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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기획, 특집 > 등록일 2011-02-11
작성자 관리자 (admin)
순교의 열매, 에콰도르


시카고 한인 선교 대회에서 영어권 주강사로 섬길 때의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증거하기 전 간증 순서가 있었습니다. 간증을 담당한 사람은 스티브 세인트 (Saint)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에쿠아도르 순교자를 소재로 한 영화, 창끝(The End of Spear)의 일부분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느 선교 단체에서 자신의 단체를 소개하는 분위기하고는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스티브는 줄곧 심각한 표정이었고 놀랍게도 자신의 아버지가 에쿠아도르 선교에서 순교당한 아들임을 고백하였습니다. 그가 자신을 죽인 아버지를 평생 증오하며 살아 왔던 고백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하기 까지의 과정을 설명하자 좌중에는 울음이 터지지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깊게 제작에 참여한 영화 속 아버지의 일대기의 일부를 보여 주었습니다.

항공 선교회(Mission Aviation Fellowship) 소속이던 다섯명의 청년들이 에쿠아도르의 인디언인 와오라니 부족들에게 선교하다가 순교한 내용이었습니다. 영화의 첫 부분은 아마존 정글, 적도의 나라인 열대 밀림을 항공기가 서서히 오버랩 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 정글에 선교하려던 다섯명의 젊은이들이 인디언들에게 처참히 살해됩니다. 이들 다섯명의 선교사들은 네이트 세인트, 짐 엘리어트, 에드 맥컬리, 페트 플레밍, 로저 요더리언 입니다. 그들 다섯명 중 세인트의 아버지가 바로 네이트 세인트입니다. 네이트는 미군 조종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가 다섯명의 순교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아들 스티브 세인트가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 가장 감동적인 순교자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주었고 순교자의 자녀가 겪은 증오와 용서의 체험을 감정적 이입없이 있는 그대로 그려 낸 것입니다. 스티브 자신도 지금은 아마존 정글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선교대회의 영어권 집회에서 어깨를 들썩거릴 정도로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 그의 삶의 고백이 저의 귓전에 울려 옵니다.

“나의 아버지를 죽인 그 인디언을 내게 소개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던 그 아마존 정글과 그 인디언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였던 그는 창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린 나는 다짐했습니다.
훗날 내가 크면 이 창으로 당신을 죽이고 말것이라고….”

세인트는 자신의 아버지 네이트 세인트가 어떤 모습으로 순교했는지를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의 문턱에서, 자신이 들고 있는 인디언들을 총으로 충분히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이트는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그 인디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의 삶의 이야기는 실제 영화속에 그대로 등장합니다. 아래의 사진에도 보여 주지만 아마존 정글 쉘 메라(Shell Mera)가 드넓게 펼쳐지는 곳에 경비행기가 날아 가면 당시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청중은 과거를 현실 세계로 받아 들일 정도로 실감이 납니다. 스티브 세인트는 아버지가 타던 경비행기 모형 장난감을 갖고 놀던 모습을 회상하는 것으로 영화를 첫 모습을 보여 줍니다. 쉘 석유회사가 개발하다가 버려진 아마존 정글에 위치한 와오다니(Waodani)의 메라 마을을 찾아 온 것은 석유회사 직원도 아닌 전도유망한 다섯명의 청년들이었던 것입니다. 와오다니 부족은 후아오라니(Huaorani) 부족으로도 불리웁니다. 영화는 이어서 아마존 정글에서 희생되어 사라진 아버지의 모습을 overlapping 되고 그 당시를 기억하던 스티브의 모습을 등장시킵니다. 그의 어머니와 이모는 아버지를 죽인 그 와오다니에서 아버지를 죽인 민카예과 함께 (영화에서 Mincayani 라고 부름) 살면서 선교합니다. 와오다니는 태평양의 갈라파고스와 같은 위도 선상에 있는 광대한 열대 우림 지역입니다. 어머니와 이모와 함께 아마존 정글 그것도 아버지를 죽인 그 부족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스티브에게 가장 힘든 것은 무더운 열대 날씨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용서라는 단어조차 없고 살인해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모르는 인디언들에게 너무나 무의미한 용서의 행위였습니다. 복수나 살인이 정당화된 그들의 삶속에 증오의 칼날을 갈았던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영화는 짐작케 합니다. 용서가 무엇인지, 화해가 무엇인지, 사랑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그들을 변화시킨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남편을 죽인 무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마저 아끼지 않고 사역하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스티브는 장성하여 아마존 정글을 떠나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게 됩니다. 그에게 돌아 온 것은 안정되고 좋은 직장의 보장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애기를 듣습니다. 그는 만사를 제쳐 놓고 아마존으로 달려 갑니다.

어머니를 찾아 온 스티브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이곳에서 네 아버지가 한 것처럼 이들을 섬겨 주려므나"

아버지를 죽인 그 부족을 증오했던 스티브에서 청천벽력 같은 어머니의 당부는 스티브의 숨겨진 분노를 터트리는 계기가 됩니다. 스티브 세인트는 어머니의 애기를 거부하였 뿐 아니라 추장 민카예가 아버지를 죽인 장소를 보여 주며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큰 사랑에 결국 굴복된 스티브 네이트도 아버지의 뒤를 따르게 됩니다. 그는 미국의 안정된 재정 자문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다 포기하기에 이르고 자신의 아버지를 창으로 죽였던 그 아우카 부족으로 돌아가 그의 삶을 헌신하는 실제 삶의 이야기를 이 영화는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화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그 창끝을 보며 마음의 창끝 날, 즉 복수의 창끝을 갈고 살았던 스티브에게 창끝의 종착점은 용서이며 화해이며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구원입니다. 용서보다 더 큰 복수는 없습니다. 시카고 대회 영어권 대회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삶을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아버지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그 모습데로 나도 따라가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민카예는 마치 친아버지인 네이트 세인트의 모습처럼 스티브에게는 가족의 일원이 됩니다. 마치 양아버지처럼…가장 깨끗하고 천진한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스티브와 민카예는 이제 뗄레야 뗄 수 없는 하늘 가족이 됩니다. 보십시오! 이 놀라운 용서의 힘을…

"왜 어떤 사람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두 번씩 들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된 소식을 듣고 구원의 감격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사람들이 삶을 살아 가는데 여러번 해 봄직한 것입니다. 이 질문은 다름 아닌 네이트 세인트와 함께 순교자가 된 짐 엘리옷이 한 것입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70억의 인구 가운데 복음을 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국가가 아닌 외부에서 오는 증거(external witness)에 의해서만 가능한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 그룹 또는 가장 복음 전도가 안된 종족(Least reached People)이 27억이나 된다고 합니다. Joshua Project 에 따르면 좀더 상세하고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데 `독특한 종족그룹(unique people groups)’ 이 16500 그룹에 달하고 이를 다시 복음을 접하기 어려운 미전도 종족만을 추려내면 6900 종족에 달한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복음이 증거되지 않은 종족의 95%가 10/40 창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 미전도 종족 가운데 인구가 50만이 넘는 공통체에 살면서 복음 증거의 통로조차 차단된 인종 그룹이 632개 그룹에 달하고 인구만 따지만 무려 3억6천6백만에 달합니다.이들 366개 종족 가운데에는 교회도 없고, 선교 단체도 없고 그 어떤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가장 시급한 곳에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자료: Global Research, http://public.imb.org/globalresearch/Pages/MapUUPGs.aspx
Joshua Project 에 관한 자료 정보: http://www.joshuaproject.net/
종족 선교에 관한 자료들: http://www.peoplegroups.info/

우선 저 자신에게 누구나 해 봄직한 질문을 다시 던져 봅니다.
"왜 어떤 사람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두 번씩 들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이러한 부분에 질문만 던지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을 던져 복음을 위해 순교하기까지 실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짐 엘리옷이라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남미 인디언 선교를 떠나기 전 쓴 일기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하늘의 가장 큰 축복의 하나는 바로 이 땅에 하늘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One of the greatest blessings of heaven is the appreciation of heaven on earth.)…

결코 잃을 수 없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

위의 말은 레슬링 선수였고, 글도 잘 썼던 휘튼 대학의 청년 짐 엘리옷이 한 말입니다. 그의 말은 아리따운 여성인 엘리자베스를 감동시켰고 그들은 선교에 헌신하기 위하여 에쿠아도르 수도인 끼토(Quito)에서 1953년 1월 8일 결혼합니다. 그리고 그는 나머지 네명의 청년과 함께 인디언 선교를 위해 떠나지만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 옵니다.

전도 유망한 다섯명의 청년들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이 사건으로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세상 사람 같으면 비극이라고 떠들어 대는 이 사건에 대해 짐 엘리옷의 부인인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극이라니요? 남편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하여 그 곳에 갔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 위하여 그 땅에 갔습니다. 남편의 희생은 분명 그곳에서 하나님의 생명 역사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의 선교가 불필요한 낭비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자베스는 말합니다.
"말씀을 삼가해 주세요. 낭비라니요? 나의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온 생애를 이것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책임을 수행한, 그리고 자기 목표를 달성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짐이 순교한지 불과 10개월 밖에 안된 딸 발레리(Valerie)와 함께 1959년 아우카 족 즉 와오다니 부족에게 가서 선교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그녀를 헤치지 않았습니다.

청춘을 불태워도 아깝지 않은 꽃다운 나이의 젊은 여성이 인디언 마을에서 섬기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추장이 어느날 그녀에게 물어 봅니다.

"당신은 누구길래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애쓰십니까?"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을 죽인 청년은 주님의 사랑 앞에 감복하여 목사가 됩니다. 그녀의 남편 짐 엘리옷이 쓴 마지막 글귀 가운데 이런 글이 나옵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내 모든 것을 다 바쳐드리기를 원합니다. 생명까지 드리기를 원합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님 뜻을 이루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나를 불태워 주옵소서"



짐 엘리옷의 삶을 소재로 만든 영화
불과 얼마전 항공선교회는 그들이 순교한 장소에서 순교 50주년 모임을 200명이 모인 가운데 소속 선교기관 관계자들과 모임을 갖었습니다. 이들을 살해했던 와오라니 부족 사람들에 대한 세례식과 교제의 모임도 있었습니다. 다섯명의 순교자들의 삶은 용서와 화해 그리고 구원의 은총으로 이어지는 대서사극의 시작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짐 엘리옷 그리고 네이트 세인트의 이야기로 알려진 에쿠다오르는 이제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옵니다. 저는 이번 에쿠아도르 집회 가운데 짐 엘리옷의 애기나 또는 네이트 세인트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에쿠아도르 자국민에 의한 진정한 선교의 동력과 자립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에쿠아도르는 남미의 적도 부근에 위치하여 “세계의 중심(The Half line of the world)” 이라는 호칭을 얻습니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어를 공용어라 사용하고 있으나 아직도 잉카 제국의 가장 중요한 인디언 언어였던 케추아(Quechua)를 광범위한 지역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면적은 남한의 10분의 1정도 더 큰(거의 비슷한) 정도이고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영감(?, 나쁜 의미로)을 주었던 갈라파고스(Galapagos) 섬이 태평양 상에 있습니다. 안데스 산맥이 관통하는 곳에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침보라조(Mt. Chimborazo) 화산이 있습니다. 에쿠아도르는 남한과 같은 면적에 인구는 천팔십만 정도입니다. 수도는 끼토(Quito) 인데 정확하게 지구촌의 딱 중앙인 적도선상 0도에 위치하고 있고 남미 국가 가운데 두번째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끼토는 고대 문명의 수도였습니다. 끼토에서 산을 바라보면 산꼭대기에 시원스레 빛나는 눈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에쿠아도르 사람들은 그 천산고봉을 보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의 손가락을 약간 더 길게 에쿠아도르에 남기셨다는 유머를 한다고 합니다. 언제나 봄날 같은 에쿠아도르는 남미의 스위스라는 별칭을 얻습니다. 제일 큰 도시는 태평양 해안에 위치한 구아야낄(Guayaquil) 입니다. 2500-2700m 정도 되는 안데스 산맥이 중앙으로 남쪽 칠레까지 내려 가기에 열대의 적도 국가의 기후라기보다는 일년 내내 신선한 기후입니다. 하지만 저지대인 태평양 해안은 정글과 밀림으로 이루어지는 매우 더운 열대성 기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에쿠아도르 동부 지역은 정글 지대는 에쿠아도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 이며 이곳의 도시들이 바로 콜로라도(Colorado), 지바로(Jívaro), 아우카(Auca), 까야파(Cayapa), 꼬판(Cofán) 그리고 세코야(Secoya)입니다. 바로 정글 밀림 지대에 광대한 석유가 묻혀 있는데 대부분은 미국으로 수출됩니다. 에쿠아도르는 바나나와 새우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중 하나입니다. 국내 경제는 여전히 농업에 의존하고 있는데 바나나 말고도 커피, 코코아와 설탕, 옥수수, 쌀, 감장 그리고 보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직, 가죽, 종이, 양모, 가구와 가전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이 땅에 들어 오게 된 것은 짐 엘리옷의 이야기보다 거의 60년을 앞서갑니다. 성서 공회(Bible Society)엣 성경 그 중에서 신약 성경을 태평양 해안선을 따라 특히 구아야낄(Guayaquil)를 중심으로 보급하면서 부터입니다. 첫번째로 개신교 선교사가 이 땅을 밟게 된 것은 1896년 복음 선교 연합회(Gospel Missionary Union)을 통해서입니다. 그 이듬해에 기독교 선교사 동맹(C&MA,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이 사역을 시작합니다. 1931년에 선교 방송인 HCJB 가 “안데스 목소리(The Voice of the Andes)”를 방송하고 있습니다. 저희 일행의 오전 오후 목회자 세미나를 라디오 생방송으로 듣게 한 연유도 에쿠아도르에서는 여전히 TV 보다는 라디오 방송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복음전도의 수단인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쿠아도르 침례교회가 1972년 10월에 결성되어 그동안 많은 지도자들 배출하였습니다.

에쿠아도르의 인구는 천5백만 정도이고 이들중 복음주의자들은 6% 정도 됩니다. 에쿠아도르의 국경선은 동쪽에 있는 아마존 밀림을 경계로 동쪽과 남쪽으로 페루 그리고 북쪽으로 콜럼비아를 접경하고 있고 서쪽으로 태평양을 바라보는 비옥한 평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남미 대륙에 거대한 산맥인 안데스 산맥이 중앙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에쿠아도르는 인종에 있어서 매우 다양함을 보입니다. 스페인 식민주의자들과 토착 인디오들이 석인 메스티조가 매우 중요한 인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중에서도 케추아(Quechua) 인디언이 전국민의 40% 를 차지합니다. 스페인어가 공용어라고 하는 이곳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22개에 이릅니다. 지난 25년 동안 민간인 정부가 정치적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에 의해 많은 난관을 겪고 있습니다.

잉카 제국의 인디언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그 기원을 알 수는 없습니다. 시베리아를 통해 미 대륙을 횡단해 내려 왔던지 아니면 태평양을연약한 뗏목(frail rafts)를 타고 건너 왔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어째튼 그들은 지금의 남미 정글에서 정착하게 됩니다. 1455년에 잉카 제국은 팽창하기 시작합니다. 잉카 제국의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서 입니다. 이들은 황금(gold)과 스페인 제국의 영광(glory)를 찾으러 미대륙 정벌에 나섭니다. 스페인은 안데스 산맥을 지배하였던 모든 인디언의 지배를 종식시킵니다. 남미에 20만 명에 불과한 스페인 사람들이 3천만명에 달하던 남미의 인디언들을 정복한 것입니다. 그 이후는 300년 동안 스페인은 인디언들을 약탈하고, 지배하고 또한 종교적으로 길들였습니다. 정복자들이 가는 곳마다 마치 무어족 모슬렘 지역을 초토화시켰던 경험을 토대로 남미 대륙에서도 성당과 하시엔다를 세우고 스페인식 궁전들을 짓기 시작합니다. 남미를 지배해 나가던 스페인 철권 통치를 피해 나가던 인디언들은 구름이 산중턱에 걸치는 더 높은 곳으로 도망가거나 아니면 평야의 정글로 숨어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인디오들이 바로 안데스 산맥에 거하고 있으면 창끝 영화에 나오는 와오라니 부족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겐 외부인은 침략자요 정복자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이미지가 공포의 이미지로 각인된 그곳에 살인의 목적으로 온 사람이 아닌 이 다섯명의 청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수백년 동안 닫혀 있던 복음의 능력을 받아 들이게 합니다. 특히 키추아(Quichua) 부족에는 1967년에 3백만의 인구 가운데 120명의 믿는자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부족 가운데 어떤 지역에는 인구의 절반이 예수를 믿는 지역도 있습니다. 지금은 인디언 지역에 참으로 놀라운 복음 전도의 열매들이 맺어지고 있습니다.

전통 인디오 복장을 한 여인들

에쿠아도르나 페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이한 동물인 라마(llama) 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이 라마를 통해 얻은 털로 지금도 양모를 얻습니다. 이번에 저희 일행은 이 전통적인 양모 선물을 받았습니다. 에쿠아도르의 고산지대에는 오타발레뇨(Otavaleño) 모직은 아직도 잉카의 흔적으로 여전히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타발로 부족은 케추아(Quechua)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잉카 제국의 북쪽 절반이 바로 에쿠아도르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에쿠아도르의 수도인 끼토(Quito)입니다. 1532년에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 제국의 북부 수도인 끼토(Quito)를 정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곳을 주요 요충지로 정하게 된 것은 1534년 이후 부터입니다. 1563년에는 끼토(Quito)를 스페인 왕의 통치 지역(Royal Audencia of Spain)으로 정하게 됩니다. 1830년에는 그랜 콜럼비아로부터 새 공화국이 분리되어 미국과 프랑스의 정치 제도를 본받고 그러나 구스페인 제도의 사회적 가부장주의(social paternalism)는 유지합니다. 1800년대에 남미 전체에 스페인 통치에 반대하여 거대한 독립운동이 점화됩니다. 1822년 시몬 볼리바(Simón Bolívar) 와 호세 안토니아 수크레(Jose Antonio Sucre) 장군이 스페인으로부터 에쿠아도를 해방시킵니다. 잉카 제국의 공식 언어를 케추아(Quechua) 입니다. 잉카 제국은 그들의 종교, 신전, 사제들 그리고 축제와 예전을 제국 전체에 도입했습니다. 잉카 제국의 공식 종교는 태양 숭배(Sun worship)였습니다. 일반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잉카 제국은 영적인 영역보다는 물질적인 영역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예를들면 도로 건설, 기근과 재난시에 황제가 공급하는 음식과 의류들입니다.

이번 에쿠아도르의 집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운데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역하게 된 곳은 다른 아닌 에쿠아도르의 정원이라고 불리우는 제9의 도시인 암바토(Ambato)였습니다. 코스타리카의 께포스(Quepos) 에서 이른 아침 출발한 저희 일행은 항공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다시 반대 방향인 엘 살바도르로 그리고 그곳에서 콜롬비아의 보고타 공항으로 그리고 나서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에쿠아도르의 끼토(Quito)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2700m 에 달한다는 고산지대인 그곳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준 암바토에서 올라 온 목사님이 제공한 차량을 타고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그렇게 험난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는 줄을 알수는 없었습니다. 하비에르 목사는 수도에서 암바토까지 불과 40분 거리라고 애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안데스 산맥을 타고 곡예하듯 달려 간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어찌나 추웠는지 벌벌 떠느라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보니 창문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구 목사가 이끄는 목회자 및 지도자 세미나에 가게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더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우리에게 너무나 큰 축복이었음을 고백하며 짐 엘리옷이 한 그의 독백으로 저의 고백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왜 어떤 사람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두 번씩 들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주님을 위해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내 모든 것을 다 바쳐드리기를 원합니다. 생명까지 드리기를 원합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님 뜻을 이루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나를 불태워 주옵소서"

작고 작은 자 김 종필 에쿠아도르 집회를 마치고 드립니다.
Rev. Elijah JF Kim,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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