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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08-12-26
작성자 관리자 (admin)
2008년을 보내며
호 6:1-3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철 좀 듭시다.

"빛을 보기 위해서는 눈이 필요하고 소리를 들으려면 귀가 있어야 돼. 그런데 시간을 느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나? 그래, 그건 마음이야 마음이란 것이 없어 시간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그 시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이것은 미카엘 엔데의 동화 《모모》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긴 말을 한마디로 줄여 놓은 우리말이 있습니다. '철' 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외국어를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말의 '철'이라는 말보다 더 사색적이거나 아름다운 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철'을 굳이 영어로 번역한다면 계절(Season)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철'이 마음을 담은 언어로 사용되었을 때는 단순히 계절을 뜻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당한 오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철'은 외국인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말 중의 하나입니다. '철'은 단순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꾸중을 들을 때 '철 좀 들어라' 라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칭찬을 들을 때는 "철 들었구나"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일이 기억합니다. 겨울이 오고 봄이 와서 꽃이 피고 땀이 나는 여름을 지나 추수의 계절 가을이 돌아온다고 철이 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머릿속에 모세혈관과도 같은 핏줄 속으로 철이 오고 철이 가는 것입니다.

우리말은 말마다 모두 사색적이거나 시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말을 사랑합니다. 모든 사람이 해외 여행갈 때 비행기에서 지켜야할 에티켓으로 스튜어디스에게 주스 달라, 물 달라 할 때 이것을 외국어로 익히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 저는 비행기 타고 천연덕스럽게 외국 항공사 비행기 타고 스튜어디스에게 "물 주세요."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주위의 사람들이 그것도 한국 사람들이 저를 다 처다 보는 것입니다. 저는 다시 정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물 주세요" 일본 비행기라 그냥 '미즈' 하면 됩니다. 일본말의 '미' 도 한국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우리말의 '미 나물', '미 더덕' 이 있는데 여기서 '미' 는 물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비행기 띄우면 그것도 스튜어디스정도라면 그 정도 한국말은 배워서 서비스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한국말을 국제적으로 나가서 쓰지 않으니까 그분들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말을 배우고 전하려고 하지 않고 외국어만 배우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철없는 백성' 일 것입니다. 저는 더 원치 않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려는 열심만큼이나 한국어를 배우고 전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위기가 갑자기 국어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말 참 재미있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몇 일전 전화국에 전화를 하더니 "우리 집 전화 먹통이 되었어요." 그러는 겁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 집 전화선이 끊어 졌나 봐요 또는 우리 집 전화가 연결이 안되네요."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먹통이 됐어요" 그래도 다 알아듣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선교사가 와서 우리말을 배우는데 어찌 표현이 다양하고 어려운지 한번은 길 가다가 죽은 척 했답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 말이 다 다르답니다. 발로 한번 차고는 "죽었네." 어떤 사람은 "갔어!" 또 어떤 사람은 "소천 하셨네" 등 그 표현이 다 다르답니다.

한국 사람들은 시간을 밖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그저 흘러가면 그만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을 마치 향기로운 과일을 먹듯이 우리는 시간과 나이를 먹었습니다. 시간이 나의 마음속에 살과 피 속에 파고 들어가 영원히 기억되게 남는 것입니다. 이 시간을 느끼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나이를 "헛 먹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몸무게가 두개입니다. 저울로 달 수 있는 몸무게와 마음을 다는 무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풍부하고 인격이 쌓여 가는 사람에게 "그 사람 무게가 있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철학자 제레미 콜리어는 "지식은 세월이 흐른 결과로 얻어진 산물이요, 많은 날들은 지혜를 가르치기에 적절하다." 고 했습니다. 2008년도 우리는 먹었습니다. 먹었으면 그 만큼 무게가 있고 철이 들기 바랍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 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을 더 이상 슬프게 만들어 드리지 맙시다. 호세아는 본문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주님께 두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세월이 간다고 철이 간다고 철들지 않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 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대인에게는 숨길 수 없는 세 가지 회색 어두움이 있다. 첫째는 공허감이요, 둘째는 죄책감이요, 셋째는 불안, 공포감이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갈등은 다른 그 무엇으로는 해결 될 길이 없는 겁니다. 죄의 문제를 무엇으로 해결하겠습니까?
심리학자 '칼 리밍거' 박사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서 경험한 바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정신병원에 있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그들의 죄를 용서받았다는 확신만 줄 수 있다면
그 중에 75%가 그 다음날로 퇴원하게 될 것이라!" 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가는 교육

기독교의 정신 가운데 하나는 가르치는 것, 교육입니다. 사람에게 교육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면 사람은 무지하게 되어 선과 악도 구분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나라도 엉망이 됩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세계지도 펼쳐놓고 보면 이요 가톨릭 식민지화되었던 나라들이 못사는 것 알 수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식민지화 할 때 그들을 통치하기 쉽게 남자들 교육을 안 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뿌리가 너무 깊어서 그 나라들이 잘 회복이 안됩니다. 중국 공산당은 사람이 감성이 풍부해 지만 낭만주의가 되어서 공산주의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에게 음악이나 미술, 예술 계통을 안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공산정권이 충성을 맹세하는 것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강조하시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가르치라" 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출 18:20) 라고 하셨습니다. 가르치고 보여주지 않으면 교육이 안됩니다.
러시아 000에서 선교하는 000선교사가 계십니다. 그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교회 건물 공간이 이상하고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교회건축을 하는데 러시아 사람에게 맡기고 급한 일이 있어서 한국에 다녀갔는데 교회를 정교회 같이 꾸며놓았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사람이 본 교회의 모습은 정교회만 본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교회는 정교회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누구를 보고 무엇을 배우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시 143:10) 주님께 배우세요. 하나님을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을 보세요. 그 이야기가 모두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을 우리가 배우고 보는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마 5:2) 산상복음(8복)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고 마지막 당부를 하셨습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은 "자기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고 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자기에 대한 지식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자기를 아는 것이요 자기를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안다는 것, 이 두 가지 지식은 결코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지식은 근심을 더해 갈 것이며 하나님 없이 얻은 물질은 자신을 멸망케 할 것이고 하나님 없이 가진 권력은 자기와 백성을 다 절망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요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여기에 내 문제의 해결도 있고,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한 해결도 있고, 세계문제에 대한 해결도 있습니다.

우리말의 머리가락(카락)은 머리에서 갈라진 것, 손가락은 손에서 잘라진 것, 발가락은 발에서 갈라진 것입니다. 영어의 헤드와 헤어, 핸드와 핑거는 아무리 보아도 서로 연관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몸을 하나의 구조체로 보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논밭을 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마음 밭(心田)이라고 합니다.
분문의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메마른 땅에 비를 주어 적셔야 합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세상에 굳어져 있는 마음을 갈아엎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정관념이나 타성에 젖은 마음에 새 공기가 들어가게 해서 새 생명, 세 소망을 찾게 하는 것입니다. 영국은 아주 오래된 나라이며 전 세계 여기 저기를 식민지화 시켰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왜 미국에게 밀렸느냐, 19세기 영국이 기독교가 쇠퇴해간 이유는 제때 밭을 갈아주지 못한 교육 때문이라고 봅니다. 19세기에 영국이 세계 제일의 공업국이었지만 그 당시 영국 국민의 3분의 2가 문맹이었습니다. 지금도 보통 사람은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대학을 많이 나온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그에 비해 뒤쫓아오던 미국의 공업 중심지인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는 95퍼센트의 성인들이 글을 쓰고 읽을 줄 알았습니다.
서양의 교육은 젖 먹이기보다는 젖떼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심을 키워주고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순히 젖떼기가 아니라 새 흙을 북돋우는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북돋아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 2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틀이나 삼일은 영적인 개념입니다. 단순히 날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속이 우리를 살려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기간입니다. 우리를 예수와 함께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북돋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죽어 가는 심령을 소생시켜 주시고 부활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를 직역하면 "그의 얼굴 앞에서" 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은 먼 산을 넘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다아트' 는 하나님을 떠난 마음에서 돌아서라는 강한 열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알자:라다프' 는 '추적하다, 뒤따르다' 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열심히 쫓아가는 것입니다. 한눈 팔 수 없어요. 잘못하면 잊어버립니다. 눈을 부릅뜨고 마음과 뜻을 모아 쫓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나아 오십니다. 본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는 히브리어 '야차' 라는 단어인데 '야차' 는 창 19:23, 시 19:5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순간 하나님의 태양이 우리 위에 떠오르십니다. 이것은 생명입니다. 새로움입니다. 땅을 적시는 생명의 늦은 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2008년도 이러한 은혜를 하나님께 입었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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