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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학자료 > 논문 등록일 2008-08-11
작성자 관리자 (admin)
선교에서 성경을 마주치는 것
창조로부터 새 창조에까지


선교와 성경에 대한 제목은 광대하다.1 나는 오히려 명백한 질문을 물음으로서 시작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토론을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1.선교에서 성경을 마주치는 것
성경과 선교에 대해 말하기를 시작하기 위한 한 가능한 장소는 선교적 활동에 있어서 새로운 방법들로 이 본문을 마주치는 성경본문과 독자사이에서의 교차점과 함께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한스-게오르그 가다머는 모든 해석에 대해 두 지평을 갖는 것으로 말하였다-본문의 지평과 독자의 지평. 의미와 이해는 이 두 실재들의 교차점에서 발생한다고 그는 말하였다. 이것은 수년전 내가 변화 산의 잔치의 전통적인 날과 히로시마의 폭격의 날이 동일한 것으로 실감하였을 때 어떤 힘을 가지고 내게 숙지된 것으로 다가왔다-8월6일. 그 때로부터 줄곧 나는 내 마음에서 그 두 개를 분리할 수 없었다. 원자 폭탄의 눈부신 죽음의 빛과 예수의 얼굴에서의 하나님의 영광의 빛 사이에서의 대조는 너무나 강렬한 것이어서 내가 그 둘을 분리할 수 없었다.
동시에 나는 아프리카에서의 나의 첫 크리스마스를 떠올린다. 때는 1987년이었다. 나의 아내 웬디와 나의 아기 사내 데이비드는 약1년 동안 케냐에 있다. 우리의 딸 차라는 11월에 출생하였다. 우리는 수단의 문드리에 있는 조그마한 신학교에서 가르치도록 되었는데 그러나 캐나다의 성공회는 수단에서의 전쟁이 가열되어 있었고 우리는 케냐로 가도록 돌렸다는 것을 지혜롭게 알아차렸다. 우리가 케냐에 도착한 수개월 후에 수단에 있는 우리의 동료가 될 분들의 네 사람이 수단의 인민 해방군에 의해 납치되었고 또한 수단의 숲속에서 거의 2개월 동안 실종되었다. 그의 석방 후에, 인질들 중의 한분인, 수단에서 성공회의 선교동역자로 섬기는 마르크 니켈목사는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수단으로 돌아올 수 없어서 그는 케냐에서 거의 1년 동안 가르쳤다. 우리는 수단적인 것들에 대한 강한 관심을 유지하였고, 그래서 이웃에 사는 마르크를 갖는 것은 기쁨이었다. 그리스마스 수일 전에 그는 최근에 황폐화된 남부 수단의 한 지역인 룸베그의 지역 주변의 수단의 특정지역에서의 상황을 조사하였던 몇몇 메노나잇들에 의해 준비된 한 보고서를 나에게 주었다. 그 보고서의 작성자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만행들을 자세히 적어놓았다. 그러나 가장 찡한 세세한 것들 중의 하나는 수백평방 킬로미터의 광대한 지역에서 그들이 살아있는 어린아이들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살해되었고, 아사 당했고, 피난민으로 도망했고, 혹은 노예들로 유괴되었다. 이 보고서를 읽은 수일 후에 나는 매일의 지침을 위한 교훈을 읽기 위하여 성경을 펼쳤다: 때는 12월 28일이었고 또한 이것이 그 교훈 이었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 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 하였더라 함이 이루어졌느니라(마태복음 2:13-18)

변화산과 히로시마에서처럼, 수단과 헤롯치하에서의 무죄한자들의 학살의 이야기들은 이제 어떻게든 내 마음에 녹아있게 된다. 때때로 새로운 환경에서의 성경을 읽는 것과 혹은 새로운 눈으로 "선교"의 상황에서 성경을 읽는 것은 그것의 메시지로 독자를 마주치게 하며, 아마도 공략하기까지 할 것이다. 성경과 선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이전에 꿈도 꾸지 못하였던 방식들로 성경을 숙고하도록 우리를 이끌 것이다. 나는 명백히 신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아프리카에 갔었는데- 나는 괄목할만한 방식들로 성경을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끝맺게 되었다.
여기에서의 과업은 성경본문들에 대한 내 자신의 실존적인 참여에 대한 이야기들을 펼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성경이 선교에 대해 말하는 것을 숙고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실로 이것은 한 어려운 충분한 과제인 것이다. 나는 성경을 해석하기 위한 모든 시도는 어떤 특정한 상황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라고 실감하는 것이다. 명백히 나의 경험들과 믿음들은 메시지를 조명하든가 혹은 외곡하면서 성경에 대한 나의 이해를 채색할 것이며 그래서,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그러한 기초적인 본문이므로, 우리는 그것이 단순히 어려울 수 도 있기 때문에 어떤 과업을 피하여 갈 자유는 없는 것이다.

선교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은 선교에 대한 그들의 신학을 성경에 뿌리박을 어떤 욕망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에서 선교의 주제에 대한 성경적인 숙고에 대한 두 개의 아주 상이한 출발점들이 나타난다. 나는 "성경과 선교" 토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두 개의 성경 본문들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하며, 또한 먼저 이 본문들로부터 생기는 다양한 주제들이 나타나는 것을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서 나는 성경의 처음부분과 끝부분을 살펴보면서 성경 이야기를 좀 더 포괄적으로 검토하려하는데 성경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우리로 이 두 개의 명백히 다른 본문들과 주제들을 더욱더 성경적인 맥락에로 두는 것을 도울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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