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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0-10-30
작성자 관리자 (admin)
십자가 언약
렘 11:4, 고전 1:22-25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11:4)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2-25)

지난 26일 미시령 울산바위 전망대 인근 내리막길에서 단풍 관광객들을 태우고 가던 관광 버스가 긴급 제동시설 옆 비탈면을 들이받아 1명이 숨지고 39명이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오래 전 스위스에서 어떤 분이 관광버스를 몰고 내려가다가 관광버스 브레이크가 파열되었습니다. 내려가는데 어린 아이가 도로 가운데서 놀고 있었습니다. 안에 있는 분들도 놀랍니다. 이 운전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두 말도 못하고 정말 우리 모두가 죽느냐? 저 아이는 어떻게 하느냐? 이런 긴박한 순간에 있었습니다. 그 때 운전기사는 방향을 트는 대로 이쪽으로 가면 이쪽 다 죽습니다. 낭떠러지에 다 떨어집니다. 그런데 운전기사는 아이 있는 쪽으로 가서 아이를 치고 그 아래에 내려가서 섰습니다. 버스 승객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죽었습니다. 모두 너무 놀랐지만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은 하나도 안 우는데 운전기사가 우는 것입니다. 운전기사가 비통에 빠졌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자기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 앞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살리려고 하나님의 아들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치고 우리를 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아버지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십자가 때문에 살았습니다. 십자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나 욥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보았을까요? 보지 못했을까요? 예!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욥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출애굽의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았고 믿었을까요?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오늘 이 문제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욥보다 그 다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보다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마 11:23, 눅 10:11)고 하셨습니다.

오늘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배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믿음보다는 자꾸만 어떤 증거를 더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고 했습니다. 십자가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더 이상의 증거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전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죄를 사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많은 것 가운데 이 십자가를 오페라로 말하면 크라이막스로 만들었습니다. 십자가에 모두 맞춥니다. 그래서 우리가 슈퍼스타나 좋은 기독교의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면 모두 어디에 맞추느냐? 포인트가 어디냐?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알면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믿으면 우리 모두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두 담겨 있는 것, 하나님 은혜의 모든 것, 우리를 위해 대답하시는 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대답하십니다. 이 한 분이 지신 이 하나의 사건이 온 인류의 문제를 천만가지 억만 가지 많고 많은 인간의 고민과 문제를 풀어주고 짐을 벗겨주며 길을 열어줍니다.

법을 공부하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미국의 법은 많은 내용이 성경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미국에는 어떤 법이 있느냐 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그것이 설령 지나가는 말이라고 해도 어떤 사람이 그것을 진심으로 믿고 따라했다가 손해를 보았다면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책입니다. 약속의 책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받았던 십계명을 담았던 궤의 이름은 언약궤 또는 법궤라고 말합니다. 신학용어 중에는 계약신학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계시 내지는 특별한 은사를 사모하는 경향이 많지만 신앙이 깊어질수록 거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못 믿을 때 그런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그런 증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그 증거를 더 많이 받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이스라엘 출애굽 백성이 있었습니다. 홍해의 바닷물이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어디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그러한 광경입니까? 지금이라면 비디오로, 사진으로 찍어놨을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정말 대단한 광경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목격한 백성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 때도 사람들은 수많은 병자가 고침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나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남자만 오천명이 넘게 먹은 오병이어의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수만 명이 먹었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다 뒷걸음질 쳤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향해 그분의 죄는 없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 소리만 울렸습니다.

하나님의 증거가 우리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증거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나 욥은 아무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시기 전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했을 때 이 한 말씀을 믿고 떠났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75세면 살만큼 살았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이사를 갑니까? 새 땅은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면서 있었다면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났습니다. 여기 잘 보세요? 하나님의 증거가 먼저 아브라함에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 양털시험을 한 것과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냥 같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라고 했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욥에게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 어떤 증거를 보여 주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욥은 정직하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영혼에 선악을 알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잠 20:27) 사람의 양심은 속일 수 없도록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다른 사람 다 속여도 자기는 속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속이지 못합니다. 사람의 깊은 곳 '양심, 영혼'을 알고 게십니다.

반도체가 요즘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아십니까? 나노(nano)시대입니다. 하도 어려워서 쉽게 말하면 머리털 하나로 천 개를 나누는 것이 나노라합니다.
밀리(milli)가 천 분의 일이고, 마이크로(micro)가 백만 분의 일입니다. 그 다음이 나노(nano)입니다. 십억 분의 일을 말합니다. 머리털 하나로 10만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시간으로 말하면 1초의 1/10억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나노는 세계에서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영국이나 독일이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이 비슷하게 가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우리가 대단히 앞서있습니다. 인터넷이나 컴퓨터는 우리가 한 30년 늦게 시작했지만 나노는 지금 같이 가고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사람도 나노를 만듭니다. 지금은 머리카락 같은 것 하나에 넣을 수 있는 것을 불과 30년 전 방만한 컴퓨터였습니다. 이것이 나노시대입니다.
구약시대가 아날로그 시대였다면 지금은 나노시대입니다. 구약이 율법시대이면 지금은 십자가 시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아무리 깊은 것도, 아무리 어려운 것도 모두 풀어주고, 모두 대답해주며, 모두 해결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으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모두 승리합니다. 어떤 문제에서도 승리합니다.

동물에게 본능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본능이 있는 것입니다. 거북이가 바닷가 모래언덕에 올라와 알을 낳습니다.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는 물이 있는 바다로 가야 산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서 바다로 갑니다. 연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왜 이 정직에서 벗어나 있습니까? 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있습니까?

사탄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는데 사탄은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최초의 거짓말입니다. 이 거짓말은 누구에게서 왔습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은 모두 거짓입니다. 예수님께 세 가지 시험을 할 때도 다 거짓입니다. 거짓으로 유혹합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눅 8:12)

사탄의 거짓 속임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책망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회개치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잠 15:32)고 했습니다. 영혼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모르는 겁니다. 여러분도 혹시 영혼을 우습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무슨 영혼이 있어?' 그러면 큰일납니다. 세상축복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 득이 되는지 해를 입히는지 알고 세상의 축복을 말해야 합니다. 사탄은 세상의 것으로 우리를 미혹합니다. 예수님은 범죄한 팔다리 끊고, 세상의 것을 버려서라도 영혼을 구하라고 말하십니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잠 16:17) 구약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저 거짓말 안 시키고 정직히 사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정직히 사는 것만으로 안 됩니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정직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그 정직한 것의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표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정하셨습니다. 그 표준을 정하셨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8, 막8:3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오래 전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산중턱에 비행기가 추락하여 여섯 명의 희생자를 내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현장 가까이에는 교회훈련센터가 있음을 알리는 68피트 높이의 철탑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AP통신이 전한 사고의 원인은 그 철제십자가에는 늘 불이 켜져 있었는데 그날 따라 그 십자가의 전등불이 꺼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지역을 운항하는 항공기들은 십자가 탑이 밝혀주는 불빛을 보고 그곳을 지나곤 했는데 그 날은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에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불꺼진 십자가는 생명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믿을 때 불이 들어옵니다.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십자가입니다. 천하를 모두 넘어뜨려도 십자가 앞에는 맥을 못 춥니다. 십자가를 말해야 합니다. 십자가만 말하고 보여주면 사탄은 벌벌 떱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진실이 어디에 있습니다. 진리가 어디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십자가에 계십니다.

본문 22절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를 전하니" 이것이 참 소망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유대인처럼 표적만 구해서는 안됩니다. 헬라인은 지혜만 찾습니다. 다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십자가보다 먼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십자가와 바꿀 수 없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4) 주님과 함께 십자가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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