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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아프리카 등록일 2010-09-06
작성자 관리자 (admin)
우리는 색깔만 다른 아프리카인
안식년기간중에
안식년기간중에 함께 해주신 파송교회, 후원교회, 귀한 후원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소식이 많이 늦었지만 이곳은 함께 역사를 시작해도 한국은 21세기, 여긴 아직도 구석기 시대입니다.^^
인터넷은 오늘 한인교회에와서 잠시 빌려서 소식을 전합니다.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며 감사의 소식을 전합니다.



너무나 낯선 풍경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한국과는 그렇게도 다른 사람들과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도 오히려 우리가 언제 안식년으로 한국을 다녀왔었냐는 말을 나눌 만큼 아프리카는 이미 우리에게 와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프리카는 늘 우리가운데 있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적응해가야 할 힘든 노력도 많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다만 불편함과 덜 깨끗함은 아프리카의 한 모습이기에 피할 수 없는 생활이지만 오히려 빠르게 긴장해야 하는 한국의 생활과 비교한다면 더 나은 후진형 선택인지도 모릅니다.

인천공항을 출발, 9시간 비행 후 두바이 공항에서 6시간을 체류한 뒤 비행기를 바꿔 타고 케냐 나이로비에 입국했습니다. 짐들을 가득 실은 손수레 4개를 모두 가득 채워서 승합형 택시를 타고 은총, 예은이가 다니던 학교로 도착했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학교 동료들 때문에 오히려 당황하리만큼 마음이 푸근해진 아이들은 쉽게 학교 기숙사로 돌아갔고, 며칠 뒤에는 물갈이를 하는지 설사와 열로 둘째 예은이는 며칠간 양호실 신세를 지고 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케냐에서 3일을 체류하면서 운전면허증 갱신과 은행재개설 등 몇 가지 업무를 보고 케냐를 출발, 육로를 이용해서 우간다로 13시간이라는 긴 여정 끝에 밤 12시경에야 도착했습니다. 아직 살림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가지고 온 옷가지와 필수용품들이 전부인 채 덩그러니 텅빈집에서는 목소리가 울릴 만큼 썰렁 그 자체였습니다.

300킬로미터 떨어진 아싱에 사역지에 두고 온 생활도구들을 가지러 지난 금요일 캄팔라를 출발했습니다. 교통상황이 워낙 나빠 예상시간보다 많이 지체되다보니 저녁 8시에야 현지 사역지에 도착했습니다. 1년 가까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 보고 싶기도 했고, 변화가 있을려나 했지만 그곳은 사람도 그대로, 환경도 그대로 변한 것 없이 모두가 그대로였습니다. 몇 명의 목회자들과 암미 1회 졸업생 자매 몇이 기다리고 있다가 춤을 추며 환영을 해 주었습니다.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결국 우간다로 돌아왔음을 선언하고 그간의 일들과 앞으로의 아싱에 선교센터와 사역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믿고 간 아브라함처럼 지금은 비록 준비된 자금은 없지만 온 교회들의 신자들이 힘을 모아서 한번 시작해 보자고 했습니다. 무척 자극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룻밤을 그곳에서 보낸 후 다음날 이른 아침 살림들을 모아둔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케케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먼지속에 고이 보관된 우리 살림들을 바라보고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1년이나 묶여 둔 살림들, 어쩌면 우간다로 못 올수도 있다고 하고 떠난 그곳이었지만 그들은 우리 살림에 손 하나 대지 않고 그대로 보관해 두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네 것 내 것 개념이 좀 약한 민족입니다. 특히 외국인들의 살림은 탐을 내면서도 쉽게 가져가는 전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박스하나, 보자기하나 손대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서 다시한번 감탄했습니다. 참 다른 사람들입니다. 여느 후진형의 사람들과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 그래서 다른 어떤 나라의 제안도 마다않고 우간다로 다시 돌아온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살림을 차에 실을 수 있는만큼 가득 싣고, 몸살 난 아내에게 갖다 주라고 닭 한 마리까지 얻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강의실 2개와 남녀숙소, 2층은 선교사 주택 등의 건축 개요를 보여주면서 약 3천평 정도 되는 아싱에 교회 뒤편의 넓은 교회터에 설립할 위치를 얘기하면서 현장을 둘러보고 아싱에를 출발해서 캄팔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출발하는 저에게 여러 명이 깨끗한 옷을 입고 환송을 하러 또 나왔습니다.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곧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는데 그곳 동네에서 작은 약방을 하는 자매는 손에 종이돈 하나를 넣고 악수할 때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보니 우간다 5천원권 지폐 한 장이었습니다. 돈은 필요없으니 가져가라고 했더니 가면서 음료수라도 사 먹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외국 선교사에게 돈을 못 얻어서 안달이 나 있는데 먼 길을 떠나는 외국 선교사에게 오히려 음료수 사먹으라고 돈을 주는 이런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건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돈으로 약 3천원 정도되는 돈이지만 가난한 시골동네에서는 크면 큰 돈이지 작은 돈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2년간 열심히 교육해서 졸업시킨 보람이 결코 헛됨도 아니었고, 한국에서 이들을 열심히 자랑했던 그 자랑이 결코 과장도 억지도 아니었음을 다시한번 보여주는 귀한 감동이었습니다. 제가 이 열악한 우간다를 다시 선택해서 온 이유도 바로 이들 때문이었습니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고, 열정과 순종과 헌신으로 가득 찬 이들, 이들을 통해서 미전도 종족이 있는 우간다 동북부와 동아프리카 전역을 위한 위대한 선교사역을 계속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참 복받은 선교사라는 생각을 계속합니다. 선교지에서 상처받고 배신당하는 선교사들이 많은데 나는 이들같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니 제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저들의 표현보다는 저들이 있어서 제가 행복하다는 표현을 더 하고 싶은 행복한 현장입니다.

이제 더 크고 위대하고 알찬 사역을 해야 할 때입니다. 굳건한 선교철학과 바람직한 정책과 전략으로 우간다와 동아프리카를 위한 걸음을 더 크고 힘 있게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준비된 자금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 현장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결코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있기에 이번 사역기간 중에는 뭔가의 큰 일이 일어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종합선교사역을 위한 지역별, 거점별 선교센터를 세워나가는 것이 저의 선교전략입니다. 얼마나 많은 선교센터들이 세워져서 얼마나 많은 지역의 사람들을 모두 복음화시킬지는 알 수 없지만 21세기 선교에 가장 영향력있고 효과적인 또 하나의 선교정책을 펼쳐가고자 합니다. 이제 아싱에에서 제1호 아프리카선교목회연구소(암미) 선교센터작업을 믿음으로 첫 삽을 뜨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서 변방이 아니라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력한 거점으로 사용되어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가 조국 교회와 모든 후원자님들께 함께 하셔서 감사하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0년 9월 5일 주일아침에

우간다 선교현지에서 이헌도, 현여진 선교사 올림.


기도제목 :
- 은총, 예은이가 케냐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학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 아싱에 암미 1호 선교센터를 믿음으로 시작하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시도록(100,000달러).
- 아싱에 지역에 우물이 필요한데 기금이 마련되도록(15,000달러)
- 아프리카선교목회연구소 사역이 우간다와 동아프리카를 위해서 더욱 발전되어지도록.

"선교의 기쁨, 아프리카의 희망, 우간다에서 시작합니다."
홈페이지 http://cafe.daum.net/haz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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