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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0-06-04
작성자 관리자 (admin)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
딤전 4:7-8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아람'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아람'이라는 학생이 한 학년에 한 명씩은 있었습니다. 아주 흔한 이름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이름에 큰 애착은 없었습니다. 이름 때문에 불만을 내비치면 엄마는 "첫 딸이라고 얼마나 정성 들여 지은 이름인데 그런 말을 하니? '아람'은 '밤이나 상수리 따위가 충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상태 또는 그런 열매를 뜻하는 말이야' "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런 이름보단 낫지요. '성국' 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남자입니다. 그런데 성이 '여' 씨입니다. 그래서 '여성국' 이 되어 늘 놀림을 당했습니다. 부모님께 이름에 대한 불만을 말하니까 부모님이 처음에 두 이름을 놓고 고민하셨답니다. 그래서 "성국이 말고 다른 고민한 이름으로 하시지 그랬어요? 그 이름이 무엇이 예요." 라고 여쭈었습니다. "그 이름은 '성용' 이야!" 그 이름 앞에 성을 붙이면 '여성용'이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여성국' 에 만족하며 살았답니다.)
'아람'이가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동사무소에서 주민 등록을 만들러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동사무소 직원이 "이름이 '서아람' 맞으세요?", "네. 뭐가 잘못되었나요?", "서아람이 아니라 '서아름' 이로 되어있네요. 누군가 이름을 작성할 때 실수했나 봐요." 충격으로 멍해 있는데 직원 분이 말했습니다. " '서아름' 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주민등록증에 '서아람'으로 올릴 수 없어요. '서아름'으로 올리겠습니다. 괜찮으시죠?" 20년 가까이 '서아람'으로 살아왔는데 난데없이 '서아름'으로 바꾸라니... 다시 '서아람'으로 올릴 수 없냐고 하니까 법원에 가서 제판 받고, 이름을 변경해야 된다는 겁니다. 부모님께 전화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했는데 엄마가 받았습니다. 항상 듣는 엄마의 음성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엄마는 내 이름을 소중히 생각하셨습니다. 엄마는 내일 법원 가서 당장 이름 바꾼다고 하고 '서아람'으로 등록해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주민등록증에 '서아람'이라고 신청하고 눈물까지 나왔습니다. 이름을 지켰다는 기쁨과 부모님이 내 이름을 소중히 여긴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름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이름은 예수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변경할 수 없는 이름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다른 어떤 이름을 말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이름보다도 예수의 이름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참 감사한 것 중의 하나가 '예수'를 우리나라 사람이 정확히 발음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영어권에서는 JESUS가 되었는데 이게 헬라어에서 라틴어, 독일어, 영어 등으로 바뀌면서 발음이 변질되었습니다. '아멘' 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멘' 이 아니라 '아멘' 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천사가 알려주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고 하셨습니다. 천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신사참배 안하고 죽었습니다. 공산당에게 총 맞아 죽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죽은 것이 순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불만이 있고 그 불만은 부족함에서 나옵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 어떤 부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면 불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은 늘 2%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자신은 2%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두 부류의 사람뿐이 없습니다.
하나는 교만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실 2%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당한 착각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발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2%도 부족하지 않은데 노력할 것도 바랄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 살맛이 나겠습니까? 사람은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려고 평생을 노력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부족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부족함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지식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합니다. 거기에 재능도 부족합니다. 그러면 상당히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보통은 공부를 못하면 운동을 잘하는데 저는 공부도 잘 안되고, 운동은 아주 안됩니다. 이 둘이 안되면 보통은 음악을 잘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음악도 잘 안됩니다. 이 정도면 2%가 아니라 50%가 넘게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채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2%가 부족하다는 음료수 광고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완벽해도 2%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때문입니다. 운동을 해도 땀을 흘려도 2%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채우라고 할 때 많은 사람이 그 모자람에 공감한 것입니다.

知足者(지족자)는 貧賤(빈천)도 亦樂(역락)이요 不知足者(부지족자)는 富貴(부귀)도 亦憂(역우)니라. "만족을 아는 자는 빈천해도 즐겁고, 만족을 모르는 자는 부귀해도 근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만족할 줄을 아는 사람은 집이 가난하더라도 즐거워하지만 만족을 모르고 불평을 일삼는 자는 아무리 부귀해도 걱정을 떨쳐 버릴 날이 없다는 이 말은 신라 때 낭산(狼山) 밑에 백결선생(百結先生)이란 분이 살았는데, 너무 가난하여 옷을 누덕누덕 기워 입어 붙여진 이름이다. 제가 지난번 지하철에서 스님을 보았는데 그 옷이 누덕누덕하더라구요. 그런데 오래 입어서 헤어지고 달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새 옷인데 나올 때부터 누덕누덕 기어서 나온 것이 예요. 마치 청바지 찢어서 나온 것하고 같은 것입니다.
가난하지만 백결 선생은 음악을 좋아하였는데 특히 거문고를 잘 탔습니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이었습니다. 이웃집에서 떡방아 찧는 소리가 들려오자 아내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습니다. "남들은 모두 여유가 있어 저처럼 방아를 찧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지요?" 이에 백결 선생은 아내를 달랬습니다.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인데 불평한들 무엇하겠소. 내가 오늘은 당신을 위해 거문고로 방아 찧는 소리를 낼 터이니,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구려." 하고 거문을 탔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루이스 라펨 교수가 쓴 '돈과 계급'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미국에서 범죄 하는 90%가 돈과 여자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랍니다. 이 통계가 비단 미국만 그렇겠습니까? 온 세상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돈과 여자와 권력의 문제입니다. 잘못된 돈, 잘못된 이성관계, 잘못된 권력도 자신이 이익을 위해서는 허락하기 때문에 사탄은 늘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 4:7)고 했습니다. 나 자신을 연단해야 합니다. 좀 단단해 져야 합니다. 사탄에게 물러 터지면 안됩니다. 사탄에게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친절은 사탄에게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타협의 대상도 아닙니다. 사탄이 틈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언제나 우리보고 분명히 하라고 명령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뜨거워 져야 합니다. 마음이 뜨거워 져서 악한 것을 다 내어쫓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좀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경건으로 채워집니다. 세상 온갖 쓰레기 갖은 것을 담아있어 가지고는 주님의 경건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버려야 합니다.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2-23)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난 사람은 뜨겁습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충만함이 있습니다.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된 것입니다.

사람은 2% 부족한 것을 자기가 채울 수도 없지만, 만일 채웠다고 생각하면 교만해 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할 수도 없고, 했다고 생각하면 교만에 빠질 뿐입니다. 가끔 이런 망상에 사로잡혀 자기가 다시 온 메시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만의 극치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목자로 삼은 사람들은 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고백합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시 34:9) 내가 잘나서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기 때문에, 내가 그분을 경외하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우리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늘 부족한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골라서 주시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왜 지식을 배웁니까? 왜 돈을 법니까? 기도하세요 여러분! 우리 식구 먹고살도록 베풀어주신 은혜도 감사하지만 그 정도가 아닙니다. 이웃을 도울 수 있게 축복해 달라고 하세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축복,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여기 잘 보세요. "안겨 주리라" 품안에다 안전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있으니 가져 가라가 아닙니다. 품안에 안겨주십니다.

저는 처음에 선교한다고 후진국에 많이 다녔습니다. 그냥 불쌍합니다. 그런데 후진국만 여행을 해 가지고는 보이질 않습니다. 여행은 후진국과 동시에 선진국을 가봐야 합니다. 왜 그들이 잘 사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러시아는 국토가 너무 넓습니다. 시베리아에 얼마나 많은 자원이 땅속에 묻혀 있는지조차 확인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삽니다. IMF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잘 살게 만들어 주시지 않으면 어려워집니다. 방글라데시는 국토의 절반이 물에 잠겨있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고 땅을 고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면 땅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사람을 축복해 주시는 방법중의 하나가 땅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제가 다녀본 동남아시아는 그 땅이 절대 유럽에 비해 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럽 땅을 보 잘 것이 없습니다. 겨울이 길고 춥습니다. 그런데 잘 삽니다. 스위스는 지형적으로 산이 많아 쓸모 없는 땅이지만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동양도 그런 데가 있습니다. 네팔 히말리야산 밑은 스위스에 뒤지지 않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사람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만 있습니다. 충분히 복을 받을 수 있는 땅이 있는데도 축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니까 단점도 장점으로 바뀝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바뀝니다.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후 6:17-18)

우리가 경건하게 사는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맡기고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삽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있다면 바로 그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그것을 사탄이 사용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딛 2:12),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우리는 보통 경건하면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나 잘사는 것뿐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사는 것, 그것이 경건입니다.
여러분은 자녀교육의 모토가 무엇입니까? 잘사는 사람으로 키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현대 사회가 다른 사람과 지나치게 경쟁하며 살다보니까 잘못하면 다 적이 됩니다. 우리가 잘 살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공부해야 되는 것은 남을 돕기 위함입니다. 경건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야 남을 도와 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부족한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배워서만 안 채워집니다. 하나님께서 채워 주셔야 합니다. 지식도, 지혜도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 없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마음이 없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에 마음이 없으면 우리 가정이 황폐해 집니다. 땅이 굳어버립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여세요. 나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채워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여기서 우리만 예수 잘 믿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내가 되게 해 달라고 우리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우리 기도합시다. 그것이 경건한 교회입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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