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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09-06-19
작성자 관리자 (admin)
부르심을 입은 자
롬 1:1-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노라"

이탈리아의 격언에 "천 개의 거짓으로 한 개의 진실을 만들 수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또 많아 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가 많아진들 가라지 일 뿐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것으로 아무리 심어도, 갈고 닦아도 사람의 것일 뿐입니다. 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기준이 그저 돈 많이 벌고 명성을 얻으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또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갖은 방법과 노력을 다합니다. 아마도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 적인 관점에 벗어나야 합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점, 시각이 예수그리스도의 눈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크리스찬입니다. 내 눈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도, 주님 앞에서도 여전히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나의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일수 없습니다. 자! 오늘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열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고백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만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에 하나님은 곧바로 "아담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부르시면서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아담을 찾으실 때와 동일한 마음으로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직접 오셨습니까?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우리를 찾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나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우리를 찾고 계신 것이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를 찾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3),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고 하셨습니다. 이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두 가지의 부르심에 대해서 나옵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부르심이요, 다른 하나는 특별한 부르심입니다.

첫 번째, 일반적 부르심이란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서 불러 주시는 부름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고 하셨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습니다. 구원를 주시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고 나아온 사람을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라는 말은 구별된 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입니다. 부름을 받은 자들의 무리입니다. 교회는 부름을 받은 자가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본문 7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구원의 초청을 받은 모든 사람입니다. 사실상 두 번째 부름을 받은 사람들 역시 여기에 들어갑니다. 첫 번째 부름 없이 두 번째 부름이 없습니다.

두 번째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일을 시키시려고 특별하게 부르시는 부름을 말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라는 부름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단순히 구원만을 위한 부르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세상과는 완전히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요 천국시민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도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사 43:1)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명자입니다. 바울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직접 주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준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두 번째 부르심을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를 부르시는가?
하나님은 아무나 부르시지 않습니다. 준비된 사람을 쓰시는 분입니다. 준비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겸손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된 줄로 생각하는 자만심이 가득한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바로의 왕궁에서 40년 간 교육받아 문무를 겸비한 모세를 그대로 쓰시지 않았습니다. 나이 40에 애굽의 문화를 통달하여 말과 지식이 능숙했지만 그는 교만했습니다. 권력이나 지식이 있어도 교만한 자를 주님은 쓰시지 않습니다.
교만한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애굽 사람만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곤욕스런 40년을 이방의 객으로 외롭게 지냅니다. 애굽의 바로 궁에서 살아온 날만큼 미디안 광야에서 살아갑니다. 이 기간은 혹독한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둘째,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부족한 상태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순종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안됩니다. 못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만 하면 정말 안되고 못합니다. 네 힘과 지혜와 지식과 학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주님이 할 말까지 가르쳐 주십니다. 입에 넣어 주십니다. 죄는 사해 주시며 부족한 것을 채워 주십니다.

셋째, 분명한 사명의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은 사명의식이 분명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부르심을 받았는지도 모르는 자들은 기드온의 삼백용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는 분명한 사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불렀는지 내가 왜 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서 쓰시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는 아주 구체적인 사명의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앙교회를 위해서 이 시대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자랑하는 제자가 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전도하라고, 복음의 씨를 뿌리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부르심과 택하심"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부르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한다면 "사명감을 새롭게 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나를 왜 불렀는지, 왜 선택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왜 부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큰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으면 한 사람도 쭉정이가 없고, 다 알곡이 되고, 존귀한 자가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질병이나 실패, 환란을 통해서 혹은 친구나 가족, 형제, 부모, 아내 자녀를 통해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부르십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보면 "내가 너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손에게 복을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고 하셨습니다(창 12장).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그 이름은 생명 책에 기록이 되고 새벽 별같이 빛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그야 내 발이 이곳으로 나왔지요" 하신다면 마치 "전등이 어떻게 켜졌습니까?" 하는 질문에 "스위치 올리니까 불이 들어 왔지요"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발전소나 변전소의 존재는 아예 생각하지 않은 대답입니다.
아프리카 사람이 미국의 어느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수도꼭지를 트니까 물이 콸콸 나옵니다. 너무도 신기하고 귀해서 그 수도꼭지를 뜯어 가지고 아프리카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 험악한 세상에 살면서 이만큼이라도 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주관하셨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 또 다른 대답이 있습니까?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천 개의 거짓으로 한 개의 진실을 만들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것으로 안됩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통해서만 우리를 성도로,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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