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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오피니언 > 기행문 등록일 2009-05-27
작성자 관리자 (admin)
사해에서 갈릴리까지
김종필 목사
역사의 소용돌이가 많이 일어나는 곳은 인류 역사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단서를 제공해 주는 지역이기 하다. 세계에 200개 넘는 나라 가운데 간단없이 분쟁이 많은 지역이 있다. 그 지역을 뽑으라면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명이 발생했던 근동 지역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은 우리가 밟고 있는 이스라엘 그 중에서도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종교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인류 역사의 두 줄기 가운데 헤브라이즘을 탄생시킨 곳이며 동시에 인류 역사를 마무리할 지역이다.

세계의 3대 종교가 이곳 팔레스타인과 깊은 관계성을 두고 있다.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빼고서는 말할 수 없다.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첨예하게 대립된 그 문제를 알게 모르게 3대 종교와 분쟁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그들 생존 문제는 종교적, 역사적 당위성까지 부여하며 얽히고 설킨 상태에서 뾰족한 해결의 근원적 방법 없이 공존하고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아랍인, 유대인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수의 유대인 기독교인(Messianic Jews)들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은 인류 역사의 추수를 마무리하는 치열한 영적 격전장이기도 하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류의 첨예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인 여리고에서 우리가 할 수 유일한 해결의 실마리는 기도밖에 없기 때문에 그토록 치열하고 처절한 중보 기도를 드리도록 주님께서 인도해 주셨음을 본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구원의 복음이 힘있게 증거되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발 앞에 굴복하기까지 우리는 마지막 추수를 위한 해산의 수고인 중보 기도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나라를 잃었던 이스라엘이 다시 나라를 찾은 1948년을 기점으로 다시금 이스라엘의 회복은 열방의 구원을 푸는 열쇠로 등장하였다. 마사다에서 장렬하게 죽어가면서도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회복할 것을 믿었던 유대인에게 이미 에스겔 37:16, 11-12, 21 절은 우리 눈앞에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이스라엘이 회복하고 유대인이 고토로 돌아와 그들의 옛 땅을 밟게 된 것이 성취된 것이다. 우리 일행이 지나가는 곳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그 현장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는 원래의 가나안 족속들을 내어 쫓아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2000년을 나라 없이 유랑한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둥지를 틀고 그 땅을 지켜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하루 아침에 몰아 내고 그 땅을 차지해 버린다면 그들의 입장은 또한 어떠한 것일까? 사람이 각자 어느 위치에서 바라 보느냐에 따라서 사건과 역사를 보는 것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나라 없이 2000년을 방황하던 유대인 600만 명이 도륙 당한 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유대인에게 동정을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에 유대인의 귀환은 가능했다. 반대로 수천 년 동안 살던 터전을 빼앗기고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무차별 쫓아 내는 유대인을 본다면 당연히 주변의 아랍 국가의 입장에서는 빼앗김을 당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 깊은 동정을 보내고 유대인을 미워하지 않겠는가? 예루살렘에서 갖게 된 모임에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입장에서 그러한 아픔을 토로한 Salim Musalaha 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 하다! 우리가 들어 간 지역, 지구상 가장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는 지역, 세계 언론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지역, 여리고를 보러 가는 중에, 베들레헴과 동예루살렘이 걸쳐 있는 West Bank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1. 서안 지구(West Bank)

이스라엘의 역사는 세계에 보여주는 하나님의 시계침이며, 또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리기 위해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는 이스라엘 자신의 국가의 운명뿐 아니라 접경해 있는 이방에게도 깊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구절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 에돔(요르단) 족속은 서로 상반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애굽은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한다면 양국 국민이 느끼는 감정은 어떠할까? 바벨론(이라크)은 심판의 대상이고 이스라엘은 남은 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구원받을 대상이라면 그 메시지의 당사자들이 어떠한 느낌일까?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는 영원한 소금 언약이 있고, 롯과 두 딸 사이에 나오는 모압과 암몬(요르단) 족속은 버림을 당한 운명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이점에 있어서 블레셋(팔레스틴) 족속이나 지금도 근동에 사는 팔레스타인 아랍인(이들 모두가 팔레스틴(블레셋)인과 다 인종적 뿌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관계가 있음)에 관한 이스라엘의 관계는 가장 극명한 상반관계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은 성경에 써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서구 열강의 힘을 입어 독립을 선포하고 그 땅에 들어 오는 순간부터 수천 년을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수천 년의 권리와 터전을 빼앗기기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모습은 또한 정당한 것이 아니리? 지금 벌어지는 전쟁이 어찌 여호수아 당시와 매우 유사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간략하나마 이스라엘이 소위 이집트로부터는 가자 지구(Gaza Strip), 시리아로부터는 골란 고원(Golan Heights) 를 그리고 요르단으로부터는 요르단 서안 지구 (West Bank) 를 빼앗아 지배하게 된 경위와 지금의 상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래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갈릴리 호수와 사해 사이를 흐르는 요르단 강 서편에 있는 이스라엘 점령 지역을 우리는 서안 지구(West bank) 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빼앗은 이 지역은 예루살렘 일부, 베들레헴 그리고 여리고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도시들이 있다. 그리고 요르단과 접경한 전략 요충지이고, 갈릴리 호수의 수자원 사용에 관한 분쟁 지역이기도 하다. 바로 이스라엘 점령 지역을 우리는 서안 지구(West bank) 라고 부르고 때로는 West Bank 를 한국말로 서안지구하고 부르지 않고 영어 그대로 West Bank 라고 부르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요르단 강 서편에 있음으로 요르단 서안지구가 더 맞겠지만, 편의상 요르단을 뺀 서안지구로 통일해서 부르고자 한다.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이며 또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행정 구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가자 지구와 더불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영토로 되어 있다. 국제법상으로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군사 통제 하에 있으며, 서안 지구 안에도 유대인 일부가 거주하는 정착촌이 여러 군데 산재해 있다. 이점이 바로 이스라엘 군 개입의 빌미를 주고 있다. 서안 지구는 지도상으로 엄연히 이스라엘의 영토로 나와 있으나, 서안 지구 주민은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어떤 권리도 주어 지지 않고 오직 유대인에 한에서만 권리를 부여해 준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우리가 요르단을 여행할 때 요르단은 기념품이나 또는 우편물에 서안 지구를 요르단 지경으로 표기해 놓은 것을 보았다. 이스라엘은 1993년 9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PLO)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가자 지구, 요르단 서안 지구에 대한 합의안을 여리고 시에서 서명함으로 지금의 형태의 평화안을 유지하게 된다. 이때 PLO 의장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의 의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1996년 1월 총선에서 PLO 의장인 아라파트가 전국민의 88%의 지지를 받고 행정 수반이 된다. 전세계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PLO)에 소속된 사람은 445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역시 이들의 꿈은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의 건설인 것이다. 중동 지역의 불씨를 안고 있는 이 지역은 앞으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지켜 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이 국가로 승인된 순간부터 인류 구원을 위한 주변 국가의 구원의 역사도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럼으로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마지막 시대의 추수 사역으로 연결되어 수많은 아랍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앞으로 돌아 오게 될 것이다!


2. 엔 게디
엔게디

어느 땐가 먼 여행을 하면 속으로 찬송을 부를 때가 있다. 하지만 이처럼 일행이 있을 때는 함께 버스 안에서 소리 내어 찬송을 부르면 은혜가 더 되고 간증을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느끼는 즐거운 여행이 된다. 이번 여행이 그러하다. 찬송과 간증이 끊이지 않으니, 눈은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고, 영은 주님을 찬양함으로 기뻐 뛰며, 우리가 달리는 버스는 역사의 현장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낸다! 창 밖으로는 황량한 광야에 한가로이 노니는 Gazelle 이 보인다. 광활한 광야에 사는 야생 동물에게 물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우리 일행은 기타를 치면서 찬양을 불렀다. 그 중 부른 찬송 중 하나가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42:1).” 시편 기자가 말하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가는 그 경로를 우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시편에 나오는 그곳이었다.

그때 안내해 주시는 목사님이 “저곳이 바로 엔 게디입니다.” 라고 말씀해 주실 때 우연의 일치치고는 매우 신기하다고 느껴졌다. 엔 게디는 우리가 사해로 가는 경로에서 서쪽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헤브론에서 보면 같은 위도 상에서 동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사울 왕에게 쫓기던 다윗이 엔 게디 광야 도망갈 때, 사울이 블레셋(팔레스틴) 사람을 따라 갈 때 그가 왕에게 말하기를 “보소서 다윗이 엔 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라고 하는 삼상 24:1 의 바로 그곳이다. 사해 전 지역이 광야이며 황무지이지만 엔 게디는 그 중에서도 유다 또는 에쉬몬 황무지 중에서도 가장 황무한 땅 중의 하나이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할 때 숨었던 동굴이 있는 곳이 또는 그를 살려 준 곳이 바로 이곳에 있다. (삼상 24장)

이 지역은 이스라엘 백성과 주변 이방 민족과 끊임없는 분쟁으로 전쟁이 쉬지 않았던 지역이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분쟁을 말할 때 이 지역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옛 성경의 족속들이 마치 살아 나서 다시 그 분쟁의 불씨를 지피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 요르단 (모압과 암몬)과의 분쟁에 관한 것이 성경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유다 왕 여호사밧 때에 모암과 암몬 그리고 에돔 왕들이 유다를 치러 연합군을 형성하여 패한 곳이 바로 엔 게디이다. (대하 20:2) 솔로몬은 엔 게디에 대한 언급에서 그의 연인을 엔 게디의 고벨화라고 하였다. (아 1:14) 바로 이 곳이 지금의 “아인 게디” 인데 사해에서 보면 100m 정도 높고, 헤브론 동쪽으로 24km 떨어진 지점에 놓여 있다.

엔 게디는 원래 “염소들의 샘”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샘이 있어서 웨스트 뱅크(서안 지구)에서는 여리고 다음으로 광대한 오아시스가 형성되어 있기에 나온 말이다. 메마른 광야가 끝없이 펼쳐지는 곳에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맬 때 머무는 곳에 샘과 폭포를 제공해 주는 곳이다. 그곳은 짙은 녹음이 우거져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유황 온천이 있어서 휴양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우리 일행은 이스라엘 곳곳을 다 볼 수 없어서, 안내 목사님 말 한마디로 마치 그곳을 다녀온 마냥 한번 바라보고 가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만물을 회복하게 하는 성령의 샘물이 터져 온 땅 족속이 그리스도 예수 앞에 나오기만을 기도 드린다.


3. 사해

작년 어느 때이던가? 지인들과 함께 요세미티 공원 가는 길에 Mono Lake 을 들른 적이 있다. 서울시 면적의 3분의 1 정도 되는 해발고도 1946m에 위치한 76만년 화산 활동으로 생긴 북미에서 가장 오래되고도 매우 특이한 호수이다. 이 호수의 염도는 바다보다 무려 2.5배이기에 물고기가 살지 않는 호수이다. 그런데 이 호수에는 놀랍게도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모기만한 소금 새우( Brine Shrimp) 가 바로 그것이다. 호수 속으로 들어 갈 수는 없었지만 전시관에는 새우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투명한 수족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지구상에서 이 호수만에 서식하는 파리들이 있는데 그 이름도 매우 특이한 알칼리 파리(Alkali Fly)이다. 인디언들이 이 파리를 Mono 라고 불렀는데 그래서 Mono Lake 이 된 것이다. 새우와 파리 외에도 이 호수에는 수많은 철새들이 오고 가는데 200만 마리 정도가 상주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상에 새들도, 파리도, 새우도 생존하지 않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Dead Sea)”가 눈앞에 다가온다. 과연 죽은 바다일까?

사해(死海, 히브리어: ים המלח, 아랍어: البحر الميت‎)는 히브리어 얌 하멜라(Yam HaMelah, 즉 염해)라고 불린다. 구약의 에스겔은 사해 물을 약(겔 47:10)이라고 했는데 오늘 사해의 물이 의학적으로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것을 보면 수긍이 간다. 사해는 해수면보다 418m 가 낮아 지표에서는 지구상 가장 낮은 곳으로 뽑힌다. 사해는 동아프리카를 구분하는 대지구대 북단에 위치해 있다. 이 대지구대는 아프리카 대륙의 동남부 모잠비크에서 시작된 산맥으로부터 시작하여 탄자니아, 케냐, 에티오피아, 홍해를 거쳐 요르단과 사해, 멀리 북쪽의 레바논까지 장장 5천600km를 지나는 대협곡(the Great Syro-African Rift)을 가르키며 지금 요르단 계곡에 펼쳐있는 저 산맥은 대협곡의 끝자락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대협곡의 형성 과정에서 해저 융기에 의해 팔레스타인 부근에 고원이 만들어지고, 요르단 계곡을 만드는 단층을 일으켜 조성된 것이 사해이다.

일반적인 해수의 염도(염분 농도)는 보통 6%인데 비해, 사해의 염도는 25%로 1리터의 물속에 염분은 230-270g 에 달하며, 사해 바닥은 300g을 초과한다. 이정도 되기에 Mono Lake 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명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것 아닌가? 진한 염도 때문에 사람의 몸이 절로 뜨며, 어류가 생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물이 들어 가는 개천이나 샘물 근처에는 작은 물고기도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해는 요단 강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유황과 질산 성분이 함유된 약 700만톤의 물을 받아 들인다.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물이 나갈 길은 없고(이미 언급한 것처럼 지구상 가장 낮은 지대) 요르단 계곡의 뜨거운 기후는 수분 증가를 가속시켜서 고스란히 여러 가지 화학 물질과 같은 고체 성분만이 남게 된다.

이렇게 생성된 것들 중 하나가 포타슘인데 이 하나만으로도 100년을 쓸 수 있다고 한다. 포타슘은 비누와 비료 등을 만드는데 쓰인다. 최성숙 권사님이 사해 비누를 사 주셔서 집에 가지고 왔으나 아직 사용하지 않은 상태이다. (오늘 저녁에 한번 써 봐야지! 사실은 가방에 있는 것조차 정리할 겨를이 없었다. 아 사실은 게으른 나의 모습의 고백인가!) 이밖에 사해에서 채취되는 염화 칼륨을 통해 화학 비료가 생산되고 다른 미네랄이 추출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지나친 수량 사용으로 해마다 0.7m씩 물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사해가 중앙을 중심으로 두 개의 호수로 나뉘게 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많다. 독일 담슈타트 공대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30년 동안 줄어든 사해의 물은 매해 0.47 입방미터의 물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심각한 수량의 감소로 여기저기 들어난 뭍들이 눈에 띈다. 자원의 고갈과 착취는 어디를 막론하고 일어남을 본다. 한 눈에 보기에도 사해는 그리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황사가 유달리 많고, 뿌연 하늘, 맑지 않은 구름 아래 황량한 모래 구릉과 광야가 펼쳐진 주변 환경이 사해를 더욱 처량하게 보이게 하는지 모른다. 아름다운 바다나 호숫가에 있을법한 야자수 군락이나 우거진 수풀도 보이지 않는다. 키부츠나 또는 인공 육림이 가끔 가다가 보이기는 해도 전체로 보면 녹지는 하늘에 별 따기이다. 사해를 황혼 녘에 또는 해 돋는 아침에 본다면 그 감흥은 분명 달라 보였을 것이다. 사해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을 생각하는 사이, 요르단 쪽에 있는 사해가 황사에 얹혀 보이듯 그리 먼발치에서 보인다. 사해를 두고 이스라엘과 요르단 두 국가가 위치해 있다. 수량이 줄어드는 문제는 비단 이스라엘의 문제만이 아니기에 두 국가의 협력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도 엄연히 협상 테이블에 나선다.

이스라엘은 요르단 정부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 협의해 홍해로부터 사해까지 물을 끌어 들여 수분 감소를 막아 보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수분 감소는 급격한 호수 면적의 감소를 가져와 지난 20년 동안 6km 정도 호수가 안으로 줄어 들어 지금까지 산업 개발로 인해 사해에서 증발된 물은 모두 660억 ㎥ 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홍해에서 끌어 들인 바다 물이 사해의 물이 만나는 순간 화학작용을 일으켜 좋지 않은 작용을 하기에 이를 실용화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사해 부근에는 깅코오일에 의해 천연가스도 발견되었는데, 하루에 100-150 배럴의 원유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해의 갯벌을 이용해 화장품이나 비누 첨가물이 생산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머드 팩을 했다고 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머드 팩을 하러 사해로 온다. 검은 흙(진흙) 이 신경통에 특효가 있고, 사해의 물은 피부병 치료에 탁월하다고 한다. 물론 우리 가족은 대화가 머드 팩보다 더 중요해서 이번에는 머드 팩과 수영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왔다. 해마다 250만 명의 관광객이 사해로 온다고 하니 죽은 바다(사해)가 많은 사람을 살리나 보다! 천 년 동안이나 오직 사해 자체의 물로 균형을 유지해왔던 사해가 이제 서서히 사라지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했다. 최근 수십 년간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대규모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 물을 끌어다 쓰고 있어 사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귀 기울여 환경보호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일행은 사해의 한 해변에 내려서 머드 팩과 수영하는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해에 관한 많은 설명을 듣고 그곳에 가는 발걸음 한결 즐거운 모습니다. 더군다나 여리고 성에서의 은혜로운 중보 기도 성회를 마친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기쁜 상태였다. 대부분 해변으로 선팅과 머디 팩 그리고 수영을 즐기는 사이, 우리 가족도 오랜만에 쉼을 얻게 되었다. 가게 의자에 앉아 아내와 딸과 함께 대화하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란다.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니 더 맛이 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휴식의 시간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아이스크림도 먹고, 그 동안 못다한 애기도 나누니 어느새 머드 팩을 마치고, 수영도 마친 분들이 올라 오기 시작한다. 점심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소풍 나와 맛있는 도시락 먹는 시간이 된 듯하다. 주여 감사합니다! 꿀맛 같은 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쿰란 공동체 보고 갈릴리로 이동하게 된다.
사해


4. 쿰란 공동체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사해사본을 마치 보물단지 보듯 하고, 여러 책에 나오는 쿰란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나도 언제 그곳에 가볼 수 있을까?”라는 꿈을 꾼적이 있었다. 베드윈의 목동처럼 그 동굴에도 가보고 쿰란 공동체의 유적지를 눈으로 확인하고픈 소원도 간절했다. 하지만 가난한 신학생이 어찌 그런 기회가 있었으랴? 그러나 그런 가난한 신학생의 소원은 훗날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현실로 다가왔다. 내 눈으로 직접 쿰란 공동체의 유적지를 직접 밟게 된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쿰란 공동체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사해 북쪽에서 해안을 따라 약 5km 정도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면 제법 잘 지은 현대식 건물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데 그것이 바로 쿰란 공동체 기념관이다. 이곳에 쿰란 동굴이 위치해 있고, 저 멀리 여러 개의 쿰란 동굴을 바라 볼 수 있는 위치에 세워져 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 사두개인, 열심당원, 그리고 나오는 에세네(Essene)파를 기억할 것이다. 광활한 광야에 공동체의 둥지를 틀고 척박한 곳 그곳에서 경건 생활을 했던 무리들이었다. 쿰란 공동체는 에세네파와 같이 공동체 생활을 했던 무리들이다. 특히 세례 요한이 예수님(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 있었다는 말씀이 그 자리에 가서야 이해될 정도로 “광야 생활”이 무엇인지 확연히 확인되는 곳이기도 하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현실과 야합하여 타성에 젖은 사두개인, 종교적 의식은 있으나 경건의 삶은 없었던 제사장들, 그리고 율법주의에 빠진 바리새인 같지 않게 “의의 교사”의 인도 아래 쿰란 계곡에서 무소유 공동체 생활을 한 사람들이 바로 쿰란 공동체이다. 주전 33년경에 일어난 지진으로 건물들이 파괴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쿰란 공동체를 떠났다. 또 다른 연유는 전쟁이 일어나 떠난 경우도 있었다. 이때 그들이 직접 성경을 필사하여 항아리에 담아 동굴에 숨겨두고 떠났던 것이다. 그 후 2000년이 지난 1947년 2월 양이 치던 베드윈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배회하다가 우연히 키르벳 쿰란이라는 작은 동굴을 향해 돌을 던지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는다. 다음날 친구와 함께 찾아 온 그들은 동굴 안에 있는 항아리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발견 중 하나인 성경을 필사한 필사본과 문서들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에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알리 만무한 그들은 마치 엿먹기 위해 집안의 가보를 엿장수에 내다 판 사람처럼 성경 사본과 문서들을 예루살렘 골동품상에게 가져 간다. 많은 경로를 통해 이 문서가 고고학자들의 손에 들어가 순간 세상은 발칵 뒤집힌다. 2000년 동안 그 누구의 손에도 쥐어지지 않은 필사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때 이후 1957년까지 이 지역에서만 모두 11개의 동굴에서 여러 가지의 두루마리가 발굴되었다. 구약 성경의 일부를 비롯한 외경, 위경, 공동체의 단편 문서가 제1 동굴에서 발견된 것을 기점으로 연이어서 다른 문서들이 다른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정되는 이사야 전체와 하박국서 주석, 공동체 계율, 시편, 창세기 외경과 다니엘서가 제2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 제2 동굴에서만 율법서, 예레미야와 룻기 일부까지 포함해서 무려 200개의 문서가 발견되었다.

1952년에 발견된 제4 동굴은 에스더를 제외한 구약 대부분이 단편적으로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에녹서, 다메섹 문서, 레위의 유언서와 같은 외경도 발견되었다. 제 5 동굴에서 열왕기(상하), 예레미야 애가, 신명기 단편과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라는 아람어로 쓰여진 종말론적 문서도 발견되었다. 제6동굴에서 창세기를 비롯해 레위기 일부, 열왕기와 다니엘서 부분이 발견되었다. 제11 동굴에서 주전 1세기에 기록된 탈굼의 욥기와 일부 파손된 시편들이 발견되었다. 여기에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인 공동체의 주거지가 1952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이다. 그곳에는 제1동굴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항아리가 있었으며, 멀리서도 물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수로와 저장할 수 있는 연못 그리고 샘물과 연결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였고, 사해사본에 관한 사진과 일부 자료들을 전시한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우리 일행이 그 동굴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었지만 주거지와 유적들을 돌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이 된다. 쿰란 공동체를 잘 설명해 주시는 박 목사님을 따라 당시에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정결의 법(정결 의식), 공동체 생활, 식사 예법, 그리고 의의 교사를 따라 경건 생활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목사님의 생생한 설명으로 재현되는 것만 같았다. 정결 의식을 위해 물을 저장했던 곳은 반드시 흘러 가는 곳이었기에 흐르는 물을 사용하고자 의도적으로 건설된 욕조와 그것을 담기 위한 건물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정결 의식이 세례 요한이 시작한 물세례(침례)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보기 드물게 볼 수 있는 평토장 무덤 군락이 주거지 뒤편에 촘촘히 들어 있다. 위의 사진 돌담 너머에 보이는 것이 바로 평토장들이다. 사진의 정반대 방향으로 그림과 책에 익히 보아왔던 동굴이 꼭 바로 내 앞에 다가오는 것처럼 가깝게 보인다(이미 앞에 사진을 게재하였음). 쿰란 공동체의 유적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의 절도 있는 생활, 금욕과 청렴 그리고 거룩의 영성을 소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의의 교사”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은 종말에 대하여 쓰여진 책들을 연구하고, 자급 자족과 세례 그리고 정결케 하는 목욕을 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한 것이다. 일종의 종말론적 공동체였던 것이다. 메시야 대망사상은 예나 지금이나 깨끗한 자만이 메시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대두되는 가장 중요한 이슈는 “성결”이다. 정결의식만큼이나 중요한 것 중 하나인 공동 식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과 같은 식사 의식이다. 사도행전 2장 이후에 나오는 성도들의 교제가 당시의 믿는 자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중심 역할을 한다. 주일 얼굴 한번 빼꼼이 내밀고 나 몰라라 사라지는 진정한 “공동체 교제”가 없는 오늘의 교회 공동체를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쿰란 공동체에서의 식사는 너무 중요하기에 이유적지에서 공동체에 사용되는 식기만을 따로 굽는 전임 노동자가 있음을 보여 준다. 공동 식사의 중요성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쿰란공동체


5. 마사다

성지를 순례하면서 아쉬운 것 중 하나는 각자의 관심이 조금씩 다른 이유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관심을 갖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내 경우는 마사다를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하고 보편적인 곳을 가야 한다는 점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하는 어려움은 또 다른 제약이 된다. 이번에 우리가 갈수 없었던 곳은 지금 쿰란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51km 지점에 있는 마사다 요새이다.

이는 사해(死海) 근처에 있는 배 모양의 구릉(丘陵) 모습을 한 434m 높이(실제 해수면 높이 40m에 사해에서의 높이 400m를 합쳐서)의 천연요새이다. 하스몬가의 대제사장 요나단 (BC 161-142)에 의해 축조되었고, 이름을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으로 마사다라고 불렀다. 마사다는 시편 18편에 “산성,” “요새,” 그리고 “바위”로 나와 있다. 헤롯은 마사다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개축하였다. BC 40년 맛다디아 안티고노스 (BC 40-37) 에게 포위되었을 때에는 헤롯 왕가의 피난처로 사용되었다. 헤롯은 여기에 여름 궁전을 세우고 행정 청사로 사용하였으며,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와 목욕탕 등을 만들었다. 그 후에 로마군 주둔지로 사용되었으나 로마군의 주둔지가 마지막에는 로마군에게 최후 항전하는 곳으로 바뀐다. 마사다에 관한 기록은 유대인 교회사가 요세푸스가 쓴 “유대 전쟁사(The Jewish War) 의해 전해져 왔다.

자 여기에서 우리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왜 이스라엘의 회복이 우리 시대에 중요한 주제인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율법”과 “제사” “성막”과 “절기”에 관한 계명을 받게 된다. 이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해 먼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이요, 종국에는 이스라엘 밖에 있는 이방도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을 통해 받게 될 축복의 분깃이었다. 여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을 전해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 이스라엘을 통해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셨으나 정작 이스라엘은 그 메시야를 거부함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축복의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여전히 많은 유대인들은 이미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 들이지 않고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이러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날이 매우 가까웠다.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에 많은 유대인들이 주께 돌아온다는 성경의 예언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스가랴, 이사야, 예레미아 그리고 호세아 선지가 구체적으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 나무와 종말의 비유를 주시면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며 이를 통해 이 땅끝에서 저 땅끝까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인류 구원의 지점을 가늠하게 해주는 척도로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마지막 시대의 열방의 구원과 성경 예언의 성취를 잘 보여 주는 곳이 바로 마사다이다. 로마 황제 네로는 헤롯 대왕의 손자인 아그립바 2세를 64년 이스라엘의 분봉왕으로 임명한다. 이에 아그립바는 유대 지역의 총독으로 풀로루스를 임명한다. 우리가 후에 가게 될 가이사랴는 아그립바가 세운 많은 유적들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총독에 임명된 풀로루스는 반유대 정책을 펴서 많은 유대인을 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에게 이교도 의식을 강요하였다. 유일신 신알을 절대시 하는 유대인들에게 참을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AD 66년에 이방 신전파괴를 주도하는 반란으로 연결된다.

이 반란 사건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견하신 사건에 단초가 된다. 우리가 지나 가고 있는 마사다로부터 오늘 묶게 되는 티베리우스가 이 사건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곳이다. 당시 황제인 네로는 반란의 진압을 베스파시안과 그 아들 디도 장군(후에 로마의 황제가 됨)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령을 남긴다. “이스라엘을 삽으로 깊이 떠서 지중해 바다속에 던져 버리라” 후에 그의 말은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던 아랍이 사용하기도 했다. 1948년, 1967년, 그리고 1973년에 일어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아랍 진영은 “이스라엘을 삽으로 떠서 지중해로 던져버리겠다” 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로마의 대화재가 있었고, 그 이후 네로는 자살하고 만다. 그 뒤를 이어 베스파시안이 황제가 되자 반란을 일으킨 진압 명령을 그의 아들 디도 장군에 위임한다. 디도는 70년 4월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70년 8월 28일 완전히 점령하고 만다. 이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예언은 성취되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에게 밟히게 된다.

그러나 전쟁은 이렇게 종결된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대학살에도 살아 남은 유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960명에 달하는 유대인 열심당원들(Zealots)은 엘리에젤 장군의 인도하게 마사다로 옮겨 결사 항전하게 된다. 디도 장군은 실바(Silva) 장군과 함께 10군단 병력 1만 5천명을 보내어 토벌케 한다. 그때로부터 무려 3년간 73년 5월 2일 전원 사망하기까지 처절한 항거가 마사다에 일어난다. 절벽 높이 450m, 둘레 1,280m 그리고 길이 남북으로 800m에 달하며 동서는 300m 정도되는 작으나 철옹성 같은 요새가 성경 예언의 성취 현장이 된다. 항거하는 그들은 사방에 높이 3.5m 높이의 성벽을 쌓았고, 38개의 망대를 세워 가히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라 할 수 있는 싸움을 시도하였다. 우리가 기도하였던 여리고도 그러하고 마사다도 그러하고 6일 전쟁도 그러하듯 한 사건 하나에 이스라엘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지역이다.

디도 장군에 의해 파견된 플라비오 실바가 이끄는 군대는 10군단 병력 9,000명, 노역에 시달릴 유대인 전쟁 포로 6,000명 모두 15,000명의 병력이었다. 로마군은 마사다 성 전체를 포위하고 압박해 간다. 전쟁 포로로 하여금 마사다 주위를 둘러 벽을 쌓고 망루를 세워 나갔다. 이런 로마군이 요새를 포위한지 3년이 되었어도 그들을 굴복 시킬 수 없었다. 마사다 서쪽에 계단을 쌓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 계단은 엄밀히 말하면 토성인 셈이다. 안시성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아 정복하려 했던 당태종 이세민이 이 일을 알았을까? 로마군이 성 요새에 불을 지르려 했을 때 유대인 전원은 치욕적인 항복보다는 자살을 택했기 때문이다.

유대인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Eliezer ben Yair)는 함락 직전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로마와 맞서 싸운 마지막 용사들입니다. 새벽이 오면 우리는 저들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유로우므로 부끄럽지 않게 죽을 기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치욕을 당하고 노예로 끌려가지 않도록 아내와 자식들을 우리 손으로 죽이고, 우리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입니다. 자! 노예가 되기보다 자유라는 이름의 수의(壽衣)를 입읍시다!”

그의 말에 일부는 눈물을 짓기도 하자 그는 준엄하게 꾸짖는다.

“부끄럽지도 않소? 우리가 여기 모여 로마군에 맞선 뒤로 그들은 죄 없는 유태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소. 다마스쿠스에서는 1만8,000명이 처자식과 함께 목이 잘렸고,이집트에서는 6만명이 살해되었소. 우리는 험준한 요새와 넉넉한 식량을 가지고도 이 싸움에 졌습니다. 지금 로마군은 우리를 살려주겠다고 꾀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성경을 찢으며 승리를 노래하고 싶어합니다.”

벤 야이르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매듭을 짓는다.

‘우리들의 비겁한 패배가 저들의 승리를 더욱 영광스럽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죽음에 실망하고,경탄하도록 만듭시다’

그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들이 죽기 전까지 읽은 성경은 겔 37:1-6, 11, 12, 21절이다. 자신들은 죽지만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고 고국 땅을 반드시 찾게 될 것을 확신하고 죽어간 것이다. 부활될 것을 확신하면서 죽어갔던 것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성경 사본들은 시81:85; 150, 레위기 일부, 겔 37장, 신 33장, 34장 등이며 모두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이다. AD 73년 4월 15일 로마군이 성 요새로 들어 갔을 때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를 포함한 여자와 어린아이 모두 포함한 960명이 전원 사망한 상태였다. 이 항전이 너무나 치열하고 장엄하여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굽힐 줄 모르는 유대인 정신을 말할 때 마다 세대와 세대를 걸쳐 유대인의 정신 속에 죽어서 영원을 사는 곳이 마사다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마지막 시대에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가리키는 지표가 됨을 그 흔적으로 말해 주는 곳이다.

마지막 항전 이후에도 전원 집단 자살하여 로마에게 굴복되지 않은 유대인의 항전 의식은 2000년 만에 본토 땅으로 돌아오는 불요불굴의 정신을 세계인에게 보여 주었다. 마사다 항전을 기록한 요세푸스의 증언도 빛을 보게 된 사건이 있었다. 1838년 사해를 여행하던 E Robinson 과 E. Smith 라는 학자가 처음으로 망원경으로 마사다의 폐허를 발견하게 된다. 그 후 125년 동안 많은 탐험가들이 마사다를 발굴하며 역사의 베일이 벗겨지지 시작했다. 가장 본격적인 발굴은 이스라엘 정부가 주도하게 되면서이다. 1963년 Y 야딘의 인도 하에 히브리 대학 예루살렘 발굴 협회를 통해 고고학적 유물과 파피루스의 단편들을 발굴하고 성 요새의 3분의 2를 발굴하여 세상에 공개한 것이다. 모든 요세푸스의 기록들이 사실로 들어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발굴 현장에서 나온 것들은 온 인류를 떠들썩하게 만든 것들이었다. 침례 의식에 사용된 미크베(Mikve)와 양피지들이었다. 시편 81-85편을 비롯한 구약성서는 모두 14개였다.시편, 레위기, 에스겔서, 신명기 부분들과 희년서(喜年書), 그리고 외경인 ‘벤 시라의 지혜서’도 발굴된 것이다.특히 벤시라의 지혜서는 원본이었다. 인류 고고학적 발굴 가운데 최고의 것이었다.

지금도 징병제인 이스라엘 정부는 가드나(Gadna, 청소년 전투 부대)에 들어온 이스라엘 청년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가르친다.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지 않게 하리라!”

지금은 관광객을 위해 케이블카가 연결되어 좀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그곳, 아쉽지만 다음에는 꼭 가고 싶은 곳이다.


6. 요단강에서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장면은 마 3:13-17, 마가복음 1:9-11, 누가복음 3:21-22에 나온다. 그 무엇보다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이 그에게 비둘기같이 내려 오셨다고 복음서는 말하고 있다. 우리 일행이 다녀 온 쿰란 공동체에서 본 정결 의식은 세례 요한의 세례(침례)를 많이 닮았다. 아니 세례 요한의 세례가 그들의 정결 의식을 닮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에세네파이든 아니면 쿰란 공동체와 간접적인 연관이 있든, 세례 요한은 그의 광야 생활에서 백성들을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죄의 씻음(침례, 또는 세례)을 통해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였다. 그가 세례를 베풀던 곳이 바로 요단강이다. 그리고 도리어 세례를 요한에게 베풀어야 할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만약 우리 일행이 물이 황금처럼 귀한 광야를, 그리고 공동체 생활 중 정결의 법을 매우 중요시 하는 쿰란 공동체를 보지 않았다면 요단강을 바라보는 감격도 분명 이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깨끗한 강물이 흐르는 곳에 팔뚝만큼 큰 메기가 펄떡거리며 헤엄쳐가는 것이 보인다. 적어도 내 눈에는 갈릴리에서 사해로 흐르는 요단강은 브라질 아마존 강보다 더크게 보였다. 그 규모보다도 그 귀중성에 더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물이 귀한 곳에, 그 깨끗한 수원이 넘쳐 흐르는 생명의 젖줄 요단강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다가오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버스에서 뛰어 내려 요단 강변으로 달려 갔다.

어떤 분은 양말을 벗고 강심으로 들어 가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물에 손을 담그기도 한다. 저만치 먼저 달려간 아내는 몇몇 분들과 발목 겉어 붙이고 들어가 다른 분과 담소하는 모습이 보인다. 화사하게 웃는 아내를 더 가까이 보고 싶어 그곳으로 달려 갔다. 이번 유대 광야 중보 기도 성회를 준비할 때 요단강에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해 주신 분이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세례터가 있다는 애기를 들었다. 여러 번 사진에서 요단강 세례를 받는 모습을 보아온 터이다. 하지만 지금 시간은 세례터가 문을 열지 않는 저녁시간이다. 아내와 담소하는 사이 한 분이 오셔서 세례를 부탁하신다. 그 감격적인 곳에 세례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푸는 사이 여러분이 기다리고 계신다. 비록 지정된 세례터는 아니었지만 여러분들이 세례를 받게 되었다. 옷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진행된 세례에 일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은혜가 임하였다.
요단강 세례


7. 갈리리 티베리우스에서

사해를 떠나 갈릴리로 들어 오니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도시만큼 로마 유적과 모습이 도시에 많이 남아 있다. 특이한 것은 이 도시를 헤롯 대왕이 로마의 두 번째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건설한 도시라는 점이다. 이 도시이름으로 우리는 갈릴리 호수를 디베랴 바다라고 부른다. 이 도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티베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에 나오는 가이사 아구스도 다음에 언급되는 인물로 4복음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가이사(황제)가 그를 지칭한다.

유대인의 반란, 특히 제1차 유대인의 반란 이 거세게 일어났을 때 티베리우스는 유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피난처가 되었다. AD 70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많은 유대인들이 티베리우스로 몰려 오게 되었다. 이곳에 온 유대인들은 탈무드와 미쉬나, 그리고 맛소라 역본을 가져오고 저술하게 됨으로 유대 랍비 문학의 중심을 이루며 유대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티베리우스는 히브리어로는 테베리아(Teverya) 라고 불리운다. 지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이며 orthodox 유대인이 많은 지역인만큼 유대적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오는 유대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해면보다 203m나 낮은 지점에 위치하며 갈릴리 지방의 관광 중심지 겸 피한지(避寒地)이기도 한 이 도시는 2,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십자군·이슬람교도·투르크인 등이 남겨놓은 유적이 많다. 그 중에서도 아랍색(色)이 두드러진다. 현재는 북부지방의 거점도시로 발전하여 구시가지 밖으로 신 시가지가 건설되었다


8. 티베리우스 저녁 집회

갈릴리 호수가에 위치한 호텔에서 저녁 여장을 풀고, 그리고 식사를 마친 집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극장 식으로 꾸며진 집회 장소는 마음껏 찬양과 기도를 해도 문제가 없으리만큼 잘 되어 있다. 가장 지하층에 있으니 방해 받을 리 만무하다. 이 날 저녁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미국 한인 교회에서는 말씀을 증거할 기회가 많았던 나는 자주 아내에 대한 언급을 한적이 있었다. 이번 유대 광야 중보 기도 성회에서 아내를 만난 분들은 그와 교제하면서 매우 기뻐하였고, 아내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듣기를 매우 사모하였다. 그래서 이날 밤은 아내가 말씀을 증거하게 되었다. 너무나 큰 기름 부으심과 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사해 바다에서

바다란 모름지기
하나한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곳
하들대는 물고기 펄펄 뛰고
물결치는 배위에서 부르는 豊魚歌 따라
그물도 찢기는 재미 더하면
옅은 푸른빛 하늘강
진한 청수면 줄기 되어 기울일 때
덩달아 기운 바다 가재
옆걸음치는 재미 보며 잡기하고
짠물에 쌩쌩 나는 새우 떼 덥석 잡아
하늘꽃 비친 노을에 구워 삶고
달빛가루 뿌린 자리 기워
흥겨운 마음 달래는
뱃놀이 깊어 갈 때
아스란 피곤 푸는 밤
얼근한 배겟머리 기울고
중중첩첩 새벽별 오는 소리에
붉은 빛 받아 기운 수면
바로 세우며 맞이하는 곳이
살아있는 바다 아니던가?

요단 계곡 기운 산맥
모래 구릉 따라
허리도 굽어지면
버얼건 모래 바람
시도 때도 없이 불어 오고
흥겨운 노랫가락 불라치면
침묵만이
주검의 그림자 덮어 씌우는 곳
쏟아지는 별들도
속삭일 대상 없고
가끔씩 울부짖는 짐승들
도드리찬 바다에는 대꾸도 없어
송사리 한 마리
먹이감도 없어
새들의 발길 끊긴지 수만 년
주검의 그림자 드리운 바다
그대가 사해런가!

살아 있음이 무엇이며
생명을 주는 물이 무엇이랴?
인류의 모순 역설로 대답하고
없어도 있는 것 같이
있어도 없는 것 같이
황량해도 풍부함으로
풍부해도 삭막함으로
그대 찾는 발걸음
무에서 만족 주는
바다 같지 않는 바다
그대 이름은 사해인가?

소금 절은 물
병든 피부 치료하고
바닥에 감도는 자기력
지구 역사의 신비 낚아 내고
온천에 담근 몸
자기 면역 돕는 치료 돕고
클레오파트라 그리 부러워
덥석 손부리에 쥐고픈 검은 흙에
매끄름 새 피부 나고
낮은 구릉만이 뿜어 내는
산소 압력
온 몸의 기를 뚫고
인류 심판의 유산
창조주 경외 산출하는 곳
풍부한 광물질과
석유 자원 펄펄 나온 곳
잃은 이에게 휴식까지 주는 그대
누가 그대를 죽은 바다라 했는가?


작고 작은 자 김종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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