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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0-10-11
작성자 관리자 (admin)
주님을 화나게 하지 마세요.
마 21:12-13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예전에(1989 ?) 한겨레신문에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하나님'은 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며 '하느님'이 문법상 맡는 용어라고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답해서 왜 개신교에서 하나님으로 사용하는지 다시 써서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감사하게 독자투고란에 제법 크게 싫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는 겁니다. 혹 원고료라도 주려고 하는 건가? 아니면 벌써 유명해 졌나? 아마 면도하다 받았는지 약간 베었습니다. 피도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흥분해 뛰어나오다 책상에 발이 걸려 그렇지 않아도 파고 들어가는 발톱 때문에 아픈 엄지발가락이 뼈저리게 아팠습니다. 얼굴엔 피가 묻어 있고 발은 아파 절뚝거리면서 수화기를 잡았습니다. 숨을 벌떡거리며 "전화 받았습니다." "여기는 한겨레신문사입니다. 선생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 다음에 "저희 신문사에서 나오는 한겨레21을 1년 간만 구독해 주세요. 5만원이면 됩니다." 저는 6개월만 구독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실망이 얼마나 컸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단지 나의 돈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실망이 크겠습니까? 그 사람이 장사꾼이라고 해도 화가 날 것입니다. 하물며 믿음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면 얼마나 망연자실하겠습니까?

때때로 종교가 이익과 특권을 위해 이용되었는데 그럴 때는 으레 두 가지 결과가 따라다니게 됩니다. 사람들의 착취와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셔서 제일먼저 성전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번 주말이 되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십자가에 죽으심을 알고 계십니다. 지금은 월요일입니다.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실 때 나귀새끼를 타셨지만 나름대로 화려한 입성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왕의 행렬처럼 호산나를 외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깔고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유월절 기간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성내는 붑벼습니다. 이제 그 호산나 찬양 소리가 사라질 무렵 저녁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막 11:11)고 했습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성내를 가득 메웠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보신 것은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비둘기사고 돈 바꾸느라 사람들은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완전히 성전이 시장 바닥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13절)

무엇이 예수님을 이토록 분노하게 만들었습니까?
신앙을 빙자하여 특권을 누리고 있는 성전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때는 유월 기간이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제일 큰 명절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절기이기도 합니다. 전국각지와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두 가지 의무를 이행해야만 했습니다.

첫째는 희생양이나 비둘기를 드려합니다.
자신을 대신하여 죽어야 할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키우던 것이나 1년 동안 준비해서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몰론 사람들은 동물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준비해 간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 다른 곳에서 가져온 동물은 흠이 있다고 불합격 판정을 받는 겁니다. 따라서 성전 안에서 산 비둘기 만이 흠이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나 자기 내들이 파는 비둘기만 희생 제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렇다보니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둘째는 성전 세를 내야했습니다.
일년에 한번씩 부과되는데 유월절 기간에 제사장들이 정한 이 지역의 화폐로만 내야 했습니다. 외국 돈 뿐만이 아니라 자기들의 돈도 바꾸어야 했습니다. 수수료 또한 자기들 마음대로 챙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유월절에 참여하는데 왜 이렇게 복잡한 겁니까? 돈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합니다.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강도들이 지키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꾼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충동에 의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기도하러 가야 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일수록 더 하나님을 만나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못 만납니다.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출 22:22-26)

가난한자를 건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에 9:22) 부림절에도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날입니다.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시 9:12) 고 하셨습니다. 이런 증거는 성경에 깔렸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가난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강매의 경험을 한두 번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아주 사람이 기분이 나쁩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이용하여 강매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딛 1:11)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돈벌이되는 환자만을 좋아한다면 큰 문제 아닙니까? 제가 치아가 많이 안 좋아 치과에 자주 가는 편입니다. 제 생각이 잘못되었기를 바라지만 치과에 가면 제 치아를 보면 의사선생님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돈벌이되는 환자가 왔다는 거지요. 한번은 지금까지 잘 사용하는 치아를 다른 곳에서 하고 왔는데 잘못 되었다고 빼고 다시 해 넣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고집부리고 안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잘 쓰고 있습니다. 환자를 고쳐 통증을 없애주고 치료해줄 생각은 없고 돈벌이만 관심을 가진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빙자한 돈벌이 수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7-18) 고 했습니다. 결국 이런 유대인에게 내린 하나님의 뜻은 이제 더 이상 특권층으로, 선택받은 선민으로 남겨두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하나님의 성전을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는 이스라엘사람에게 더 이상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천국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 다른 백성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든지 이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 11:21) 무서운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적당히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육신에 거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영적인 생활을 위하기보다는 육을 먼저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적인 육신 적인 성장과 성공에 지나치게 현혹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마치 큰 교회를 건축하지 못한 목사는 실패한 목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좋은- 차를 타지 못하고 큰집에서 살지 못하면 실패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공의 여부는 천국에 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겁니다. 영적인 삶입니다. 이런 말씀드리면 오해하실 지 모르지만 큰 회사 다니다 나오신 분들 보면 자기가 먼저 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다녀도 되는데 집사람 말리는 대도 더 이상 동료들, 부하직원들 잘리는 것은 볼 수 없다고 자기가 나온 겁니다. 세상 적인 관점에서는 별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직장 일찍 쫓겨난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 까지 나만 잘살지는 마십시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월요일 저녁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주변 감람산 기슭에서 밤을 새우시고 화요일 아침에 예루살렘 성을 다시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긴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면서 저들의 영혼을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입니다(마 21:33-45).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세 주고 떠났는데 저들은 주인의 아들이 오자 죽였다는 겁니다. 이 예루살렘의 주인은 하나님이 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성전에도 못 들어갈 형편입니다. 결국 아들을 돌로 쳐서 죽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혼인 잔치를 배설한 왕의 이야기입니다(마 22:1-14).
여기서도 보냄을 받은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 청함에 응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반응입니다.

백화점에서 놀이공원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더 이상 쇼핑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흥미도 없는 일입니다. 아이가 없어졌는데 지금 그 아이를 찾는 일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에너지는 아이를 찾는데 집중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구하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값은 그것이 얼마 건 결코 비싼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에너지를 쏟아도,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지나침이 없는 것입니다. 자식을 찾기 위한 길은 아무리 멀어도 갑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의 그 손길 느껴보십시오.
노아는 구름이 걷히고 무지개가 나타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늙은 사라의 태에 손을 대면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야곱은 실패를 통해서 그것을 알았습니다.
바로도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나 그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로 그 민족이 바로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청함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의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처절한 고통과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릴 뿐입니다.

오래 전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들렸던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한번 들어보십시오.

"30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 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32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33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4:30-35)

세상을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상고해 보십시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더 위대하신 일이 있는가? 우리에게는 십자를 지고 가신 예수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나를 위해 오신 분이 있습니다. 이 방법 위에 더 좋은 길이 없습니다. 새롭게 놓인 길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청함입니다. 거절하지 아니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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