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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학자료 > 논문 등록일 2011-03-24
작성자 관리자 (admin)
구약의 문화에 대한 선교적 고찰
Missionary Inquiry into the Culture in the Old Testament
들어가는 말

복음이 문화의 장벽을 뛰어 넘어 전달되지 못한다면 그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주로 문화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하여 문화를 너무 과소평가 하거나 과대평가 함으로 이러한 현상은 일어나게 되는데 결국 문화적, 신학적, 선교적인 여러 가지 문제를 낳게 된다. 복음이 문화를 극복하여 타문화권에 강력하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경이 문화에 대해 어떻게 논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에 의해 공유된 규범이나 표준의 상태를 말하며 이는 구성원들이 좇아서 행동할 때에 수용할만하다고 여기는 범위 내에 일어나는 행동”을 말한다. 즉, 문화는 한 공동체의 삶의 규범이라는 속성을 지니는데 문화흡인(pull of culture)과 문화배출(press of culture)이란 두 가지 통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본 논문에서는 구약의 히브리인들이 팔레스타인 문화권을 형성할 때에 주변에 있던 근동지방의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문화는 받아들이고 어떤 문화는 내 보내는 것이 복음전파에 효과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구약에 나타난 문화를 선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려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다만 이스라엘의 문화적 특성을 잘 반영해주는 여러 요소가운데 비물질양식(nonmaterial items) 세 가지를 1장, 2장, 3장에 각각 소개하면서 이들이 갖는 선교적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1장에서는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선교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2장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주는 선교적 과제를 살펴보며, 3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왕권제도가 지니는 선교적 가치를 고찰하려고 한다.

I. 창조기사에 대한 선교적 평가

1. 창세기의 창조기사와 바벨론의 창조설화간의 유사성
창세기 1-2장의 창조기사는 고대 근동세계의 문학, 특히 바벨론의 창조설화와 상당부분 공통점이 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창세기 1장과 바벨론의 우주기원론(cosmogany)에서는 우주가 처음으로 출현할 때에 수면의 혼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로 바벨론의 창조 서사시에서 혼란의 여신으로 등장하는 티아맛(Tiamat)은 창1:2에서 테홈(tehom), 즉 ‘깊음’(the deep)으로 언급되어져 있다. 세 번째로 창1:6-8에서 하나님께서는 초기의 물을 하늘로 나뉘셨는데 바벨론의 창조신화에서는 마르둑(Marduk)이 티아맛을 살해하고 그 몸을 둘로 쪼개어서 상반신은 하늘을 하반신은 땅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네 번째로 여호와께서 처음에 “라합”이나 “리워야단”이라고 불리는 바다의 용들과 싸우는 모습은 마치 혼돈 세력과의 투쟁이 있은 후 그 승리의 결과로 만물을 창조하는 바벨론의 창조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와 흡사하다(욥9:13; 시74:13-14; 사27:1). 마지막으로 창세기와 에누마 엘리쉬는 창조의 기록을 여섯 부분으로 나뉘고 창조 후에 신이 안식을 취하고 있다.

2. 성경학자들의 견해
바벨론의 창조설화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약의 창조기사에 언급되어져 있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학자들 사이에 창조 서사시에 대한 견해가 분분한데 어떤 학자들은 창조기사가 이방의 문화를 어느 정도 수용해서 본뜨다 기록했다는 쪽이 있고, 다른 이들은 세속의 문화를 전혀 무시한 채 문화를 초월하여 하나님께서 우주창조의 말씀을 그의 백성들에게 전적으로 선포하셨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변 상황의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여 창조의 말씀을 주셨는지에 대해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궁켈(Hermann Gunkel)은 ‘종교-역사적 이론’을 주장하여 우주 창조의 세 가지 흐름을 제시하였다: 1) 원본 마르둑 신화; 2) 야훼 신화의 시적인 교정; 3)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 궁켈이 강조하는 것은 바벨론의 창조설화가 이스라엘로 전달되어져 신화적인 요소는 많게 다신교적인 특성은 약간 삭제되어 창세기 1장이 가능한 완벽하게 유대화되었다는 것이다. 궁켈과는 달리 쿠말(S. Kumar)은 “바벨론의 우주기원론은 창조에 관해 신적으로 영감된 기록이 아닌 너무나 이방적이다”면서 창조에 대해 논할 가치도 없다고 혹평을 하고 있다. 퀠러(Ludwig Kohler)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에 의한 우주의 창조는 사실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창조는 역사의 시작을 나타내려는 것이 주목적이다”며 창조는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동시에 역사의 한 부분임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톰슨(J. A. Thompson)은 “창조기사가 직접적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은 바벨론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3. 창조기사에 대한 주요이론 네 가지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종합해 보면 우주창조에 대해 네 가지 주요 이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제한론(theory of limitation)이다. 바벨론의 에누마 엘리쉬가 창조기사에 미친 영향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이론이다. 둘 다 어느 정도 반복성이 있다 할지라도 분명한 차이점이 있는데 특별히 바벨론의 창조설화는 의미적인 측면에서 창세기 1장의 기사와 거의 함께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창세기 1장이 성경 외부의 고대 세계 어느 부분과도 평행하지 않다는 것이어서 창세기만이 지니는 한 장르의 독특성이라 여겨진다. 실제적인 예를 들자면 바벨론의 에누마 엘리쉬의 목적은 바벨론 만신전의 주신을 찬양하는 다신론으로 가득차 있지만 창세기는 철저하게 유일신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로 제거론(theory of rejection)이다. 창조기사가 바벨론의 창조신화에 나타난 다신교적 내용을 모두 제거하였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신들의 계보도, 창조 이전에 태초의 신들 사이에 벌어졌던 싸움을 다루는 신화도, 인간들이 신화적인 드라마를 거듭 거쳐서 민족신의 최고성을 주장하게 된 제의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있지 않다. 바벨론 기사의 우상 숭배와 바벨론 신비학의 혼란스러운 내용은 모두 구약성경에서 제거되었다는 주장이다.
셋째로 수용론(theory of acceptance)이다. 이는 히브리 기자가 바벨론의 창조설화 중에서 어느 부분을 수용하여 기록하였다는 이론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극대화하기 위해 두 기사 모두는 어둠과 혼돈으로 시작한 것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은 창조기사가 바벨론의 창조 서사시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나 나중에 정화되었다고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또한 두 기사는 우주 전체가 하늘의 땅을 통치하며 계절을 결정 짖는 것을 다루고 있지만 구약성경은 우상 숭배적인 요소를 취급하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
마지막으로 변형론(theory of transformation)이다. 바벨론의 창조설화가 히브리인의 문화에 변형되어 새로운 창조기사로 기록되었다는 이론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창1:2의 테홈은 바벨론의 티아맛을 의미하지만 신화적인 배경은 창세기에서 사라졌다. 사실 깊은 바다라는 새로운 의미의 테홈은 오늘날 표상적인 특징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시편에서 찾아 볼 수 있다(시33:7; 104:6). 또한 티아맛의 몸이 둘로 나뉘어졌다는 신화적인 요소는 하나님께서 원시적의 혼돈을 하늘과 땅으로 나뉜 것으로 변형된 것이다.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바벨론의 창조 서사시에서도 구약의 창조기사에도 나타나 있다. 그런데 바벨론의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마르둑이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그의 피가 지구와 혼합되었다는 신비적인 요소가 명시되어 있지만 구약성경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독특하다.
구약성경의 창조기사와 바벨론의 창조설화간의 가장 큰 차이점을 라일(Ryle)이 잘 지적하고 있다: “두 기사는 신의 존재를 가정화하는 진술로 시작하고 있지만 이것이 논쟁거리나 의심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즉, 고대 근동지역의 우주기원론은 자연 숭배와 다신교라는 신화적인 요소를 강조하지만 히브리인의 창조기사는 잡다한 신들간의 투쟁이나 초생적인 세력간의 싸움도 없고 또한 어떤 한 종족이나 성읍을 혹은 다른 종족이나 성읍을 희생해 가면서 고양시키고자하는 신화적인 시도가 전혀 없다. 바벨론의 에누마 엘리쉬는 다신론 적이며 히브리인들의 창조기사는 유일신론 적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홀만(Holman) 성경사전은 덧붙여 말하기를 “경쟁 신들간의 갈등이 바벨론 창조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성경기사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좋게 질서 있게 조화 있게 창조하시는 분 으로 묘사하고있다. 이들간의 우주기원론(cosmogany)은 같지만 이들의 종교는 엄격하게 다르다”고 지적하였다. 아마도 창세기의 성경기자는 바벨론 자료들을 의식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러한 점에 대해서 비평적인 자세를 취한 것 같다.

4. 선교적 평가
히브리기자는 당시 고대 근동지방의 여러 창조설화를 직면하면서 어떤 입장을 취하였을까? 이것은 오늘날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내용이다. 성경이 문화에 대해 신앙적인 것은 절대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세상의 문화는 경멸하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던 전략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상황이다. 구약성경의 기자가 주변의 이방 문화를 염두에 두면서 창조기사를 쓸 때에 선교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사항을 지켰다고 평가 내릴 수 있다.
첫째로 신학적 상황화(theological contextualization)을 이룬 것이다. 고대 근동지방에 속했던 바벨론, 애굽,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러 가지 창조설화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주의 창조를 언급하고 있는 이들의 창조서사시의 공통점은 우상 숭배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감으로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선포되어질 때에 히브리인의 유일신 사상과는 대조되는 내용은 철저히 배격되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존귀함과 위엄에 반대되는 신비적이며 다신교적이며 우상 숭배적인 요소는 단호히 제거 된 것이다. 세속 문화에서 창조의 말씀이 전달되어 질 때 진리는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았다.
둘째로 문화적 상황화(cultural contextualizaton)을 실현하였다. 창세기의 우주기원론은 세상의 문화를 초월하여 일방적으로 선포되어졌을까? 물론 성령의 영감을 받아 창조의 말씀이 기록되었지만 당시 주변의 문화적 특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구약의 창조기사를 살펴보면서 히브리 기자가 세상의 문화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팔레스타인 문화와 이방인 문화 사이에 여러 부문에서 공통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볼 때에 그리스도의 진리가 파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방인의 문화가 히브리인들에게 쉽게 이해되며 받아들여지도록 문화적 상황화를 이루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문화를 아예 무시한 채 초월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지는 않았다. 이점이 이방인들로 하여금 히브리인의 문화를 이질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하였다.
상황화를 실시할 때에 주의 할 점은 혼합주의(syncretism)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하지만 혼합주의가 두려워 아예 상황화 전략으로 이방인을 접근하지 않는다면 복음은 여전히 그들에게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다만 상황화를 실시할 때에 히브리기자처럼 ‘신학은 강하게 문화는 부드럽게’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II. 일부다처제가 주는 선교적 과제

1. 문제제기
일부일처제(monogamy)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결혼이라면 왜 일부다처제(polygyny)가 고대 이스라엘에서 성행하였는지 그리고 왜 하나님은 이 제도를 금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히브리인의 수많은 문화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제도에 대해서는 엄히 금하셨는데 왜 일부다처제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는 것처럼 보일까?
일부다처제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에서 성행하였는데 이 제도는 고대 근동지방 중 문명이 발달한 메소포타미아에서 합법적으로 인증되었던 결혼형태이기도 하였다. 일부다처제는 남성의 권력이나 부를 상징하거나 남성의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하며 또한 부인들의 경제적 기여를 높이기에 고대 근동지방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도 널리 성행하였다.

2. 구약성경에서의 일부다처제
많은 학자들은 구약성경서의 복혼제를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들과 다윗과 같은 왕들과 엘가나같은 신실한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결혼에 관하여 하나님은 일부일처제를 사람을 위한 이상적인 것으로 권면하였지만 일부다처제는 인간의 부패와 타락을 만드는 것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였다. 성경 역사에서 라멕은 두 명의 아내인 아다와 씰라와 결혼한 최초의 일부다저체 주의자였다(창4:19). 에드워드(Dwight Edwards)는 주장하기를 “라멕의 죄는 분명의 그의 일부다처제였고 이 일부다처제는 아주 나쁜 징조로 세상에 소개되었다”고 하였다. 톰슨(J. A. Thompson) 역시 일부다처제는 라멕 때부터 수용되었는데 일부다처제는 혼란을 가증시키고 가끔 죄를 낳게 한다고 하였다.
아브라함의 일부다처제는 아내 사라의 불임으로 인한 아브라함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고 이는 아브라함과 사라간의 견실한 믿음의 미약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사라간의 이간질을 불려 일으켰고 나아가 아브라함과 사라간의 모욕, 질투, 그리고 분쟁을 유발시켰다(창16-21장).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일부다처제의 죄악상을 보여주는 것이고 일부다처제를 거절해야 것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일부다처제는 가족의 불행을 이끌기 때문이다.
야곱의 일부다처제는 좋지 않은 편이다. 이것은 비통한 삶과 불행을 만들었고 야곱의 가정에서 경쟁과 증오를 불러 일으켰다(창29:30-31). 야곱의 부인인 레아와 라헬은 같은 핏줄의 자매라할지라도 일부다처제는 이들 사이의 말다툼을 막지 못하였다. 야곱은 많은 시간을 레아보다는 라헬과 보내었고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는 것은 두 아내사이의 더 많은 질투와 싸움을 일으켰다. 야곱이 레아의 자식보다는 라헬의 자식을 더 좋아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질투와 시샘은 자녀에게도 계속해서 이어졌다(창37장). 레아의 자식들은 요셉을 무척이나 미워해서 그를 죽이려고 계획을 하였지만 결국 이들은 요셉을 종으로 팔아버렸다.
다윗과 솔로문의 일부다처제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좋은 예이다. 유대 왕국은 황폐하였는데 그 이유는 다윗과 솔로몬의 일부다처제가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아들들은 상속권 문제로 서로를 죽였다(삼하14장). 솔로몬의 마음은 그의 아내들로 인하여 방향을 잃어버려 야훼 하나님을 믿는 대신 아내들이 섬기던 세상 신을 따랐다(대상11:1-4). 그 결과 왕국은 마침내 두 동강 나버렸다. 구약에서 일부다처제가 남겨준 교훈이다.

3. 일부다처제가 사회적으로 허용된 배경
구약 시대 때 히브리인들 사이에 일부다처제가 이방 국가처럼 성행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사유가 있는데 첫째로 아내의 임신이 불가능할 때 이루어졌다. 아내가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것은 가족의 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불임은 이혼이나 자살을 불려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창18:12; 30:1; 출23:26; 신7:14; 삼상1:10). 더욱이 아내의 불임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는 것으로 여겨졌기에(창30:23) 자식을 생산치 못하는 아내는 남편으로 하여금 두 번째 아내를 취하여 자식을 낳도록 하여 자신의 불행을 막도록 하였다. 바로 엘가나의 부인이었던 한나는 남편 엘가나에게 두 번째 부인 브닌나를 맞이하도록 강요하였고(삼상1-2장),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역시 자신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었다(창16:11).
둘째로 부와 능력을 지닌 남성의 상징으로 일부다처제가 사용되었다. 한 남성의 능력은 그가 얼마만큼의 아내를 소유하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구약의 왕권 시대에 권력을 지니고 있던 왕이나, 영적 지도자들이나, 중재자들은 대게 일부다처주의자였는데 가족이 크면 클수록 신분이 높은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다처제는 한 지역 사회에서의 신분을 측정하는 도구이기도 하였다. 므비티(John Mbiti)는 일부다처제를 강조하게 되는 사회적 문화적 요소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사실 여러 명의 아내를 둔 사람들은 일부다처제가 일부일처제보다 결혼 신분을 상승시켜 주는 것으로 믿고 있는데 이것이 결혼의 주된 목적이요 목표를 이룬다.”
셋째로 종으로 팔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부다처제가 성행하였다. 부모가 딸을 종으로 팔게 되면 그 여자는 이스라엘의 법에 의하여 더 이상 종의 신분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종으로 팔린 그 여자는 법적으로 인정받는 첩이 되던가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부인으로 상승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은 그 여자에게 음식과 의복을 챙겨주어야 하며 잠자리를 함께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출21:7-11). 만약 남자가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라도 소홀하게 되면 그 여자를 자유롭게 내어 주어야만 한다. 그 예로 하갈의 자만심은 사라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창16:4).
종으로 팔린 여자는 대체로 전쟁 중에 발생하였는데 이 때 한 남자가 아리따운 여자와 즉시 결혼을 하고 싶더라고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우선 결정권은 여자에게 있기 때문에 그 여자가 남자와 결혼하기 전에 죽은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을 해야 비로소 그 여자를 자기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 다음 그 여자는 종으로 팔린 여자의 상태에서 자신의 신분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신21:10-15).

4. 구약성경이 일부다처제를 허용한 이유
구약성경의 일부다처제가 여성을 보호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복수를 불러일으키고, 가족관계를 악화시키며, 가족 간의 불행을 만들고, 질투를 일으켜 가정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이것을 금하도록 경고가 주어지기도 하였다(신17:17; 삿8:29-9:57; 삼상1:6; 삼하11-13; 왕상11:1-8). 이처럼 구약에 기록된 일부다처제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 결말이 가족의 비애와 슬픔으로 끝나기에 일부다처제가 슬픔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악한 제도이고 일부일처제가 이상적인 결혼형태라면 왜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일부다처제로 인하여 발생하는 죄악과 부패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일부일처제를 명하셨지만 인간이 이를 거역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부다처제를 만든 결과라 할 수 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일부일처제가 가장 바람직한 결혼제도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셨다. 셋째로 모세의 율법은 사회의 부조리와 악을 제거하기보다는 완화시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5. 선교적 과제
고대 히브리인들의 문화 속에 일부다처제는 자신들의 문화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었다. 일부다처제는 그들의 문화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근동지방에서도 널리 성행한 문화였다. 이방인의 지역이든 야훼를 믿는 땅이던 어디든지 일부다처제는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오늘날 일부다처제가 가장 널리 행해지는 결혼 형태인 것과도 흡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부일처제를 제쳐 두고 일부다처제가 히브리인들 사이에 왕성하도록 묵인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하는 깊은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심중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부다처제를 실시하면서 자기들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하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려는 선교적 의미가 있었다.
즉, 인간이 일부다처제라는 결혼제도를 통해 자기의 불완전함을 깨닫게 하시려는 선교적 전략이 깔려 있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일부다처제의 종말은 가족의 파괴와 피폐뿐이었다. 아브라함, 야곱, 삼손 같은 인물은 일부다처제 때문에 견디기 힘든 여러 가지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들의 높은 권위와 존경심도 일부다처제로 인하여 큰 상처를 입게 되었고 신앙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뛰어난 지도력이 있다 할 지라도 일부다처제라는 문화 앞에서 이들은 인간의 부족함을 톡톡히 인식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일부다처제가 실시되고 있는 이슬람문화권의 인구수는 무려 12억을 넘어서고 있다. 이들도 끊임없이 자신의 결함을 일부다처제를 통해 발견하고 있다. 이들이 인간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길 중의 하나는 일부다처제의 병폐를 깨닫는데서 비롯된다.
사실 인간의 타락과 부패는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다. 실제적으로 유아를 희생시킨다든가 성전간음에 대해선 단호하게 배격하셨다. 비록 이런 문화들이 이스라엘의 주변국가에서 성행한다 할 지라도 히브리인의 계약에는 허용치 않으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시대에 일부다처제를 묵인하셨던 것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일이요 더욱이 이 제도를 통해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게 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직도 일부다처제로 씨름을 하고 있는 모슬렘은 지구촌 구석구석에 퍼져있기에 이들에게 일부일처제의 당위성으로 자신들의 연약함을 깨닫게 해야 할 선교적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III. 왕권제도가 지니는 선교적 가치

1. 생성배경
이스라엘의 왕권제도는 처음부터 자생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안팎으로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정치적 문제를 접하게 되면서 주변 국가들의 제도를 도입해야만 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은 국가의 안정과 단합을 도모하는데 도움을 주는 힘있는 왕권제도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고 이것은 예측할 수 없는 당시의 상황에 대처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크포르트(Henri Frankfort)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왕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강력한 지도력을 실시하고 있던 메소포타미아의 왕권사상을 점차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왕을 지칭하는 히브리어인 melek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정착하기 오래 전 셈족사람들에게서 사용되던 용어였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melek은 가나안, 암몬, 에돔, 모압 같이 주변국가나 이방인의 군주를 언급하는데 자주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왕권사상은 절대적으로 이방의 것이었다. 그런데 “통치자”나 “권면자”의 직무를 감당하던 고대 근동지역의 왕권제도는 그 기원을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가나안의 소국가나 주변 국가에서 사용되다가 후에 이집트, 바벨론, 앗시리아, 모압 같은 큰 국가까지 번져나갔다.
이방 땅에서 출발한 왕권 사상이 이스라엘의 필요에 의해 소개되면서 히브리인들 사이에는 친왕권제도와 반왕권제도를 지지하는 두 세력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주로 초기에는 반왕권제도의 입장을 취하는 쪽이 많았다가 나중에는 친왕권제도로 선회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사울은 외부의 반대를 잠재우고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된 것이다.

2. 왕권제도의 수용과 발달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의 왕권사상을 수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독특하게 발전시켜 나갔는데 이스라엘 왕들의 직무는 주로 세 가지였다. 첫째로 이스라엘의 왕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고 보호해야하는 전쟁 지도자 혹은 군사적 지도로서의 기능을 지녔다(삼상31:2). 둘째로 이스라엘의 왕권은 ‘신성한’(sacral kingship)의무와 기능을 지녔다(삼상24:10; 26:9).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자였지만 신으로서 성육신 하거나 신적인 능력이 있는 왕이 아니라 이 땅을 통치하기 위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신 그 자체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역할과 기능을 대신한 자였다. 셋째로 히브리인 왕은 고대 근동지방의 국가들처럼 이스라엘의 복지나 정의를 이룩하였데 우선을 두었다. 왕이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올바르게 국가를 통치하게 되면 사회의 질서가 세워지고 사회복지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의 복지와 안녕 및 공의로운 통치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삼하23:3-4).

3. 이스라엘과 고대 근동지역간의 차이점
히브리인들과 고대 근동 지역의 이방인들이 왕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달랐는데 첫째로 이스라엘의 왕은 주변에 있던 근동지역의 왕들에 비해 ‘신적’(divine kingship)인 개념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왕권을 종교적으로 우주적으로 이해하였기에 이집트의 왕권은 신의 기능을 지녔고,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여러 신들 가운데 택된 자들로 여겼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왕권은 주변 이웃 나라들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 왕을 요구함으로 생겨났기에 왕의 신적인 개념이 적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왕권사상은 종교와 함께 동시에 발달하지 않았다. 사울과 다윗 때까지 이스라엘의 신앙은 자신들의 원래 신앙에 따라 발달하였기 때문이었다. 셋째로 군주제도는 이스라엘 신앙의 기초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오직 야훼를 믿는 신앙만이 이스라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기에 군주제도를 초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4. 선교적 가치
사사들의 도덕성의 결핍, 야훼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사사들의 영적인 무능력, 종교적 관습의 황폐화, 주변 국가들의 집요한 침략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하던 전혀 새로운 제도인 왕권제도를 고대근동지역으로부터 수용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압박, 사회적 분란, 영적 고갈은 역사의 필연적 변화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왕권사상을 이스라엘에 성립시키는 과정에서 사회정의의 틀을 깨거나 인간의 존엄성과 복지를 방해하는 요소는 과감히 배척하였다. 이스라엘의 여러 제왕들 가운데 왕권사상을 남용하여 실패한 이들도 있지만 다윗과 솔로몬은 이방의 문화로부터 받아들인 왕권제도를 능력 있게 잘 감당함으로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열방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함을 전달할 수 있었다. 세속의 문화를 무조건 거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가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잘 수용하고 지혜롭게 적용함으로서 오히려 이방인들에게는 선교적 가치가 있었다.

나가는 말

성령께서 구약의 문화적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며 접근하셨는지 그리고 이에 따른 선교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메시지가 고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위해 주변의 문화적 상황을 무시하지 않고 규모 있게 활용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히브리인들과 상관없는 이방인의 문화라 할지라도 깔보거나 거절하지 않고 그 문화 속에서 역사 하셨다. 그렇지 않다면 구약의 성경기자가 세상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내용을 어떻게 꼼꼼히 기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이스라엘의 문화를 대변하는 창조기사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상황화(contextualization)의 소중성을 언급하였다. 구약성경의 기자가 당시 고대국가 주변의 정황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영감된 말씀을 기록할 때에 ‘신학적으로는’ 모순이 없고 ‘문화적으로는’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록하였다. 이러한 선교적 전략은 이방인들에게 거부감을 불려 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히브리인들 사이에 성행했던 일부다체다처제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함을 이 같은 결혼제도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선교적 의미가 있었다. 고대인들처럼 아직도 일부다처제로 신음하는 이슬람권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선교적 과제이다. 또한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로부터 받아들였던 왕권제도는 하나님의 의와 백성들의 안녕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이 제도를 받아들여 선하게 잘 사용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더 높여지는 선교적 가치가 있었다. 히브리인의 문화는 영적으로 무지하고 사회적으로 혼탁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세속 문화의 장벽을 뛰어 넘어 이방인들의 삶과 정신 속에 깊숙이 스며들 수 있었다. 문화를 바로 이해하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에 선교의 효과는 극대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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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y Inquiry into the Culture in the Old Testament

Ahn, Heui-Yeol
Assistant Professor of Missions
Korea Baptist Theological University/Seminary
Daejeon, Korea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ee how and to what extent God used the cultural environment of the Old Testament writers as they contributed to the inspired record. Out of lots of cultures in the Old Testament, only Genesis account of creation, polygyny, and kingship found in Jewish society will be deeply discussed in this paper. Nevertheless, these cultures were already prevalent among ancient pagan peoples. This article is going to deal with how to missiologically understand the similarities and parallels between two different cultures.
In fact, the significance of culture in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has been extensively recognized. Provided that cultural values are disregarded, the expansion of the kingdom of God can be severely withered. Even though culture is not a core subject of the Old Testament, biblical studies have clarified that human cultures have played an important part in biblical history. People can learn from the Scriptures neither to overemphasize nor underestimate the importance of culture. The fact that culture holds a meaningful place in the Bible implies the worth as well as the restriction of culture in the duty of global mission.
Culture is a plan, map, or blueprint for living that is always in the process of formation. It is a code for action, for survival, and for success in life. Culture is fundamentally a social phenomenon and can be conceived in the individual through encounters with other members of society. Furthermore, culture, with all its values and limitations, has played an outstanding role in divine revelation in human history. God's inspiration did not come in cultural vacuum. Divine disclosure did not despise culture but accepted it to the extent that it could be employed as the vehicle of divine revelation.
In order to discover the influence of culture in the Old Testament on mission, the first chapter examines the Genesis account of creation paralleling ancient Near Eastern creation cosmogonies and appraise the creation account in Genesis 1 from a missiological viewpoint. The second chapter researches polygyny from a missiological perspective. Assuming that monogamy is God's concept, this article discusses why polygyny was practiced in ancient Israel and why the Old Testament does not blame it. The third chapter studies the idea of kingship in Israel and tries to reveal missionary meaning this social institutions indicate. Because the Bible implies that the monarchy in Israel was borrowed from Israel's neighbors, this paper debates to what extent kingship in Israel possesses missionary values to evangelize the unchurched pagans.
This writer makes sure that God did indeed speak in the context and employed factors of the content of the surrounding cultures in order to deliver his message to his ancient people, and to us. Also, this writer wants to say that God worked some degree in other peoples and cultures apart from his work in the Jewish community. It is clear enough that God did not reject the culture of pagans unqualifiedly and hoped to apply their culture to the mission of the church effectively to extend the kingdom of God. The fruits of mission are preferentially dependent on understanding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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