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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0-07-22
작성자 관리자 (admin)
용서(1)
사 55:6-8, 롬 8:1-2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5:6-8)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현대인들은 굉장히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가 대단히 좋습니다. 아마 우리 다음세대가 더 머리 좋을 겁니다. 그런데 이 좋은 머리를 이렇게 활용합니다. 죄의 문제를 가급적이면 최소화시켜 보려고 합니다. 우선 현대인들은 죄에 관한 이야기를 굉장히 듣기 싫어합니다. 아마 오늘 설교 듣다가 굉장히 뒤틀려 가지고 듣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 먼저 번처럼 축복설교 해 주세요? 그렇게 말씀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들어야 됩니다. 몸에 좋은 것은 대부분 쓴 약입니다. 우리 죄의 문제를 덥고 얼렁뚱땅 넘어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주앙교회는 비교적 죄의 문제를 솔직하게 많이 이야기하는 편인데도 여러분들이 떠나지 않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현대인들은 먼저 죄의 문제를 표현부터 바꿔 보려고 노력들을 합니다. 한마디로 죄의 문제가 직접적으로 나의 문제이고 내가 회개할 일이라고 가르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남에게 문제를 돌리고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약점이라는 말로 바꾼다든지 아니면 정신적인 불안증세 등으로 바꾼다든지 여러분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 표현을 바꾸어 가급적이면 죄라는 말을 듣고 말하지 않고 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죄를 범하는 어떤 요인이 나타날 때에는 내가 쉽게 그 책임을 벗을 수 있는 제 3자에게 다 떠 맡기려하는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 사람 저렇게 남을 미워하고 그야말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뇌에 종양이 있어서 그러는 지도 모르니까 병원에 가서 세밀하게 뇌파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정말 병원에 가서 뇌파 검사를 받았더니 미국에서 말입니다. 사랑해야하고 남을 관용해야 하는 뇌 세포를 종양이 꽉 누르고 있어서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었다는 어떤 의학적인 발표가 난 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종양을 떼어 냈더니 그 다음부터 너그러워지고 좋아지더라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죄! 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나빠서가 아니라 신체 안에 어떤 결함이 있어서 그러니까 그 결함을 찾아내면 된다 하는 식으로 빠져나갑니다.
또 이 사람이 자란 배경을 조사해보니까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니까? 고아원에서 자랐으니까? 아니면 아주 어렸을 때에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자꾸 과거를 추적을 합니다.
그래서 무엇하나를 발견하면 "당신이 이와 같이 나쁜 짓을 한 것은 당신이 악해서가 아니고 당신이 자란 과거가 이래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당신 너무 과히 염려하지 말고 모든 책임은 과거에 있으니까 거기에다 책임을 떠맡기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오늘 현대인들이 죄를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미국에서 정신과 하시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상담 클리닉을 만들어 놓고, 부부가 너무 싸우니까 "당신들이 이렇게 싸우는 이유는 마음 속에 스트레스가 쌓여 가지고 그것을 풀 길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싸우는 것이요. 그러니까 내가 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그대로 하시오." 하고 옆에 빈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의자를 하나 가운데 놓고 그 위에 이름 같은 것 하나를 얹어 놓습니다. "자, 지금 이것이 당신 남편이오. 지금부터 내가 야구 방망이 하나 줄 테니 실컷 두들겨 패시오." 일본 사람도 언제 보니까 폐차장에서 야구방망이 하나주고 마음대로 두들기고 패고, 깨뜨려서 스트레스 받은 마음을 다 풀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정말 해결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실컷 두들깁니다. 그리고 나와서는 "정말 이제 후련합니다." 그리고 또 쌓이면 또 가서 그렇게 하고 갑니다. 자꾸만 원인을 제 3의 어떤 책임져야할 대상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거기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것이 현대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방법으로 우리를 죄인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죄를 책임져야할 제 3의 어떤 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계속 죄를 회개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면 하나님처럼 바보스러운 존재가 없습니다.
제 3의 구실을 하나님이 모르고 계신다는 이야기니까 심리학자만도 못하고, 정신분석학자만도 못하고 카운슬러보다도 못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제 맘대로 산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모습은 솔직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생각이 악한 것뿐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결손가정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아원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지금부터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면 됩니다. 남에게 제3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 맙시다. 솔직하게 하나님께 "내가 죄인입니다"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알랭이라는 철학자는
"진정 우리가 미워해야 할 사람이 이 세상에 흔한 것은 아니다.
원수는 맞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작 내 마음속에 있을 더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탈린(1879.12.21-1953. 3. 5)은 정교회 티플리스 신학교 신학생이었습니다. 목사가 되려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성경을 버리고 카를 마르크스, 플레하노프, 블라디미르 레닌 등의 책을 보고 공산주의를 선택했습니다. 소련 공산당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히틀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 일뿐입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강제로 구두공장에 취직시켜 돈을 벌게 하고, 술을 먹고 때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렵게 살았다고 다 스탈린처럼 됩니까? 제가 러시아 가보니까 남자들 절반이 위스키에 찌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스탈린 아버지뿐 아닙니다. 저도 신문돌리면서 자랐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도로 닦는 노동을 시켰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다리를 저시면서 술로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사람을 마구 죽입니까?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자기의 야심을 채우고 남을 마구 죽이는 것이 합리화 될 수 있습니까?

본문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살아야 됩니다. 스탈린에게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또한 용서하면 삽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지를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차범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는 축구 인입니다. 그러나 축구인 이상이었습니다.
독일에서 뛸 때 팬들이 그를 '차붐(Cha Bum)'이라 불렀습니다. 차붐은 한 번도 유럽의 정상에 오르지 못한 두 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을 유럽의 정상에 올려놓았습니다. 독일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세 경기 당 한 골을 넣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골들 가운데 단 하나의 패널티킥 골도 없었다는 점이고, 그가 뛴 그 수많은 경기에서 그가 받은 경고는 단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그라운드의 모범생이었습니다.
1980년 독일생활 2년째를 맞은 차붐은 상대팀 수비수의 고의적인 반칙으로 척추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를 위기가 닥친 것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이런 여론을 바탕으로 형사고발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차붐은 분명한 어조로 말하였습니다. "고소는 없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는 그를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작은 것부터 용서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이메일 보내는 것도 용서가 잘 안 되는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원하지 않는 매일 보냈으니 짜증도 나겠지요? 그러나 좀 너그럽게 용서하면 됩니다. 정 받기 싫으면 요즘은 수신거부로 안보면 됩니다.
저도 미션매거진을 보내면서 욕도 많이 먹습니다. 그리고 [수신거부]라는 돌아온 매일 보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저에게 이런 매일을 보낸 분들 때문에 힘을 얻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노르웨이순복음교회 담임 이종욱 목사입니다.
매번 마다 기사를 읽으면서 감탄을 합니다. 이번 호에서도 네팔 과 두샨베 침례소식... 감사합니다.

미션매거진 271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두샨베는 타지키스탄의 수도입니다. 이곳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이 침례를 줘야 하는데 도시근처에서는 핍박이 너무 심해 침례를 줄 수가 없어 인적이 드문 3000m 높이에 있는 호수에서 침례를 베풀게 되었습니다. 산에는 눈이 쌓여 있고, 나무그늘아래 잔디밭에 앉아서 침례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꼭 천국의 한 부분 같았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주려고 물 속에 들어간 순간 물이 너무 차가워서 참고 그래도 침례를 주는데 3명까지는 참으면서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도저히 물 속에 있기 어려웠습니다.
물 밖으로 나온 선교사 다시는 물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핍박을 받더라도 밤에 도시근처에 가서 침례를 주자고 지교회 지도자에게 말하니 좋다고 합니다. 이제 밤에 도시근처에서 침례를 주려고 결정을 한 후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성도들을 바라보니, 성도들은 기대와 흥분으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선교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저들에게 이곳은 물이 너무 차가워서 침례를 줄 수 없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선교사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죽더라도 이곳에서 침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침례를 주다가 죽자 라는 마음의 결정을 하고 다시 물 속에 들어갈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30명을 다 침례를 줄 때까지 물이 따뜻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30명에게 모두 세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네팔 선교사님은 라면 끓여먹다 울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네팔 사람들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보고 울었습니다. 왜 그렇게 장애인이 많은지 그들을 그냥 모내면서 마음 아파 울었습니다.
저도 회개할 때 빼고 한번 더 이렇게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에 같을 때 선교사님과 찬송을 부르는데 지금처럼 한인교회도 없을 때입니다. 골방에 몰래 숨어서 남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부르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요? 그리고 공항에서 혼자 비행기 타고 나오는데 마치 적진에 동료를 두고 혼자 살겠다고 나오는 사람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번 화요일에 발행될 소식(272호)에는 네팔 썩띠쌀리교회 어누라는 16세 주일학교 여학생이 여름성경학교에 나오다 물에 빠져 떠내려갔습니다. 가슴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어누의 죽음으로 그 가족이 예수를 영접했다는 소식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스 마라톤에서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이란)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아테네 군이 이겼습니다. 이 승리의 소식을 아테네에 전하기 위해서 페이디피데스는 이틀동안 약 200km을 뛰어가 전하고 죽었습니다. 페이디피데스는 이 이야기대로라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기쁨을 전하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페이디피데스보다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더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다고 선포하는 것, 그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용서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본문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에서 해방 받기 위해서는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생명이 내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이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잘 오셨습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 예수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 큰 축복을 거절하지 마세요. 놓치면 정말 어리석은 분입니다. 기회는 또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시간입니다.
본문에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6-7)

내가 다른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돌로 쳤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보고 죄인이라고 하시기 때문에 내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이라고 하셨다면 죄인 맡습니다. 하나님께 대항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모르는 것이 없는 분입니다. 못하실 것이 없는 분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은 하나님을 반역한 것입니다. 사탄의 수하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사탄의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세상을 다 줄 테니 나에게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다 주지도 않지만 혹 준다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을 버려 두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롬 1:24)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뿐이며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용서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무슨 재주로 하나님께 가서 용서받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피 한 방울, 한 방울을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흘리신 것입니다. 그 핏방울은 내 죄를 덮어주고, 씻어주고, 가리워주는 피입니다. 그 예수님께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여시고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님 믿습니다."하는 뜨거운 마음이 여러분 가슴에 일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을 탓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렇게만 하시면 영원토록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고 영원한 영생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축복을 거절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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