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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북미 등록일 200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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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캐나다) 원주민의 기원
북미 원주민의 조상은 원래 아시아의 몽골 인종계에 속하는 수렵민
1. 캐나다 원주민의 기원

북미 원주민의 기원은 구대륙으로부터의 이주설과 신대륙 독립발생성의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후자의 독립 발생설은 아르헨티나의 인류학자 아메기노가 주장한 것으로 이것은 인디언뿐만 아니라 전인류 발생의 고향을 북미로 보는 설 입니다. 처음에는 많은 지지를 얻었으나 그 근거가 되는 인골이 전부 최근의 인디언의 것으로 판명되어 결국 소멸하고 말았습니다. 이주설은 초기에는 노아의 자손이 건너왔다가 사라져 버린 대륙 아틀라티스에 살았던 주민의 자손이라는 등 여러 설이 난무하였으나, 몽골인종(Mongoloid)의 자손이 베링해협을 통해 건너왔다는 설이 현재의 정설로 되어있습니다.

북미 원주민의 조상은 원래 아시아의 몽골 인종계에 속하는 수렵민이었습니다. 이들의 도래 시기는 빙하시대 말, 제 4빙하기 해수면 후퇴에 의해 베링해협이 육지로 된(베링지아라고 부른다)시대, 즉 약2만에서 3만 5천년 전에 시베리아의 알라스카 사이를 잇는 육로를 통해 이주한 것으로 많은 고고학자들은 믿고 있습니다. 건너온 방법에 대해서는 베링(Bering)해협의 육교를 통해 선사 시대의 사람들이 건너왔다고 과학자들은 이론을 정립합니다. 그리고 나서 수 천년에 걸쳐 작은 무리로, 가족 단위로, 또는 부족 단위로 생존을 위해 육교를 건넜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알래스카에 들어온 사람들은 위스콘신 빙하와 록키산맥 얼음덩이에 길이 막혔으나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길이 열렸으므로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기후의 온난화, 한랭화의 주기는 제4빙하기 동안에 몇 번 있었으므로 그에 따라 빙하가 전진, 후퇴하여 베링해협은 육지가 드러나기도 하고 바다인 채로 있기도 하였습니다. 빙하기가 끝나는 동시에 아메리카 대륙은 최종적으로 유라시아 대륙과 떨어지게 되었으나 나마한 사람들은 남.북 대륙으로 흩어져 환경에 따라 다양한 사회와 문화를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추운 북쪽 지방에서 수렵과 어로 생활을 했던 에스키모와, 대륙 전역에 흩어져 각 종족마다 독특한 문화 양식을 갖고 살았던 원주민이야말로 캐나다 대륙에 최초로 자리 잡은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가 유럽에 알려진 것은 약 1,000년 전으로, 원주민들과 처음으로 접촉을 하게 된 유럽 사람들은 아이스랜드계 노르웨이인으로 해적 무리바이킹이 대서양의 뉴펀들랜드를 발견하면서부터 이고, 곧 이어 덴마크에서 캐나다 대륙에 상륙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캐나다가 본격적으로 식민지배를 받던 시기는 16세기, 프랑스 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는 국왕 프랑수와 2세의 명에 따라 가스페 반도를 거쳐 지금의 퀘벡시까지 진출하여 부근 일대를 프랑스의 영토로 선언했습니다. 이들 프랑스인들이 캐나다 대륙에서 모피를 획득하여 캐나다가 세계 모피 무역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자 이에 자극을 받은 영국인들이 허드슨만 해변을 따라 무역의 거점을 만들게 되었고. 불가피하게 그들 모국간의 경쟁 의식이 바다를 건너 확산되면서 식민지가 그들 이념 전쟁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쟁 과정에서 캐나다는 점차 유럽의 지배권으로 편입되고, 원주민과 에스키모는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2. 북미 원주민의 역사

북미 대륙을 커다란 역사의 흐름으로 파악하려면 1.발견주의 원칙 2.불가피한 운명3.북미 원주민 나라의 멸망 이라는 세 가지 용어로 말할 수 있다. 15세기 이후 팽창 정책을 펼쳐온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두 가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 두 가지 위기란 “동방 무역로의 폐쇄”와 “새로운 영토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말한다. 동방과의 무역로는 이슬람세력에 의해 막혀버리고 말았으며, 팽창하는 인구와 끊이지 않는 국경분쟁은 인척관계로 얽혀져 있던 구라파제국의 고민거리였다. 이전시대 까지만 해서도 서로의 갈등은 바티칸의 교황의 명령과 중재로 해결이 가능했으나, 교황이 힘을 잃어가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영토에 대한 요구가 당연히 일어 났다.이 문제에 대한 기상천외의 타협이 '발견주의 원칙'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새로운 발견된 영토의 소유권은 발견한 나라가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영토의 지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저항과 도덕적 부당성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불가피한 운명'을 해답으로 내어놓았다. 백인들이 유색인종들을 억압하고, 영토를 빼앗고, 인종말살의 현장에서 그들의 양심을 지탱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이며, 이것은 명백한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불가피한 운명'은 구라파제국주의 대외적인 표어, 또 '발견주의 원칙'은 그들의 내부적으로 적용된 경쟁원칙 이었으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북미대륙에 있어서 원주만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수많은 불행한 역사의 불씨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원주민 나라의 멸망'이었다.

1492년 칼럼부스가 대륙에 도착하던 당시에 4천만 명으로 추산되던 북미원주민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19세기말인 1900년도에는 그 숫자가 23만 명으로 급감 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서 일방적인 말살정책을 수행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여 그 숫자가 증가하여 현재에는 캐나다 원주민이 약 100만 명이며 미국 원주민은 약200만 명 정도로 통계되고 있다.

제 3세계 국가들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런 상처가 왜 북미 원주민들과는 다른가. 그것은 첫째로, 이들은 알라스카 원주민(에스키모, 알류트)과 다르다. 알라스카 원주민들은 19세기 말엽까지 러시아로부터 미국으로 편입되었다. 이들은 오히려 전보다 좋은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둘째로, 이들은 중남미 원주민과 구성면에서, 의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많다. 중남미 원주민은 인구수가 90%정도로 다수 계층에 속한다. 그러나 북미 원주민은 전체 인구가 1% 내외로서 소외된 계층이다. 또한 백인들의 북미와 중남미에 대한 인구정책 또한 다르다. 중남미에서는 차별대우는 받았지만, 멸종정책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미의 경우는 인디안 정책이 멸종 정책이었다. 처음 4천만 정도로 추산되던 원주민이 1900년도의 통계에서는 23만으로 기록되었다. 이는 북미 원주민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가혹한 처우를 받았다는 증거이다.

일방적으로 말살 당했으며 점차로 소외되어 갔던 것이다.


3. 캐나다 원주민의 현황

캐나다 전체인구는 2000년 기준으로 약 3천1백만 명 이며,그 중 원주민이 차지하는 인구는 70만 명에 달합니다.
물론 원주민 당국은 적어도 80-90만 많게는 120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전체 인구 중 원주민 인구의 비율은 약 2.25%입니다.언어집단(Band)으로 보면 609개의 종족이 있으며. 원주민 보호구역(Reserves)은 2,370 개가 있습니다.

원주민들의 정치는 근래에 퀘백주의 분리운동에 이어 오래 전부터 원주민 자치정부를 캐나다 연방정부에 건의를 해 놓고 추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원주민의 경제는 보후구역 내에서는 82%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실업자들입니다.이들은 연방 정부의 무상 보조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로는 알콜중독, 마약사범, 폭력범죄, 성폭행, 자살 등으로 45세라는 평균수명으로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의 짧은 생을 살고 있습니다.

원주민 선교를 하는 교단은 천주교와 개신교로 나눌 수 있고 개신교는 다시 연합교단, 장로교단, 침례교단, 메노나이트교단, 오순절교단, 기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원주민 사회의 선교활동은 백인 선교사들이 그 동안 해 왔으나 대부분 결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부터는 각 교단별로 원주민 선교정책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캐나다의 First Nations 는 원주민이며 백인들의 침략으로 자신들의 땅을 빼앗겼다고 인식할 뿐만 아니라 조상들을 무수히 학살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인들로부터 인종말살, 학살, 인간성파괴, 노예문제등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결과 백인들에게 받은 온갖 깊은 상처와 분노는 대대손손 구전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인을 무조건 배척하는 사상이 높으며 백인 선교사의 원주민 지역에서의 사역은 상상 하기도 어려운 일이며 기독교 복음 전파는 이런 현상 속에서 500년 동안 무기력한 것이 당연 했다고 봅니다.

출처 : 캐나다 조용완 선교사 ycho11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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