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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오피니언 > 선교칼럼 등록일 2011-09-16
작성자 관리자 (admin)
아프리카 성경보급이 시급하다.
이동휘 목사
성경보급이 시급하다

아프리카에는 불어권 나라가 23개국이나 있다. 불란서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은 불란서가 개신교의 취약지역이기 때문에 기독교세력도 약할 뿐 아니라 기독교서적도 풍부치 못하다. 따라서 불어권나라의 교회의 수준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교인들 가운데 성경을 가지고 있는 성도가 어느 나라에서는 목회자이외는 거의 없다는 통감할 이야기도 들었다. 그 나라 경제수준은 형편없는데 불어성경은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 보급도 필수적인 사역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랑하는 이슬람 형제들이 잘못된 교리에 유혹되어 폭탄을 가슴에 안고 귀중한 생명을 스스로 죽이고 있다. 세계가 폭력과 미움으로 살육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무서운 테러와 폭탄을 녹일 것은 성경 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성경을 그들의 가슴에 품게 해야 하리라. 이 때문에 바울선교회에서는 타 종교인이나 불신자에게 성경을 일대일로 선물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모슬렘 형제와 기타 종교인들과 불신 외국인들에게 성경을 최고의 정성으로 정중하게 선물 한다(한국인은 제외). 거주 지역은 한국 내와 국외 세계 전 지역을 포함한다.

■ 세계 최빈국(最貧國)에 있는 크리스천 중 성경 없는 빈민들도 일부 해당된다.

■ 선물 시기는 성탄절이나 부활절 기타 그 나라의 중요 명절 때 축하선물로 전한다. 받는 자의 생일이나 기념일 그리고 그 가정의 애경사에도 가능하다.

■ 반드시 일대일로 전해야 하며 기도와 사랑으로 구원을 갈망하며 전해야 한다.

■ 반포용이 아니므로 그의 구원을 위해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 한국성도가 선물할 경우 본인이 성경대금의 80%를, 바울선교회가 20% 지원한다.

■ 외국성도가 선물할 경우 본인과 바울선교회가 각각 50%씩 부담한다.

■ 받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로 된 성경을 주어야 한다.

■ 성경구입자원은 하나님의 감동 받은 교회나 성도들의 정성들로 이뤄진다.


B 국에서 성경 보급결과에 대한 보고다

" 저희는 바로 성경책을 사서 현지 목사님과 전도자 (80분),성경책이 없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성경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대로 된 성경책이 없는 현지 목사님과 전도자들은 귀한 성경책을 받고서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교회를 나오지만 성경책이 없는 저희 교회 평신도들과 지방 성도들에게도 성경책을 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으며, 하나님을 알아가고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복음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귀한 예물을 주신 목사님과 바울선교회에게 무한 감사를 드리며 늘 강건하시고 열방을 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힘찬 전진을 하시는 바울선교회 위에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히 맺어지시길 기도드리며 현지인을 대신해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 성경 보급비 내역 *

목사님, 전도자 성경책 : 5,000세파 X 80권=400,000세파

평신도용 성경책 : 1,650세파 X 500권=825,000세파

합계: 1,225,000세파


C 나라에서의 성경보급 보고다.

2010년 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5,600만 원이 지급되어 영렬한 목마름으로 성경이 보급되어 나가고 있다.(상세내용 생략)

6) 리빙스턴같은 선교사여 어서 나오라

♣ 어린이의 헌신도 기억하시는 하나님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 1813~1873)은 스코틀랜드에서 낮은 신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나 검은 대륙의 성자, 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 선교지도자, 탐험개척자, 박애주의자로서 가히 독보적인 존재이다. 리빙스턴은 12살 때 헌금이 없어 슬픔에 메여 있을 때,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몸을 헌금궤에 넣어 하나님께 평생을 헌신한 사람이다. 어느 날 그 곳 교회에 부흥회가 열려 설교가 끝난 후 강사 목사가 주를 위해 헌신할 자를 초청했다. 아무도 나오지 않아 실망할 때 걸어 나온 소년이 리빙스턴이었다. 실패한 부흥회 같았는데 한 사람을 건졌고, 그 한사람이 아프리카 아니 온 세계에 선교의 불을 지핀 성공한 부흥회가 되었다. 글라스고에서 신학을 하고 중국으로 갈 결심이었으나, 설교가 서툴러 여덟 번이나 낙제를 했다. 어떤 때는 설교를 위해 강단에 세웠는데, “기도합시다.” 하고 다 눈 감게 하고 뒷문으로 도망까지 한 형편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헌신한 이상 주님께서 그를 쓰셨고 영광을 받고야 마셨다. 중국 선교사로 준비하였지만 영국과의 아편전쟁으로 인해 갈수 없게 되자 아프리카를 위한 멋진 일생을 살았다. 그는 일반인들에게 지리학자요 탐험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선교에 헌신한 선교사였고, 선교사가 되기 위해 의학과 신학을 공부한 열정의 사람이다. 방직공장에 들어가 어느 정도 많은 돈을 받고 있었으나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글래스고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고 동시에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을 배울 수 있었다. 27세 때 리빙스턴은 의학공부를 마치고, 핀스베리의 알빈 교회에서 안수를 받았다.

♣ 아프리카를 향한 주님의 섭리

당시 아프리카 대륙은 외부와의 접촉이 없고 문명이 전파되지 않은 대륙이었다. 해안지방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륙 내부를 성공적으로 탐험한 사람도 없었고 대륙 자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저 상아와 황금과 흑인으로 상징되던 미지의 대륙을 최초로 탐험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람이 바로 리빙스턴이다. 다른 마을이나 다른 종족을 습격하여 포로로 사로잡아 온 토인들을 가축처럼 부리거나 노예 상인에게 팔아버리는 것이 흔한 일이었고, 이렇게 팔린 노예들은 항구로 끌려가 노예선에 실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이 되곤 하였다. 1840년 12월, 5개월 동안의 항해 끝에 아프리카에 도착한 리빙스턴은 그들의 말을 배웠고 밀림 속에 있는 토인 마을을 찾아다니며 병든 사람을 치료해 주면서 복음을 전했다. 발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아 사자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빼앗길 뻔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한밤중에 한 토인이 문을 두드리며 급하게 왕진을 청했다. 밀림의 맹수들의 습격을 두려워한 일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빙스턴은 “병이란 때가 늦으면 고칠 수 없는 법이오. 옳은 일을 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니 아무 일 없을 것이오.” 하면서 오히려 사람들을 위로하며 토인과 함께 캄캄한 밀림 길을 담대하게 걸어 나갔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병을 치료해 주었다. 그래서 토인들은 리빙스턴이 말하는 친절한 하나님이 바로 리빙스턴 자신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아프리카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왔다. 토인들은 병이 들어도 의사가 없어서 그대로 죽어간다. 상처를 입어도 치료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 더욱 비참한 것은 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나쁜 환경과 습관을 내가 가서 바로잡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서라도 오지로 가서 의무를 완수하겠다.” 그의 결심은 굳건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만나서 결혼한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를 향해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죽음의 사막이라는 칼라하리 사막 북쪽에 있는 느기미라는 호수 부근이다. 30명의 토인들이 30마리나 되는 소를 끌고 뒤를 따랐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무서운 사막의 맹수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목 타는 갈증, 이 모든 악조건으로 인해 사막 기후에 익숙한 토인들마저 기운을 잃고 쓰러져 갔다. 리빙스턴 일행은 온갖 고생 끝에 2개월 만에 칼라하리 토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행은 그곳에서 저마다 타조 알 한 개씩을 받아들고 그 속에 있는 물을 마시고는 기운을 차리게 되었다. 그들은 적의 습격으로부터 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물을 타조 알에 채워 땅 속에 묻어 두는 습관이 있었다.

♣ 아프리카의 개척자라는 속뜻

선교 여행 중, 하루는 멀리서 천둥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려 계속 따라가 보니 어마어마한 폭포를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나이아가라,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와 더불어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다. 당시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 빅토리아라 불렀다. 폭포 발견 백년 후인 1955년 11월에 폭포 가까이 리빙스톤 선교사의 기념탑을 세웠다. 12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회심자 밖에 얻지 못한 리빙스턴은 점점 정규적인 선교사역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프리카 대륙의 문호가 열려서, 유럽인들이 여행할 수 있고 쉽게 정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자각하게 되었다. 기독교, 무역, 개화를 불가분리의 것으로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이 있으려면 그 민족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었다. 리빙스턴이 위대한 선교사로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은 바로 이 정보를 제공하는 개척 선교사였다는 것이다. 그가 제공한 정보에 반응한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아프리카 선교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리빙스턴은 1852년 3월 39세 때 케이프타운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영국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다. 가족까지 이별시킨 그의 의지에 어찌 열매가 없겠는가. 드디어 잠베시 강의 발견으로 아프리카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준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프리카의 지도가 바뀌게 되었다. 리빙스턴의 삶은 아프리카를 기독교 선교에 개방시켜야 한다는 집념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그는 4년 간 탐험되지 않은 지역으로 4,000마일을 여행했다. 짐베시 북방 탐험에서 말라리아에 걸린 그는 이후 거의 항상 질병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의 의지력은 많은 그의 동료들을 앗아간 질병이나 불편함에도 굴하지 않았다. 4년간의 아프리카 횡단을 마친 리빙스턴은 드디어 고향에 돌아가 영웅대접을 받았고 그가 받은 수많은 영예 가운데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받은 법학 박사학위도 들어있다. 그는 곧이어 「선교여행과 남아프리카 탐험」(1857)이란 책을 썼는데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첫 번째 임무는 탐험이었지만 복음 전파에 대한 사명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과 '매직 렌턴'(Magic Lantern), 환등기를 이용해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아프리카 탐험은 3회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여행 도중 엄청난 더위에 말라리아와 설사가 더해져, 리빙스턴의 몸은 더욱 쇠약해졌고 항문출혈 증세가 도진 것을 확인했다. 오래된 그의 고질병이었다. 그때부터 피를 흘리지 않고 보내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몸은 말이 아닐 정도로 엉망이었지만 선교의 불타는 의지로 극복해 나갔다. 리빙스턴은 노예제도, 인신매매를 중단시키라고 촉구했다. 1865년까지만 해도 잔지바르에서는 2만 명의 사람들이 시장에 팔려나갔었다. 리빙스턴의 보고를 통해 일반대중들의 분노가 커져갔고 마침내 행정당국은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873년 영국은 잔지바르의 술탄에게 군사적 압력을 넣어 사람을 사고파는 악덕 행위를 종식시켰다.

♣ 사랑과 기적을 사모하며 치료한 아프리카

아프리카 부족의 추장 아들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마침 그 부락을 방문하게 되어 고쳐 보려고 하였으나 가망이 없었다. 죽어 가는 추장의 아들을 붙들고 목숨을 건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추장이 기도하는 리빙스턴을 치면서 “당신이 기도할지라도 내 아들은 이미 죽었소!” 보니 아들은 숨이 끊기고 있었다. 그때 리빙스턴은 “주여, 제 믿음을 보옵소서. 이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주께서 소생케 하심을 믿습니다.” 하고 눈을 떴을 때, 그 아이가 몸을 틀더니 일어나 앉는 것이다. 이 일은 리빙스턴의 선교 역사에 대단한 동력이 되었다. 그 후 리빙스턴은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여기라” 는 구절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 그가 아프리카 전역을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은 병든 자요 어려운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자기는 가진 것 없어도 오직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여기라 하신 말씀만 믿고 무조건 붙들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럴 때에 놀라운 사건이 터졌고 하나님께 영광을 수북이 올려 드렸다.

♣ 모함의 함정을 넘어 존경의 대상으로

영국에 스탠리라는 기자가 1871년에 아프리카로 그를 찾아갔다. 그 당시 영국에는 리빙스턴에 대한 엇갈린 두 가지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그를 성자로 표현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를 사기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기자는 그 진상을 밝히려고 아프리카로 가서 밀착취재를 했다. 그는 4개월이 가깝도록 그를 추적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영국으로 돌아온 스탠리는 크리스천이 되어 있었다. 주변사람들이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리빙스턴은 정말 엄청난 오해를 받고 있었다. 영국에서 뿐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선교사들도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그를 배신했고 그는 엄청난 코너에 몰려 있었다. 그 사람을 지켜보면서 놀라웠던 사실 하나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어려운 고난을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참게 만들까? 이것은 단순한 인간적인 인내만은 아닐 것이며 신앙의 힘일 것이다." 그래서 리빙스턴의 하나님을 그의 하나님으로 믿고 싶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 성경의 약속이 그를 거인으로 만들었다.

말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전 예배시간에 리빙스턴은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다. 사실 그의 오른 팔은 사자의 공격으로 불구가 되어 있었다. 연설을 마치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섰다. "선생님으로 하여금 아프리카 생활을 잘 이겨내도록 한 비결이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리빙스턴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내게 있어 비결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십자가가 나를 끝까지 붙들어 주었을 뿐입니다.” 또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는 주님 말씀과 함께, 찬송가 447장 "오 신실하신 주"를 즐겨 부르며 큰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어느 날 영국에 있는 몇몇 친구들이 편지를 그에게 보냈다. 자네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우리가 자네를 도와줄 사람을 몇 명 그곳으로 보내려 하네. 그러니 그곳까지 가는 길을 상세히 적어 다음 편지에 보내 주면 좋겠네." 편지를 받은 리빙스턴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답장을 보내 정중하게 그 제의를 거절했다. "성의는 고마우나, 이곳까지 오는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사양하겠네. 이곳에서 진정 필요한 사람은 길이 없어도 스스로 찾아오겠다는 사람이거든." 선교사로서 그가 주로 한 일은 아프리카의 길을 연 것이다. 그 만든 지도를 따라, 많은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1873년 5월 1일 그는 기도하는 자세로 임종을 맞이했다. 아프리카인들은 이 위대한 인물을 아프리카에서 장사지낼 수 없다며 유해를 영국으로 보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크롬웰 밀튼 넬슨 웰링턴 등과 함께 묻혔다. 그러나 그 곳 사람들이 선교사의 심장만이라도 돌려 달라하여 그의 심장이 아프리카로 보내어졌다. 그 심장은 지금도 아프리카에 펄펄 살아 있어 아프리카와 세계에 펌프질하고 있다. 지체하지 말고 달려오라고 손짓하고 있을 것 같다.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리빙스턴 선교회 등 수많은 선교단체가 세워졌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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