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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신학 등록일 2009-01-02
작성자 관리자 (admin)
성경에 나타나는 진리판단의 기준
안점식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안점식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종교나 사상의 문제에 대하여 나름대로 고민을 해서 꽤나 사려 깊다고 하는 사람부류의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산의 정상은 하나지만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만일 산에 올라가는 길이 오직 하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편협한 말이다. 진리는 본래 하나이나 역사와 문화에 따라서 여러가지 형식과 양태로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근원을 찾아 올라가 보면 보편적이며 원초적인 하나의 진리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어떻게 보면 공감이 가고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이 비유는 적합한가?

이 비유를 말하는 사람들은 종교의 궁극적 목표가 우주의 궁극적 실재와의 합일, 인간 세상의 교화, 마음의 평화, 그리고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의 다양성은 단지 문화와 역사에 따라서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는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성경은 산의 비유를 말하지 않고 문의 비유를 말한다.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는 다 도적이다(요10:1). 진리에 이르는 방법 그 자체가 진리에 속한다. 비록 숭고한 목표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방법이 옳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방법들을 통찰함으로써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구별할 어떤 기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경의 창세기는 우리에게 이러한 기준을 제시해주며 또 어떠한 것이 ‘도적의 방법’인지 말해준다. 인류최초의 인간에 대한 사단의 유혹과 속임수는 종교와 사상의 영역에서도 여전히 동일하게 나타난다. 창세기에 쓰였던 속임수는 오늘날에도 그 원형을 잃지 않고 있다. 창세기에서는 뱀으로 나타난 사단이 인간을 어떻게 유혹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뱀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더라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창3:4-5)
여기에서 사단의 사상전에서의 전술은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요약된다.

(1)“인간이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상들이다. 죽음은 인간이 가장 궁극적으로 직면하는 문제이며 동시에 궁극적으로 풀기 원하는 문제이다. (중략)
한편 인간이 죽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상에는 물질주의적 접근방식과 정반대로 영지주의적 접근을 한 사상들도 있다. 이들은 물질적인 육체의 죽음은 본질적인 죽음이 아니며, 인간은 육신이 죽는 것보다 차원 높은 영계(靈界)로 이주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들 사상은 깨달음을 통해서 인간의 육체를 벗어버리고 궁극적으로 우주와 합일되는 것이 곧 구원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힌두교, 불교, 요가등과 같은 영지주의적 사상들은 윤회와 합일의 관점에서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주장하는 사상들이다.(중략)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된 “영적죽음”과 이로 인한 “육체적 죽음”을 모두 함축한다. 성경은 인간이 죽게 된 원인이 불순종에 있다고 말한다(롬5장) 선악과 안에는 인간을 죽게 하는 아무런 물질적인 요소도 없다. 죽음은 선악과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라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이다. 따라서 성경이 제시하는 죽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2)“눈이 밝아진다”는 사상들이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눈이 밝아진다’는 말은 눈이 ‘열린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은 대체로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무지한 상태로부터 어떤 지각이나 통찰력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선악과를 먹고 난 후의 인간에게 가장 먼저 일어난 현상이 바로 ‘눈의 밝아짐’이라는 것을 발견한다(창3:7). 이것은 마치 사단의 약속이 성취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눈의 밝아진’ 상태는 완전히 달랐다. 사단은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성경(창3:7)은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라고 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인간이 눈을 뜬 결과는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한 영적 수치심과 두려움이었다.(창3:10). 인간은 사단에게 완전히 속은 것이다. 타락하기 전에 인간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통하였으며 사물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지었고 이들을 다스릴 수 있었다(창2:19-20,1:28-30). 인간의 이성은 이러한 총체적인 인식능력에 봉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에 기인한 총체적인 인식 능력을 상실하였고, 이성의 합리성에 그 인식이 제한되어버렸다. 이러한 인식능력의 상실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근원에 대한 지식과 미래에 대한 지식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3)“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사상들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범신론적 신비주의 종교와 사상이 이 부류에 속할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범신론적 신비주의 사상은 수천년 동안 면면히 내려왔다. 특히 동양의 사상과 고대 희랍의 사상 중에는 인간을 우주의 궁극적 실재와 동일시하는 사상들이 많다. 이러한 사상들은 거의 모두가 자연주의적 동일철학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영지주의적이다.
범신론적 신비주의 사상들은 자연을 곧 신으로 간주하며 인간은 자연과 유기적이고 전체적인 일자(一者)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이들 사상들은 유기체론적 사고방식에 입각해서 인간이 자연과 동일한 신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중략)
힌두교, 요가, 탄트라, 불교, 기의 사상시, 신유학(新儒學)등은 바로 이처럼 인간이 곧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동일철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4)“선악을 알게 된다”는 사상들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양심으로 인하여 도덕적 선을 추구하려는 내적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누구도 선악을 결과론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우리는 어떤 행위가 의도와는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선이나 악이 되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행한 결과에 대해서 예측할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기론적으로만 선악을 알 수 있다. 결과론적으로 선악을 안다는 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아는 전지(全知)함과 미래에 일어날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전능(全能)함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인간은 마치 결과론적으로 선악을 안다는 듯이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도덕적이라고 생각되는 행위에 의로움의 기준을 둔다. 나아가서 인간은 자기 의(義)로써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한다.
선악의 행위에 대해서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는 권한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게만 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후 인간은 자신이 선악을 알기 때문에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으며, 또 자신에 대해서도 스스로 의롭다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인양 착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정죄(定罪)와 칭의(稱義)의 권한을 자기 자신이 가진 것처럼 착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창3:22)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여기서 ‘하나와 같이 되었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중략)

이상에서 살펴본 사상전에서 사단의 네 가지 전술가운데 모두 해당되는 것이 범신론적, 자연주의적, 영지주의적, 신비주의적 동일철학이다. (중략)

많은 사상과 종교들은 기독교보다. 더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사망에 이르는 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망의 원인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한다(롬6:23). 이 말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사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대속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써 사망대신에 영생을 주셨다.
(안점식교수 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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