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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오세아니아, 태평양 등록일 2011-10-31
작성자 관리자 (admin)
돼지 3마리로 여자를 사온 부족 형제는 눈물로 잘못을 간증하며…
파푸아뉴기니에서 문성 선교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국민일보 4번째 글(2011년 10월 19일)을 보내 드립니다.

저희는 다음주 목요일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로 갈 것입니다.
사랑의 빛을 가슴에 가득 안고 떠납니다.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파푸아뉴기니 수도인 포트몰스비(Port Moresby)에 도착한 후 국내선으로 해발 2천 미터에 있는 고로가(Goroka)라는 고산 작은 도시로 갈 것입니다. 고로가는 NTM 본부가 있는 곳으로 그곳에서 약 2-3주를 머물면서 정글로 가기 전 정착에 필요한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소형비행기로 Kora 부족 형제들이 있는 우리 집으로 갈 것입니다. 금년 크리스마스와 년 말 연시를 Kora 부족의 형제들과 보낼 것입니다.

일 년 간 비워 두었던 집과 마을을 돌보고, 그 동안 일어난 부족의 일들을 처리하고, 제자들의 동기부여를 위하여 합숙 훈련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년간 중지되었던 성경번역과 철자학교 등 사역을 다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2011년 1월에
파푸아뉴기니에서 가장 큰 섬인 뉴 브리던 섬에서 있는 성경번역에 관한 세미나에 3주간 참여 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Kora 부족 형제들을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로 시작한 이 사역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때까지

문성 올림



돼지 3마리로 여자를 사온 부족 형제는 눈물로 잘못을 간증하며…


“선교사님 나도 선교사님과 함께 다른 부족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왜 이제서야 코라 부족에 오셨습니까. 왜 이제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나는 그동안 조상의 풍습을 따라 지금 다섯 명의 여자를 사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만약에 선교사님이 일찍 저희 부족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면 나는 한 여자와 결혼하여 새로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선교사님 저와 다섯 명의 아내와 이이들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내가 다른 부족에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겠습니까.”

이노베 꾸나이(Inove Kunai)라는 부족 형제의 가슴 저리는 간청이며 고백이다. 다섯 명의 아내 때문에 괴로워하며 한때는 한 명만 두고 나머지 네 명의 아내를 그들의 마을로 돌려보내려고 하였지만 풍습상 그리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더욱 자신의 잘못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코라 부족은 돼지 3마리에 여자를 사 온다. 돼지만 있으면 하루에 두 여자와 같이 결혼을 할 수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며, 당사자는 자랑스러워한다. 다섯 여자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이노베에게 자신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일이며 자랑이었다. 그런데 누가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부끄러운 일로 알게 하였을까. 죄라는 단어가 없어 죄의식이 없이 살아가던 그에게 누가 그 형제의 양심을 살아나게 하였을까.

그들이 우리와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못되었다고 율법적으로나 지식으로 가르친 적도 없는데…. 이것은 복음을 들은 형제에게 일어나는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긍휼이고 복음의 능력이다. 부족에서만 살아온 형제가 자신의 속사람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 성령의 행하심이 분명하다.

형제를 바라보며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는 욥의 간증이 우리의 간증이며 확증이 되었다.

20년 전 우리를 부르셨던 말씀을 기억하며 깊은 은혜를 생각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이 말씀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새로이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을 때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셨느니라.” 언제나 관념 속에 지식으로만 있던 말씀이 생명이 되어 나에게 이미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게 하셨다. 과거에는 성경의 한 구절로만 기억되었던 말씀이,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운 산천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손길을 감격하고 작은 생명체 하나를 보아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심령으로 확신하게 됐다. 창세기 1장 1절의 선포의 말씀은 복음이며 진리이다. 그것을 가슴으로 안다는 것이 축복이었다. 이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복음에 대해 매일매일 새롭게 깨닫게 되는 기쁨 속에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성경을 읽을 때면 말씀들이 예전과는 달리 나에게 하시는 준엄한 명령처럼 들리게 됐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은 나의 영혼을 다시 깨어나게 했다. 하나님은 누구이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무엇이며,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마음속 깊이 뼈저리게 알게 하셨다.

피와 물을 쏟으시면서도 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시던 주님, 십자가의 형벌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하셨다. 나의 죄를 생각하며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던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로 기도하게 하시는 주님을 사모하며 감사한다.

이후 주님은 우리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셨으며 한번도 직접 보지 못했던 원주민들을 만나보고 싶은 심정으로 그리워하게 만드셨다. 여러 서점을 찾아다니며 파푸아뉴기니에 관한 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그 나라가 궁금해 영사관을 찾아가기도 했다. 회사에 있으면 파푸아뉴기니 원주민 생각으로 가득하였고 그곳에 누구인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마음에 원주민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게 하셨다.

선교사란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사람들이 하는 일로 생각했던 우리에게 날이 갈수록 벅차 오르기만 하는 이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애절한 심정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내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죄인 됨을 알게 하시여 자복하는 애통함이 일어났으며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응답돼 부족 형제들의 영혼을 사랑하게 됐고, 죄로 인해 죽음의 공포 속에 있는 그들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저희가 처한 환경을 통해 또 다른 환경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로마서 10장 13∼15절 말씀이 우리 삶에 응답이 됐다. 많은 분들과 충분하게 서로 나누지 못하였던 그 벅찬 마음들, 아무리 마음을 열어 보여도 또 나눌 이야기가 남아있던 일들,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다. 가족과 친구, 선배와 후배, 직위와 명예, 사회의 경험들을 모두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았다. 오직 하나님과 성도의 사랑의 기도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떠났었다.

부족 형제들의 삶을 눈물로 간증하는 저들을 바라보면서 말씀이 우리 삶에 증거되고 응답되었음을 감격한다. 복음이 복음 되며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심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던 그때, 이 노래를 부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마음이 새로워진다.

‘이것이 옳은가?

세상에는 기쁨과 감사, 사랑과 은혜 그리고 평안에 대하여 말하는 노래들로 가득하네.
그러나 세상에 잊혀진 영혼들을 위한 노래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옳은가?
우리는 그들의 울음을 들어야 하네. 잊혀진 채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우리는 주님의 성찬에 둘러 앉아 경배하며 찬양하며 축복을 말하네.
그러나 세상에 잊혀진 영혼들을 위한 노래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옳은가?
구세주를 만날 때 그가 너는 왜 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구세주를 만날 때, 나의 자녀의 울음을 듣지 못하였냐고 물으면 우리는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구세주를 만날 때, 내가 그들을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몰랐느냐고 물으면 너는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이것이 옳은가?

Where is the song for the lost people? 아멘.’



● 문성 선교사

문성(60) 선교사는 아내 이민아 선교사와 함께 20년째 파푸아뉴기니 선교를 하고 있다. 지병 박리성대동맥류 때문에 인공동맥을 차고 있다. 선교지 코라 부족은 식인을 할 정도로 원시적이다.
돼지 3마리로 여자를 사온 부족 형제는 눈물로 잘못을 간증하며…


“선교사님 나도 선교사님과 함께 다른 부족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왜 이제서야 코라 부족에 오셨습니까. 왜 이제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나는 그동안 조상의 풍습을 따라 지금 다섯 명의 여자를 사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만약에 선교사님이 일찍 저희 부족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면 나는 한 여자와 결혼하여 새로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선교사님 저와 다섯 명의 아내와 이이들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내가 다른 부족에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겠습니까.”

이노베 꾸나이(Inove Kunai)라는 부족 형제의 가슴 저리는 간청이며 고백이다. 다섯 명의 아내 때문에 괴로워하며 한때는 한 명만 두고 나머지 네 명의 아내를 그들의 마을로 돌려보내려고 하였지만 풍습상 그리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더욱 자신의 잘못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코라 부족은 돼지 3마리에 여자를 사 온다. 돼지만 있으면 하루에 두 여자와 같이 결혼을 할 수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며, 당사자는 자랑스러워한다. 다섯 여자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이노베에게 자신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일이며 자랑이었다. 그런데 누가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부끄러운 일로 알게 하였을까. 죄라는 단어가 없어 죄의식이 없이 살아가던 그에게 누가 그 형제의 양심을 살아나게 하였을까.

그들이 우리와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못되었다고 율법적으로나 지식으로 가르친 적도 없는데…. 이것은 복음을 들은 형제에게 일어나는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긍휼이고 복음의 능력이다. 부족에서만 살아온 형제가 자신의 속사람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 성령의 행하심이 분명하다.

형제를 바라보며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는 욥의 간증이 우리의 간증이며 확증이 되었다.

20년 전 우리를 부르셨던 말씀을 기억하며 깊은 은혜를 생각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이 말씀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새로이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을 때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셨느니라.” 언제나 관념 속에 지식으로만 있던 말씀이 생명이 되어 나에게 이미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게 하셨다. 과거에는 성경의 한 구절로만 기억되었던 말씀이,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운 산천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손길을 감격하고 작은 생명체 하나를 보아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심령으로 확신하게 됐다. 창세기 1장 1절의 선포의 말씀은 복음이며 진리이다. 그것을 가슴으로 안다는 것이 축복이었다. 이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복음에 대해 매일매일 새롭게 깨닫게 되는 기쁨 속에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성경을 읽을 때면 말씀들이 예전과는 달리 나에게 하시는 준엄한 명령처럼 들리게 됐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은 나의 영혼을 다시 깨어나게 했다. 하나님은 누구이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무엇이며,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마음속 깊이 뼈저리게 알게 하셨다.

피와 물을 쏟으시면서도 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시던 주님, 십자가의 형벌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하셨다. 나의 죄를 생각하며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던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로 기도하게 하시는 주님을 사모하며 감사한다.

이후 주님은 우리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셨으며 한번도 직접 보지 못했던 원주민들을 만나보고 싶은 심정으로 그리워하게 만드셨다. 여러 서점을 찾아다니며 파푸아뉴기니에 관한 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그 나라가 궁금해 영사관을 찾아가기도 했다. 회사에 있으면 파푸아뉴기니 원주민 생각으로 가득하였고 그곳에 누구인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마음에 원주민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게 하셨다.

선교사란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사람들이 하는 일로 생각했던 우리에게 날이 갈수록 벅차 오르기만 하는 이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애절한 심정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내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죄인 됨을 알게 하시여 자복하는 애통함이 일어났으며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응답돼 부족 형제들의 영혼을 사랑하게 됐고, 죄로 인해 죽음의 공포 속에 있는 그들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저희가 처한 환경을 통해 또 다른 환경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로마서 10장 13∼15절 말씀이 우리 삶에 응답이 됐다. 많은 분들과 충분하게 서로 나누지 못하였던 그 벅찬 마음들, 아무리 마음을 열어 보여도 또 나눌 이야기가 남아있던 일들,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다. 가족과 친구, 선배와 후배, 직위와 명예, 사회의 경험들을 모두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았다. 오직 하나님과 성도의 사랑의 기도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떠났었다.

부족 형제들의 삶을 눈물로 간증하는 저들을 바라보면서 말씀이 우리 삶에 증거되고 응답되었음을 감격한다. 복음이 복음 되며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심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던 그때, 이 노래를 부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마음이 새로워진다.

‘이것이 옳은가?

세상에는 기쁨과 감사, 사랑과 은혜 그리고 평안에 대하여 말하는 노래들로 가득하네.
그러나 세상에 잊혀진 영혼들을 위한 노래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옳은가?
우리는 그들의 울음을 들어야 하네. 잊혀진 채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우리는 주님의 성찬에 둘러 앉아 경배하며 찬양하며 축복을 말하네.
그러나 세상에 잊혀진 영혼들을 위한 노래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옳은가?
구세주를 만날 때 그가 너는 왜 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구세주를 만날 때, 나의 자녀의 울음을 듣지 못하였냐고 물으면 우리는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구세주를 만날 때, 내가 그들을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몰랐느냐고 물으면 너는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이것이 옳은가?

Where is the song for the lost people? 아멘.’

● 문성 선교사

문성(60) 선교사는 아내 이민아 선교사와 함께 20년째 파푸아뉴기니 선교를 하고 있다. 지병 박리성대동맥류 때문에 인공동맥을 차고 있다. 선교지 코라 부족은 식인을 할 정도로 원시적이다.



돼지 3마리로 여자를 사온 부족 형제는 눈물로 잘못을 간증하며…

“선교사님 나도 선교사님과 함께 다른 부족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왜 이제서야 코라 부족에 오셨습니까. 왜 이제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나는 그동안 조상의 풍습을 따라 지금 다섯 명의 여자를 사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만약에 선교사님이 일찍 저희 부족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면 나는 한 여자와 결혼하여 새로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선교사님 저와 다섯 명의 아내와 이이들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내가 다른 부족에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겠습니까.”

이노베 꾸나이(Inove Kunai)라는 부족 형제의 가슴 저리는 간청이며 고백이다. 다섯 명의 아내 때문에 괴로워하며 한때는 한 명만 두고 나머지 네 명의 아내를 그들의 마을로 돌려보내려고 하였지만 풍습상 그리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더욱 자신의 잘못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코라 부족은 돼지 3마리에 여자를 사 온다. 돼지만 있으면 하루에 두 여자와 같이 결혼을 할 수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며, 당사자는 자랑스러워한다. 다섯 여자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이노베에게 자신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일이며 자랑이었다. 그런데 누가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부끄러운 일로 알게 하였을까. 죄라는 단어가 없어 죄의식이 없이 살아가던 그에게 누가 그 형제의 양심을 살아나게 하였을까.

그들이 우리와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못되었다고 율법적으로나 지식으로 가르친 적도 없는데…. 이것은 복음을 들은 형제에게 일어나는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긍휼이고 복음의 능력이다. 부족에서만 살아온 형제가 자신의 속사람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 성령의 행하심이 분명하다.

형제를 바라보며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는 욥의 간증이 우리의 간증이며 확증이 되었다.

20년 전 우리를 부르셨던 말씀을 기억하며 깊은 은혜를 생각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이 말씀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새로이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을 때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셨느니라.” 언제나 관념 속에 지식으로만 있던 말씀이 생명이 되어 나에게 이미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게 하셨다. 과거에는 성경의 한 구절로만 기억되었던 말씀이,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운 산천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손길을 감격하고 작은 생명체 하나를 보아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심령으로 확신하게 됐다. 창세기 1장 1절의 선포의 말씀은 복음이며 진리이다. 그것을 가슴으로 안다는 것이 축복이었다. 이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복음에 대해 매일매일 새롭게 깨닫게 되는 기쁨 속에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성경을 읽을 때면 말씀들이 예전과는 달리 나에게 하시는 준엄한 명령처럼 들리게 됐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은 나의 영혼을 다시 깨어나게 했다. 하나님은 누구이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무엇이며,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마음속 깊이 뼈저리게 알게 하셨다.

피와 물을 쏟으시면서도 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시던 주님, 십자가의 형벌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하셨다. 나의 죄를 생각하며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던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로 기도하게 하시는 주님을 사모하며 감사한다.

이후 주님은 우리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셨으며 한번도 직접 보지 못했던 원주민들을 만나보고 싶은 심정으로 그리워하게 만드셨다. 여러 서점을 찾아다니며 파푸아뉴기니에 관한 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그 나라가 궁금해 영사관을 찾아가기도 했다. 회사에 있으면 파푸아뉴기니 원주민 생각으로 가득하였고 그곳에 누구인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마음에 원주민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게 하셨다.

선교사란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사람들이 하는 일로 생각했던 우리에게 날이 갈수록 벅차 오르기만 하는 이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애절한 심정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내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죄인 됨을 알게 하시여 자복하는 애통함이 일어났으며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응답돼 부족 형제들의 영혼을 사랑하게 됐고, 죄로 인해 죽음의 공포 속에 있는 그들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저희가 처한 환경을 통해 또 다른 환경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로마서 10장 13∼15절 말씀이 우리 삶에 응답이 됐다. 많은 분들과 충분하게 서로 나누지 못하였던 그 벅찬 마음들, 아무리 마음을 열어 보여도 또 나눌 이야기가 남아있던 일들,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다. 가족과 친구, 선배와 후배, 직위와 명예, 사회의 경험들을 모두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았다. 오직 하나님과 성도의 사랑의 기도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떠났었다.

부족 형제들의 삶을 눈물로 간증하는 저들을 바라보면서 말씀이 우리 삶에 증거되고 응답되었음을 감격한다. 복음이 복음 되며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심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던 그때, 이 노래를 부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마음이 새로워진다.

‘이것이 옳은가?

세상에는 기쁨과 감사, 사랑과 은혜 그리고 평안에 대하여 말하는 노래들로 가득하네.
그러나 세상에 잊혀진 영혼들을 위한 노래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옳은가?
우리는 그들의 울음을 들어야 하네. 잊혀진 채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우리는 주님의 성찬에 둘러 앉아 경배하며 찬양하며 축복을 말하네.
그러나 세상에 잊혀진 영혼들을 위한 노래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옳은가?
구세주를 만날 때 그가 너는 왜 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구세주를 만날 때, 나의 자녀의 울음을 듣지 못하였냐고 물으면 우리는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구세주를 만날 때, 내가 그들을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몰랐느냐고 물으면 너는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이것이 옳은가?
Where is the song for the lost people? 아멘.’

● 문성 선교사

문성(60) 선교사는 아내 이민아 선교사와 함께 20년째 파푸아뉴기니 선교를 하고 있다. 지병 박리성대동맥류 때문에 인공동맥을 차고 있다. 선교지 코라 부족은 식인을 할 정도로 원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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