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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09-06-05
작성자 관리자 (admin)
지혜를 배우세요
잠 1:1-9


"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위급한 때일수록 힘보다는 지혜가 필요하다."(생 텍쥐페리)고 했습니다.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석기시대에 살면 아마 힘이 더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정보화 시대라고 합니다. 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점점 남자보다는 여자가 사회생활 더 잘합니다.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꾸준히 계속적으로 열심히 해야된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지혜롭게 해야된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계속 찾고, 계속해서 두드리는 것은, 사람이 반복하는 가운데 지혜를 얻게 됩니다. 계속해서 반복하지 않으면 지혜도 나오지 않습니다. 찾는 자가 찾게 되어 있는 것은 찾는 사람은 찾았던 한 장소에서 계속 찾지 않습니다. 찾아보지 않았던 다른 장소에서 찾아볼 것입니다. 찾는 방법 또한 발전되는 것입니다.

돈 많은 부잣집 자식이 있었습니다. 놀고 먹는데 익숙해져서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죽을 때가 다 되었는데 자식생각만 하면 걱정입니다. 아버지는 고심 끝에 죽기 전에 자식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과수원 땅 어느 곳에 금궤를 묻어두었다. 자식이 말합니다. 어느 곳인데요... 아버지는 말씀을 안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 게으른 자식은 금궤를 얻으려고 과수원 밭을 파보기 시작합니다. 여기를 파도 안 나오고 저기를 파도 안 나옵니다. 결국 밭을 다 팠습니다. 그랬더니 그 해 금궤는 찾지 못했지만 과수원에 밭을 잘 매서 풍년이 들었다는 이솝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하니까 됩니다. 열심히 있다는 것은 동시에 지혜가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지혜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한 자는 지혜를 얻을 것이며 게으른 자는 미련하게 되는 것이 이치입니다. 현 사회를 가리켜 정보화 사회라고 말합니다. 예전에는 천재를 원하던 사회였다면 정보화 사회는 천재가 아니라 '전문가'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전문가'란 자기 분야에서 10,000시간 이상을 보낸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 길을 잃었을 땐 일단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지를 생각해야 됩니다. 나사는 왼쪽으로 돌려야 풀어지는데 오른쪽으로 계속 돌리면 일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잠시 쉬면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전체에서 '지혜'라는 단어는 약 340개정도 나옵니다. 이 중에서 잠언서에만 41개(호크마)가 나옵니다. 그만큼 잠언서는 '지혜의 책'이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책의 이름을 히브리 원전의 첫 구절을 따서 '솔로몬의 잠언'(히, 미쉘레 셀로모)라고 불렀습니다. 짧게는 그냥 '미쉘레'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말 '잠언'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미쉘레'는 '마솰'의 복수형으로 '속담들, 격언들'을 의미합니다. 미 '마솰'이라는 단어는 '...같다, 유사하다, 묘사하다' 등을 나타내는 어근에서 유래된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인생의 경험을 압축하여 간결하게 표현한 경구나 속담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이나 교훈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잠언서의 대부분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며 지혜를 구하였던 솔로몬이 쓴 것이 대부분입니다. 열왕기상 4:32절에 의하면 솔로몬은 잠언 3,000개와 노래 1,005편을 남겼습니다. 모든 사람 중에서 솔로몬만큼 하나님께 지혜를 얻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솔로몬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 하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하셨습니다. 양은 분명 비무장입니다. 그런 이 양에게 지혜마저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혜로워야 삽니다. 지혜로워야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뱀에게서조차 배울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하 9:22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큰지라 23 천하의 열왕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라고 합니다. 솔로몬 왕 때는 천하의 모든 왕들이 솔로몬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에게 지혜를 배우기 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배우기 원해야 합니다. 배워야 당겨야 할 문을 계속 밀어대지 않습니다.

교육학자들은 동물들은 본능이 거의 좌우하지만 사람의 경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정보를 섭취하지 못할 경우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거나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 예로
"1920년 12월 인도에서 신그라는 사람이 가축을 잡아먹던 호랑이를 사냥하러 갔다가 동굴 속에서 늑대 새끼 무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늑대 새끼 가운데 끼여있던 여자 아이 둘을 발견하고 그 아이들을 자신이 운영하던 고아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7, 8살로 보인 여자아이들은 원숭이 소리 같은 것을 내며 네발로 기어다녔고 마치 늑대 새끼인양 신그씨 등을 물려고 했습니다. 그 후 아말라와 카말라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아이들은 인간과 같이 생활하기 위한 훈련을 받았으나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아말라라는 소녀는 곧 사망하였고 카말라는 그 후 두발로 걷는 연습을 하며 인간의 옷을 입는 등 꽤 적응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1929년 17살 정도의 나이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몇 일 전 러시아에서도 늑대소년이 발견되었습니다. 아파트에 방치된 아이를 고양이와 개가 기른 것입니다. 동물 소리를 내며 네발로 다니는 것입니다. 사람도 역시 교육받지 못하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교육만 받으면 돈만 아는 사람이 될지 모릅니다.

본문 2절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지혜(hm;k]j;:호크마)는 '!k'j;:하캄'은 '판단력, 굳셈'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원어상 호크마(지혜)는 삶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기능적, 도덕적, 종교적 지혜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시편에서 제일 많이 하나님을 묘사한 단어 중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니, 요새시니"(시 18:2, 31:3, 94:22)라는 말이 나옵니다. 굳센 반석입니다. 큰 바위 이십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혜란 다름 아닌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명이 히브리어로 시몬인 베드로에게 아람어로 게바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게바를 헬라어로 번역해서 베드로입니다. 즉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의 어부 출신인 이 베드로(바위)가 이름과 같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지혜로운 것은 진리인 예수님의 말씀 위에 서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시몬의 뜻은 '응답' 입니다. 당시 이러한 이름을 사용하는 많은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이 이름의 뜻과 또 부르기에 나쁘지 않았던 이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 이름도 유대식이 아닌 아람어로 게바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식 히브리어로 된 시몬이 있는데 굳이 아람어식 게바라고 이름을 변경했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까요?
이들은 아마도 유대주의에 빠져있는 대표적인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제일 뛰어난 사람 두 사람을 뽑았습니다. 그 사람은 베드로와 바울 이라고 해야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특징을 보면 모두 열심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에 베드로와 제일 문제가 될 소지가 있던 제자가 있습니다. 바로 '마태'입니다.
마태와 베드로는 서로 협력하기 어려운 집단에 속했던 사람입니다. 마태는 세리로서 로마제국에 팔렸던 사람이고 베드로는 로마를 증오한 사람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열렬한 애국자였으나 마태는 매국노였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여건에서 만났기 대문에 분명히 마태는 시몬이 속해 있는 셀롯인들의 암살대상자 명단 위쪽에 자리잡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다른 환경의 두 사람 사이의 깊은 바다에 다리를 놓으셨다. 개인적인 증오심은 예수님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에 의하여 극복되었습니다. 이들이 조그마한 단체 속에서 화평하게 살 수 있다면 복음은 사람들 사이의 모든 불화를 치유할 능력을 가진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마태의 화해는 복음의 화해능력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께서는 사람과 화해하시고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환경을 극복하고 화목케 하셨습니다. 가끔 보면 우리 교회들도 무슨 정당이나 단체에 소속되어서 누구를 좋아하고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 민족에게 원하시는 것은 분열과 대립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마태는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지혜로 그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본문 4절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yIat;p]l:페타임)는 '열려진, 공개된'이란 뜻의 '파타흐'에서 유래된 말로서 마음을 지킬 수 없는 상태로 무방비로 열려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호크마)'가 지키는 것이라면 '어리석은 자(페타임)'은 반대로 지키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영적이든 육적이든 미혹 당하여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성경에 보면 우상을 가리켜 '미련한 것', '가증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가증한 것'이라는 표현은 어리석은 자를 꾀어 내었다는 우상에 대한 표현이고, '미련한 것'이라는 표현은 그 우상에 넘어간 '어리석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슬기:오르마' 재빠르게 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삼하 22:3)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신)은 지혜롭습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신 34: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성령은 지혜가 충만하십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눅 2:40) 하나님은 지혜이십니다. 예수님은 지혜이십니다. 성령님도 지혜이십니다. 미련하지 않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행 6:3) 초대교회 일곱 집사를 선택할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성령과 지혜는 늘 함께 다니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지혜롭다는 뜻입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행 6:10) 라고 말합니다.

살인 혐의의 누명을 쓰고 20년형을 선고받은 후 9년 째 복역하던 네팔인 선교사인 만자 타망이 2009년 5월 29일 국경일에 석방되었습니다. 만자 타망은 교도소 내에서 약 30 명 규모의 재소자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했으며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만자는 9년 전, 전도 여행을 하면서 강을 건너던 중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가 오히려 살인죄로 몰렸습니다. 당시 만자의 활동에 앙심을 품고 있는 반 기독교 극단주의 운동그룹이 늘 그를 해할 기회를 엿보다가 거짓 증언을 통해 그를 살인자로 몰아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피살된 사람의 부인조차도 그는 결백하다고 증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9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가 있는 곳이 곧 선교지였습니다.

본문 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합니다. '경외(ta'r]yI:이르아)'는 '두려움, 무서움'을 말합니다. 단순한 공포심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설교도 내가 좋은 대로 하게됩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 내 마음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근본(tyviar:레쉬트)'은 '첫째, 시간, 장소' 등을 의미합니다. '근원'이라고 번역해도 됩니다.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이 있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을 여행하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분에게는 본문 9절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라고 하십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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