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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선교칼럼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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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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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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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adm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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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알라룸푸 난민학교 생활 수필, [신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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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신발을 ‘life'로 설명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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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선교사로 23년째 사역하고 있는 최완숙 선교사(여,60)의 교육사역 생활 수필입니다.
"난민학교"는 6개교이며, 쿠알라룸푸르 도심에 있습니다.
최완숙 선교사 / 난민학교 교사, chwansook@hanmail.net
아이들이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신발이 어떤 예술가의 설치작품 같다. 그래서 카메라 앵글을 통해 들여다본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그냥 되는대로 생활하던 산골출신들인지라 심성은 청정하지만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져서 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 교실 앞은 밟고 밟히는 신발더미로 어지러웠었다. 그 뒤죽박죽 어질러진 신발더미를 보았을 때 요긴한 교훈 하나가 퍼뜩 떠오른 나는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처음 영어를 가르칠 때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영어문장 하나를 칠판에 썼다.
'Put your shoes in order'.
나는 신발을 ‘life'로 설명했었다. 무심코 벗어던지는 신발의 모습과 무심코 내던지는 삶의 모습을 서로 도치시켜 설명해 주었다. 아무리 허름해도 놓기에 따라 멋지고 아름답게 놓일 수도 있는 신발처럼 우리의 인생도 놓기에 따라서 아름답고 멋진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머리가 큰 아이들은 금방 알아들었었다. 따라서 신발들은 짝을 맞춰 나란히 정렬이 되었고 그 후론 새로 오는 아이들도 함부로 신발을 벗어던지지 않고 있다. 처음 오는 교사들도 신발을 벗어던지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알아채고 질서 있게 신발을 벗어놓는다.
이 신발 중에는 요즘 유행하는 무슨 무슨 케?터 신발이나 값비싸 보이는 번쩍거리는 새 신발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신발일 뿐인 신발들! ‘후줄근함’ 상표가 신발에 떡 붙어있고 그에 만족하는 발이 이 신발을 신는다. 그렇게 이 콜콜한 신발들은 마치 채소밭에 오물오물 커가는 푸릇푸릇한 생명들처럼 풋풋한 향이 난다. 꼬물꼬물 역동하며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몸짓들이 보인다.
내 신발도 같은 상표이다. 나는 우아한 원피스 차림을 편안해하는 성향이어서 슬리퍼라든가 바지차림을 싫어했지만 이젠 티셔츠와 바지, 후줄근표 슬리퍼, 왠지 근질근질해지는 강아지 캐?터가 빼곡한 헝겊가방, 이것이 나의 차림새이다. 거기다 더워서 자꾸 짧아지는 ? 커트 머리 덕인지 더운 날씨 탓에 조로하는 현지인들은 나를 40대까지 젊게 보아준다.
올해는 내가 환갑을 맞은 해인걸 절대 알리지 못하겠다. 다만 후줄근하게 살아온 이 신발 임자들과 함께 자축하고 감사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그것은 낡아빠진 부엌 테이블을 내다버리고 튼튼하고 멋진 부엌용 테이블겸용 캐비닛을 사들인 것이다. 물을 흘리는 부엌바닥에 닿지 않도록 알루미늄과 고무를 댄 깔끔한 신발을 신고 있는 부엌 캐비닛이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이젠 어떤 쥐라도 범접을 못할 것이고 아이들의 식기와 곡식들도 깨끗하게 관리가 될 것이다. 환갑이후의 삶은 새 가구를 들여놓듯 덤을 받은 샘 치니 기쁨이 몇 배가 되었다.
언젠가는 우리 교사들이 아라비안나이트에서나 보았던 앞코가 올라온 배 모양의 슬리퍼를 단체로 신고 다니기에 그 큰 신발에 내 발을 꿰어본 적이 있었다. 마치 허방을 디딘 듯 발이 겉돌아서 나는 혼자 실소를 했다. 그런 야릇한 신발을 멋지다고 허벌떡 신고 다니는 젊음의 치기가 재미있었다. 그 교사들도 이젠 멀리 지구 반대편 어디쯤에서 어떤 신발을 신고 어디를 걷고 있을런지!
2005년도에 학교가 시작되었으니 그때 그들은 한 사람도 이 신발 속에서 찾을 수 없다. 내 마음의 지평에 아직도 선명한 그 발자국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어린이날 곧잘 부르던 우리나라 동요 한 구절 처럼 그들은 둥근 지구를 한없이 걸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 사진 속의 신발임자들도 그 행렬을 이어갈 것이다.
멀리 캐나다로 이민 간 교사 통통에게서 소식이 왔다. 둘째 딸이 곧 태어나는데 그 이름을 지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새 생명의 이름을 짓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책무인지를 알게 된 기회였다. 흔하지도 길지도 천하지도 않은 이름을 짓기 위해 여러 날 고심하다가 몇 가지를 골라서 보냈다. 한 아기의 일생을 통해 영향을 미칠 그 이름을 딱히 결정짓기가 버거워서였다. 뜻은 고맙지만 최종적으로는 부모가 선택하도록 했다. 그렇게 지어진 이름이 'Dana, Iang Hlei Par(chin name)'이다.
‘이앙 흘레이 빠아르’의 뜻은 ‘은총이 꽃처럼 만발하기를 소망하는’ 뜻이라고 한다. 영어이름 'Dana'는 내가 바로 낙점했던 그 이름이어서 나도 퍽 만족했다. 그 작은 발로 시작하는 인생길에 이름처럼 축복이 임하기를 기원한다.
신발마다에는 한 생명의 인생역정이 담겨 있기 때문에 나는 길가에서나 혹은 도로 한 가운데나 지하도 계단근처에 나뒹구는 짝 잃은 신발을 보면 왠지 가슴이 철렁해지곤 한다. ‘무슨 화급한 일을 당했기에......’라고 연상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임자가 있고 단정히 신어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신발은 참 소중하다. 신고 나설 신발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마땅한 일이다.
이 사진 속에 있어야할 신발 한 켤레가 안 보인다. ‘Peter Ram Peng Uk" 14살 그 소년은 병원에서 혈액암으로 죽어 가고 있다. 이번 주 내에 죽게 된다고 의사가 선고했다. 적어도 3년 전부터 진행된 병을 부모는 늦게야 발견한 것이다. 고향을 버린 그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희망을 걸고 더 먼 길을 가려고 잠시 잠간의 광야길 같은 이 기착지에서 난민으로 머물다 그 자식을 낯선 땅에 묻게 된 것이다. 참으로 애달픈 일이다. 이 소년은 이제 신발도 목숨도 벗어날 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장 5절)”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께 소명을 받을 때 그 첫 번째 단계는 신발을 벗는 것이었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한다는 깊은 속뜻을 품고 있음을 나는 오늘 깨닫는다. 거룩한 주님과 소명을 함께 한다는 것은 신발과 같은 소모품일 뿐인 목숨을 아낌없이 벗어던지는 결단을 촉구하는 뜻임을 나는 오늘 밝히 안다. 주님 계신 거룩한 땅에 이르려는 자 신발을 벗어야 한다.
;'Peter Ram Peng Uk' 내 어린 소년아! 이 글을 마치기도 전 나는 네 부음을 듣는다.
그 날이 내 소망 데로 된다면.... 언젠가 나도 나의 조국에 돌아가고, 내 마지막 신발과 목숨을 나란히 벗어 놓는 그 날, 거룩한 주님이 계신 곳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너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을 나는 기대한다. (20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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