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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교계, 문화 > 기독문화 등록일 2009-12-04
작성자 관리자 (admin)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
손봉호 장로

I. 사회참여란

1. 사회마다 지배적인 세계관, 가치관, 이념, 생활방식, 전통 등으로 이루어진 문화가 있고, 정치, 경제, 교육, 사법 등의 제도가 있으며, 이들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유기적인 통일을 이룩하지만 어느 정도의 갈등을 포함하고 있다.

2. 사회는 자연적 환경이나 역사발전의 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던 사람들에 의하여 형성되었고, 지금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유지되거나 개혁된다.

3. 사람은 혼자 있어도 사회적이다 (Marx). 인간은 사회에 의하여 (상당한 정도로) 형성된다 (Mead). 한국인이 한국인이 된 것은 생물학적 특징(DNA)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지배하는 문화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못된 사회를 그대로 두는 것은 자신과 주위 사람을 잘못되게 방치하는 것이다.

4. 사회참여란 구체적으로 기존 사회를 유지하거나 개혁하는데 참여함을 뜻한다. 모든 사람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안 든,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안 든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은 곧 유지하는 것이다 (침묵하는 다수).

5. 사회를 변혁하는 방법에는 평화롭고 점진적인 개선과 폭력적이고 급격한 혁명이 있고, 가치관과 의식수준을 높이는 소극적인 방법과 제도와 법을 바꾸는 적극적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II.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

1. 그리스도인들은 특정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그 사회에서 나그네며 이방인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와 사회참여에 무관심해질 유혹을 받는다.

2. 그러나 특정한 사회에 살고 활동하는 한 그리스도인들도 사회참여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세상을 떠나 살고 있다고 착각하면 결과적으로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며, 매우 중요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권자시기 때문에 인간 사회도 하나님의 절대주권 밑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하고,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4.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행동하여야 하기 때문에 기존 사회를 인정하고 유지하려 하기보다는 그에 비판적이 될 수 있고 따라서 개혁적, 혹은 창조적 사회참여를 할 위치에 있다. 니버 (Richard Niebuhr)는 칼빈주의 문화관을 변혁(transformation)적이라고 특징지었다.

5. 전 세계에서 개신교인의 87%가 중진국 혹은 선진국에 살고 있다 한다. 중진국이나 선진국이 개신교 신앙에 적합하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개신교인이 사회를 발전케 하는데 공헌하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는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야 한다.

6.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가 반드시 교회의 사회참여를 뜻하지는 않는다. 교회가 올바로 사역하면 사회발전에 공헌하지만 교회는 명시적으로 사회참여를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


III.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 방법

1.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며 점진적이라야 한다. 모범적인 행동과 설득을 통해서 사회의 가치관을 바꾸고 의식수준을 높이는데 공헌할 수 있다.

2. 사회의 발전수준과 법이 허락하면 기독교적 시민운동을 조직하여 잘못된 제도와 세력을 비판하고 합법적으로 그런 것을 바꾸기 위하여 노력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처럼 기독교인의 수와 영향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러야 시도될 수 있다.

3. 한국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 기독교 정당을 조직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성경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지혜롭지 못하다. 한국세서처럼 정치수준이 낮으면 기독교 정당도 부정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고, 종교의 정치세력화는 다른 종교인들이나 비 기독교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진정한 복음선교에 도움보다는 방해가 될 수 있다. 기독교는 낮아지고 섬기는 종교이지 힘을 행사하고 지배하는 종교가 아니다.

4. 기존의 폭력이 너무 커서 인권이 근본적으로 무시될 때는 폭력의 사용이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 Bonhoeffer 목사의 경우처럼)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유도하므로 매우 극단적인 경우 그리고 성공이 확실한 경우가 아니면 자제해야 할 것이다.

5.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는 “선지자적 비관주의”에 입각해서 이뤄져야 한다. 즉 반드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하는 것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임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인간의 노력은 성공할 수 없고, 성공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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