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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1-09-26
작성자 관리자 (admin)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민수기)
민 9: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민수기' 라는 말은 '백성의 수를 헤아려 기록했다, 인구조사를 했다' 그런 말입니다. 1차 인구 조사와 행진은 1-25장까지 나오고요, 2차 인구조사가 26-36장까지 나옵니다. 앞 부분은 전 세대이구요, 나중이 신 세대입니다. 민수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자! 어디를 가려면 일단 무엇을 파악합니까? 해외 여행 갈 때 패케지로 떠날 때는 반드시 인원이 몇 명인지 부터 파악합니다. 혼자 갈 때는 짐이 몇 개인지 파악합니다. 그저 몇 일 떠났다 오는 것도 파악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출발하여 시내 산에 이를 때까지 기록한 것이 출애굽입니다. 이 때는 정신 없이 도망 나오는 길이라 뭐 다 파악하고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허둥지둥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3달 정도 걸려서 시내 산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1년 동안 머물면서 각종 율법을 받습니다. 이것을 기록한 책이 레위기입니다. 바로 그 이후를 설명한 책이 민수기입니다. 이제 애굽에서 떠난 지 1년하고도 수개월 정도 지난 때입니다. 지금까지 허둥지둥 지냈는데 이제 율법도 받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재정비를 하면서 가는 것이 '민수기'입니다.

일단 인구조사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첫 번째 인구조사를 할 때는 시내산 밑에서 여자와 어린아이 빼고,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가서 칼을 뺄만한 사람들만 계산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한선은 20세이고 상한선은 없습니다. 전쟁에 나가서 칼을 뺄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은 60되어도 전쟁에 나갈만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50이 되어도 나갈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쨌든 전쟁에 나가서 칼을 뺄 수 있는 사람이 조사를 해 보니까 603,550명입니다. 보통은 여자가 많으니까 약 62만 정도로 보고요, 어린이 합하면 200만 정도가 된다고 봅니다. 이 정도 인구가 광야에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 소, 가축들까지 합하면 대답합니다.

지금 성지순례가 일반화되어서 다녀온 분들이 많습니다. 가 보면은요 정말 살기 힘든 곳이 광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일 큰 문제가 광야는 쉴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뭐 지금 좀 힘들면 광야 같은 인생길이라고 하는데 광야를 갔다온 분들은 그런 말 안 합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이 아니라 융탄자 깔아 놓은 길입니다. 광야가요 물이 없지요 화장실이 없지요, 그늘이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성지순례를 다녀오기 전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물 없다고 불평하고, 그랬다고 순종도 안하고 그런 식으로만 책을 쓰셨는데요 다녀오셔서 다시 쓰셨답니다. 우리 민족 같으면 그런 불평 안 했겠나 생각하셨답니다.
민수기가 시내산에서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40년 생활을 기록하는데요 하나님께 불평해서 1차 인구조사한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 40년 동안 9-10번 불평했는데요 어떻게 보면 별로 불평 안 한 겁니다. 따져보면 한 4-5년 만에 한번 불평한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불평을 많이 합니까?
정치인들에게 대통령에게 불평하는데요 따지고 보면 불평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한 50년 동안 우리나라가 200배 성장했습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다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먹는 것이요 우리보다 더 잘 먹는 민족이 없습니다. 옷 입는 것이요 제일 화려합니다. 신발이요 세계적인 메이커 신발들을 몇 컬래씩 가지고 있는 나라가 한국 밖에 없습니다. 화장품이요 우리가 프랑스보다 더 발라댑니다.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외국 여자들이요 특별히 외출할 때하고 결혼식 날이나 좀 하고 나머지 날들은 별로 안 합니다. 우리나라 여자들이요 매일 발라 댑니다. 명품 화장품만(샤넬, 랑콤, 에스티로더, 비오템, 크리니크, 크리스찬디올, SK II, 키엘, 시세이도, 클라란스, 시슬리, 어리진스, 프레쉬, 아베다, 엘리자베스아덴, 켈랑, 스틸라 등)
집은이요 일본 사람보다 큰집에서 잘삽니다. 의료 혜택이요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못하고 있습니다. 연금 엄청 줍니다. 그런 것에 비해서 세금은 전 세계에서 제일 적게 냅니다. 집집마다 상하수도 다 넣어주고요, 전기 불, 인터넷 다 넣어줍니다. 이만큼 해 주면 되지 뭘 어떻게 더해 줍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내가 나라를 위해서 한 것 보다는 누리는 것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라를 위해서 한 것은 방위생활 1년 6개월 한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과분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 한 것을 계산하면 은요 40년을 날짜로 계산하면 1,440일인데요 불순종 한 결과로 하루에 100명씩 죽어 나가는 것입니다. 한 달이면 3,000명이 죽는 겁니다. 여기 저기서 울음바다입니다. 일년 내내 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1세대 약 150만 명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구름 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지켜주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되면 은요 별로 고마운 것 잘 모릅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하니까 만나를 주셨습니다. 처음에 먹을 때는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출 16:31) 그랬습니다.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출 16:35)고 했습니다. 만나 없이는 죽는 겁니다. 그런데 계속 먹다 보니까요 고기가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보내 고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요 6:49) 만나를 먹었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기적을 체험한다고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만 불 내려 달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타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깨운다고 하나님 보좌를 자꾸만 흔드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주여!'라고 부르는 것도 옳은 표현이 아닙니다. 호격으로 사용하여 '여'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동격으로 부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여'는 아랫사람이나 동격일 때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동포여!, 친구여!'라고 할 때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에게 '이명박이여!' 그러면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저보고 '목사여!' 그럽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께는 '예수여' 그러십니까? 이것도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여!'라고도 안됩니다. 주의하셔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좀 예의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가 충분히 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죽을 때까지 안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교회가 도덕과 예절을 상실하고 자기 축복에 빠지면 안됩니다.

그리고 레위의 아들 중에 레위가 아들이 셋 있는데, 므라리 게르손 고핫 이 자손들의 가족을 따라서 임무를 회막 봉사를 하는데 그 임무를 역할분담을 시킵니다(므라리 자손, 게르손 자손, 고핫 자손).

그 다음에 나실인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요, 그러고 나서 성막과 제단 봉헌식을 합니다.
왜냐하면 시내산 밑에 1년 동안 있을 때 성막과 제단을 만들었거든요. 그 봉헌식을 합니다.
봉헌식 하고나서 봉헌식에 따르는 열두 지파가 똑같이 공평하게 큰지파 작은지파 똑같이 예물을 드립니다. 봉헌식 끝나자 바로 시내 광야에서 바란 광야 쪽으로 올라가요(수르광야, 에담광야, 쇤광야, 시내광야(1년), 바란광야, 신광야(38년))

아시다시피 많은 사람이 이동을 하다 보니까 불평이 많이 하게 됩니다.
광야생활이 힘들고 어렵고 하니까 불평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가데스바네아에 가서 정탐군을 보내요. 가나안 땅으로요, 가나안 땅 바로 밑에까지 왔는데, 거기에서 12명의 정탐군을 보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른 불평은 그래도 그렇게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결국 이 불평 사건으로 가나안 땅에 못 가고 다 죽습니다. 여러분! 생활이 불편해서 불평하는 것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불평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이 사건이 제일 중요한 겁니다.

우리는 민수기 때의 히브리 백성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환경과 조건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좋은 환경과 축복 속에서도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며 살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예배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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