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처음으로 | 기사입력 | 리포터(선교기자) 가입 | KCM 홈
 
   특별호 12호 바이블 웨이 [05-08]
   제375호 [05-07]
   제374호 [10-30]
속보(긴급기도제목)
선교현장
선교소식
선교단체
푸른섬선교정보
AFMI
교계, 문화
오피니언
 발행인칼럼
 선교칼럼
 목회칼럼
 QT
 아름다운이야기
 간증문
 기행문
 무지개편지
목회, 신학
청년, 대학생
기획, 특집
포토/동영상
해외한인교회
선교학자료
해외일반
한국일반
주앙교회
미션매거진을 만드는 사람들...
facebook 미션매거진 편집회의
섹션 오피니언 > 기행문 등록일 2009-06-05
작성자 관리자 (admin)
거룩한 산 예루살렘에서 II
겟세마네와 만국 교회, 시온산, 마가의 다락방, 다윗의 가묘
3. 겟세마네와 만국 교회(겟세마네 동산 교회)

겟세마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시기 전 기도하시던 곳이다. Gethsemane 은 히브리어 ‘Gat Shemen” 으로 된 단어로 “감람나무(올리브) 숲”이라는 뜻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올리브 밭이 있고 또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망대로부터 겟세마네까지 걸어 내려가는데 과연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많이 보였고 바로 옆에는 공동묘지가 시야에 꽉 차서 들어온다. 감람산(올리브산)은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시온산보다 약간 낮은 해발 830m로 시온산(765m)보다는 높고 대관령(832m)과 아주 비슷하다. 내가 대관령을 여행한 시기는 1983년인가 1984년으로 기억된다. 그때 그 고개를 넘을 때 구불구불한 정취 넘쳐나는 산길을 한참을 달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산정상 휴게소를 들렸는데 그때 너무나 추웠었다. 올라 올때는 그리 춥지 않았는데 그 위에 올라가니 나무 한 그루 없어 바람도 막을 수 없는 초원만이 널려 있어 그때 느꼈던 추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시다시피 그래도 어느 정도 높이에 있는 감람산이 낮에는 사막성 뜨거운 열기가 밀려오는 여름 같은 날씨가 밤이 되면 영상 10도로 떨어지는 기온차가 심한 곳인 것이 이곳에 와 보니 실감이 난다. 예수님께서 밤에 기도하신 시각은 이런 일교차이 plus 체감온도까지, 예수님은 그날 밤 더욱 추위를 느끼셨으리라 짐작된다. 베드로가 가야바의 집에 갈 때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추웠으면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고 했겠는가? 주님은 돌 몇 개 던질 자리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안드레만을 데리시고 기도하시기 시작하셨다. 마태복음 26:36절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기도하시는 그 때의 모습을 누가복음 22:42-44이 이렇게 전한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서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바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그 자리가 만국교회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말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시던 겟세마네 동산의 ‘만국교회,’ 그리고 빌라도의 법정이 있는 안토니오 요새가 시작되는 곳에서 갈보리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신 ‘슬픔의 길’ Via Dolorosa (비아 돌로로사)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잡히시고 장사 지내게 된 곳, ‘성묘 교회’ 가 예루살렘의 3대 성지이다. 겟세마네 안에 작은 동산이 마련되어 있고 그 안에 만국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이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비잔틴 시대 때 기념 성전이 건축되었다. 예루살렘의 모든 건물들이 그러하듯 여러 번의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거듭하였다. 이곳에 교회가 들어 선 것은 초대교회라기보다는 4세기말 비잔틴 때였다고 한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AD 614년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건물 일부가 파괴되는 8세기에 일어난 지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른 교회 건물과 마찬가지로 12세기 십자군 전쟁 때 재건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이슬람 치하에서 교회는 파괴되었다. 이 교회는 그 동안 모든 역사를 교회당 건물 안에 다 갖고 있다고 한다. 우선 예배당에는 조그마한 만국기가 있다. Church of all Nations 라는 이름에 걸 맞는다. 이 교회의 위치가 비잔틴 교회가 있던 곳이고, 십자군 전쟁 때 다시 이슬람에 기독교식으로 교회당을 분위기를 바꾸었다고 한다. 반대인 경우도 많지 않은가?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은 모스크로 바뀌지 않았던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러한 결과로 1919년 세계 여러 나라의 헌금을 통해 6년 동안 공사 후 현재의 대 성전을 세우게 된다. 그래서 말한 것처럼 이름도 만국교회(The All Nations Church)이다.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 위에 있는 Via Dolorosa 의 마지막 장소에 세워진 ‘성묘교회’ 다음에 규모가 큰 교회이다. 육안으로 보아도 웅장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교회이다. 이 건물을 재건할 때 할 수 있는 한 옛 교회의 모습을 재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4세기 중반에 세워진 바실리카의 모습이 대부분 남아있다고 한다. 다른 교회와 다르게 이 교회에는 모자이크가 아주 독특한데 앞면의 그림은 모자이크고, 4개의 석상은 4사도, 지붕의 돔은 12개로 각 사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눈에 띄는 것이 바위 위에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벽화였는데, 한쪽에서는 베드가 말고의 귀를 치는 장면이 그 다른 편에는 가롯 유다가 예수님께 입맞추는 장면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에도 졸며 잤던 제자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 한 명에게 배반 당하신 예수님,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십자가를 지지 않을 때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웠던 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제자의 도(Discipleship)가 무엇일까?

꿀 바른 말로 충성을 서약하는 수많은 사람들보다 무명의 구레네 시몬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목마르다고 하실 때 목숨 걸고 달려가서 물한컵이라도 드렸던 제자가 있었던가? 이 글을 쓰기 전 난 스스로 작정한 것이 있었다. 자신은 없지만 매 글을 마칠 때마다 한편의 시를 쓰는 것이었다. 시를 쓰기 전과 씨를 쓰고 나서의 마음은 얼마나 다른지 모른다. 시를 쓰기 전에는 쓰고 싶지 않고 도망가고 싶기 때문이다. 일례로 Rocky Mountain 같은 곳을 가면 말하지 않아도 시가 절로 나온다. 난 아름답고 좋은 곳을 보면 보통 10분 또는 얼마 길지 않은 시간에 완만하게 물이 쑤욱 내려가듯 시를 써내려 간다. Straight 로 쓰고서도 고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 유대광야 기도 성회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의 마음은 글의 사실과 내용에 있었다. 글을 간신히 쓰고 나면 손가락이 아파서 수저 들 때에도 아파온다. 어깨가 굳고, 목이 굳고, 밥맛도 떨어져서 먹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집어 넣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이라는 시를 쓸 때이다. 너무 힘들어 쉴 수도 없는 상태에서 글을 마치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시를 써야만 했다. 난 힘들어서 솔직히 그냥 글을 보내고 싶었다. 누가 알아 주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다시 자리에 앉아 “십자가의 길”이라는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 멈추게 되었다.


땅에 것만 보는 인생
그 험한 말 쏟아내도
꾸욱 참는 주님
내 허물 다 받아 주시고
분통 터트린 베드로도
끝까지 걷어 들인 사랑
휘영찬 디베랴 바닷가
흐느끼는 회한 많은 시몬
언제나 그리하듯
따뜻하고
부드럽게
등 두드리시며 하시는 말
네가 날 사랑하느냐
주님…주님이 아시지요.

주님이 십자가 지실 때 옆에 베드로만이라도, 아니면 안드레라도, 정 안되면 요한이라도… 주님이 십자가 지실 때 주님대신 십자가 지실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힘없는 여인들만이 흐느끼며 먼발치에서 따라오고 있었을 뿐이었다. 난 가장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 부자가 먼지 털듯 주면 일거에 문제 해결이 되는데 그때마다 부자의 거금은 없었다. 오히려 먹다 만 생선 조각을 아끼고 아껴서 준 그런 손길이었다. 세상에 가장 어렵고 고난 중에 있는 그런 과부 같은 분들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 난 그때 복받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전에도 그러하겠지만 지금 필리핀은 최악의 상태이다. 부자가 이때(timing) 그 일을 하면 아리마대 요셉처럼 부자다운 부자, 참 산헤드린 공회원 같은 진짜 공회원이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가? 주님의 십자가도 끝나고 부활하시고 난 다음 호들갑을 떨며 “주님 내가 대신 십자가를 질께요” 이미 끝난 일이다.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timing 은 무척 중요하다. 이번 유대광야 기도성회에서 timing은 너무 중요했다. 현찰밖에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가 닥쳐 왔다. 그 고요하고 잔잔한 파도가 폭풍 따라 거대한 파도 되어 내게 덮치는 것 같았다. 적어도 그 상황은 그랬다. 그곳 그 자리, Tiberius 에서 몸을 던져 희생한 분들이 계시다. 그분들보다 훨씬 많은 돈으로 나중에 달려 오는 분들이 계시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가운데 누가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데 너도 나도 십자가를 지겠다고 달려 나오신 것이다. 난 그러기에 그 자리에 자신의 이익도, 좋은 선물 사고픈 소망도, 가장 아껴둔 소중한 보배를 드린 분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손가락이 아파서 쓸 수도 없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 내가 뭐 할 일이 없어서 이 글을 쓰는가? 난 내 일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십자가를 지신 그 분들을 기억하며 이 글을 내 삶의 분신처럼 남기고 싶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많은 분들이 십자가를 지고 주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기를 원한다. 부자가 진정 부자되고, 사람이 진정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right time에 right response 를 하는 사람이다. 나의 시는 조금 더 나아간다.

나도 하는 말
주님 사랑해요

주님 주시는 말
너도 십자가 지고
나를 따르라

난 이 시를 쓰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 울었다. 아니다! 통곡한 것이 맞다. 흉허물을 아시고도, 골고다에도 코빼기도 안보이던 시몬 베드로를 찾아가 물으시던 주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필리핀에서 40일 금식할 때 난 죽어서 천국에 올라 갔다. 우리 주님 너무나 온유하셨다. 그때 주님이 내게 물으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난 나약하고 힘도 없는 사람이다. 전 세계를 휘저으면 사역하고픈 열망이 적어도 30년 전에는 있었다. 난 이 모든 것을 골고다에 묻어 버렸다. 나의 모든 소망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도리어 무명해지고
나를 부인하고
내가 가진 것을 끝까지 내어 놓고
자랑도
명예도
심지어는 내 가족까지도
난 십자가 지기 위해
내어 놓았다.

내겐 십자가밖에 없다.

외로운 이 길 가는 길에 왜 그리 홀로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처량한지… 내가 그때 살아 있어서 함께 어깨라도 들썩거려드렸으면 좋으련만..

내 두 눈에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 온다…

십자가의 길 나머지 부분으로 만국 교회 부분을 맺고 싶다.
연한 손 내비칠 때
손목에 남은 못 자국
그가 박힌 손과 발
쾅쾅 박힐 때
덩그렁 뚫린 내 심장
영원한 가슴앓이 말굽쇠 되어
안아 줄 때 움푹 패인
싸창 찔린 연약한 몸
내 몸에 스며드는
그분의 거룩한 생명
나도 그분처럼 순교자로
막힘도
주저함도 없이 가라 하네

한번 사는 내 인생
영원 여는 창구 되려
매일 드린 제사처럼
순복하는 몸 된다면
영원한 형벌 도려내는
사면 소식 전하는 자로
불구대천 원수라도
화목제만 될 수 있다면
지성소로 나아가는
중보자로
내가 드릴 기도의 향
받고 오실 기쁨의 주
마지막 날 나 소리쳐 외치리
기뻐하며 춤을 추리
만 왕의 왕 주 예수여
당신만이 내 구주
영원토록 송축하리
세세토록 찬양 받을
내 구주 예수 하나님의 어린양


4. 시온산

우리가 오늘 방문하는 곳은 마가의 다락방이다. 마가의 다락방이 바로 위층에 있고 그 아래층(비스듬한 언덕에 있음으로 한국식으로 말하면 반지하)에 다윗의 가묘가 있다. 다윗의 가묘 동쪽 뒤편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지하실)이 있다. 같은 쿼터에 있다고 보면 된다.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건물은 십자군 전쟁 때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시온산 주차장이 있는 곳에 바로 반대편 중턱에 베드로 통곡 교회가 있다. 마가의 다락방 있는 빌딩은 시온산에 위치해 있다. 예루살렘 남서쪽 해발 765m 높이 정도에 있는데 우리나라 대관령 보다는 약간 낮다. 대관령의 높이가 832m, 그리고 대관령 동쪽 산맥의 제일 높은 산 제왕산 840m 정도이니까 그보다는 조금 낮다고 보면 된다.

이스라엘 하면 시온산, 예루살렘 하면 시온산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이 말은 같은 뜻으로 사용되기 그렇다. 이스라엘의 건국의 이상의 정신적 단초는 Zionism(시온주의) 이다. 왜일까?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이 바벨론으로 잡혀갈 때 ‘시온’(Zion)은 그들의 잃어 버린 땅,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하였다. 그들이 고토로 돌아 간다고 하는 거룩한 땅(The Holy Land)으로 돌아 간다는 말은 '시온'(Zion)으로 돌아 간다는 뜻이었다. 시편 137편 1절은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이스라엘 신앙의 구심점을 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바로 시온산에 있다. ‘시온(Zion)’은 ‘봉우리’ '바위'(rock), '산성' (stronghold, Zaion), 혹은 '건조한 곳'(dry place) 등을 의미한다. 이는 예루살렘 남서쪽 힌놈 골짜기와 티로포에온(두로베온이라고 개역 성경에 나옴) 계곡 사이 해발 765m 높이에 위치해 있다. 처음에는 이 지역만을 의미하다가 점차적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칭할 때 사용되었다. (사 2:3, 33:14, 요엘 3:5) 시온산은 단순히 시온이라고 부르지 않고 ‘거룩한 시온’(Holy Zion) 즉 ‘하기아 시온’이라고 부른다.

원래의 시온산의 위치는 예루살렘 남동부에 있는 여부스 족속의 땅을 빼앗아 지은 ‘다윗의 성’(City of David)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삼하 5:7, 왕상 8:1) 그것이 바뀌게 된 것은 다윗이 언약궤를 지금 시온산으로 옮겨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거룩한 산’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삼하 6:12-18, 시 2:6) 이곳에서 다윗이 너무 기뻐하며 춤 추는 것을 본 사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이 업신여겨 태의 문이 닫히게 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그 이후 솔로몬이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움으로 ‘시온’이라는 이름은 모리야 산이 있는 성전도 포함하게 된다. (사 18:7, 미4:7, 삼하 24:18, 왕상8:1). ‘예루살렘’을 말할 때에도 ‘거룩한 성’ ‘거룩한 산’ 이라고 부른다. (시2:6, 9:11, 24:3, 132:13, 48:2, 69:35, 76:2, 87:2, 133:3, 사2:3, 3:16, 4:3, 52:1, 60:14). 그러므로 ‘여호와의 도시’ 표현할 때에도 포괄적으로 ‘시온산’으로 지칭한다. (삼하5: 6-9, 왕상 8:1, 대상11:5), 대하 5:2). 그래서 성경을 보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라고 말하듯 이스라엘의 통치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여기에 ‘시온의 딸’은 예루살렘 거민을 말하는 것이지만 광의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한다. (시9:14, 사1:8, 37:32, 아3:11, 슥2:10) 시편 126편 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조 사 34:8)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온은 하나님의 통치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히브리서 12:22에 보면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천사와…

계시록 14:1에는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심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지금 시온산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을 오려면 예루살렘 성문 중 시온문을 나오는데 바로 시온산을 만나게 되어 있어서이다. 시온산은 예루살렘 성안에 위치해 있었다. 예루살렘이 디도 장군에게 패망 당하고 오스만 터키 제국의 슐레이만 2세(1532-1539)는 시온산을 재건한다. 그때 그는 시온산을 성밖에 두게 된다. 현재 시온산에는 우리가 가게 된 마가의 다락방뿐 아니라 바로 아래층에 다윗의 가묘와 베드로 회개교회, 일명 닭울음(갈리깐뚜) 교회, 프란시스코 수도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공동 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는 다윗의 가묘뿐 아니라 역대 왕들의 무덤도 있다. (왕상 2:10, 느 3:16, 행 2:29) 이곳은 3대 종교와 관계가 있다. 전기한 것처럼 Via Dolorosa 는 유대인이나 무슬림에게는 관심이 없는 곳이다. 황금동사원은 무슬림에게는 중요하지만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솔로몬의 성전 자리로 기억된다. 그러나 시온산은 모두에게 다 관계가 있는 지역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무슬림이든 다 다윗을 선지자로 또는 왕으로 보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바로 시온산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으로 가 보자.


5. 성령의 놀라운 역사, 마가의 다락방(Last Supper Room)

마가의 다락방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유월절 만찬을 행하던 곳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나누신 만찬 뿐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새계명을 주신 곳이다. (막14:15, 요 13:4-15, 행12:12)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두 번씩이나 오셔서 말씀하셨는데 의심 많은 제자 도마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도 한 곳이다. (요 20:19-23, 20:24-29) 일부 성서 고고학자들은 이곳 시온산에서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었다(행 15:1-35)고 주장하기도 한다. 초대 교회에 재림 사상이 매우 중요한 신앙 가운데 하나였는데 1세기 말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생긴 교회가 바로 ‘사도들의 다락방 교회’(the Upper Church of the Apostles)이다. 안타까운 것은 4복음서에서 말하는 마가의 다락방의 위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마가의 집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초대 교회의 전승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마가의 다락방이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가 다녀 온 것은 마가의 다락방이지만 이 좁은 공간에 여러 개의 기념 장소가 하나에 몰려 있다. 마가의 다락방과 다윗의 가묘가 위층 아래층이 있고 마리아 영면교회가 바로 뒤편에 있기 때문이다.

종종 삽화 가운데 보여 주는 마가의 다락방은 예루살렘의 전형적인 가옥 구조인데, 우리가 볼 수 있는 이곳 마가의 다락방은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 당시의 그 건물은 아니다. 지금의 건물이 세워진 것은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382년 비잔틴 양식으로 대성당을 건축하면서부터다. 당시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성도들의 구전을 바탕으로 당시의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바로 ‘사도들의 다락방 교회’이다. 5세기에는 그 이름이 다시 ‘시온, 모든 교회의 어머니’(Zion, Mother of all the Churches)로 개칭되어 불려졌다. 7세기에는 이 시온산에서 마리아가 죽었다는 전승이 떠 돌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이곳에서 마리아가 승천한 것이 아니라 ‘죽었다’라고 해서 ‘마리아 영면교회’(Dormition Abbey) 로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마리아 승천설을 믿는 천주교회에서 자신들의 교리를 부인하는 교회를 세웠다는 점이 참 특이하다. 영면이란 ‘영원히 잠들다’는 라틴어의 Dormitio (도르미시오)의 표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전해주는 위경이 있다. “마리아의 영면’이라는 책인데 여기에는 마리아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한 내용이 나온다. 이 책의 저자는 마리아의 죽음을 사도 요한으로부터 직접 듣고 적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 내용 가운데 이런 글이 있다.

마리아는 죽음이 가까워 왔다는 것을 계시를 통해 알았다. 모든 사도들이 기적적으로 그녀 주위로 다 모였다. 심지어는 인도에서 도마 사도까지 오셨다. 예수님께서도 발현하셔서 마리아를 도우셨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육신을 땅에 묻으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고 마리아의 영혼을 거두어 가셨다. 마리아의 시신을 매장할 때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고 사도들은 예수님께 그녀를 다시 살려주십사 청했다. 그러나 한 천사가 나타나 무덤 입구를 막았다. 그 뒤 마리아는 무덤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 책은 마리아가 분명히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적고 있다. 마리아 승천설을 믿는 천주교회가 “마리아 영면” 교회를 이에 근거하여 지어 놓고도 ‘승천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천주교회에서 지어낸 말에 의하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사도 요한과 함께 에베소 교회에 있다가 승천했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와 교회의 교부들의 증언과 전승 때문이란다. 그들은 마리아의 영혼과 육신이 하늘로 승천했다고 말한 것이다. 성녀 브리짓타와 가타리나 엠메리히가 받은 사적 계시에 따르면 마리아께서 돌아가신 장소는 에베소라고 한 것이다. 나는 에베소에 가서 그 마리아 기념 교회를 방문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교부들의 증언과 전승에 근거한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에베소에는 교회 자리와 폐허만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하늘로 승천 하신 분은 ‘에녹,’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이시지만 후대 사람들은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에 천재인가 보다. 왜냐하면 ‘마리아’도 ‘마호메트’도 승천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이 지어낸 애기를 그대로 믿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로마 천주교회는 마리아 승천설은 이제는 정식 교리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1946년 비오 12세는 전세계 주교들의 여론을 의견을 수렴하여 긍정적인 대답을 얻었다고 의도적으로 주장한 후 1950년 11월 1일에 이르러 ‘성모 마리아의 승천 교리’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같은 천주교회 건물 안에 에베소에서는 ‘승천했다’고 하는 것으로, 또 다른 곳이 ‘시온산’에는 ‘돌아 가셨다’는 기념 교회가 있음이 내게는 참 irony 였다. 하지만 그들의 답변이 참으로 대단하다. 마리아의 영면을 말하는 교회는 사실은 ‘승천하신 후의 복된 잠’이란다. 이 교회의 정식 이름은 ‘동정녀 마리아 영면 성당”이며 라틴어로는 Dormtio Beatae Mariae Virginis 인데 그 뜻은 ‘동정녀 마리아의 복된 잠’정도 되겠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와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자 방금 전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야겠다. 7세기에 ‘마리아 영면설’이 주장되었지만 4세기에 세워진 ‘마리아 영면 교회’(마가의 다락방 바로 옆에)를 세운 것이 오래지 않고 파괴된 것이다. 그것은 노도와 같이 밀려 온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서이다. 그해가 바로 AD 614년이다. [화이트소울] 원본주소 : http://www.whitesoul.com/zbxe/gallery_israel/3138/page/5그 이후 그나마 남아있던 흔적조차 1009년 이슬람 교도에 의해 완전 파괴된다. 그리고 십자군들이 마가의 다락방 교회를 다시 재건하였다. 이는 1333년 나폴리 왕 로베르토와 왕비 산치아가 이집트의 술탄 말렉 알 나시르 마호메트에게서 무너진 교회터를 매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왕은 이 건물터를 프란시스코 수도회(당시 작은 형제회라고 불림)에 봉헌하였다. 프란시스코회는 이 터위에 수도원과 기념 교회를 고딕 양식으로 지어서 구분하였다. 지상층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기념 교회”와 “다윗의 가묘” 그리고 “도마 사도 기념 교회당”(요 20:24-31)을 봉헌하였고, 2층에는”성령 강림 기념교회”(행2:1-13)와 “최후의 만찬 기념교회”(Coenaculum)을 세웠다. Coenaculum 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식당’ 또는 ‘다락방’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교회 건물은 이후에도 파란만장한 변화를 겪게 된다. 1517년 비잔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이 기념 교회가 이슬람 사원으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무슬림들도 인정하는 다윗의 무덤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코란에 보면 다윗은 선지자로 나와 있다. 이때부터 이 건물은 400년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1898년 독일 황제 빌헬름2세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술탄 압둘 하미드가 이 교회터를 기증하였다. 빌헬름2세는 쾰른대교구장에게 이 교회터를 양도하였다. 그리고 캐톨릭 성지 개발 독일 재단이 베네딕도 수도원에 넘겨주고 다시 그것이 프란시스코회에 넘어 오게 되어 그들이 1910년 지금의 기념교회당을 완공해 봉헌하였다. 이것 때문에 고딕 양식이 건물이 사라지고 지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 잠시 또 한번의 폭풍이 이곳에 몰아치게 된다. 1948년 갓 독립을 쟁취한 이스라엘은 다윗의 가묘가 있다는 이유로 이곳을 정부 재산으로 귀속시킨다. 그리고 1층을 다윗의 무덤과 유대인 회당으로 개조하고 탈무드 학교를 개설하였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중동 전쟁의 모래바람이 다시 불면서 폭격을 맞게 되었다. 그때 포탄을 맞은 잔해가 군데 군데 남아 있다.

우리의 일정이 바쁜 가운데서도 이러한 역사를 지닌 마가의 다락방에 오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예루살렘 성벽에 있는 8개의 문 가운데 언급한 것처럼 시온 문(Zion Gate)으로 빠져 나와 약 100m쯤 걸어 내려 오면 눈에 보이는 2층 석조 건물이 보인다. 밖에 있는 돌계단을 걸어 올라 가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 나온다. 시온문에서 이곳까지는 매우 가까운 거리이다. 하지만 아주 많은 순례객들로 인해 서로 발길이 부딪칠 것만 같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으면 돌계단도 닳고 닳았을까? 석조 건물에 깨끗한 느낌을 주는 로마네스크식 건축물로 되어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 오니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방이라는 느낌이 든다. 우선 천장부터 arch 로 되어 있고, 이 천정을 떠 받들도록 매우 아름다운 기둥이 세 개가 떠받들고 있어서 전체 건물의 형세와 조화를 이룬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을 나누던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라고 한다. 물론 한참 지금 건물은 한찬 후의 일이지만 다빈치는 예수님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만약 그가 에세네파와 쿰란 공동체의 정결의식을 알고, 공동체 식사를 알았다면 그렇게 그림을 틀리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당시의 공동체 식사는 한글 디긋 ㄷ 자로 형태로 되어 있어서 그 우측이 상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Via Dolorosa’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통곡의 벽에서는 무너진 성 ‘예루살렘’에 드려지는 유대인의 기도를 들으며, 저들이 속히 돌아 오기를 기도했다. 피방울이 땀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겟세마네 만국 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바위에서 기도했다’고 전해지는 그 자리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 따라 가기’ 위해 간절히 기도 하였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 자리, 최후의 만찬을 주시면서 우리를 위해 영원히 그 피와 몸을 기념하라고 하는 그 자리, 120 문도가 간절히 기도한 자리에서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났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도 그러한 성령의 강림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였다.

난 여러 번 Temple Prayer 가운데 유대인의 benediction 을 언급한 적이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 수훈이나, 그가 만드신 성만찬에 깊은 관계가 있다. 즉 그의 몸과 피를 통해 영원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수님의 계획이시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예수님이 유월절 만찬에서 성만찬을 떼시면서 영원히 이를 기념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 120 문도가 성령 강림을 체험하는 오순절의 역사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성령 강림을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약속이나 한듯 결사적인 기도였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꼭 천장이 그대로 내려앉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자리에 장소가 진동하듯 강력한 성령의 임하심과 기름 부으심이 함께 하였다. 기도가 하늘에 속사포를 쏘듯 올라가는데 그 힘의 능력과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난 이번 유대광야 기도성회에서 우리모두가 얼마나 강한 기도의 용사로 거듭나게 되었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에 그 긴 시간 다른 순례객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듯 그 걸음이 끊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의 timing 까지고 세고 계셨나 보다! 모든 무리가 기도를 마치고 마치 초대 오순절에 그리 성령의 세례를 받은 것처럼 나올 때 먼발치에 그제야 순례객 여러 명이 오는 것이 보였다. 세밀하신 주님의 역사였다!


6. 다윗의 가묘

시간이 더 있었다면 바로 아래층에 있는 다윗 왕의 가묘를 들러 보았을 것이다. 왜 다윗의 가묘인가? 열왕기상 2:10에 보면 다윗 왕은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대로면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시온산에 다윗 왕의 무덤이 있어야 했다. (삼하 5:7) 하지만 어찌된 연유인지 다윗 왕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AD 985년 한 역사가에 의해 이 곳이 “다윗 왕의 묘자리일 것”이라는 발표가 있은 후 이곳을 다윗 왕의 가묘로 정하게 된 뒤 많은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이 있게 된 연유는 앞에서 이미 말하였으므로 반복하지 않겠다. 이곳에 실제 무덤은 없지만 참배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바로 몇 계단 내려가면 볼 수 있지만 있지도 않은 무덤에 묘실 보러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참배하려면 남자들은 통곡의 벽에서처럼 머리에 카파를 써야 하고, 여성들은 모자를 벗고 어깨가 들어나지 않은 옷을 입고 있으면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다윗 왕의 실제 무덤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 41명 가운데 무덤이 확인된 것은 없다고 한다. 지나가는 길에 무덤을 바라 보았다. 한 눈에 보아도 엄청나게 많은 저 무덤들이 수천년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것은 모르겠으나 수천년전의 무덤은 누구것인지 확인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수많은 전란 가운데 성한 곳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 아랍 기독교 지도자 Salim Musalaha 와 함께

Oxford Center for Mission Studies 의 학장님이신 마원석 목사님이 이메일을 forwarding 해 주시면서 알게 된 소중한 분이다. 우리가 오전에만 예루살렘에만 머물기 때문에 이분을 만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번에는 이동 중에도 이메일 열어 보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런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연결되어 우리가 요르단으로 떠나기 바로 직전에 한 공원에 모여 점심을 먹는 시간에 만나기로 하였다. 박 영국 목사님의 전화 번호를 드려서 다행히 약속한 장소에서 우리는 도시락으로 준비한 점심을 먹는 사이에 귀중하고도 마음에 담아야 할 많은 말씀을 듣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크리스천 지도자로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구제도 하시고, 이스라엘 기독교 지도자와 아랍기독교 지도자들과 함께 무조건 사막으로 나가서 텐트 치고 마음을 열고 화해를 시도한 말씀을 주셨다. 이분은 행동하는 양심세력이자 선한 사마리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감사 편지도 못 드렸다. 일단 글 마치면 감사편지 드려야겠다. Musalaha 의 웹사이트는 www.musalaha.org 입니다.

이젠 많아졌어요 주님!

이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뼈의 수액 뽑아내어 흘리는 눈물
당신께서 목마를 때 마시게 하고
메마른 당신의 눈물자국 닦아 줄 사람들
줄을 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젠 너무 외로워하지 마세요
가족에게 내침 받아도
영원한 하늘 가족 되고자
이 땅에 모든 권리 다 잃고
사막과 황야을 채우는 이 많답니다.

사탕발림 아첨쟁이로 심난하지 마세요
권세, 부귀, 쾌락 포기하고
고난의 길, 슬픔의 길을 스스로 가고
진리만을 쫓아 가며
좁은 길 가시밭길 가는 이가 많답니다.

이젠 혼자 매맞지 마세요
로마 병정 채찍 내리치면 대신 맞을 자
양손 약한 발목 못박으면 나아갈 자
뇌 속 파 들어가는 가시관 씌우면 받아 쓸자
약하지만 진정 강한 이들 참 많아졌답니다.

주님의 심장 찌르는 일로 비탄해 하지 마세요
무신론과 온갖 이설과 감언이설로 꾀어도
몸을 내던져 당신을 변호하고
불 꺼진 성전 밤새워 기도하며
칠흑 같은 어둠 밝힐 무리 늘고 있답니다.

당신은 아십니다.
그런 무리들이 숨어 있음을
시내 반도 험준한 바위산에
새들보다 못한 둥지 틀고
길을 잃을 미로 같은 카타콤에
세대와 세대를 거쳐 빛을 잃어 버린 세대들
갑바도기아의 바위 토굴 속에
모래 밥 지어먹던 무리들
원숭이보다 못한 존재로
원형 경기자 소리치는 무리 앞에
사자밥, 호랑이밥 되었던 무리들
지금 같은 평화시대에도
같은 한반도 하늘아래
뼈 부서지는 곳 아래 순교자 속출하고
무슬림 가족에게 내어 쫓김 받아
채찍에 맞아 숨져가는 내 형제들과
순종 하나만으로도 호화호식할 수도 있어도
스스로 토굴 속으로
광야로 찾아가는 숨은 엘리야의 사람들이 있음을
당신은 아십니다.

주님!
나도 그들 중에 하나되기 원합니다.
꼴찌라도 좋습니다.
세상에 알량없는 것에 속아
팔 푼어치 존재도 아닌
그런 사람 아닌
한번 살아도
끝 없는 축복의 능선으로
누리고 누릴
칭찬 받도록
당신께서 지라고 하신
그 십자가 오늘도 지고 가렵니다.


작고 작은 자 김 종필 올림




프린트 메일보내기
관리자 모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