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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아프리카 등록일 2011-03-21
작성자 관리자 (admin)
탄자니아 선교행전 홍철 선교사


* 본 내용은 2011년 3월 16일 홍철 선교사님이 극동방송 '하나 되게 하소서 (목) 선교행전'(진행: 이용남 선교사, 제작: 강수미 PD) 출연하여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실제 인터뷰된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채플 시간에 말씀을 전하는 홍철 선교사

1. 선교사님 소개.
탄자냐에서 사역하신지 얼마나 되셨고,,
1994년 9월10일 탄자니아에 도착하여 현재까지 사역하고 있습니다.
소속교단이나 단체는 어디이며, 어디서 파송되셨습니까?
교단 선교부인 GMS에서 파송되었습니다. 제가 탄자니아에서 소속된 단체는 GMS의 탄자니아 지부인데 현지 이름은 Korea Church Mission입니다.

2. 탄자냐는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 비해서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나라라고 들었다. 탄자냐는 어떤 곳이고, 복음화 정도는 어느정도인가?
탄자니아는 동부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습니다. 독일의 식민지로 있다가 1차 대전후 영국의 신탁통치령으로 있었습니다. 1961년 12월 9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은 본토 탕가니카와 1963년 12월 19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섬나라 잔지바가 1964년 4월26일 연방을 이루어 고대의 이름 아자니아와 어울리는 이름 탄자니아 연방공화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120여 부족으로 이루어져 많은 방언이 있기에 초대 대통령 니에레레는 아랍인들과의 교역으로 생겨난 스와힐리어를 국어로 언어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중학교 입학자들을 학교에 배정할때 출생지에서 먼곳으로 학교배정을 하여 강제적으로 타종족 지역에 가서 섞여 살며 화합을 이루게 하는 정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우자마라는 아프리카 가족주의 사회주의 정책을 기조로 하여 경제적으로는 실패하였지만 사회적 안정과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습니다. 혁명당이라는 1당 독재주의를 하면서 대선 후보를 소수 종족출신으로 하여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하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종교적 안정을 위해 대선 후보는 한번은 기독교후보, 다음은 이슬람후보로 하는 정책을 사용하였습니다. 1995년 10월 다당제로 바뀌어 대선을 하였지만 혁명당은 현재까지 여당의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초대 대통령 니에레레는 카톨릭, 2,3대 대통령이었든 알리 하산 므위니는 이슬람, 4,5대 대통령이었던 벤자민 음파카는 카톨릭, 그리고 6대와 현직 대통령 자카야 음리쇼 키케테는 이슬람입니다.
탄자니아는 현재까지 종족분쟁, 종교분쟁이 없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종교 분포에 대한 통계는 미국 중앙정보부 world factbook에 따르면 본토에는 기독교 30%, 이슬람 35%, 전통종교 35%이고 잔지바에는 99%이상이 이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조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tz.html
이와 크게 다른 통계도 있는데 세계기도정보에 따르면 회교 35%, 기독교 51%, 전통종교 13.2%, 기타 0.8%입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19%로 나와 있습니다.
http://www.krim.org/ow/af/tanzania.htm

3. 탄자냐 선교사로 가시게된 계기는 무엇인가?
제 인생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책 2권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읽은 책이 “복음 밀수꾼”이었습니다. 중3때 김집사님댁 서가에서 발견했습니다. 오픈 도어즈라는 선교회를 창시한 앤드류형제에 대한 책이었죠. 밀수꾼이라는 단어에 흥미를 느껴 읽기 시작했고 빌려와 단번에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죠.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공산권이나 회교권의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이 책이 저를 선교사가 되게 한 책이죠.
두 번째 책은 엑스플로 74때 나온 코랄 릿지 장로교회의 제임스 목사님이 쓴 현대전도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전도하면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준 책입니다. 요즘은 전도폭발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되고 있지요.
공산권 선교는 공산권이 무너짐으로 회교권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관심을 가질 곳은 중동과 아프리카였습니다. 저는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는 50여개국이나 있는데 어디로 가야하나 선교지를 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서부 아프리카의 플라니족을 사례연구하기도 하였고, 또 제가 바닷가에서 태어나 섬사역을 하였으니 마다가스카르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러는 중 제 친구 이진섭 목사가 1991년 탄자니아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와 팀사역을 하기 위해 탄자니아로 자연스럽게 선교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4. 현재 탄자냐에 있는 칼빈 신학교 교장으로 섬기고 계신다고..
신학교는 언제 처음 지어졌고,,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칼빈 신학교 소개를 부탁드린다..
1993년 8월8일 탄자니아 선교사로 파송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언어를 익히로 떠났습니다. 1년이 다 되어갈 즘 먼저 탄자니아에 간 제친구 이진섭 목사가 신학교 개교를 준비하고 있었고 저는 탄자니아의 거주허가증을 받아 탄자니아로 갈 비행기표를 사기 위해 은행의 잔고를 확인하니 비행기 값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자니아에 편지를 썼지요. 비행기 표 값이 없어서 갈수가 없게 되었다. 영국에서 학생비자를 연장해야 하겠다. 이소식을 들은 이진섭목사는 한국 본부에 연락을 해서 본부가 저의 비행기 표 값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1994년 9월9일 영국을 출발 9월10일 탄자니아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커리큘럼 작성, 학생모집 광고, 시험문제 작성, 그리고 채점과 면접, 바쁘게 이 모든 일을 마치고 11월 1일 개교를 하였습니다. 이진섭목사는 교장, 이영권 목사는 교학처장, 저는 총무처장의 일을 맡았죠. 이듬해 탄자니아 선교지부를 결성하였고 칼빈신학교 운영이사회를 조직하였는데 제가 운영이사장을 맡았습니다. 그 이후로 이제까지 쭉 칼빈신학교일에 관계해 왔습니다. 2008년 7월에 칼빈신학교 교장에 선임되어 종합관 건축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종합관 건축은 현재 3층 바닥콘크리트와 기둥 콘크리트를 친 상태입니다.
칼빈신학교는 선교사들이 이사가 되어 매월 신학교 분담금을 내어 운영하는데 교장은 월 분담금이 500달러입니다. 교장이 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행정적으로 많은 부담이 있지요. 거기에다 종합관 건축도 많은 짐이 되었지요. 그래서2010년 7월 교장의 직을 사임하고 안식년을 준비하였지요.

5. 지금도 확장공사중이라고? 후원도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신학교 건축에 드는 공사비용이나 학교운영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는가?
칼빈신학교 종합관은 가로 28m 세로 18m의 4층건물로 계단이 외부에 있는 형태입니다. 층당 약126평으로 평당 건축비로 100만원, 층당 건축비가 1억2천6백만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2억5천이상 약 3억의 건축비 모금이 필요한 형편입니다. 종합관 건축에 대한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카페 탄자니아 칼빈신학교 http://cafe.daum.net/calvincollege를 방문해 주십시오.

6. 나중에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신학교 운영을 현지 사역자에게 물려줄 계획이시라고 들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지 사역자들이 운영하고 감당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말해달라.
- 지도자 양성을 통한 선교
CTC2020 프로젝트 이것은 탄자니아 칼빈신학교를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현지교단에 넘긴다는 우리의 야심찬 프로젝트이다. 이것은 선교사 위주의 선교가 아닌 선교사와 현지인(교단)과의 협력관계(partnership) 선교모델을 이루기 위해서다. 우리는 탄자니아 장로교회 (Presbyterian Church in Tanzania)를 세웠고 정부에 등록이 되었다. 이 교단은 자립적 교단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신학교육의 자립과 신학적 자립은 교단 자립에 있어서 핵심적 문제이다. 이 일은 어느날 갑자기 성취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올 9월부터 칼빈신학교 성경과의 운영을 교단에서 맡게 된다. 탄자니아 장로교회는 성경과 교장으로 페스토 이코바 목사님을 이미 선정하였다. 탄자니아 장로교회는 성경과를 운영하면서 신학교 운영의 훈련을 받게 된다.
신학교 운영의 자립뿐만 아니라 신학교육의 자립도 중요하기에 2020년까지 현지인 교수교원 5인을 육성할려고 한다. 현재 1회 졸업생인 앤드류 목사님이 한국의 Acts에와서 공부를 마치고 탄자니아로 돌아왔다. 또 엘리샤 목사님과 제임스 목사님이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교육비가 필요하다.

7. 칼빈 신학교를 통해 배출된 현지 사역자들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얘기해달라..
현재까지 13분의 목사님을 배출했다. 그 중 앞서 얘기한 앤드류 목사님, 엘리샤 목사님, 그리고 제임스 목사님들은 모두 개척목회에 성공한 분들이다. 많은 경우 선교사에게서 자라난 분들은 선교사의 보호 밑에서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개척을 두려워하며, 안정적이라 생각되는 선교사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세분의 목사님들은 선교사의 보호에서 벗어나 시골의 박토로 가서 교회를 개척하여 건축도 하고 성장을 이루어 가고 있다. 또한 재학 시절에 학업의 성취도도 뛰어난 분들이었다. 지성과 영성에서, 실천에서도 자생력이 있는 분들이다. 생명의 씨알들이다. 이분들이 신학교에서 가르쳐야 후배들이 자생력있는 목회자로 자라날 수 있다. 자생력 있는 목회자들이 자생력 있는 교단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칼빈신학교 종합관 건축현장


8. 현재 교회를 개척하는 일도 하신다고 들었다. 어떤 교회들을 개척하셨는지? 또 교회개척에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점인지?
맨 처음 모로고로라는 지역에서 마사이 교회를 이스라엘이라는 신학생과 함께1995년 개척하였다. 교회 이름은 루갈라 장로교회인데 현지식으로 작은 교회당을 건축했다.
2번째, 수도인 달에살람의 빈민촌에서 1998년 카웨 장로교회를 시작하였다. 집 거실에서 시작한 교회로 교회당을 건축할 땅을 마련하지 못해 나무 아래서 모이는 교회였다.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현재의 장소 테게타에 땅을 구입하고 건축하는 동안 나자레노 집사가 교회를 인도해 왔지만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다.
3 번째, 테게타 장로교회는 2000년 약 800평의 땅을 그 당시 한화 250만원으로 구입해 대구노회 여전도회의 후원으로 건축한 교회당을 갖고 있다. 현재 칼빈신학교를 졸업한 스티븐 전도사님이 돌보고 있다.
작년에 바가묘요의 징가에 약 2천평의 땅을 한화 약 3백만원에 구입을 하였다. 우물을 팠고 물탱크 공사를 하고 있다. 우물에는 현재 수동펌프가 설치되어 있는데 전기 수중펌프로 교체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전기를 확보하기 위해 풍력발전기가 필요하다. 이슬람 지역이어서 현지인과 접촉점을 만들기 위한 유치원 건물의 건축이 필요한데 현재 조셉 자코보 목사님이 사역하고 있다.

- 부지문제의 어려움등
교회개척의 어려움은 자생력있는 사역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첫번째이다.
두 번째는 교회 부지의 확보 문제이다. 교회 부지 비용의 확보가 문제이고 또 안전한 땅을 구입하는 것이 어렵다. 탄자니아의 땅은 대부분이 측량되어 있지 않다. 그럼으로 등기가 없다. 땅 사기를 당할 위험이 많다. 사기 당하지 않을 땅을 구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 많은 의심과 발품과 기도가 필요하며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 결단이 필요하다.
현지인들도 사기에 걸려드는데 외국인인 선교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9. 바가모요라는 지역에 교회를 건축하시고 계신걸로 들었다. 바가모요라는 지역은 어떤 곳이고 이곳의 교회개척이 왜 중요한가?
바가모요는 절망이라는 뜻이다. 노예무역 시절 내륙에서 끌려온 노예들은 수출항인 이곳에 오면 더 이상 희망이 없기에 절망함으로 이 지역의 이름이 바가모요가 되었다. 독일 식민지 시절 바가모요는 탕가니카의 수도였다. 독일 식민정부와 함께 바가모요의 이슬람은 내륙으로 진출했다. 또 많은 노예들의 한이 서린곳이기에 술법사들이 신을 받으로 이곳으로 모여든다.
탄자니아의 최초의 카톨릭 미션도 이곳으로 들어왔고 리빙스톤도 이곳으로 들어온 적이 있으며 그의 시신이 이곳에서 영국으로 운반되어졌다.

- 이슬람이 지배적인 지역.
절망의 땅에 소망의 씨를 심는 것이 필요하다.
이슬람들은 내심 변화를 원하고 있다.
유치원을 시작하면 자녀들을 유치원에 보낼것이다.
장수를 사로잡으려면 말을 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린이들이 유치원에 온다면 복음의 접촉점은 마련된 것이다.
10. 다른 아프리카 지역과 마찬가지로 탄자냐에도 이미 이슬람이 깊숙이 들어와있다고 들었다. 탄자냐에 이렇게 이슬람이 자리잡게 된 배경은 무엇이고, 이슬람의 확장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이 시작되기 전부터 계절풍을 타고 아랍상인들이 아프리카 동부 해안을 끼고 남하를 하였다. 그들은 탕가니카와 잔지바에 교역지를 만들었다. 그 후 이슬람이 생기자 말자 이 교역지에 이슬람이 들어왔으리라는 것은 명확한 일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동부해안은 이슬람 지역이 되었다. 1880년대 독일이 탕가니카를 식민지하면서 내륙으로 진출할때 안내인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해안의 이슬람들은 독일 식민정부와 함께 내륙으로 진출했다. 이 일로 해안의 이슬람은 탕가니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지난 세기 말과 금세기 초의 이슬람 확장의 추진력은 중동의 오일달러였다. 중동은 탄자니아의 곳곳에 간선도로를 따라 모스크를 짓도록 오일달러를 쏟아 부었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하향곡선으로 인한 유류가의 하락으로 오일달러의 유입이 적어져 탄자니아 정부와 국민은 중동에 대한 친밀감이 줄었다. 또 지금 중동에서 일어나는 자유화의 물결도 탄자니아 이슬람의 추진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중동 오일달러 유입의 부족으로 현 이슬람 출신 키케테 대통령은 국정을 꾸려가기 어려워 국민들로부터의 지지가 최악으로 되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
교회가 깨어야 하고, 목회자가 바로서야 한다.
바른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1930-60의 부흥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 일에 탄자니아 칼빈신학교가 쓰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11. 탄자냐에 오래 계셨다. 아프리카 선교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고, 또 아프리카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아프리카는 서로 하나라는 팬아프리칸이즘이 과거에 있었다. 또 동부 아프리카는 아랍과 형제라는 생각이 있다. 왜냐하면 기원전부터 아랍사람들은 교역을 하러 계절풍과 함께와서 바람이 바뀌는 날까지 일부다처제의 관습으로 현지처를 두고 또 자식을 두고 함께 살다가 아라비아 반도로 돌아갔다가 또 계절풍과 함께 돌아오는 삶을 살아 실제적으로 피가 섞여 형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아랍인이 저지른 노예무역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고 유럽인이 저지른 노예무역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아프리카 선교의 중요성은 중동 이슬람의 사하라 이남의 진출을 저지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적 영성으로 최후의 선교주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차세대 선교세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중요성이 있다.
아프리카 선교의 중요성은 말씀교육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은 구비문학적 사람들이라 책과 친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성경책을 가까이 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지식이 부족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양식으로 삼는 훈련이 되어있지 못합니다.
아프리카 영성과 말씀훈련이 겸전한다면 차세대 선교동력이 될 것입니다.

12. 현지에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지, 또 선교지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다면 어떤 일인지?
신학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자질이 훌륭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만큼 보람이 큰 일은 없습니다. 신학교 재학시절에 우수한 학생이 졸업후 사역에서도 성과를 내는 것을 보는 것은 더 큰 기쁨이요 감사가 넘쳐나게 되지요.
엘리샤 음케우 목사님은 제가 신학교에서 가르친 학생중 가장 뛰어난 학생입니다. 키시주라는 해안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햇는데 성공적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키시주는 현지인 목사님들이 세운 선교학교에서 전도자들을 파견하여 교회를 개척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불모지에 들어가 야학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한 결과 이슬람 지도자인 이맘과도 좋은 관계를 갖게되고 땅도 마련하고 공동체를 일으키며 현재 교회당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저를 멘토로 여겨 항상 므왈리무(선생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13.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인지?
일차적인 것은 CTC2020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쳐 2020년에 신학교 지도력을 운영권과 함께 넘기는 것입니다. 그 후 성서학 전문 도서관을 열어 말씀을 깊이 배우고 가르치는 기관을 신학교 부설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의한 자료를 정리하여 스와힐리어로 신약주석을 출간하는 일이죠.

제 공 : 홍철 선교사

칼빈신학교 임직원과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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