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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오피니언 > 발행인칼럼 등록일 2009-10-16
작성자 관리자 (admin)
모라비안의 후예들
모라비안을 만든 진젠도르프

제가 좋아하는 지휘자 한 명이 있습니다. 이름이 좀 깁니다. '브루노 발터 슐레징어(Bruno Walter Schlesinger)'입니다. 솔직히 제가 음악을 잘 알아서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은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 지휘자이며 작곡가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 히틀러 시대에 음악을 하다보니 자기 국적을 가지고 음악을 계속할 수 없어서 나중에 국적을 오스트리아(1911년)로 바꿉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까지 장악하니까 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이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뉴욕필하모닉(1947-1949. 음악 고문) 지휘자가 됩니다. 여러분! 뉴욕필하모닉 지휘자는 세계적인 음악가만 되는 겁니다.
제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죽을 때 한 말입니다. 그는 자기 생애를 뒤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평생 동안 음악이 나의 고마운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을 돌이켜 볼 때 나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또 하나는 그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구스타프 말러(1909-1911)'를 자기가 독립해도 되는 때에도 그를 끝까지 따랐다는 것입니다. 말러도 뉴욕필하모닉의 지휘자였습니다.


말러는 보헤미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근대 독일의 최대, 최후의 낭만파 교향곡의 작곡가이며 지휘자입니다. 그의 부모는 곧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모라비아의 이글라우로 이주했고, 말러는 거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가 태어난 보헤미아는 현재 체코 공화국를 구성하고 있는 세 지방 중의 하나입니다. 체코를 동서로 나누어 동부를 체코 명으로 모라바(모라비아)라 부릅니다. 모라비안(Moravian)은 18세기에 이 지역에 살던 개신교인을 말합니다. 모라비안은 1725년에 로마 카톨릭의 탄압을 피해, 독일의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저에게 마틴 루터 이후에 개신교에 역사적으로 제일 큰 업적을 남긴 단 한 사람을 뽑으라면 저는 진젠도르프를 뽑을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에 의해 개신교인이 멸망을 당하는 그 때에 진젠도르프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체코의 한 지역으로 카톨릭의 핍박을 피하여 개신교인을 이주시킵니다. 이것이 모라비안을 태동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진젠도르프가 이러한 결심을 하게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가 1719년 네덜란드와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도중에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도메니코 페티'가 그린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그림을 보고, 그 앞에서 동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그림의 이름은 '이 사람을 보라'(Ecco Homo)였습니다. 그 그림 밑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너 위해 이것을 했건만 너는 날 위해  무엇을 했느냐?' 진젠도르프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했지만 당신을 위해 어떤 것도 행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당신이 이끄시는 어떤 것이라도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결단하게 됩니다. 이런 그의 결단이 모라비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1735년 10월 14일 요한 웨슬리는 동생인 찰스 웨슬리와 함께 식민지 주민들과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미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들은 2년 동안 조지아에서 사역했으나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1738년 2월 1일 그는 잉글랜드로 다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웨슬리모라비안(Moravian) 교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그들이 갖고 있던 구원에 대한 확신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에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라비아 친구인 피터 뵐러(Peeter Bohler)의 간증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감리교의 뿌리입니다.
 
최고의 낭만파 작곡가 지휘자 말러모라비안 이었습니다. 신앙가운데 자라났습니다. 그의 제자 '브루노'도 모라비안 후예입니다. 둘 다 뉴욕필하모닉의 지휘자였습니다. 나중에 천재 음악가로 알려진 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뉴욕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였던 '레너드 번스타인(1958-1969)'입니다. 이 사람도 유대인입니다. 진젠도르프가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개신교를 카톨릭으로부터 살려냈습니다. 오늘날 현대 선교의 기초를 놓은 것도 이들입니다.



글 :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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