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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1-08-08
작성자 관리자 (admin)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창 11:1-4, 행 2:4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1-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노아의 홍수 이후에 사람들은 한 언어를 사용해가며 번창해 나갔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이 땅에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의 수명은 단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직사광선과 적도 사막화 현상과 남극 극지방은 얼음으로 덮였습니다. 궁창 위의 물이 쏟아져 수면 아래 200m이하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대륙붕입니다.
그러나 역시 제일 심각한 것은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각종 나무의 실과가 얼마나 풍성하고 사람뿐만 아니라 큰 동물들도 다 먹고 남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창 1:29) 사람에게 복을 주신 것이 먹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먹을 것이 부족합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 하나님이 이 땅을 다시는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또한 이 땅의 현상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심음과 거둠" 그리고 추위, 더위, 여름, 겨울, 낮과 밤의 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보 보면 다시 이 땅을 멸하지 않으시지만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없었던 이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무엇보다 먹을 것이 절대 부족하여 육식현상 일어납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잠시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임시 방편으로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채식이 좋은 것입니다.
육식을 어쩔 수 없이 먹어야지 즐기시는 것은 안 좋습니다.
또한 사람의 온도가 36.5도인데 사람 보다 낮은 온도의 고기를 먹는 것이 좋습니다.
돼지가 38.5도이고 닭은 41.5도입니다.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껍질 벗기고 속살 먹어야 합니다. 많이 먹으면 안 좋습니다. 사람보다 온도가 낮은 것은 물고기인데 먼바다에서 잡은 것을 먹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분은 육식해야 힘이 있지 채소만 먹어서 힘이 있냐고 하시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상에 남아있는 동물 중에 제일 큰놈이 소, 코끼리입니다. 모두 채식만 먹지만 힘이 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이 무엇이냐 하면 비가 오기시작하면 사람이 겁을 먹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므롯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흩어지지 말자고 합니다.
이 땅에 언어가 짐작하기로는 1만 가지 이상의 언어로 혼잡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현재 지구상에 7천 가지의 언어가 남아 있는데, 두 주간에 하나씩 없어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제주도 방언은 다른데 없습니다. 하나도 못 알아듣습니다. 확실히 다릅니다. 이것도 잘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지구상에 나중에는 불행하게도 영어로 통일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복음서 한 종류라도 번역된 성경은 1,600가지 언어입니다.

노아의 아들들 곧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이 번창해 나갔습니다. 셈이 600년을 살았고 그 아들 아르박삿이 483년을 살았으니까 함과 야벳의 아들들도 비슷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수명이 단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금보다는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란 모두가 다 노아의 후손들인데 자연스럽게 말도 하나도 언어도 하나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방으로 살기 좋은 땅을 찾아 옮겨가다가 시날 평지를 만났습니다. 여기가 살기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여기 모여 살기로 하고 탑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탑을 쌓는 목적이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입니다. 사실 한층만 쌓아도 하늘에 닿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닿게 하겠다는 생각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요 자신들의 우수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에 본 사닥다리는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있었습니다(창 28:12).
하나님은 모세에게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보라고 하셨습니다(신 3:27). 이사야는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사 2:2).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의 '두 기둥 꼭대기에는'(왕상 7:22) 백합화 형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 마귀에게 시험 받으셨습니다(마 4:5, 눅 4:9). 꼭대기는 시험을 받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 이름을 내고" 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지금 모두가 누구의 자손입니까? 노아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이름을 내면 누구에게 내는 것입니까? 자기 자손들입니다. 잘 보세요. 탑을 쌓아봐야 누가 보겠습니까? 자신들의 후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후손이 볼 때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해 놓았구나!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는 않고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주겠다 그거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 이름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입니다.

셋째,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입니다. 사람이 모이면 힘을 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아의 후손들은 힘을 합하여 자신들의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흩어버리셨습니다. 다시는 물로 이 땅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홍수로 심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 이후에 분명히 이 사건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흩으시는 일은 간단했습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방언을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시면 다 가능합니다.
"야 망치 줘!" 하는데 "이것, 왓!" 그러는데 이 말이 틀리는 겁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바벨탑을 쌓을래야 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과 반대로 나타난 것이 성경이 나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원래 '바벨'(창 10:10, 창 11:9)이라는 말은 고대 아카드 어로 '하나님의 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의 '발랄'과 비슷해서 혼잡, 복잡이라는 의미가 붙었습니다.
여러분! 하늘의 문은 탑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을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룬 업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언어문제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방언'이라는 말 아닙니까. 첫 번째 '바벨' 사건은 언어가 달라져서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바벨'은 '하나님의 문'이 열렸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같은 언어로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의 증거는 '방언' 이었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증거가 무엇이냐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언이 오늘날 우리가 하는 방언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오늘날 하는 방언은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방언하고 자기도 못 알아듣습니다. 혹시 개구리가 오면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완전히 개구리 방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이런 것을 보고 성령을 받았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증거가 그렇게 어설프지 않습니다.
자 통역을 하면 어떻게 해요, 구글 번역에 들어가면 출발어 도착 어가 있습니다. 출발은 한글로 하고 도착어가 영어이면 한영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면 영한이 됩니다. 간단한 단어야 되지만 문장으로 하면 아직까지 잘 안됩니다.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이 문제가 상호 완전하게 소통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행 2:6)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모두가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 서울말도 잘 못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때 여자아이가 자꾸만 와서 예수님을 분명히 따라다는 것을 보았다고 자꾸 말하니까 베드로가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이 때 베드로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갈릴리 사투리로 말하게 되니까 그것이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정도로 무식합니다. 다른 나라말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방언을 했느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9-11) 대충 세어보면 15가지 정도의 언어가 됩니다. 이 방언으로 예수에 대한 복음을 정했는데 다 알아듣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번역시스템을 이 정도 갖추려면 통역하사 15명 정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들의 방언을 전달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며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11)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향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나로 듣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향하지 않는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은 못 알아듣게 만듭니다. 헤어지게 만듭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길은 흩으십니다.

정 선교사님이 만난 의사 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분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하려고 의사공부를 잠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다시 의사가 되기는 했는데 제일 한가한 의사가 어떤 것일까 고민하다가 이비인후과를 하셨답니다. 코가 제일 심각한 일이 발생하지 않고 응급환자가 거의 없답니다. 그래서 의사하면서 지금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앱 개발하고 있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언어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배워서 뭐합니까? 각 언어로, 기술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증거 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http://blog.kcm.kr/)는 RSS, 모바일을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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