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처음으로 | 기사입력 | 리포터(선교기자) 가입 | KCM 홈
 
   특별호 12호 바이블 웨이 [05-08]
   제375호 [05-07]
   제374호 [10-30]
속보(긴급기도제목)
선교현장
선교소식
선교단체
 KRIM(e-파발마)
 한기총(CCK)
 KWMA
 KCM
 CCC
 GMS
 바울선교회
 외교부
푸른섬선교정보
AFMI
교계, 문화
오피니언
목회, 신학
청년, 대학생
기획, 특집
포토/동영상
해외한인교회
선교학자료
해외일반
한국일반
주앙교회
미션매거진을 만드는 사람들...
facebook 미션매거진 편집회의
섹션 선교단체 > KWMA 등록일 2009-11-06
작성자 관리자 (admin)
NCOWE Ⅴ 광범위 리서치 보고
정보애 선교사 (NCOWE Ⅴ 광범위 리서치팀)

Ⅰ. 2010년 NCOWE V를 위한 세계기독교 및 선교역사 흐름 스케치

2010년은 에딘버러 1차 세계선교회의 100주년 기념 해이다. 그리고 한국개신교전파 125주년의 뜻 깊은 해이다. 1910년 당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한일합방이라는 국난 속에 1907년의 평양 대부흥의 열기와 함께 세계 복음화라는 명제보다, 민족의 장래와 그 복음화라는 현실적 필요가 큰 때였다.

에딘버러에서 모인 선교지도자는 주로 제1세계 즉 서구에서 왔으며, 그들은 주로 2/3세계를 대상으로 한 선교, 즉 “World Evangelization Within Our Generation"이라는 구호와 함께 세계동반선교의 큰 이벤트였다. 이 때 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은 선교의 제1대상의 하나였다. 일본 속의 한국, 정치 참여의 한계를 갖고 있는 한국 주재 선교사들(주로 미국, 캐나다, 호주)은 청교도적 보수주의적 선교사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민족의 큰 시련인 식민통치는 한국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 재림 전의 큰 환란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선교사의 내세 지향적 복음 전파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와 한국인의 현실도피적인 성향이 어우러져 민족교회의 현실 참여는 적극적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서구열강의 자중지란 속에 자라난 ‘민족자결주의’ 바람은 한국까지 영향을 미쳐 1919년 3․1운동이라는 독립운동과 그 선언문에 절반 이상의 선언문 싸인자가 기독교 배경이었음은 기독교가 타종교에 비해서는 그래도 현실에 대한 이슈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교묘한 압박과 서구열강의 제한 된 민족자결운동의 이해로 세계기독교계가 대처하는 바람에 유럽에서는 반유대민족의 물결과 아리안족의 혈통을 잇는 독일 민족주의적 물결은 민족자결주의의 부작용 현상을 가져왔다. 이에 대한 열매는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고창하는 히틀러의 선전에 독일교회가 자민족중심적인 자세로 동참하자, 세계는 엉뚱한 민족운동으로 흐르고 세계 신학계도 자유로운 주장에 따른 분열 시기를 맞았다. 1920년 대 후반 유럽 및 미국 즉 서구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운동은 세계 기독교를 보수와 진보자유 그룹으로 나누었고, 1929년에 발생된 미국경제공항은 미국의 고립주의를 초래하여 민족 및 사상이기주의로 세계는 분열되었다.
급기야 1930년대에 경제위기 속의 미국은 신학의 대분열로 메이첸이 이끄는 보수주의 그룹은 구 프리스턴 신학교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그룹과 결별하였고, 세계교회협의회는 또한 자유주의자들이 주류로 있는 가운데 보수주의자들은 WCC를 등지게 되었다.

에딘버러 1910년 대회 이후 세계의 유일한 연합선교 조직인 International Mission Council가 WCC로 흡수되어 세계선교의 공식적 조직이 자유주의자들의 차지가 되었고, 보수주의자들은 역사조직의 외형적인 조직을 잃은 채 새롭게 세계 선교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야 하는 보수주의 기독계는 자유주의자들에게서 탈퇴한 교회들을 추스르고 새롭게 진영을 구축해야 하는 현실성으로 세계선교의 시급성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서구 기독교 지도자들은 좌․우파로 나뉘어 제2/3세계 교회를 자신들의 세계로 편입시키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2․3세계 교회를 둘로 찢는 현상을 초래하였으며, 이에 당황한 2․3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학으로 분열되면서도 서구세계에서 독립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지게 되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가시화되었는데, 수많은 2․3세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가 독립을 선언하였고, 이들 국가의 교회들도 자신들의 서구교회로부터의 독립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의존의 뿌리 깊은 의존은 경제 및 신학적인 면에서 독립이 쉽지 않았다. 특히 서구 신학을 기독교 신학으로 배워 온 2․3세계지도자들을 그들의 스승격인 서구 지도자들의 분열과 함께 분열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도 해방 후 남․북의 정치적 혼동과 민족상쟁 6․25 포화 속에 1951년 자유주의 김재준 목사 등이 조선신학교를 설립하자, 장로교는 장로교신학교와 조선신학교로 분열되고 그 후견조직으로 예수교장로교(예장) 총회와 기독교장로교(기장) 총회로 양분되었다. 한국은 그 후 남․북의 분단뿐만 아니라 신앙과 교회의 분단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예수교 장로회도 1959년에 WCC 가입여부를 두고, 진보파와 보수파로 나뉘어 장로교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현 예장통합파와 총회신학교를 남산에 새로 세운 현 범예장합동파로 나뉘게 되었다. 이러한 분열은 명분론에 집착한 범 합동 그룹에서 계속 되었는데 고신, 대신 그리고 1970년대 합동보수교단과 합신교단(당시는 개혁)으로 계속 나뉘었다.
합동보수는 계속 분열을 이루었고, 이의 주류는 최근 합동측에 극적으로 재편입되었다. 이런 분열은 장로교만이 아니라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 등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지 분열이 계속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학적으로 보면 1959년 WCC 가입 여부를 두고 분열한 이유는 신학사상의 차이로 인한 이유 있는 분열이었으나, 보수교단의 계속적 분열은 지방색, 고전주의 등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

이런 분열운동 속에 WCC를 중심으로 하는 에큐메니칼 진영이 1960년 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그것은 아시아, 아프리카 교회 지도자들이 서구선교사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이제는 서구선교사들이 철수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여 선교 모라토리움(선교사 더 보내지 말고, 선교비 지불 중지)이 일어나자 자유진영의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철수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런 현상으로 갑작스런 재정적인 압박을 받거나 서구신학의존적인 2․3세계 지도자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정치적 독립은 듣기에 좋았으나, 선교사들의 철수는 그들이 운영한 병원, 학교, 교회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WCC성향의 2․3세계지도자들은 이를 계속 관철시켰고, 이들의 반대 진영에 있던 보수주의자들은 이에 소극적이었다. 도리어 일부 보수주의 진영의 지도자들은 서구의 선교사가 더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시작했다. 세계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와중에서 자유주의 주도적 움직임에 자체적 연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1974년 빌리그래함 목사를 중심으로 스위스 로잔에서 소위복음주의 연합을 탄생시켰고, 이들의 신학사상을 로잔언약서로 집약하였다. 이 속에는 그간 보수진영의 약점이었던 사회적 참여에 관심을 갖는 소위 Social Concern을 표기함으로 WCC 신학에 반응을 보였다. 1970년대부터 WCC 진영은 세계선교에 소극적이었고, 반대로 복음주의 진영은 세계선교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이것은 1974년 로잔대회 참석자들의 주류가 세계 각국에서 모은 전도자들이었고, 랄프 윈터 등은 전략적 세계선교를 강조하여 개신교의 새로운 선교부흥을 가져왔다.

제2차 대전 후 2․3세계의 독립운동은 2․3세계 교회 지도자들에게 서구교회 선교로부터 독립 이라는 시대정신을 갖게 하였고, 이것은 1970년 대 이르기까지 불가사의한 아프리카 교회 25년 부흥을 이끌었다. 케냐에서 남아공에 이르는 수많은 식민지 국가의 기독교 부흥이 이때에 일어났다. 1949년 중국 공산혁명 후 선교사가 강제 철수당한 중국기독교 지도자들은 독립적 운영이 불가피하였다. 그러나 이런 독립 상황은 수많은 가정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져 불가사의한 또 다른 25년을 이루어 1970년 중반 죽의 장막이 벗어졌을 때 약3,000만의 기독교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49년의 약100만의 기독교인에 비하면 이것은 기적에 가까운 역사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 세계기독교의 지형은 서구교회 중심에서 제2․3세계의 선교적 참여로 눈에 띄게 달라졌다. 1970년 대 와서 세계선교는 기존 보수주의 성향의 서구복음주의 교회의 주도와 제2․3세계 교회의 참여로 진행되었다.
1980년 에딘버러 제2차 대회는 급기야 ‘세계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세계 모든 종족에게 교회를 세우자!’라는 슬로건을 채택하는 새로운 청사진을 내걸었다. 이러한 운동은 AD2000운동으로 백미를 이루었고, 이런 복음주의적 선교운동으로 1975년부터 2000년에 이르는 25년은 세계선교의 새로운 불가사의를 창조하였다. 미국세계 선교센터의 통계에 의하면 예수의 탄생 후 1975년 동안에 7,000종족이 Reached화 되었으며 1975년에서 2000년까지 25년간에 또 다른 7,000종족이 Reached되었다는 통계에서 불가사의한 25년의 선교적 효과에 우리 모두가 감탄한다. 이 속에 대표적인 간증은 한국교회인 바, 1975년 약30명의 한국선교사 수가 2000년에 일만 명을 넘게 되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 이런 운동은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 나이지리아, 남아공, 브라질 등지에서 계속 일어났다.

2010년에 에딘버러 100주년을 맞는 세계기독교는 미국을 상징으로 하는 서구교회와 한국을 상징으로 하는 세계교회의 선교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미지는 아직도 서구종교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것은 세계 기독교계에 숙제가 되고 있다.
Ⅱ. NCOWE의 역사

NCOWE는 National Consultation Of World Evangelization(세계 복음화를 위한 국가적 회의)의 약자로 1990년대 사용하던 용어인 GCOWE(Global Consultation Of World Evangelization)의 응답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한국은 1990년 KWMA를 결성할 즈음에 1988년 곽선희, 김명혁 목사 등을 주축으로 결성된 동반자 선교회를 해체하고, 민족과 세계복음화의 기치를 내걸고 횃불선교회의 후원과 갓 결성된 KWMA(한국세계선교협의회) 주관으로 1990년 횃불선교센터에서 민족과 세계복음화 회의를 개최하였으니, 이 모임이 바로 한국 NCOWE의 첫 회의로 볼 수 있다. 전호진 총무는 실무 책임자로 초반 기초를 닦는데 주력한 후, 1993년 미국에서 귀국한 최일식 총무에게 바톤을 넘기게 된다.
전호진 총무시절에 한정국, 김인호, 문상철 등 젊은 선교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미전도종족입양운동본부(AAP)가 1993년 3월 15일 결성된 후 자발적으로 KWMA 산하로 들어오면서 전호진 총무가 초대 AAP 한국 본부장을 맡게 되었다. 또한 노봉린 박사를 원장으로 하여 KWMA 선교훈련원이 가동되었고, 최일식 총무 때 훈련원, 정보연구 기능이 더 발전을 보이게 되었다.

1995년 루이스 부쉬를 중심으로 한 GCOWE 95년 한국 선교횃불센타에서 CCC와 횃불선교센타재단 후원으로 전략적 선교인 미전도종족선교 세계회의를 성대하게 개최하였고, 이에 자극을 받은 한국선교계가 화답하는 차원에서 당초 예정된 제2차 민족과 세계복음화회의를 제2차 NCOWE로 명명을 하면서 보다 전략적 선교회의로 발전되었다.
GCOWE 95 이후 그 후속모임으로 1997년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GCOWE 97 대회가 5대분야별로 전략회의 겸 선교대회가 열렸고, KWMA는 이를 벤치마킹하여 2000년 제3차 NCOWE를 여러 분야별로 열기로 기획하게 된다. 전체집회, 목회지도자 선교대회, 평신도전문인선교대회, 그리고 세계선교전략회의를 개최하는데, 이때 한국의 세계선교전략회의를 NCOWE III로 명명하고, 나머지 선교활성화 집회를 선교대회로 명명하게 되었다. 이것은 KWMA는 세계선교전략을 위한 선교단체협의회 기능이 본기능이면서도, 한국 교회 선교활성화를 위한 교회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NCOWE I이 한국교회가 세계속의 한국이라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여 한민족 복음화뿐만 아니라 세계선교에 도전하고 나선 첫 집회여서, 당시 다양한 시대적 이슈를 갖고 발제 및 전체부분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NCOWE II는 GCOWE95년 대회의 영향력이 큰 집회여서 GCOWE 95가 표방한 미전도종족선교와 입양전략에 대한 한국선교계의 응답차원에서 진행되었고, 다양한 미전도종족선교정보가 제공되고, 입양 선교전략이 한국교회, 교단 및 선교단체에 적극 소개되고, 소위 세계교회와 함께하는 한국선교의 동반선교가 가시화되는 대회이기도 하였다.

제2차 NCOWE(II)가 한국의 소극적 기여에서 참여한 대회였다면, NCOWE (III) 2000은 한국교회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세계선교에 나선 계기가 된다.
한국선교의 전략성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한국선교사의 전략적 배치 측정 리서치를 기획하게 된다. 이영재, 한수아, 한정국, 정보애 등 젊은 지도자들은 KWMA 원로들을 설득하여 리서치를 기어코 실현시켜 제3차 2000년 세계선교대회를 위한 KWMA광범위 리서치팀이 구성되어 약1400만원을 투자하여 전세계에 포진한 한국선교사 288명을 대상으로, 인터뷰, 설문, 현지조사(정보애, 김계원)를 총동원하여 의미 있는 Data를 확보하여 3차에 걸쳐 Pre-consultation(예비 전략회의)을 거쳐 최종 보고와 안을 2000년 8월 14, 15일 양일에 걸쳐 사랑의 교회당에서 역사적인 한국선교전략회의를 갖게 되었다. 800명의 선교지도자들은 주먹구구선교가 아닌, 전략선교의 진수를 경험하면서 회의 진행 자체로 민주적 의사결집과 선진적 회의 운영 방식을 통해 별첨의 선교 선언문을 도출하게 된다. 이 회의는 21세기 세계선교를 여는 역할을 하면서도 한국선교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개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다. 한국선교의 실상을 통계 및 리서치를 통한 과학적 접근으로 회의가 합리적으로 전개되었고, 회의 진행 절차가 시간 지킴과 의견 수렴이 폭넓게 진행되었던 점이 한국 선교회의 방식의 새로운 모범이 되었다.
이 때 한국 선교사들의 전략적 배치에 대한 긴급성을 느낀 기독교 언론계에서는 KWMA에 배치기준설정이라는 새로운 숙제를 주게됨으로써, KWMA는 후속 리서치와 컨설테이션을 통해 2002년 한국선교사의 전략적 배치 기존과 국가별 재배치, 선전 배치, 신임선교사 우선 배치 목록을 회의 후 발표하는데, 이는 기초 전도된 종족 및 국가내에서 사역하는 한인 선교사들의 반발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결정 과정과 내용을 합리적으로 반론을 재기하지도 못하고 감정적인 비판을 하곤 하였다.
KWMA는 다음해 2003년 AAP 창설 10주년을 맞아 UPMA(AAP 후속 기구) 리서치와 미전도종족선교전략회의 2003년을 개최하면서 UPMA가 새로 제시한 CAS 전략(지역 분할, 종족 입양, 그리고 기능 전문화 전략을 통한 분담 선교)을 온 종일 전략회의 끝에 CAS를 한국선교사들의 중복배치해소 및 전략적 배치 전략 방법으로 결의하여 한국선교계에 대안으로 제공하게 되어,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 전략 선교가 전개하게 되었다.



KWMA는 2006년 제4차 선교대회를 준비하면서 한국선교25년 평가와 미래 한국선교 25년을 기획하게 된다. 이에 따라 NCOWE IV 리서치 팀이 조직 가동하게 되는데, 리서치 팀은 KWMA 지도부에 미래 한국선교를 위해서는 Frontier Mission이라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면서, 남은 선교의 과업을 좀더 명쾌히 할 것을 제안 하였다. KWMA는 2005년 한국선교지도자 포럼을 국제포럼으로 하면서 USCWM의 랄프 윈터 박사 팀과 IFMN(전방개척 국제선교 네트웍)과 공동으로 FM선교 Consultation을 통해 미래 한국 선교의 방향을 공유하게 된다. 이런 기조위에 리서치 팀은 Target 2030 project를 기획하여 2006 NCOWE IV 회의에 제안하는데 3차례 프리컨설테이션을 거쳐 한국선교의 미래 청사진이 완성된다.
2030년까지 5단계로 나눠 제1차 5개년 FM계획까지 구체적 콘텐츠를 작성하여 전략회의 장에 내놓게 되었다. 수차례에 걸친 컨설테이션을 통해 지도자의 Feedback을 걸쳐 수정 보완된 내용이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Target 2030 Master plan이다.

2010년을 앞둔 한국선교계는 Target2030의 실천과 MT2020의 실시를 계속하면서, 2010년이 한국기독교 전래 125주년이 되는 해이며, 에딘버러 선교사대회가 열린 100주년 되는 해이기에 NCOWE V도 이 시대의 과제에 반응하여 광범위리서치팀



자료제공 : KWMA
프린트 메일보내기
관리자 모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