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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학자료 > 논문 등록일 2011-02-11
작성자 관리자 (admin)
이슬람 도전과 선교적 대응
전호진 박사
1. 서론: 문명충돌인가 공존인가?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 총장 전호진 목사

아프간 사태는 한국의 보수교회와 진보교회간의 갈등, 반기독교 세력과 기독교 간의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 반면 이슬람은 더 한국에서 부흥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다. 무슬림들은 문명 공존을 역설한다. 그러나 아프간 사태는 두 선교적 종교의 충돌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The Economist(2nd August, 2007)는 이 사건을 “두 신앙 간의 충돌”로 해석한다. 제목 자체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한국 크리스천과 탈레반: 신앙들의 충돌A clash of faiths」. 이 기사는 한국 기독교는 자본주의, 민주주의와 더불어 한국 사회의 3위 일체를 형성한다고 이념적으로 분석한다. “한국은 종교적 열정의 결과와 씨름해야 하는 반면, 탈레반은 알 카에다로부터 배운 사형집행과 자살폭탄의 방법을 재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비교 분석한다. 양자 다 하나님의 일은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다진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적 열정과 탈레반의 과격주의를 대조시키는 이 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교는 피차 선의의 경쟁이 되어야 한다. 종교는 합리주의는 아니다. 그러나 합리성이 없으면 광신이다. 종교가 맹신이나 광신으로 떨어지면 파괴적이 될 수밖에 없다.
21세기는 일부 과격종교 집단이 종교적 전체주의를 시도하고 있다고 본다. 이란과 아프간은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20세기 1, 2차 대전은 민족주의적 전체주의가 지구를 비극으로, 20세기 후반 냉전시대는 사회주의적 전체주의가 지구의 절반 이상을 지배하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적 집단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원리주의는 종교적 집단주의이다. 초자연의 가치관이나 종교이념을 강제화 시키는 무서운 종교적 집단주의이다. 새로운 전쟁형태의 시대이다. 원리주의 집단은 국기도 군번도 없다. 하늘의 보상을 믿는다. 신의 이름으로 죽이고 죽는다. 세계적 움마를 꿈꾼다. 국제화 시대에 과격한 종교적 국제화를 시도한다. 상대주의 시대에 공격적 절대주의 신앙을 강요한다.
부시는 테러 전쟁을 이슬람과 전쟁으로 말하였다가 취소하고 도리어 이슬람이 서구와 전쟁을 한다고 하였으며, 이슬람 과격주의와의 전쟁으로 말을 바꾸었다. 일본학자들은 이 전쟁을 보이지 않는 전쟁, 종교전쟁으로, 그리고 미국의 전 CIA국장은 4차 대전으로 표현하였다.
 이슬람의 폭력성은 오히려 이슬람 스스로를 납치하는 결과가 되거니와 모든 종교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게 된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테러 종교가 아니라고 말한다. 필자는 중동에서 이슬람 지도자들과 대화를 하였다. 답변은 미국이 테러국가 임으로 테러로 응징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도, 이슬람도 아니라고 카르자이는 말하였다. 그렇다면 보통 이슬람은 관용의 종교라고 하는데, 왜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은 다른 종교의 선교는 허용하지 않는가? 여기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어느 종교보다도 이슬람은 테러를 조장하는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대하여 더 자세히 거론할 것이다. 물론 자료도 제시할 것이다.

2. 왜 충돌인가?
서구와 충돌하는 대표적 이슬람 집단은 원리주의 집단이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서구화, 근대화, 세속화에 대한 반항운동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순수한 종교운동으로 볼 수 없고 오히려 정치, 사회운동이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이슬람을 이데올로기화하는 점에서 이슬람 파쇼주의라는 무서운 명칭이 부여된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반 서구, 반 근대화, 반 무신론을 제창하지만 운동방법은 바로 공산주의의 폭력을 모방하는 점에서 무서운 면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슬람 교리 자체가 기독교와 충돌을 불가피하게 한다.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을 경계하는 것 같이 “믿는자들”(이슬람은 무슬림과 믿는 자를 구분한다. 전자는 형식적 무슬림이라면 후자는 열심 있는 무슬림을 의미)은 기독교인들을 싫어한다. 교리 자체가 미워하도록 되어있다. 이슬람을 비판적으로 요약하면:
모든 것 위에 이슬람
이슬람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다. 이슬람은 하나의 종교 일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위에 군림하는 총체적 시스템이다. 즉 이슬람은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상위 계급이다. 이슬람은 사막의 종교이다. 무함마드는 종교창설자이고 군사지도자이고 정치가이다. 성경에 이와 유사한 인물은 모세이다. 그러나 칼 대신에 지팡이를 들었다. 모세는 겸손한 지도자로 말한다. 결코 독재자가 아니다. 그러나 무함마드나 이슬람 국가 지도자들에게서 민주적 리더쉽은 보기 어렵다. 여기 이슬람의 본질이 나타난다. 군사 정치, 종교의 분리는 불가능하다. 이슬람 국가의 왕이나 정치가(대통령)은 이슬람의 수호자, 전파자 역할을 해야 한다. 비판은 불가능하고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무슬림은 복종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슬람은 종교가 아니라 절대 진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 위에 있다. 정교분리는 물론 불가능하다. 이란은 지금도 아야톨라라는 이슬람 최고 지도자가 대통령 위에서 모든 법령도 아야톨라가 결재해야 집행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Sura2장의 내용을 잘 읽으면 이슬람이 오기 전에 모든 선지자들은 무슬림이었다고 한다. 태초부터 이슬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이미 오는 선지자(무함마드)를 증거하지 않고 숨겼기 때문에 이들은 “지나가버린 백성“(2:141)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즉 유대교와 기독교는 참 계시를 왜곡한 자들로 정죄한다. Sura3:85은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 결코 수락되지 않을 것이니 내세에서 패망자 가운데
있다. 다른 종교를 받아들인다면 알라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정치적 권리도 없고 마지막 날 그는 멸망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알라와 무함마드의 위치
과거 무슬림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한 이슬람 전문가는 이슬람에서 무함마드의 권위를 기독교의 예수님과 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무함마드는 예수님의 자리를 도적질한 자”로 표현한다. 대단히 의미있는 말이다. 이단에서 자칭 메시야가 다 있지만 이슬람 은 사실상 무함마드르 메시야로 신봉하는 셈이다. 무슬림은 반드시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임을 고백해야 한다. 사자라는 선지자 보다 높은 것으로도 이해된다. 이유는 성경의 4인물인 모세, 다윗,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만 사자(rasul: Messenger)이다. 사자란 성경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모세는 율법을, 다윗은 시편을 예수님은 복음서를 무함마드는 코란을. 무함마드는 글을 읽지 못한 자이다. 수라 48:29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불신자에게 대하여는 마음이 강하고 그들 사이에는 인정이 많더라고”하였다. 강하다는 것는 잔인한 것으로 해석한다.
어느 이슬람 비판가는 “무함마드의 모든 권위가 코란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코란의 권위(정당성)는 무함마드에게서 나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알라와 무함마드드는 공격으로 취급될 정도로 무함마드가 ”우상화”된다는 것이다. 우상을 멀리하는 과격한 배타주의 이지만 역시 무함마드나 호메이니는 신성시 될 정도이다.
코란 3장81절에 한국어 코란은 “하나님이 예언자들과 성약을 하사 성서와 지혜를 주셨노라 그런 후에 한 선지자가 와서 진리와 함께 너회에게 오나니 그를 믿고 그를 도울 것이라.” 영어 번역은 선지자가 사도이다. 당시 무함마드는 미친자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코란은 무함마드를 “그대가 미친자가 아닌 것은 주님의 은혜로서 진실로 그대에게는 한없는 보상이 주어지리라 실로 그대는 고상한 성품의 소유자로서”(Surah 68:1-4).
Surah 18:1,4에는 알라가 아들을 낳았다고 말하는 자를 경고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이슬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을 무효화시키려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코란의 권위
만약 코란을 종교적인 책으로만 이해한다면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과 그들이 믿는 것은 똑같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코란에 의해서 성경은 무효화 된 것이다. 파키스탄에서는 코란을 찢거나 함부로 취급하면 신성모독죄로 사형도 당할 수도 있다. 코란을 절대시한다.
무슬림들은 주장하기를 코란은 본래 하늘에 있었는데, 이름은 54개나 된다. 그리고 알라가 23년간 무함마드에게 계시한 내용이 코란이라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104권의 책이 있었는데, 4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거두어 갔다 모세 오경, 복음서가 최후의 남은 것이지만 이것마저 코란으로 인하여 다 없어졌다. 코란은 책 중의 책이다. 코란 수라 13:31-39에 의하면 시대마다 경전이 있었으나 때로는 확증 혹은 무효화한다. 성경은 무효화 된 책이다.

자유를 부정한다.
우리가 이슬람을 경계한다면 그 이유는 이슬람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서방의 이슬람 비판자들은 테러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정의한다. 코란은 “너희는 선택권이 없다 (sura33:36)고 말한다. 이것은 다분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 알라와 무함마드가 정해 놓은 것에는 어떤 선택권이 없다. 이슬람에는 자유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담은 처음부터 약했다. 거기에는 어떤 결정도 없다. 정치적 자유라는 개념은 유대 기독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Surah 20:115 “우리는 전에 아담에게 계명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서 어떠한 결정도 보지 못한다(필자의 번역). 그런데 한국어 번역은 결정(determination)을 의엿한 태도로 번역한다. 이슬람 전문가들은 이 본문은 아담에게 어떠한 결정권도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로운 결정권이 없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참고로 한국어 코란은 의역한 것이 많다고 한다. 결국 이슬람은 종교적 집단주의이다.

3. 한국에서 이슬람 도전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의 국가가 아니다.” 이것은 유엔이 한국에 공식으로 요구한 내용이다. 우리 사회는 다인종, 다종교회 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장 활발하게 한국에 들어 온 종교는 이슬람이다. 작년도 아프간 인질 때 한국이슬람중앙협회는 한국의 무슬림 인구를14만 명으로 발표하였다. 전문가들의 일치 된 견해는 50만 근로자 중 적어도 20%는 무슬림으로 추산한다. 한국인 무슬림 5만 명에 외국인 10만 명으로, 한국에서 이슬람 기구와 선교활동은: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 Korea Islamic foundation KIF)가 중심이며, 다음 중요한 단체는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Korea Muslim Federation : KMF)이다. 이것은 국내 유일의 이슬람 선교기구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모스크에 본부를 두고 부산 경기광주 전주 안양 부천 제주 등 전국에 8개 지회와 60여 개의 임시성원을 운영하고 있다. 선교교육국, 대외 협력국, 사무국을 운영하며, 이슬람 관련 홍보책자 발간, 이슬람 교리 및 문화강좌, 세미나 개최 등 주요 활동을 한다.

한국에서 이슬람 포교 상황
2006년 한 해 동안 이슬람은 “80명(남:37명, 여:43명)의 새로운 형제 자매들이 무슬림이 되었다. 국적별로 살펴보면 한국인 71명 미국 3 명 파키스탄 1명 캐나다1명 인도네시아 1명 필립핀1명 러시아1명 베트남 1명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 합니다.” 이상은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가 발표한 내용이다.
1) 이슬람은 2020년까지 한국 이슬람화 전략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목사 전도사 선교사들과 직분자 들을 대상으로도 포교하는 것으로 전하여 짐.
2) 이민과 출생을 통한 확장: 구라파의 무슬림은 주로 이민과 출산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많은 신자 여성들이 무슬림과 결혼.
3) 매스 미디아의 이용: 9.11테러와 아프간 사태 이후 이슬람을 평화와 사랑과 관용의 종교로 적극 홍보, 언론사 기자, 역사 선생들 초빙, 적극적 홍보하였음.
4) 대학가를 포교의 장으로 적극 활용함: 많은 대학에서 기도실 설치, 메카를 항하여 기도하는 학생들 증가
5) 모스크와 문화원 설치 활발: 안양에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들이 20억 원이나 되는 모스크를 세웠다고 함. 인천에는 이슬람 종합 센터 시작.
6) 쿠웨이트 정부의 지원으로 공동묘지 확보
7) 중동국가 유학생 증가 금년에도 수십 명 이상 올 것으로 예상
8)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대학교수들 중에 무슬림, 작년 9월 서울 모 구청은 한국인 무슬림 학자 초청 “탈레반과 이슬람 세계이해”세미나 개최함. 구청이 홍보함.
9) 많은 이슬람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음, 중동 크리스챤들은 1만 명 이상으로 추산, 중동계 영국인이 이태원에서 선교 활동하고 있음. 이태원 모스크에 한국인 이맘은 1명이나 외국인이 4명으로 추산.
10) 용인에 이슬람 대학 설립 추진

포교의 특징은
1)포교보다는 변증에 치중한다. 테러에 대하여 이슬람은 사랑과 평화와 관용의 종교라고. 하는 것에 치중한다.
2)봉사활동에 적극적이다.
3) 좋은 이미지 주려고 노력, 특히 광고에서 청년들에게 어필하려고 노력한다.
4) 경제활동을 통한 포교, 이슬람 기업 상장등록, 곧 이슬람 은행 설립될 것으로, 이자없는 혹은 저이자 공세 예상, 중동 자금을 통한 포교
5) 문화로 대중들에게 접근.
6) 출판, 코란 번역(알라는 하나님으로, 그 외 많은 용어가 기독교와 동일, 혼돈 야기한다) 7) 자이툰 부대 병사들 대상 적극 포교, 이미 수 십명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음. 이태원 이슬람 서점개점, 자금은 사우디가 부담한다고 함.
8) 많은 세미나 및 학술활동 가짐: 2005년 11월 한국 이슬람화 위하여 “아시아에서의 이슬람과 타종교 : 공존과 협력’으로 세미나 가졌음. 불교, 힌두교, 기독교 지도자와 학자를 초청. WCC총회 때 기독교 성령과 샤머니즘 영을 동일시한 논문으로 문제를 야기한 여자 교수를 초청하였음. 학술대회는 외교통상부와 공동 주최도 있음.

우리의 입장
선교는 기독교의 지상명령이다. 이슬람 선교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수정되어야 한다. 지금 많은 나라에서 선교사들이 추방당하여 바야흐로 선교전쟁의 시대로 돌입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서구처럼 우리 사회도 다분히 문명충돌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금번 영국대주교의 이슬람 법도 영국 법에 반영시켜야 한다는 발언은 엄청난 저항에 직면, 해명에 바쁘다. 서구 이슬람전문가들은 이슬람, 특히 이슬람 원리주의는 비민주주의의 적이라는데에 견해가 일치한다. 대 테러 전쟁은 바로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임을 강조한다. 이점에서 비민주적이고 사회 갈등을 일으키는 종교를 경제적 정치적 목적으로 무조건 수용한다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천명한다.
1) 종교도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2) 인권과 종교 자유는 보편적 가치관이다. 우리 사회는 이 원칙을 포기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의 종교자유를 촉구해야 한다.
3) 한국의 이슬람은 어디에서나 종교와 문화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모든 종교와 평화적 공존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슬람 원리주의의 한국 상륙은 적극 저지해야 한다. 여기에 한국 이슬람도 협조해야 한다.
4) 이슬람이 다수일 때도 정교분리의 한국 헌법은 존중되어야 한다. 결코 종교가 정치위에 군림하는 전통적 이슬람 원리를 한국에서 고수할 경우 심각한 종교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4. 이슬람 원리주의의 도전
이슬람의 가장 무서운 세력은 원리주의이다. 원리주의의 문제점을 요약하면,
첫째 비민주적이다. 서구 학자들이나 일본의 많은 학자들은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원리주의는 더욱 더 민주주의와 대치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중요한 보편적 가치 체계이다. 서구의 많은 학자들은 서구의 대체러 전쟁은 바로 비민주세력과의 전쟁이라고 강조한다. 국제화 시대에 민주주의, 인권, 자유가 인간의 보편적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이것을 철저히 거부한다.

종교적 집단주의
이슬람은 철저히 종교적 집단주의이다. 이슬람은 대중들에게 자기들 식의 종교를 강요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앞장섰다. 신정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종교적 원리가 도리어 인간 삶의 모든 영역들을 침해한다. “집단적 정체성 선언”을 근거로 종교를 강요한다. 종교적 교리와 제도가 사람들에게 종교 공동체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한다. 호메이니 혁명 당시 이란 사람들은 이슬람 당국이 요구하는 엄격한 종교 규정들을 강제로 지켜야만 하였다. 공산주의 이후 새로운 형태의 집단주의(collectivism)가 등장한다. .

폭력 사용
1970년대 남미의 해방신학은 해방신학이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것을 일부 해방신학자들은 신령한 폭력이라고 미화하였다. 이슬람, 특히 원리주의를 국제정치학자들은 무장화 된 종교운동이라고 정의한다. 최근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카프란(Robert Kaplan)은 저서 [무사정치](Warrior Politics)에서 유대교와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이방종교로 정의하면서 전자는 개인주의에 집착하여 추상적 도덕률을 발전시키지만 다른 “이방종교”는 대중 혹은 집단에 치중한다. 따라서 이들 집단주의 사고방식은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논리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9. 11 테러는 고대사회에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격적 배타주의
이슬람은 다른 종교를 종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종교나 선교를 거부하고 억압한다. 코란은 “불경건자“는 죽이라는 것을 명한다.

경전의 임의적 해석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경전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을 임의로 선별하여 자기들 나름대로 문자적인 해석을 하는 위험을 감행함으로써 그들 종교가 지향하는 원칙적인 가르침들과 교리들을 왜곡한다. 몇몇 이슬람 국가들에서 주장하는 샤리아의 엄격한 실천은 한 예이다. 아라비아에서 샤리아는 엄격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전 수상 마하티르 모하마드는 “이슬람 전도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주장이 꾸란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호되게 비난한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꾸란을 임의로 왜곡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다.

종교적 이상향 건설
이슬람 원리주의는 신정국가의 이름으로 초기의 종교적 이상향을 지향한다. 이 점에서 이슬람 원리주의는 과거 지향적이다. 원리주의자들은 자주 정의와 인도주의와 같은 현대적 기준들에 비해 뒤쳐지는 샤리아 같은 전통적 율법체계로의 복귀를 주장한다. 사실, 미국의 한 정치학자가 적절히 지적하듯이 원리주의는 현재를 거부하고 과거를 전파하며,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반대되는 종교적인 세계관을 전파하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

성 차별
이슬람 원리주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잘못된 성차별이다. 북아프리카와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자행되는 여성 할례라든지 탈레반 원리주의자들이 모든 여성들을 직장에서 추방하고 가정에 감금하는 것 등은 그야말로 엄청난 인권침해이다.

이슬람 원리주의 주요 사상
현대 이슬람 원리주의는 이슬람 역사에 이미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흔히 원리주의(이슬람 원리주의를 원리주의로 생략함)의 시조는 이집트의 형제단 창시자인 쿠트브라고 한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합주의이다. 그리고 이 사상을 사우드 왕가가 채택, 현대 사우디를 건설한다. 그래서 현대 사우디를 경전과 칼의 불순한 동맹국가로 말한다. 사우드왕가는 군사적 이슬람인 와합주의로 사우디를 통일한다. 마치 마호메트가 이슬람으로 사우디를 통일한 것 같이.
와하브(Muhammad Abd al-Wahhab: 1703-1787)는 전통적 이슬람을 다 부정하고 과격한 군사적 이슬람을 발전시킨다. 비 이슬람에게 관용을 가르치는 부분은 다 삭제시킬 정도로 이슬람을 전투적 종교로 개조하고 만다. 그리고 무함마드가 가르친 본래의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즉 꾸란과 순나(순나는 무함마드가 가르친 습관과 종교적 실천)로 복귀하여 이슬람에 첨가된 미신적 신앙이나 거짓된 실천과 관습은 다 제거하자는 것이다. 사우디가 이슬람의 종주국이 되듯이 원리주의 역시 사우디가 종주국이 된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서구 식민주의와 “미 제국주의”가 원인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이슬람은 잘못된 것은 남에게 돌리는 문화이다.
첫째 이슬람 원리주의는 반서구, 반 기독교이다. 서구 문명은 60년대 이후 종속 이론, 해방 신학으로부터 도전을 받는데, 이슬람 운동 역시 철저히 반 서구적이다. 특히 기독교와 계몽주의를 세속주의로 정죄한다. 세속주의는 종교와 대립되는 무신론으로 간주한다. 우리 학문도 서구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권 하에 있다. 그러나 합리주의나 계몽주의는 아직도 서구 우월주의를 유지하지만 유토피아 제공에 실패한다.
둘째, 반 과학적이다. 사우디는 미국이 달에 로켓을 쏘았을 때 이것을 보도하지 않은 나라는 사우디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거부하고 계속 평평하다는 것을 주장 한 자는 이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장로 빈 바스이다. 신은 과학을 버린다고 가르친다.
둘째 원리주의자들은 대체로 문화, 철학, 예술을 증오한다. 영화 오락, 술 담배가 금지품이다. 물론 TV도 없고 영화관, 댄스 등은 상상할 수 없다. 살벌한 종교적 율법주의를 강요한다. 하루 다섯 번 기도하지 않는 자는 배신자 취급을 당하게 되어 있다. 사우디는 종교경찰이 있어서 윤리와 풍속을 단속한다. 종교경찰의 이름이 거창하다. ‘덕 함양, 악덕 방지 위원회(Commission for the Promotion of Virtue and Prevention of Vice, Haya or Commission으로 부름)’ 이 기관 소속의 5천 명 요원들의 사명은 무겁다고 한다. 이들의 임무는 매일 다섯 번 기도 시간에 점포들이 문을 닫는지 감시하고 정중한 복장을 하는지,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엄격하게 자리를 구분하여 앉는지, 점이나 무당을 금하는지, 술과 마약을 판매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동시에 최근에 발표되는 새로운 금지령을 실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집 고양이나 개를 제다 같은 항구 도시에서도 팔 수 있는지, 이발사들이 서구식 머리를 깎는지 감시해야 한다. 서구식 이발은 두 번째 거룩한 도시 메디나에서는 불신자들을 모방하는imitating unbelievers 행위로 금지 된다.
셋째로 원리주의는 노골적으로 기독교와 유대교를 미워하는 것을 가르친다. 현대 와하비주의의 해석자인 빈 바스는 꾸란과 순나에 의하면 기독교 신자와 유대교도들에 대하여 적대심을 표명하는 것이 모든 무슬림들의 의무라고 강조한다. 빈 라덴과 알카에다는 이것을 처음부터 드러내고 말하지 않고 대신 항상 반미, 반식민주의 등의 정치적 구호나 주장으로 포장하여 마치 정치운동으로 호도한다.
넷째로 여성을 비하한다. 이슬람을 비판적으로 보는 학자들은 이슬람 천당에 여자가 있을까 의아해 한다. 이슬람의 자살폭탄 대원들은 소위 지하디스트(성전聖戰에 참여하는 자)이다. 수만 명의 지하디스트가 대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유 중의 하나는 ‘순교’하면 최고 좋은 천당에 가며, 그곳은 72명의 미인들이 술과 고기를 대접하는 곳이라 말한다. 72명의 미인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르기도 하다. 그런데 여자 지하디스트가 발생, 이슬람 학자들은 고민한다고 한다. 와합주의가 무서운 것은 여성을 비하시키는 것이다. 탈레반의 여성천시는 결국 와합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원리주의를 수출하는 나라
사우디는 지금 무서운 와합이슬람을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한국에도 이미 사우디 돈으로 모스크가 세워졌고 대학에는 장학금이 제공되고 많은 선교사가 와 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를 수출한다. 미국과 친하면서 세계를 이슬람화 하는데 정부를 동원한다. 사우디는 매달 60명에서 80명 이상의 수니파 테러분자들을 이라크로 보낸다. 아라비아 출신 테러리스트들이 이라크에 오는 경로는 먼저 시리아에 버스로 도착, 시리아 안내자 도움으로 이라크에 밀입국한다. 다음 라마디 다리에서 자살 폭탄테러 교육을 받는다. 이라크의 자살테러범 40%가 아라비아인이라는 것이 미국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다 자살테러범이 아니라 폭탄제조자, 암살자, 전략가, 금전 제공자들도 있다. 물론 사우디는 이들이 나중에 사우디로 귀국하여 사우디 정부를 향하여 테러행위를 하는 것을 우려한다. 마치 80년대 아프간에서 전사들이 한 것처럼. 그런데도 사우디 왕 압둘라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불법적 외국의 정복으로 비난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사우디가 수출하는 이슬람은 진짜 이슬람이 아니다. 모로코 이슬람 단체는 사우디 이슬람은 진짜가 아니라고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선교적 대처 방안 제안
한국교회는 앞으로 극단적 원리주의와 조우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국내에서는 수 많은 이슬람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대학가에서, 이들은 벌써 고도의 학문적 이론으로 기독교인들에게 접근한다. 금번 인질 사태 후 외국 언론조차도 한국교회의 “불행한 열정주의”를 비판하였다. 이제 열정만으로는 안 된다.
1)이론적 무장을 해야 한다. 중세시대 레이몬드 룰은 이슬람과 대화, 이슬람 선교위한 선교학교 개설, 이슬람 연구서 출판 등 학문적으로 선교를 하였다. 즉 변증적 선교의 대가이다. 북아프리카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한다. 지금 대학가에 무슬림 학생들은 도리어 기독교 학생선교회 간부들에게 이론적으로 접근한ㄷ. 선교회 간부들이 “이론이 딸려서” 피하는 실정이다.
2) 중동의 기존 교회를 협력하여 이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은밀히 해야 한다. 식민지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경제적으로 외부의 도움을 식민지로, 자존심의 상처로 생각한다.
3) 아랍 무슬림 대상의 전도에서 기존 신자와 명목상 신자가 많다. 이들을 타깃으로 해야 한다. 시리아 1600만 인구 중 20%인 인구 3백만은 명목상 신자들이다. 중동에는 앗수리아, 알메니아 등 소수인종들은 전통적으로 기독교로 주민등록증에 기재되어 기독교가 합법화 된다.
4) 이슬람 선교는 포복하거나 뒤에서 해야 한다. 원리주의자들이 제일 증오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자기 땅을 밟는 것이고 선교하는 것이다. 땅 밟기 기도회 신중해야 한다. 안방에서 해야 한다.
5) 지도자 양성하여 저들로 하여금 그 나라 복음화를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19세기 후반에 이미 독일선교학자 구스타프 바르넥은 진정한 이슬람 선교는 무슬림들이 자기들 선교회를 조직할 때 이슬람 선교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6) 한국에 있는 무슬림들을 전도해야 한다.
7) 선교지에 가기 전에 언어와 전문성을 가지고 가야 한다. 이제 현지에서 언어공부 위하여 장기 체류하는 것은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170여명 이상 선교사가 추방당하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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