습니다. 연말연시에는 작은 정성이지만 이곳 목회자 가정에 선물을 나누기도 했었구요. 그래서 마침 가깝게 지내려했던 몇몇 현지 사역자 가정을 초청해 함께 밥이라도 먹을 요량이었습니다. 아직 러시아인을 제외한 외국선교사로는 저희 가정이 유일해 더 초청할 다른 가정도 사실은 없는 셈이었지요. 연초만 해도 겨우겨우 적응해가는 중에 어떻게 처음부터 연결된 몇 사역자 가정과만 왕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초청에 웬일인지 아무도 응하지 않아서 생일 밥상도 차려 보지 못하고 머쓱하게되어 산정호수로 가족과 드라이브하고 만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해가 되면서 몇몇 가정과 친밀하게 영적인 교제를 나누며 지나게 되는 일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들도 그동안 주변과 별 교제없이 외롭게 지나던 형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도 수훔의 싸샤 목사님과 이웃도시인 가그라의 지마 목사님 가정들입니다. 이제는 사모들과 아이들까지 오가며 친밀하게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저 교제만 아니라 목회의 어려움도 나누고 선교의 비전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장 어떠한 일을 벌이고 시작할 생각은 아닙니다. 처음 2년 동안은 정착하고 준비하며 상황을 익히도록 생각하고 있고, 그런 템포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형편을 듣고 나누며 자연스럽게 저의 이곳으로의 소명과 비전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30분 거리의 이웃도시 ‘구다우따’로 우크라이나에서 한 가정이 이곳 사역을 위해 들어왔습니다. 주일마다 교회들을 순회하며 주간 중에도 사역자들을 방문하는 중에 우선 이제 막 이곳에 들어온 ‘로마’ 선교사와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두 주 전에는 부인과 아이들도 이곳으로 오게 되었구요. 집으로 초청해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는 것이 이분들에게 생소한 곳에 와서 선교사로 처음 임하는 긴장된 순간에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주일은 이분들의 초청으로 구다우따를 방문해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할 참입니다. 아내는 교제와 섬김에 특별한 은사가 있어 매번 정성을 들여 기쁨으로 음식과 선물을 준비하며 섬기고 있어 큰 힘이 됩니다. 어제 저녁에도 큰 케익을 준비하여 오늘 모임에 가져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곳의 교회들과 사역자 가정들과 교제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방문객들과 함께

또 지난 여름에는 생각지 않게 저희가 이전에 사역했던 시베리아에서 세명의 러시아 형제들이 이곳을 방문해 교제하며 협력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물론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러시아와 세계 각지에서 오는 이들을 맞아 공동체며 포럼 사역을 할 비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선교의 베이스가 마련되어 이러한 사역을 시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느닷없이 이들이 들이닥쳐 이러한 비전을 주시고 스스로 이루어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내년 여름까지 별채의 손님을 맞을 공간이 2층 증축과 내부수리를 마치고 이러한 일이 시작되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가족을 위한 공간만 수리되어 있는 상태인데 이들이 방문하여 함께 지나게 되었습니다.

7월 중순에는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이전에 한번 교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싸샤 형제가 어떻게 알았는지 이곳 전화로 연락을 해와 저의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이 소련 시절 최고의 휴양지였어서 아직도 많은 러시아인들이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싸샤와 그 동생인 안드레이 형제도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이곳으로 여름 휴양을 왔던 것을 기억하고 이곳에 다녀갈 것을 동경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이곳에 올 기회가 없었던 젊은 세대는 전쟁의 소식만이 기억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싸샤 형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이 여러모로 주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라는 것을 한달간 이곳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 동감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때 가족은 큰 딸 에스더의 결혼준비로 노보시비르스크로 떠나 저 혼자 거의 달포를 지나며 혼자 온갖 밭일을 해야할 형편이었습니다. 올해는 봄 늦게까지 우기가 계속되어서 여름이 늦게 왔고, 트랙터를 찾기 힘들어 거의 석달 동안 밭을 갈고 준비하는 일을 마칠 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버려진 땅을 개간하는 일이라 수로를 파고 두번이나 밭을 가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이곳에 온지 사흘이 지나 마침 트랙터로 밭을 고루고 골을 파서 옥수수를 파송하고 채소밭을 일구게 되었습니다. 거의 800평이나 되는 밭을 7월의 뙤약볕 아래서 파종하고 채소밭을 일구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혼자로는 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제의 도움으로 제 때에 모든 일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넘치는 과일들도 함께 수확하고 저장하며 이웃들과 사역자 가정에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숙제로 남아있던 합작법인을 함께 설립하며 비자 등 법적인 도움을 주었던 현지 변호사 ‘리바르스’의 제안이었던 커피사업을 형제와 함께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 특별했습니다. 리바르스는 지금은 모스크바에서 영어로 MBA 학위코스를 하는 이곳의 보기 드문 엘리트로 이곳 현지 교인의 소개로 연결된 복음주의 신앙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해왔던 형제가 그와 연결이 되어 구체적으로 상담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아직 성과는 없지만 저의 비즈니스 관련 언사가 허언이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된 셈입니다. 리바르스는 아버지가 대법원 부원장으로 실력자라 영향력이 있습니다. 이전 두번의 비자와 법인 등록도 그가 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리바르스와 관련해 더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저와 연초에 연결되어 합작법인 등록을 하고 얼마되지 않아 이곳 정부의 해외교포관련기관의 책임자로 발탁되었습니다. 저의 압하지야선교의 비전이 압하지야, 카프카즈의 민족들을 통한 카프카즈 및 중동의 복음화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 중동에 산재한 압하지야 디아스포라 60만이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비전을 보이시고 친히 준비하시며 이루실 일이 놀랍습니다.

싸샤 형제에 이어 9월에는 그 동생 안드레이와 제 큰아들 에스라와 그 친구인 ‘자하르’가 방문했습니다. 이들이 함께 이곳 교회에서 찬양으로 섬기며 특히 안드레이는 압하지야 민족의 중심지로 아주 배타적이고 이교적인 구다우따를 방문하여 여러날 지내며 온 동네를 전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또 싸샤와 함께 파종했던 밭을 이들이 함께 김을 매주고, 새로 채소밭도 일구는 등 혼자서는 하기 어려웠던 일을 모두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 주님께서 때에 맞춰 모든 것을 인도하시고 도우심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주심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큰딸 에스더의 결혼과 자녀들

지난 8월 20일에 우리의 18년 동안의 사역지였던 노보시비르스크장로교회당에서 에스더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고향이나 고향집과도 같은 곳입니다. 에스더는 대학 졸업 후 3년 간의 시베리아 미전도종족이었던 ‘알타이’종족 선교를 마치고 인생의 새로운 걸음을 하는 출발이었습니다. 신랑은 3년 전부터 사귀던 호주 한인교포인 믿음의 사람입니다. 함께 선교의 비전을 품고 가정을 이루어 더 준비하고 섬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혼인 후 한국에 들려 신혼여행과 혼인신고를 하고 호주 서남부 휴양도시인 퍼스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둘째 한나는 캐나다에서 돌아와 당분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휴양 차 지나기로 하여 그곳에 에스더의 결혼식 후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녀들 중 한명은 시베리아에 머물며 선교를 이어가는 모양새입니다. 한나는 지금 장애아동을 섬기며 통역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11월 초에는 한 선교사님 가정과 함께 몽골의 선교대회에 참가한다고 합니다. 조금씩 선교의 비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입니다.

장남 에스라는 벌써 베를린예술대 비올라 전공 졸업반입니다. 그곳 베를린의 오케스트라에 남거나, 이스라엘 예루살렘 음대로 사역 준비 차원에서 교환학생으로 가거나, 미국 LA의 음악대학원으로 진학해 동시에 신학과정을 하거나의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셋째딸 마리아는 미국 시애틀에서 11학년 학교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적적인 주님의 도우심으로 학교와 거처의 문제를 무료로 해결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반적인 경우로는 도저히 미국에서 공부를 계속할 형편이 아니고 우리가 도울 수도 없는데 주님이 하십니다. 생각지 않게 더이상 갈 곳이 없는 형편에서 그 많은 시애틀의 한인교회나 한인교포도 아니고, 압하지야에서 그곳으로 이주하신 러시아 목사님 가정에서 배려해주시도록 연결이 되었습니다. 놀라울 따름입니다. 학교도 무료로는 생각할 수 없었는데 그렇게 되었고, 더욱이 무용 전공으로 계속 대학진학도 준비해야 하는데 새로 전학한 학교는 무용클래스가 있어 그러합니다.

막내 예레미야는 이제 압하지야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지난 12일은 13번째 생일이었는데 6명의 친구들이 와서 함께 축하하고 재미있게 놀았고 친구집에 자주 놀러가기도 합니다. 이제 키도 훌쩍 커져 몰라볼 정도입니다. 요새는 한국어 성경을 읽고 쓰며 더 늦기 전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막내만 유일하게 한국에서 한번도 학교를 다닐 기회가 생기지 않아서 한국어에 대한 특별한 필요가 있습니다.

현지 정황

아직도 이곳은 가을에 들어서면서 자주 정전이 되고 불편한 일들이 있습니다. 6월에 갑자기 대통령이 병으로 타계하여 새로운 대통령이 8월에 선출되고 개방과 변화의 언급은 있으나 구체적인 진전은 보이지 않습니다. 외국인의 투자나 왕래, 거주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경 시스템이 조금 개선되고, 철도도 수리되어 전철이 러시아 쪽에서 이곳 수도 수훔까지 정기적으로 왕래하게 되는 등의 일이 있습니다. 얘기가 있었던 공항개장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년 전의 러시아-그루지야의 5일 전쟁 후 이곳에 평화가 찾아든 듯 합니다. 러시아군의 기지 건설과 주둔이 자리가 잡히고 안정되어 전후 해변에 배치되었던 군함도 이제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앞으로 2년여가 지나면 코 앞의 소치에서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고 온세계의 이목이 이곳으로 집중될 것입니다. 아마도 내년의 런던 하계올림픽 후에는 이곳의 모습이 세계 앞에 완연히 드러나고 변화가 가시화 될 것입니다. 저희도 내년 여름까지는 이곳 선교 준비의 일을 마치려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놀라운 주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은 지난 7월에 결정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결정입니다. 이제 소치 동계올림픽에 한국이 차기 개최지로 이곳에 코리아하우스를 설치해 홍보하는 일과 온 한국 국민의 시선이 이곳으로 집중되는 일이 남았습니다. 이곳 선교를 위해 한국과 한국교회를 사용하시려는 주님의 섭리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일하시며며, 도우실 것을 기대합니다. 모든 분들께 안부와 사랑을 전합니다.

압하지야 브집 마을에서
우 동수, 안 선자 선교사 예레미야 드림.

### 이번 가을에는 곶감을 많이 말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우체국도 없고 배송 서비스도 없어 나누고 싶어도 오시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한번 오셔서 따뜻한 압하지야의 겨울과 귤, 오렌지, 레몬향을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곳과의 연락이나 소식은 페이스북에서 제 이름 ‘우동수’나 ‘세계 최고 장수촌 압하지야’ 그룹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기도제목>

1. 내년 여름까지 이곳에 선교베이스가 잘 준비되도록
2. 현지 목회자 가정들과 새신자들을 위하여
3. 이곳의 안정과 개방, 변화를 위하여
4. 소치 동계올림픽에 한국의 선교동참을 위하여
5. 다섯 나라에 흩어진 다섯 자녀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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