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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해외일반 > 해외생활 등록일 2011-01-10
작성자 관리자 (admin)
동남아 화인(華人) 사회와 그들의 삶


한국인들은 해외 중국인들(Oversea Chinese)을 “화교”(華僑)라 일반적으로 알고 있지만, 중국과 대만에서는 “화교”와 "화인"(華人)을 구분하며 동남아 중국인들도 이를 따르고 있다. “화교”(華僑)는 중국 국적을 보유하고 해외거주 중국인을 지칭하지만, “화인”(華人)“은 혈통과 인종으로 중국인이나 주재하는 현지국가의 국적을 취득해 살고 있는 중국인으로 구분한다. 동남아 중국계는 "말레이시안 챠이니스", "싱가포리안 차이니스", “인도네시안 챠이니스” 등으로 "화인"(華人)이라 칭하고 있다.

피와 땀의 처절한 삶, ‘쿨리’와 공시(公司)

화교(華僑)들이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 南洋)로 진출하여, 화인사회(華人社會)로 형성되기 시작한 때는 중국대륙을 떠나 해외로 나가던 14세기부터 이다. 중국 남부지방인 광동성(Guangdong)과 복건성(Fujian)지역 인들이 남양(南洋), 즉 남해(南海)를 따라 삶을 향해 개척해 나간 것이 화인(華人)역사의 시작이다. 이들은 베트남, 보르네오, 필리핀 군도를 거쳐 동남아시아 전역에 퍼져 나갔고 가족과 혈연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개척해 나갔다. 화인들은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를 “남양”(Nanyang,南洋)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은 노예와 같은 품팔이 막 노동꾼들로 서구인들로부터 "쿨리"(coolies‘ 苦力)라 불리웠고, 부두 노동에서부터, 농장, 짐꾼 등 막일에 가릴 것 없이 몸 부딪쳐 일한 사람들이다. 말레이시아 화인 지도자는 이들에 대해 "피와 땀으로 빵을 얻었다."( They had in their bread with sweat and blood)고 지적하고 있다. (Asia Week, Aug 24, 1994)

남양화인(南洋華人)들은 단신으로 해외 나와 죽을 고생을 감수하며 일하였고, 가족 형제들을 부르기도 하며, 찾아 나오기도 했다. 길가 노점식당을 열고 가게를 내었으며 밤낮 가리지 않고 쉴 틈 없이 일하였다. 해외 생활을 익히면서 가지 뻗어 가듯 형제자매, 인척들이 주변에 삶의 터전을 개척하고 오늘날 거대한 화인기업(華人企業), 자본(資本)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공시"(Kongsi,公司) 조직을 가지고 가족, 혈연, 지연, 동업관계로 독특한 상업조합(商業組合)을 형성해 상부상조, 상호 협력하여 자본을 증대 시키며, 화인사회(華人社會)의 질서를 수립해 나갔다.

차이나 타운/ 차이나타운 내 '동대문시장'도 있네/ KLCC 상권은 중국인 화인들에 있다.

오늘날 이들 화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력은 중국 본토 해외 투자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 홍콩 대만의 외환 보유고 만해도 1천7백억 달러(92년말)로 이는 미국과 일본의 외환 보유고를 합한 1천4백40억 달러를 훨씬 넘는 숫자이다. 이외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 각국에 퍼져 있는 화교자본을 합친다면 단일민족으로써 세계 최대이다. 전 싱가폴 수상 이광요는 "전 세계 화교 자본으로 중국을 조직적으로 지원하자"하여 세계에 주목을 받고 있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실제로 동남아 화인들의 자본은 중국본토의 버팀목이 되고 있으며, “아시아는 화교 자본이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하며, 세계경제를 흔드는 “그로벌 파우워”(Global Power)가 되고 있다. 오늘날 화인들의 움직임은 세계 10대 뉴스에 들어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남양화인(南洋華人)들은 주재하는 지역의 토착민이나 정부의 협력을 받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질시와 경계, 배척과 박해를 받았다. 더욱이 본국 정부 즉, 중국으로부터 지원 받은 것도 아니다. 무관심과 냉대를 받아 왔다. 말레이시아 화인들이 얼마나 수난을 당하고 박해를 받았는지는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말라카에는 일본군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추모비가 서 있고, 말레이시아 건국 중에도 공산 게릴라로 몰려 무수히 학살을 당하였으며 감시와 질시 속에 숨죽여 살아온 것이다.

이로인해 화인들은 도시로 몰려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토착민들로부터 경계와 감시, 배척당하고 있으며, 자녀 교육과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들은 묵묵히 감수하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굳굳히 살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화교들은 "말레이시아 화인 협회"(MCA)를 조직하여 정치의 핵을 이루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화합과 일치"를 구호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미뿌드라(Bumipurta) 정책"으로 토착민들을 보호 우대하는 정책을 각 방면에서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이젠 저들의 경험과 자본으로 중국 본토까지 도우며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중화대회당 / 말레이시아 화인협회(MCA) 중앙당 빌딩/ 오늘날 중국인 화인들 상업빌딩들


중국인 화인들의 가치관과 삶

또한 남양 화인들은 혈연, 지연 중심의 상부상조의 독특한 "공시"(Kongsi, 公司) 구조로 자치(自治), 자율(自律), 자급(自給)의 체제를 발전시킨 "중화회관"(中華會館)을 세워 중국인문화(中國人文化)를 잊지 않고 계승하도록 교육과 중국문화 함양에 힘쓰고 있다. 콸라룸푸르에서도 볼 수 있는데 차이나타운 부근 국립회교사원과 철도역, 메르데카 스타디움 교차로 중심에 마치 백악관 마냥 서있는 좀 우중충한 건물의 "중화대회당"(中華大會堂)인 "중화회관"(中華會館)을 볼 수 있다. 남양 화교들은 중화회관을 세워 "중국인 학교"를 세우고 지원하며, 중국어와 역사 문화를 가르치고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중국인들의 이상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격이다. 그들은 나약한 지성인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정의를 용감히 실행하는 사람이 인격을 지닌 사람이다. 즉 중국인(中國人)들의 이상적인 인간상(人間想)은 인격의 3요소인 "지인용"(智仁勇)을 지니고,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힘써 자신의 일에 충실(忠實)하며 의(義)를 위해 용감한 사람이다. 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흥사단 4대 정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의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 황당무계할 정도로 용감한 정의 사나이뿐만 아니라 정의의 여걸(女傑)들이 등장하고 있다. 열대의 무더운 말레이시아에서 체육관을 열고 무술을 배우는 사람도 가만히 보면 중국계 학생, 청년들이다. 우리나라의 태권도(跆拳道)도 우리 한국 교민들은 안 가르치지만, 중국계 학생들은 태권도복에 "태권도"(跆拳道)라고 써놓고 남녀가 익히고 있음을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는 태권도 구호가 “한국말”이라고 흐믓해 할 때 저들은 앞차기를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도 이른 새벽에 공원이나 집안 뜰에서도 고요히 움직이는 "쿵후", "태극권"을 춤추듯 연마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인 종교생활과 우리의 동반자 화인 기독교

남양 화인들의 생활 속에는 유교(儒敎), 불교(佛敎), 도교(道敎)에 조상숭배(祖上崇拜)의 정령숭배(Animism)까지 혼합 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저들은 조상숭배를 통한 재신(財神)을 열심히 섬기고 있다. 화인들의 절기와 명절 삶의 순간순간 이러한 종교생활과 떼어놓을 수 없다. 복권(福券)을 사고도 향 피우고 합장하며, 자녀들을 해외 유학 보내면서도 부적(符籍)을 지니게 하여 보낸다. 집이나 토지를 매입할 때, 상점을 정하고 사무실을 배치 할 때 가구 위치까지 풍수(風水)를 보고 정하며, 출생과 결혼 때 조상 신단에 향 피우고 합장한다. 장례식 때에는 승려를 불러 복잡한 의식절차를 지내며 각종 모임마다 종교의식으로 차있다. 중국인의 종교는 생활과 삶, 문화의 모든 면에 퍼져있다. 종교를 제하고는 중국인의 삶을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중국인 사원에 가보면 불교(佛敎)도, 유교(儒敎)도, 도교(道敎)도, 아닌 모두가 한자리에 혼합 되어 있는 “중국식 종교”(Chinese Religion)이다. 중국인들의 종교 생활은 현실주의에 서 있으며 가만히 보면 신이 아니라 인간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저들이 구하는 가치관, 인간다움이란 재물, 돈, 즉 현실적인 힘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동남아 화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를 세우는 기독교의 중심 세력이기도 하다. 동남아 “개신교”나 “캐토릭” 교회의 중심세력이다. 이들은 교회명칭도 “화인감리교(華人監理敎)”, 화인장로교회(華人長老敎“) ”화인연회(華人年會), 화인노회(華人老會)“라 하며, 아시아는 물론 세계 기독교계와 단체들에서 그들의 활동은 눈부시다. “세계기독교협의회“(WCC), ”아시아교회협의회“(CCA), 동남아 각국 ”기독교협의회“(NCC), ”복음주의협의회“(NECF) 등 유력한 세계선교단체와 연계되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실제로 화인교회들은 ”선교하는 교회“로 중국본토를 향해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으며, 단기선교로 집회 다니며, 중국 삼자교회와 지하 가정교회들을 방문하고 후원하는 선교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웨슬리 교회'/'화인연회(CAC)본부와 '화인교회'/ '복음당'교회와 교육관


우리의 선교는 홀로 사역하는 일방적인 선교가 되어서는 않된다. 우리는 중국대륙, 대만 만이 아니라 동남아 화인(南洋華人)들을 눈여겨보고, 우리의 세계선교의 파라다임을 전환시켜 선교동반자(Partner)로 중시하는 선교정책을 세우고 “화인기독교”(華人基督敎)와 동반자 정신(Partnership)으로 긴밀한 선교협력(宣敎協力)을 기해야만 한다.


해외에서 “차이니스 뉴이어”, 설날을 맞으며,

나는 올해, 2011년으로 선교지에서 23번째 “챠이니스 뉴이어”(설날)을 맞는다. 이제 화인들과 같은 해외교민으로써 우리 한인교포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더욱 힘써 땀 흘려 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동남 아시아인들에게 조국의 국력을 과시하며, G20 주최국이요 경이적인 경제적인 성장, 한류(韓流)를 자찬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의 기술과 재능이 세계중심, 선진국 수준이라고 자만할 때도 아니다.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개인 사업가나, 상사직원이든, 공관원이든, 선교사이든지 더욱 힘써 연구하고 노력하며 일해야 할 때이다. 해외에서 외국인(外國人)으로 인생을 즐기며 여유 부리고 살 때도 아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한민족으로 국적 있는 교육, 전통과 역사 있는 교육을 시키며 세계인으로 양육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화인세력(華人勢力)은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냉대와 박해, 도움의 세력이 없는 곳에서 "피와 땀"으로 개척한 저들의 삶을 간과해서도 않된다. 남양 화인(華人)들이 세계 화교(華僑)들의 중심이 된 것을 우리는 눈여겨보고, 우리 한인 교민들도 조국의 해외개척자로써 더욱 힘써 일하며, 땀 흘려 힘써 일하는 개척자로써 서로를 세우고 붙들어 주며 함께 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기독교는 화인기독교를 세계선교 동반자(Partner)로 주목하여 선교정책을 세우고, “화인기독교”(華人基督敎)와 동반자 정신(Partnership)으로 세계복음화를 위해 선교협력(宣敎協力)해 나가야 한다* (사진제공,노종해; 2011.1.8.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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