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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09-11-23
작성자 관리자 (admin)
전부를 넣었느니라
막 12:41-44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오래 전에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문제는 돈에 대해서 너무 많은 얘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에 대하여 바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요한 웨슬리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구원을 체험했다고 하십시다. 그가 정말 새 사람이 되었다면 저는 먼저 현저한 변화를 가져와야 할 삶의 영역 중에 하나가 돈 씀씀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헌금에 반영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회심과 구원, 우리의 신앙, 우리의 변화를 믿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금은 헌신의 상징이며 감사의 열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잘 아는 지극히 평범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헌신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42절에 보시면 본문에 나타난 주인공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가난했습니다.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성경은 그녀가 과부였다고 말합니다. 이 여인은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외로운 여자였습니다. 정서적 고통을 안고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귀감이 되었던 여인의 모습을 우리는 본문에서 만나게 됩니다.
예루살렘성전에는 들어갈 수 있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제일 바깥에 이방인의 뜰이 있습니다. 이방인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방인의 뜰이 있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여인들의 뜰이 있습니다. 여인들은 여기까지 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의 뜰 바로 맞은편에 보면 거기 미문 이라고 하는 문이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문입니다. 그런데 미문 곁에 아마 예수님은 그 어느 곳에 걸터앉아서 성전 입구에 있는 헌금함에 헌금을 드리고 그 안에까지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본문 41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하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처럼 예루살렘 성전도 헌금함에다가 헌금을 넣었어요. 예수께서 '보실새' 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보실 새라는 단어가 헬라어에서는 미완료시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미완료시제라는 것은 계속적인 의미가 있어요. 주님이 그냥 헌금함에 헌금 내고 들어가는 사람들을 어쩌다 한번 슬쩍 보신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속 예수님이 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헌금함에 헌금을 넣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예수님이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특별히 예수님의 시선이 한 여인에게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슴은 아마 뛰고 계셨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바로 이 여인에게서 예수님은 그 시대의 참된 헌신,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헌신의 모습을 발견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보여준 그 헌신의 본질, 거기서 우리는 참된 헌신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참된 헌금은 우리의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만을 의식한 결과 이여야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누가 보는 것, 알아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것, 선한 행실 모두가 살아 계신 하나님, 오직 하나님만을 의식한 결과가 되어야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그냥 헌금함이 하나만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는 헌금함이 13개가 있었습니다. 13개가 주~욱 나란히 놓여 있었어요. 그리고 이 헌금함은 놋쇠로 만들어졌습니다. 놋쇠로 만들어 진 헌금함을, 흔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당시에 나팔궤라고 불렀습니다. 나팔궤라고 왜 불렸느냐 하면 헌금함의 입구가 나팔처럼 생겼어요. 아마 헌금함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13개의 헌금함이 다양한 헌금의 용도들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제사용으로 대부분 많이 쓰여졌고 한 9개 정도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제사에 따라서 그때그때 드려지는 제물헌금 들이었고 한 4개 정도는 특수한 용도였습니다. 성전유지용, 성전보수 용, 혹은 구제를 위해서 쓰여지기도 했고, 어떤 것은 제목을 지정하지 않은 자유 헌금함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헌금이라는 것은 지폐가 아니라 동전이었기 때문에 더군다나 헌금함은 놋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헌금을 집어넣으면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런 데 아마도 그 당시에 자세히는 몰라도 성전을 관리하던 관리자 측에서는 이 헌금을 증가시키려던 어떤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아마 놋쇠로 제작했을 가능성도 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좀 많이 넣는 것, 적게 넣는 것을, 돈이 떨어지는 소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구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좀 많이 가치가 있는 돈을 넣으면 쟁그렁 하고서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집니다. 그러나 좀 시원찮게 내시면 그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쨍하고 조금밖에 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41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아마 부자들이 먼저 앞서서 헌금 넣고 들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부자들이 다 그랬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어떤 부자는, 아마도 아주 가치가 높은 그러한 양의 화폐를 뚝 떨어트리면 소리를 냅니다. 쟁그렁 그러면 어깨에 힘을 주고 아마 이렇게 하면서 내가 돈 많이 냈다는 것을 과시하는 형식이었을 것입니다.
42절에 보시면 본문에 "한 가난한 과부는" 과부 차례가 됐어요. 이 과부가 얼마를 넣었 다구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 사람들의 화폐 단위 가운데에서 최소 단위가 고트란트입니다. 최소 단위. 유대 사람들의 화폐단위가치 중에서 제일 작은 것이 렙돈이였어요. 렙돈이 얼마나 되느냐. 한 렙돈 이 달러로 환산하면 8분의 1센트예요. 8분의 1센트.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10원도 안돼요.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렙돈 이라는 말의 뜻 자체가 '얇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얇은 동전. 그래서 렙돈을 집어넣으면 퉁 소리도 별로 안나요. 소리도 안나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내는지를 알 수 있었던 그 놋쇠 헌금함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서 아마 이 여인은 이 장면에 와서 굉장히 주눅이 들고 또 자기 열등감을 가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더군다나 자기 보다 앞서서 그리고 상당한 양들의 돈을 집어넣고 당당하게 행진해 들어가던 부자들의 모습, 쟁~그렁. 그 다음에 이 여자 차례가 되었을 거란 말이죠. 두 개의 렙돈 중 하나를 집어넣었습니다. 쟁 소리가 안나요. 누가 나를 보지 않을까? 이 순간 자기를 의식하면서 상당히 부끄러워질 수도 있었고 상당히 무안해질 수 있는 순간입니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 같으면 아예 헌금을 안 했을 겁니다. 창피 당하려고 뭐 하러 헌금을 하겠어요. 그러나 저는 이 순간 이 장면 속에서, 이 여인이 하나님만을 의식했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주님이 그것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양이 얼마나 많으냐 적으냐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녀의 최선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하나님만을 의식한 이 여인의 태도가 이 헌금을 넣을 수 있게 했습니다. 여러분! 많은 것을 드리기가 쉽습니까? 적은 것을 드리기가 쉽습니까?

영국의 캠브리지대학의 찰스 스터드라는 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공부도 잘 했어요. 학교에서도 일등을 달리는 학생이었고 크리캣이라는 운동선수였어요. 영국 전체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보장된 출세의 길이 그 앞에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캠퍼스집회에 참석했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는 선교사로 가기로 선포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장된 출세 길. 돈과 그리고 명예와 권력과 그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의 길에 나서자 누군가가 와서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이것은 자네에게 지나 친 희생이 아닌가? 이때 찰스 스터드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어떤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캠브리지 7인의 한 사람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후에 허드슨 테일러와 함께 중국 복음화를 위해 일했습니다. 53세가 되던 1913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아프리카 심장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벨기에령 콩고(옛 자이레공화국)에 '아프리카 심장 선교회(The Heart of Africa Mission)'을 설립하였고, 이것이 'WEC 국제선교회(1918)'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한 사람의 비전으로부터 시작한 WEC 국제선교회는 복음주의적 국제 선교 단체가 되어 현재 50개국에서 모인 1,700여명의 선교사가 75개국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WEC은 개인적인 헌금 모금을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기도하면서 자비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교사님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영국의 WEC선교사들은 기도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살아있습니다. 이 정신과 믿음이 WEC을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제가 2003년 8월 14일(목)에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WEC에서 3일 체류하였습니다. 숙소를 배정 받아 찾아가는 길은 디귿 자 모양의 건물이라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처음 찾아가는 사람은 1주일정도 있어야 파악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구조의 건물에는 약 200여 개의 방이 있고 로비와 세미나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1층의 작은 방들은 각 팀별로 사역을 관리하는 방들이 제각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물 옆의 부속건물 같은 곳에는 각종 기계들이 즐비했는데 각종 농기계들 그리고 지프차가 몇 대 있었습니다. 이 차들은 아프리카의 각 국가의 승인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그곳에 맡도록 수리하여 보내진다고 합니다. 본부는 입구서부터 건물까지 1km는 족히 넘어 보였으며 사방으로 잘 다듬어진 드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봉사하는 분도 영국의 시골에서 목회하고 은퇴하신 목사님 부부가 주방을 맡아 봉사하며 섬기고 있다고 했습니다.(예' 한국선교사 훈련받을 때 일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아껴야 합니다. 절약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라도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끼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남아서 드리는 것, 시간이 남아서 드리는 것은 하나님은 별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무엘하 23장 13-17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서 도망 다닐 때 아둘람 굴에 숨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자신과 함께 했던 용사들을 기록하면서 그들의 아름다운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더운 추수 때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의 시원한 물을 마셨으면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이 소리를 들은 삼십 두목 중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블레셋 사람의 진영에 들어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옵니다. 목숨을 건 다윗에 대한 사랑과 충성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17절에서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면서 "피 같은 물"을 마시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호와께 부어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헌금은 '피 같은 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헌금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헌금은 하나님의 나라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선교를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값지게 사용해야 합니다. 영혼을 구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빌 하이블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빌 목사님이 교회 사무실에서 개인 용도의 편지를 비서를 통하여 발송하였습니다. 그런데 비서가 교회의 우표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늦게 알고 빌 하이블 목사님은 이 일을 두고 하나님께 깊은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작은 것이 없습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개념이 문제입니다.

베트남에 갔을 때 선교사님 집에서 지낼 때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생활이 그렇게 좋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통장에 70만원이 있었는데 이 돈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 돈을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70만원의 돈은 한국의 어느 시골교회를 갔을 때 어느 권사님이 헌금한 것인데 쓸 수가 없습니다.", "왜요?" 권사님은 교회에 나오시는 길이 버스정거장으로 두 정거장 되는데 이 길을 10년을 걸어서 다니시면서 150원 하던 교통비를 아껴서 모아둔 돈을 가장 중요한 일에 쓸 거라고 모아 두셨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그 교회를 방문했을 때 헌금을 한 것입니다. 돈이라고 같은 돈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피 같은 돈입니다. 이것이 헌금입니다.

우리가 십일조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렸으니까 나머지는 내 것이다라는 생각이예요. 아닙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십의 구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 정신에 근거하여 드렸다면 어떻게 되냐하면 십분의 일을 드린 후에 십분의 구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해요. 십분의 일 드렸으니까 다했다. 끝이 아니라 나머지 십분의 구도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십분의 구를 어떻게 사용할까?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쇼핑하십니까? 기도하고 쇼핑하세요? 내가 십분의 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내가 이렇게 쓸 때 하나님이 기뻐 하실까? 십분의 구도 마땅히 그 분의 것이라면 나에게 맡겨 주신 것에 불과하고 그 분이 주님이시라면 그 분의 뜻에 맞도록 내가 십분의 구도 관리하는가? 이것이 온전한 십일조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마르틴 로이드 존스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이 쓴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국의 어떤 농부가 소를 기르는데 그 소가 새끼를 낳았어요. 송아지를 낳았어요. 두 마리를 낳았어요. 농부가 너무너무 기뻐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할렐루야 송아지 새끼 두 마리 낳고서 너무 감사해 가지고 자기 부인보고 이 농부가 말하기를 여보 송아지 새끼 두 마리야 우리 하나는 주님의 것으로 하고 주께 드리십시다. 아내도 아멘 하고 동의했습니다. 얼마 후에 송아지 새끼 한 마리가 비실비실 앓더니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농부가 울상 이 돼 가지고 방안에 있는 자기 부인에게 하는 말이 "여보! 큰일났어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어. 주께 드린 송아지가 죽었어." 왜 하필 주님의 것이 죽지요. 자기 것이 아니 구요. 이건 주님의 것, 이것은 내 것이 아니예요. 내 전체가 주님의 것입니다 100% 주님의 것입니다. 이게 헌신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의 십의 일조를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를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행위를 주님께 보여야 합니다. 그 때만이 하나님도 우리를 향해서 하늘 문을 여실 것입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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