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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기획, 특집 > 등록일 2010-06-04
작성자 관리자 (admin)
독일의 영적 부흥을 꿈꾸며
지난 십여년간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 유럽의 부흥에 대한 강한 부담을 주셨습니다. 기독교하면 유럽, 유럽하면 기독교하던 곳이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곳으로 바뀌어서 오직 주님의 성령의 기름 부으심만을 사모하는 것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유럽 어디를 가나 반기독교적인 일들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모든 영역에서 비기독교화 과정의 심각한 영적 침체가 전 대륙을 덮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필리핀에 있을 때 “유럽 교회의 쇠퇴에 관한 부분을 직접 보게 될 것이고 또한 연구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데로 저는 영국에 잠시 체류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187교회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직접 영국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얼마나 유럽 교회의 쇠퇴가 심각한 상태인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영국 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태리, 북유럽 등 많은 나라를 방문하면서 유럽 교회의 쇠퇴는 이미 선을 넘을 정도로 돌이킬 수 없임을 실감했습니다. 많은 유럽 교회를 방문하면서 유럽 교회 쇠퇴의 원인에 대한 궁굼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열정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영국 University of Birmingham Hugh McLeod 교수를 통해 유럽 교회의 쇠퇴가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해 일어난 것이었으며 그것을 표현하면 역사적 세속화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세속화의 과정도 매우 복잡하고 또한 종합적인 것임을 알게 된 것도 그 분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저의 PhD 논문 심사에서 External Examiner 를 맡았던 David Martin교수를 통해 종교 사회학과 그리고 종교 현상학을 통한 기독교 쇠퇴의 다양한 모습들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파면 팔수록 유럽 교회의 쇠퇴가 단층적인 형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해 계몽주의를 통한 이성주의, 세속주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정교 분리의 현상과 근대화와 후기근대주의 과정이 거친 것이며 이를 통해 개인주의적이고 또한 현세적이 풍조가 교회를 떠나게 하는 종합적 영향의 결과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Famous church survived WWII

유럽 교회 쇠퇴의 가닥을 잡고 이제야 본질적 요소를 파악해서 깊이 더해가던 저에게 주님께서는 “미국 보스톤으로 가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저는 “미국도 이미 상당히 깊은 수준의 세속화 가운데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자본주의, 물질주의, 개인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받은 미국의 기독교가 특히 주류 교회가 무너지고 있음을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미국 교회의 쇠퇴는 유럽의 세속화와는 다른 형태의 미국형 세속화였던 것입니다. 유럽 대륙과는 매우 다른 세속화의 물결이 미국 대륙을 덮고 있었으며 이대로 간다면 서구 기독교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럽과 미국이 심각한 영향 아래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지게 될 것임을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전역에 가능한 부흥의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이며 또한 무엇을 해야 다시금 서구권 기독교의 부흥이 가능한지를 깊게 기도하고 또한 모색하던 저에게 주님은 강하게 유럽에 대한 부흥의 영적 소원을 주셨습니다. 매우 소수이기는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영국에서, 독일에서 유럽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또한 연합하는 지도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뿌연 안개가 걷히듯 유럽 부흥을 위한 가닥이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년동안 유럽의 몇몇 한인 교회와 교회 협의회의집회 초청을 받게 되었지만 번번히 Timing 이 맞지 않아 유럽 집회나 방문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5월 17일부터 27일까지의 에베소 연중회와 소아시아 Prayer Walk 을 계획하고 바로 이어지는 에딘버러 2010년 백주년의 일정을 맞추어 가던 중 그 사이 며칠간 이스라엘 방문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방문은 이모저모로 상황이 맞지 않아 취소하는 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터키 성회를 마치고 에딘버러 백주년 사이에 비는 몇일 동안을 다시 보스톤으로 돌아 와 쉰 다음 에딘버러 대회 참석하고 곧장 이어서 중국 상해로 가는 것으로 방향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계획을 정하는 과정 속에 뒤셀도르프의 장준서 목사님과 의견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장목사님은 차라리 몇일간 터키에서 보스톤으로 가기 보다는 편도 비행기편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독일 뒤셀도르프를 들려서 가면 좋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금의 유럽 상황과 앞으로 가능한 독일 지역의 영적 부흥의 기류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보스톤으로 돌아 가는 일정을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체 여행 일정을 보스톤에서 터키로, 그리고 터키에서 독일로 그리고 독일에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로 가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에딘버러에서 중국 상해로 그리고 바로 다른 나라를 가는 것으로 전체 일정을 재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 “과연 유럽 부흥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사역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고민을 안고 터키 이스탄불에서 독일 뒤셀도르프로 향하였습니다. 저는 매우 짧은 기간이지만 단 한순간도 무의미한 것 없이 그동안 기도해 왔던 많은 부분에 대한 응답과 가능성을 이번 방문 중에 보게 되었습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묶는 동안 많은 일들을 보고 생각하게 되었고 또한 여러번의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모든 일들을 마치고 다시 뒤셀도르프에서 영국 에딘버러로 향하게 되었고 저는 지금 비행기 위에서 지난 몇일간 경험한 일들을 돌이켜 보며 여러분과 함께 그 주님의 인도하심을 나누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너무나 세밀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을 보며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 모릅니다.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땅 독일, 30년 전쟁으로 전 국토의 3분의 1이 초토화 되어 버린 땅 독일, 그 황폐함을 딛고 일어났던 뮌쪄, 프랑케, 스펜서의 경건주의 운동과 진젠도르프 백작과 모라비안 형제들을 통해 놀라운 부흥과 세계 선교의 불길을 타오르게 했던 독일은 매우 중요한 곳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유럽 제 2차 대각성 운동의 불길을 받아 들여 새로운 영적 도약을 기약하고, 19세기 말 일어났던 성결 운동의 불씨를 받아들였던 땅도 독일 땅입니다. 이런 독일에 땅에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작된 놀라운 부흥의 불씨가운데 두 명의 여인이 독일을 방문하게 되고 그 두여인이 방문했던Mülheim 도시에 Jonathan Paul 루터교 목사의 인도를 통해 새로운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Gordon Conwell Theological Seminary 의 보스톤 캠퍼스인 CUME 에서 유럽 부흥을 애기할 때마다 꼭 빠드리지 않는 곳이 바로Mülheim Association 이었습니다. 1899년 John Alexander Dowie에 의해 Illinois 주에 Zion City 를 건설한 것에 저는 오랫동안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보스톤의 기도의 도시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Dowie 의 영향은 곧장 남아공에 Zion City 를 건설하게 하였고, 이를 통해 형성된 교단이 지금 아프리카 전체의 최대교단으로 천만에서 천5백만에 달하는 성도를 갖고 있습니다. Dowie 의 Zion City 기도 도시와 더불어 한 도시를 기도의 장소로 만들어 시작했던Mülheim 지역은 제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뉴욕을 들러 고아원 기금을 모금하려던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르웨이 감리교 목사(1800년 말의 유럽 성결 운동)였던Thomas Ball Barratt는 1906년 LA 아주사 부흥 운동의 소식을 뉴욕의 Apostolic Faith Mission 에서 접하고 체험한 후 도리어 부흥의 불길을 노르웨이로 전파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 Barratt 은 두명의 여인을 오슬로에서 독일로 보내었고 그 부흥의 불길은 독일 땅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그 곳이 바로 독일의 산업지역인 루후 계곡(Ruhr Valley)에 위치한 Mülheim 이라는 도시입니다. 그곳에 강력한 성령님의 강림이 임하였고 그곳에서 단 6주 동안에 무려 3000명이 회심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Jonathan Paul 은 Mülheim 시에서 일어난 부흥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도록 연합하였고 후에 이 운동은 뮐하임 연합체 (Mülheim Association)라고 부르는 교단이 됩니다. 이 부흥은 독일 루터 교회 안에서 교제 운동으로 (Gemeinschaftsbewegung: Fellowship Movement) 발전하면서 이 운동을 찬성하는 그룹과 반대하는 그룹으로 양분됩니다. 부흥의 불씨가 떨어짐으로 많은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데 크게 기도하는 것과 방언을 말하는 것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로 말미암아 60명의 독일 루터교회 지도자들이 서명하며 부흥의 역사를 반대하면 발표합니다. 바로 이 선언문이 독일 역사상 뺄래야 뺄 수 없는 1909년 “베를린 선언문(Declaration of Berlin)입니다. 이 선언문에서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들은 조나단 폴 (Jonathan Paul)과 그와 함께 한 지도자들을 파괴적이며 또는 마귀적이면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비난하기에 이릅니다. 강력한 저항에 부딛히게 된 뮐하임 교회는 점점 위축되어 더 이상 전 교회로 부흥의 불길을 펼쳐 나가는 일에 있어서 확장하지 못합니다. 그 이후 세계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부인하던 독일 루터 교회와 천주교회는 히틀러 나찌에 긴밀하게 협력하게 되고 성령님의 역사는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금 독일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다시 시작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만 했습니다. 20세기를 마무리하려던 시기에 놀라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시작된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기름 부으심의 중심에 서게 된 교회가 바로 Bund Freikirchlicher Pfingstgemeinden (BFP) 교단이며 지금은 600 여 교회를 이루는 놀라운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이 교단의 멤버 중 한 사람이 바로 라인하르트 본케 목사입니다. 저는 독일의 이 두 교단의 역사를 주목하였고, Gordon Conwell 신학교의 CUME 에서 늘 이 두 운동을 빠지지 않고 강의했습니다. 1909 년에 발표된 Berlin declaration 으로 강력한 부흥의 저항을 100년 동안 받아 오던 독일 교회도 새로운 영적 도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베를린 선언문에 대한 최초의 화해로 표현된 것이The Kassel Declaration of 1996입니다. 카셀 선언문은 역사상 이루어진 매우 중요한 신학적 그리고 교회론적 화해의 시도로 이루어진 공동선언문입니다.

저는 독일을 방문하게 되면 이 두분에 관계된 분들을 만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독일 체류시에 이 두 교단과 관계된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일들은 저에게 마치 안개가 걷히듯 유럽의 영적 기류들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만남이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5월 29일 독일 지역 여러 교회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연합하여 드린 예배에 가운데 일어났고 나머지는 5월 31일 BFP 신학교를 방문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다인종 교회의 연합 사역을 주도하고 있는 장준서 목사님의 인도로 토요일 말씀을 증거하기 전에 Philipp and Magarett 을 만나고 난 후 저는 집회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부흥을 위해 20여년 기도하는 너무나 소중한 Margaret and Philipp 부부는 웨일즈와 영국 출신으로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독일 지역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음을 듣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예배를 인도하기 전에 그곳에 오신 목사님들과의 교제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이집트,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독일 교회BFP 교단에 소속된 목회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독일인 목회자 중 한 분인 Jesus Hause (예수 교회)의 Claus-Dieter 목사님은 300여명의 출석 교인을 목회하고 계신 매우 영성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BFP 교단의 목사님이었던 것입니다. 이 일은 오랫동안 만나고픈 사람들과 만나게 해 달라고 독일 교회를 위해 기도해 왔던 기도의 응답이라고 믿어집니다. 말씀 증거 후 놀랍게도 또 다른 목사님이 저에게 말씀을 건네 왔습니다. 자신은 제가 설교 중에 언급한 Mülheim 교단의 독일 목사이며 놀랍게도 자신에게 두 아들이 있는 데 독일 부흥운동의 선구자인 Jonathan Paul 의 이름처럼 첫째는 Jonathan 으로, 둘째는 Paul 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만남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일 집회 전후로 은혜 교회 집회를 부흥회를 인도하고 에딘버러로 떠나기 바로 전날 장준서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저희는 프랑크푸르트 근교에 있는 BFP 신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왕복 다섯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기에 용기를 내었습니다. BFP 신학교에는 장목사님 따님인 Eileen 이 공부하고 있었고 놀랍게도 필리핀 APTS(Asian Pacific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한 독일 교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화 중에 그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가 잘 아는 지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학교 방문 시간을 저녁으로 하자는 연락을 프랑크푸르트로 올라 가는 도중에 받았기에 저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신 윤덕수 목사님 내외분을 먼저 만나게 되었습니다. 윤 덕수 목사님은 마틴 루터의 유적지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독일 전체 종교 개혁, 경건주의 운동, 성결운동 그리고 뮐하임 부흥운동까지를 연대해서 유럽 부흥의 불씨를 지피는 순례 여정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BFP 신학교 방문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부흥을 위해 기도의 집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Union Mission 을 방문하였습니다. 해마다 독일인 선교를 위해 개최되는 Jesus March와 기도 운동 그리고 부흥운동의 소중한 역사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40년간 하나님께서 한인 기독교인들을 통해 진정한 부흥의 불씨를 지피고 계심을 듣고 보게 된 것입입니다. 독일인 뿐 아니라 다양한 인종들과 함께 독일 부흥을 위해 사역하고 있던 박해철 목사님은 시카고와 뉴욕 집회 중이라 사모님만 뵙고 올 수 있었습니다. 매우 짧은 체류 기간이었지만 저는 장준서 목사님 댁에서 머무르면서 장차 감당할 수 있는 독일 교회의 부흥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장목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특히 독일 지역의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한인 교회들이 감당해야 할 교회의 사역에 대해서 많은 나눔이 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독일인 목회자 세미나와 그리고 연합 성회를 통해 새롭게 유럽 교회의 부흥을 불씨를 지피는 일에 전력질주하고자 합니다.

작고 작은 자 김종필 올림
에딘버러 가는 상공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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