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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10-03-18
작성자 관리자 (admin)
영혼을 구원할 믿음
벧전 1:6-9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예수님은 이 땅에 육체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 하셔서 오셨지만 그분의 본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타락한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분이십니다.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죄인이 된 사람은 세상적입니다. 이 땅의 것에 메여있습니다. 영원한 세상을 위하여 영혼을 위하여 살기보다는 육체를 위하여 삽니다.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3 1:2) 고 했습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 사람 보기에 잘된 것 다 부질없습니다.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영생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른 것이 잘 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것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당신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목사인 저도 영혼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하면 어려움을 느낍니다. 분명한 것은 영혼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창조 때부터 주신 것입니다. 인생이 이 땅의 70-80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영혼은 육체와 구별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없다면 구원도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구원이 있다면 영혼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떼어서 따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말하려면 기독교 신앙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영혼을 이해하려면 영혼을 창조한 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영혼을 구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성령님도 이해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영혼이라는 것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아마 사람의 영혼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이 헛된 이야기에 불과할 겁니다.
기독교 신앙의 어느 하나만 말할 수 없습니다.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놀라운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 몸과 같이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거미줄처럼 이쪽 끝과 저쪽 끝이 단단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손끝과 발끝이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와 종말이 닿아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이 닿아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의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은, 탐욕이 끝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것은 사람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배부르면 만족할 것 같지만 그 이상을 찾습니다. 돈이 많으면 만족할 것 같지만 그 이상을 찾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혼에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는 어디에서도 참된 안식을 얻지 못했나이다." 하나님만이 참 안식을 주실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13-21에 보면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 부탁을 합니다.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그럽니다. 아마 재산을 형이 혼자 꿀꺽했나봅니다. 형에게 이야기 해 주셔서 자기에게 재산을 분배하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시라면 그런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수 없는 병자들과 별의 별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 찾아 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눅 12:14) 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땅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는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세워진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너는 나를 따라오라" 하셨을 때에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가더라" 고 했는데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돌아가면 안됩니다. 이 청년은 너무 빠른 결단을 내렸습니다. 목숨을 무엇을 주고 살 수 있습니까? 영생을 무엇으로 얻을 수 있습니까? 이 땅의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이마트는 고추장을 매운 정도에 따라 '무진장 매운맛, 아주 매운맛, 매운맛, 보통 매운맛' 4단계로 구분해 선보였는데 판매된 고추장의 절반 이상(52.9%)이 '무진장 매운맛' 이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아주 매운맛'(22.3%)이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림수산부는 0-100까지 매운맛을 나누어 표시한다고 합니다. 고추장을 사려면 매운맛 때문에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도 매운 맛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매운맛이 무엇입니까? 영혼을 위하는 겁니다. 이 세상의 축복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이 세상에서야 우리가 좀더 열심히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입니다.

구약에서 영혼을 잘 이해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육체를 위하여만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혼을 알고 있었습니다. 영혼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시 6:4)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시 25:1)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시 35:9)
다윗은 무슨 말만하면 영혼입니다. 감사도 찬양도 영혼을 위하여 합니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어도, 스데반이 돌에 맡아 죽었어도, 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행 7:59) 했습니다. 주님의 손에 있는 우리 영혼은 평안합니다. 안전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가면서 종에게 자기 아들들을 잘 돌보고 옷 관리를 잘 하라고 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에게 종이 보고했습니다. "주인님, 여기 아이들의 옷들은 깨끗하게 잘 세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말합니다. "아이들은 어디 있나?" 종은 "아이들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잃어버린 하인은 주인에게 엄한 질책을 받고 그 주인의 집에서 영원히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만일 육체를 위한 건강, 지식, 건물, 돈을 주님 앞에 자랑하면 이와 같은 종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의 옷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옷은 그 아이들이 있을 때에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그 다음에 우리의 육체를 위하여 필요한 겁니다.

이 세상을 마칠 때 사람들이 후회할 일이란 단 한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영혼관리를 어떻게 했느냐 입니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삶을 잘 살아도, 영혼의 관리를 잘못했으면 실패한 사람입니다. 영혼관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만 먹고 마시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속하지 않는 영혼은 이미 영혼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고 하셨습니다.

김정일의 비자금이 40억 달러(4조 5,300억원)로 추정된다고 영국의 한 일간지가 보도했습니다. 처음에 스위스 은행에 예치했는데 스위스의 규제 강화로 룩셈부르크의 은행으로 이체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보기관이 확인한 것입니다. 김정일의 막대한 비자금은 핵무기와 미사일 기술판매, 마약거래, 보험사기, 외국화폐외조 등을 통해 얻은 수입이랍니다. 김정일이 북한을 다 가진 것 같지만 그의 영혼은 불안한 겁니다. 죽음이 임박해 올수록 더 불안할 겁니다. 어마어마한 비자금이 자기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모든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를 자유 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시편 49:7-8절 말씀입니다.
[개역개정] "7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번역이 너무 딱딱합니다. 다른 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쉬운성경] "7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돈주고 살 수 없으며, 하나님께 목숨을 사겠다고 돈을 낼 수도 없습니다. 8 사람의 생명 값은 너무도 비싸며, 아무리 많이 내어도 살 수 없습니다."
[공동번역, 북한성경] "7 하느님께 돈을 바친다고 죽을 목숨을 살려 주시랴? 8 목숨 값은 엄청난 것, 그 값을 치르기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 이라고 했습니다. 김정일이 이 북한 성경을 읽어보아야 하는데요.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에 옮기고 지은 시입니다.
"26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 27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의 처소에 있도다 28 여러 나라의 종족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대상 16:26-28) 다윗은 모든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리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위대한 겁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왕도 보통 왕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통합한 왕입니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영광을 자기가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왕도 어떠한 사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겁니다. 영혼을 모르면 하나님께 영광 또한 돌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이스라엘에게 가까이 있을 때는 영광과 권능을 돌려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겼습니다. 언약궤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혼이 무감각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립니다. 영광을 돌리지도 못합니다. 불순종한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오늘날의 언약궤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성경은 소망을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 6:19) 라고 합니다. 닻은 고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영혼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꽉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닻이 없으면 배는 바람과 물결에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중심을 잡아 주는 닻이 없으면 예측 불가능한 인생의 기후로 인해 왔다 갔다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품으면 그분과 하나로 묶이게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베드로는 영혼을 잘 모를 때 근심했습니다. 예수님 부활 후에도 제자들을 선동하여 갈릴리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육신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무어라고 말합니까?
본문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8절 "...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라고 말합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구원받은 영혼의 기쁨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서신을 받는 교우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본문 8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베드로는 참 감사했습니다. 예수를 보지도 못했는데 믿는 성도들이 대견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 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도에게는 이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의 기쁨입니다. 육체의 기쁨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본문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이와 같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천사가 알려주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고 하셨습니다. 천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는 것입니다. 본문 9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영혼이 구원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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