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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1-01-29
작성자 관리자 (admin)
다윗의 열쇠
사 22:22, 계 3:7-8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 22:22)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7-8)


다윗은 우리가 아는 것 보다 더 많은 잘못을 하나님께 범한 사람입니다. 우리 죄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을 인정하셨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하나님을 감동시키셨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이름을 높이셨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오늘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다윗은 최초로 하나님께 사랑한다는 고백을 드린 사람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하나님이 이 말에 감동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하지 않았던 말이다. 이 사람들은 믿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던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을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22)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했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겼습니다. 그가 산중에 목동 생활을 할 때도 그리했고, 골리앗 대장으로 더불어 전투할 때도 그러했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에게 대해서도 그랬습니다. 또 그가 범죄한 후에, 우리아를 죽인 후에 그가 회개하는 것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진정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신앙을 가졌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배를 대충 드리고, 교회에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롱하면서 복 받기를 원하면 안됩니다.
'다윗'은 히브리어로 '나의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였습니다(시1).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시 119:97).

다윗의 이런 믿음이 찬양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 69:31) 황소를 드림보다 마음으로 드리는 진정한 노래를 기쁘게 받아주시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알고 행했던 것입니다. 사탄에게 빼앗겼던 음악을 다시 찾아왔던 것입니다.

둘째, 다윗은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겼던 사람입니다.
단순히 믿는 것하고 삶을 하나님께 맡긴 것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많아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다 맡긴 사람은 드문 것입니다.
전쟁을 할 때에도 먼저 하나님께 항상 묻고 일을 했습니다. 모든 일을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작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아침에 주께 기도하고 바란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일을 기도하고 바랐습니다. 기도하고 이루어지기를 바랬습니다.
자신의 삶을 주님께 다 맡긴 다윗은 기도도 다릅니다. 단순히 비는 기도가 아닙니다. 차원이 다른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다 하나님의 뜻대로 됩니다. 그런데 안될 때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삼하 21:1-14에 보면 다윗의 시대에 3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오, 하나님이시여 3년을 연거퍼 기근을 주십니까? 기도하오니 긍휼을 배푸사 금년에는 풍성한 수확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런 형식의 기도는 올리지 아니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 기도하는 것은 그 기근의 원인을 알려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의 문제에 열쇠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탐구는 직선적(直線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답도 직선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삼하 21:1)고 했습니다. 기브온 사람은 이방민족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이유 없이 죽이면 살인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전쟁이나 적군이 쳐들어와서 싸움하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이방민족하고 맺은 약속도 하나님은 어기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과의 약속도 잘 지켜야 합니다.
다윗은 이 죄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사울왕의 다섯 아들을 잡아 주어 그들은 목매어 죽임을 당했습니다(삼하 21:8). 그렇게 하자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삼하 21:14)고 했습니다.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이방인과의 약속도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약속하고 지키지 않은 것이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도 원한을 살만한 일을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6)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열쇠는 예수님께 주어졌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저는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여기서 더 이상 읽지를 못하겠더라구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네가 동서남북으로 바라보는 땅을 다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물론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주신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닙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구약적 축복을 간구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주신 아버지께 가서 다른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는 자체가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공자왈 맹자왈 하시다가 가신 분이 아닙니다. 개인의 평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으신 사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의 어깨에는 정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깨에 인류의 구원의 문제가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사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정사를, 이 공무를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하셨습니다. 다 이루신 것입니다.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다른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십자가뿐입니다. 바로 이 십자가가 하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십자가를 통하지 않으면 천국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열쇠는 베드로(제자)에게 주어졌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하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 6:27)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치신 자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양식이 내립니다. 이것은 영생하는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 세상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보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열쇠를 가진 사람은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지하철 문이 닫히지 않아 전동차가 출발을 못했습니다. 문이 닫히지 않은 것입니다. 뭔가 불안합니다. 만일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신다고 하셨는데 가다가 이제 더 이상 못 가시겠다고 하고 다 내려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천국 가는 길이 그렇게 불완전하고 문제가 있는 일이라면 큰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분만이 전능자라는 것입니다. 이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 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다윗이란 왕의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8)

열쇠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인과 열심히 소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뇌의 굵은 혈관이 막히는 현상을 뇌경색이라고 합니다. 뇌경색 전 단계에는 반드시 가는 혈관이 막히는 현상이 일어나고 막힌 부분의 세포가 점점 죽어갑니다. 이른바 치매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미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꾸만 하나님과 소통을 해야 혈관이 넓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30대 후반이 되면 하루에 약 10만개의 뇌 세포가 죽어간답니다. 하루야마 시게오라는 사람이 『뇌내 혁명』에서 한 말입니다. 세포는 나이가 들면서 죽어가게 마련이지만 혈관이 막히면 세포가 갑자기 죽습니다. 자연적 사망이 아니라 사건적 사망이라는 것입니다(이건 제 표현임). 세포가 죽으면 신체 기능이 마비되고 판단력과 기억력이 감퇴되고 자아 조절 능력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끊어지면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하나님과의 영적 소통에 있습니다. 왜 새벽을 깨우려고 합니까? 우리의 영을 위해서입니다.
전능자이신 예수님이시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계셨습니다. 마치 포도나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견디면서도 하나님을 붙잡았던 것처럼 하나님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은 개인적이지만 축복은 유전적입니다. 내가 주님을 잘 믿으면 축복이 자녀에게 유전됩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구원을 얻게 합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8)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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