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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09-09-26
작성자 관리자 (admin)
시온에서 교만한 자
암 6:1-6


"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2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 3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세상에는 두 가지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놀기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두 종류의 사람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제가 러시아와 미국을 다녀와서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놀기 위해서 일하는 것 같았고, 미국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쉬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쉬는 것과 노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쉬는 것은 다음의 일을 준비하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쉬게 해 주기 위해서 안식일과 안식년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짐은 무겁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짐은 가볍습니다. 내 방법으로 살아가려면 힘이 듭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기고 살면 편안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안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한 다음에 편히 쉬는 그런 안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짱이 같이 안일한 자들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의 배경만 믿고 교만하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들
본문 1절에 보면 화를 당하게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첫째는 "시온에서 교만한 자"입니다. 둘째는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입니다.

"시온에서 교만한 자"는 남쪽 유대 왕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시온의 사람들, 남쪽 유대인은 성전이 자기들 쪽에 있고, 자기들은 하나님의 선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항상 지켜 주신다고 믿고 있는 겁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무조건 성전이 자기들 쪽에 있으니 그 성전이 지켜준다는 교만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시온에서 교만한 자"란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교회에서 교만한 자"입니다. 나는 모태신앙이고 그래도 교회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구원에 확신을 가지는 믿음은 좋습니다. 그러나 교만은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는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입니다. 남 유다 보다는 4배 이상은 땅이 큽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없기 때문에 따로 사마리아 산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루살렘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교만합니다.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마음이 든든한 겁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마치 이방 신에게 절하는 것과 같이 교회에 나오는 겁니다. 내가 교회에 나왔기 때문에 나와 우리 가족이 무사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백성들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이웃 나라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본문 2절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나오는 지명들은 이스라엘의 변방입니다. 이 지역들은 공통적으로 변방일 뿐만 아니라 보잘것없었습니다. 이 성읍들에 가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지금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고 있는지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아마 저와 여러분 뒤로 우리보다 가난한 자를 세계인 중에서 줄 세운다면 끝이 없을 겁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이(1950.6.25-1953.7.27) 끝난 당시 GNP 50$이었던 나라입니다. 현재 아프리카 최 극빈 나라가 100$-200$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당시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GDP규모(2005)는 세계 12이며 1인당 국민총소득은 16,291$로 세계 29위입니다. 3면이 바다인 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조선사업은 세계 1위를 몇 년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하고 FTA(자유무역협정)을 맺을 만큼 성장한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이 2010년 11월 5차 G20 정상회의 개최지로 확정됐었습니다. 한때 G8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차지했으나 중국, 브라질, 인도, 한국 등 신흥 경제국가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지금은 50%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G20은 전 세계 GDP의 8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깜짝 놀랄 비약적인 발전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 전기 불이 들어오지 않아 등잔을 키고 자랐습니다. 불과 40-50년 전 이야기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잘 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나라 5000년 역사이래 지금처럼 잘 살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있을 때 지켜야 합니다.
본문 4절에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라고 말합니다. 아직 소가 우리 안에 있을 때 지켜야 합니다. 한 때 못살았다가 갑자기 잘 살게되니 우리 자신도 놀랐지만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우리 자신들이 혼란을 겪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가난에 한이 맺힌 분들이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탈북한 분이 말하는데 북한에서는 당 간부 집에나 소파가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그렇게 부러웠답니다. 남한에 내려와 정착하고 작은 아파트를 나라에서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이사가는 분들이 버리고 가는 소파가 수시로 나오는 겁니다. 북한에 있을 때 제일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소파 있는 집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린 소파마다 집에 가져다 놓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온 집안이 소파로 가득 찼습니다. 그 때부터 소파를 도로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을 정리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군부가 정치를 할 때 우리는 자유를 찾기 위해서 거리로 나갔습니다. 때로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라를 위해 함께 생각할 때입니다. 무슨 어린아이들처럼 자기 마음에만 안 들면 나 놀기 싫다고 장난감 팽개치고 나가는 어린아이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내 돈으로 좋은 침대를 사고, 내가 키우는 양떼와 소떼에서 살찐 것을 잡아먹는데 왜 그것이 왜 나쁩니까?"라고 하실 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것을 옳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내 것 가지고 내 멋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면 안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습니까? 부자로 사는 것이 나쁘지 않죠. 여러분들이 정말로 다 부자로 사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늘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할 줄 아는 진정한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몇 일전 제가 태어난 동네에서 병원(마석기독병원)을 하시는 원장님을 만났습니다. 아주 큰 병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십 명의 직원이 있는 병원입니다. 이 원장님은 병원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이름도 기독이라는 말을 넣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가진 것을 나누기 위해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병원 자체보다는 선교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저를 통해서 알게된 선교지로 봉사를 나가는데 이 지역이 이슬람권입니다. 자신이 이슬람을 아시는 것이 없으니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슬람에서 하는 라마단(금식)을 하시기로 작정하고 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낮에는 물 한 모금도 안 마시고 금식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도 갔다가 밥도 못 얻어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슬람이 강력한 이유를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이슬람은 이 라마단 기간을 통해서 단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편안한 상아 침대에서 안일한 시간을 보낼 때 우리의 적은 칼을 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허리띠를 다시 매야 합니다. 예수를 붙들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향락에 빠져 다가올 심판에 무관심한 사람들입니다.
본문 5절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라고 하십니다.
"지절거리며"에 해당하는 원어는 '하포르팀'입니다. 부숴져 떨어져 나간 것을 말합니다. 의미가 전혀 없는, 자신도 모르는 노래를 말합니다. 다윗은 사실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은 악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삼하 23:1, 대상 23:5, 대하 29:26). 그러나 본문은 자기들의 잘못된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한 악기를 만듭니다.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한 악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신앙에 빠지면 안됩니다. 복음을 나만을 기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6절은 "요셉의 환란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사치와 방종에 빠져 있으면서 다가올 재앙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죄 때문에 얼마 안 있으면 나라를 빼앗기고 망하는데도 지금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잠 22:13)고 합니다. 겁나면 못나갑니다. 어느 시인은 "하나님은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장영희)고 했습니다.

말은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뛰려고 하고, 또 실제로 달릴 수 있는 아프리카 얼룩말은 초원을 뛸 때만큼은 표정이 환해진답니다. 심장이 터질 듯 '헉헉'대면서도 표정은 늘 밝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얼룩말의 본능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때로는 힘이 들지만 영혼의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나무를 키우는 분들은 잘 압니다. 나무는 언제나 빛을 따라 가지를 뻗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 4:16)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빛이십니다(요 1:5).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요 3:21)라고 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겁내지 마세요. 주님이 계시잖아요. 빛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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