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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1-04-21
작성자 관리자 (admin)
살인하지 말라
요일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이 무엇입니까? 생명이 살아난 것입니다. 사탄은 사망이요 하나님은 부활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하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약 1:18)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 15:23)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하여 새 생명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꿈은 내일의 문제요, 현실은 오늘의 문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 일을 절대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내일의 믿음으로만, 꿈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 지요? 그래서 어떤 분은 죽을 때 다 되어서 믿으면 되지? 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를 않습니다. 천국은 미래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옥 같은 인생을 사시는 분이 있고 천국 같은 인생을 사시는 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시기를 원합니까? 나를 죽이며 사는 인생이 아니라 나를 살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저주하며 사는 인생은 죽이며 살아가는 인생이요, 축복하며 사는 인생은 살리며 사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을 처음 파송 하시면서 당부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를 영접하는 집에 들어가거든 그 집을 위해 축복해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은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시 56:1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 6:33)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 6:51)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잠 9:6)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그에게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출 20:13, 신 5:17) 십계명 중에 6계명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고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살인에는 타살과 자살이 있습니다. 모두가 살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것은 살인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막 7:21)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데 이것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마음에서, 속에서 나옵니다. 무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했습니다. 속사람을 못 지키면 살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적 장애가 문제가 아닙니다. 속사람을 지키지 못하니까 자살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만 죽입니까 남도 죽입니다.
바울은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롬 7:22)고 하십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게는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엡 3:16)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에게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의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 속사람입니다. 속사람이 잘못되니까 다 잘못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겉 사람을 이롭게 하는 곳이 아니라 속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요한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고 했습니다. 살인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미움’입니다. 이 미움이 무서운 것입니다.
‘to;n ajdelfo;n aujtou' ajnqrwpoktovno"’ 원문에 보면 미움(misw'n:미세온)과 살인(ajnqrwpoktovno":안드로톡토노스) 사이에 두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형제(안드로폰:ajdelfo;n)과 다음에 나오는 단어에 유의해야 합니다. ‘자마다’(aujtou:아우톤)입니다. ‘자마다’(아우톤)는 ‘방향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바람(ajhvr:아엘)에서 나왔습니다.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요동치는 사람입니다.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구냐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입니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요동칩니다. 흔들립니다. 믿을 것이 못됩니다. 조금만 돈이 생기면 입이 찢어질 듯 기뻐하지만 주머니가 비면 남편을 쥐잡듯 잡습니다. 답배 한 대 피우면서 한강변 서성거리는 남자는 위험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흔들리는 삶을 살겠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약 1:6) 무엇이 사람을 요동치게 합니까? ‘의심’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전에 한번 말씀드렸던 내용입니다. 제가 공짜신문에서 보았던 내용입니다.
항해하는 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불빛 하나가 보였습니다. 이 배의 선장은 신호를 보냈습니다.
“비켜라 부딪히겠다” 저쪽 불빛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네가 비켜라” 선장은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신호를 보냈습니다. “빨리 비켜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저쪽에서 다시 답신이 왔습니다. “네가 비키라니깐” 선장이 열 받아서 외쳤습니다. “여긴 군함이다 안 비키면 알지?” 그러자 그쪽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네 맘대로 하라. 여긴 등대다” 등대가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배가 움직여야 합니다. 군함도 움직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다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자존심 걸었다가는 큰일납니다. 하나님은 등대이십니다. 그분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오직 주님이 우리를 붙드십니다. 우리는 어디엔가 누군가가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혼자 자신하십니까? 요동치지 않겠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들립니다.
첫 제자 베드로를 부르시고 예수님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 1:42)고 하셨습니다. ‘게바’는 수리아어로 바위입니다. 예수님은 흔들리는 베드로에게 흔들리지 말 것을 부탁하신 것입니다.

저희가 어렸을 때는 옆집에서 가끔 새벽에 없어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날이 밝기 전에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하도 살기가 힘들 때라 도망가는 며느리들이 많았습니다. 저희 집 뒤에 사는 분도 시집 온지 얼마 안 되는 색시가 아이 하나 낳았는데도 아침에 도망을 같습니다. 그래서 신랑은 마음을 못 잡고 늘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때마다 동네 어르신들은 “이 사람아 이제 마음을 잡아야지!” 그러셨습니다. 마음을 잡아야 사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 119:106)고 하였습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 62:7)

살인을 왜 하게 됩니까? 마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정리합니다. 우리는 살인을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 살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살인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 끊어야 합니다. 내가 죽어가고 있는 겁니다. 믿음이 없이는 죽습니다. 예수가 없으면 죽습니다. 부활이 없습니다. 나를 죽이는 것은 현재 내 육체를 죽였기 때문에, 자살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나를 죽도록, 내 영혼이 죽도록 방치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하나님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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