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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기획, 특집 > 등록일 2008-07-11
작성자 관리자 (admin)
KCM 아웃리치 기행문 “한국 개신교의 발자취를 따라서”
IT선교훈련 21기 기장 최상복 장로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6월 12일(목) 오전 9시 10분, KCM 앞에서 우리 IT선교 훈련생 4명, 목사님, 사모님 이렇게 6명은 백운송 목사님이 보내준 8인용 카니발에 간편한 짐과 몸을 싣고, 2박 3일간의 순례 장정을 시작했다.

훈련 기간 중 필수적인 아웃리치, 비록 해외는 아니지만 국내에서 “한국 개신교의 발자취를 따라서”의 타이틀을 정하고, 훈련생 9명 모두가 참석치 못해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은 어릴 때 소풍가는 기분이었고, 더구나 우리 땅에 생명의 복음을 전해주기 위해 오신 여러 개신교 선교사들과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모두가 나름대로의 배당 받은 임무를 재확인하고. 차에 오르자 사모님께서 준비해 오신 시원한 캔 커피며, 과자류, 과일, 샌드위치 등 즐거운 간식거리들이 소개 되었다.

첫 견학지는 양화진에 있는 “서울 외국인 묘지공원”이었다. 들어가는 입구를 혼돈하여 양화대교를 건너갔다가 되돌아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친절히 안내해 주신 양화진 선교회 신호철 장로님과 간사님의 소개로 555기의 외국인 무덤이 있는 묘소에 도착한 일행은 그 중 167기가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국만리 그들의 고국에서 부터 소명을 부여받아, 죽음을 불사하고 이 땅에 와서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하다가 생을 마감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가족들임을 듣고 우리 모두는 숙연해 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H.B. 헐버트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A.K. 젠슨-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R. 켄드릭-
참으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마음들이 담긴 감동의 묘비 글들을 되새기며
KCM에서 준비한 세계선교지도와. 한국 복음화지도를 전해드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동 중에 산본에서 정성균 간사님이 회사의 급한 업무를 마무리하고 다음 예정지로 함께 동승했고,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오후 2시에 총신대 양지 캠퍼스에 있는 소래교회에 도착했다.
1884년 6월 29일 황해도 장연에 의주 출신 서상륜과 서경조 형제와 그의 가족들이 세운 한국 최초의 교회, 옛 형상 그대로를 총신대학에 복구 놓고 지금은 기도처로 사용 되고 있는 교회, 옛 추억을 되살리는 종탑, 3명의 신학도들이 선배들의 영발을 이어 받기 위해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 기념비들, 북한 땅에 있던 약3,200개의 교회 중에서 유독 소래교회만 남한에 복원된 것은 이것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첫 번째 개신교 공동체이기 때문이란다.
짧은 시간에 모두를 세세히 체험할 수는 없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교회를 내려와 노상에 있는 음식점에서 시원한 냉면으로 출출한 배와 더위를 달랬다.

양지에서 이천방향으로 20분여 거리에 있는 “한국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에 도착했다.
기독교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지어진 이곳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군데군데 세워진 말씀 돌비와 순교자 기념시비들이 이채롭다.
조선 말기부터 일제식민통치를 거처 6.25전쟁기간 중 순교하신 남녀성도들의 초상화와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는 각 층별 Room에 들어서는 순간 대면하게 된 수 많은 얼굴들, 우리를 주시하는 여러 눈동자들..... 아!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 땅에서 피를 흘렸던가. 목회자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순교자들의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있는 기념관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부르신 사명을 새롭게 했다.
잠시나마 앞서가신 선배들의 순교정신을 생각하며 믿음의 선진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다시 영동선을 거슬러 올라와 경부선을 남쪽으로 달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타고 정안휴게소에서 잠시 동안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쉼의 시간을 가졌다.
3시간 10분여를 달려서 서전주 IC를 거처 오후 7시 30분에 전주서문교회에 도착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 선교사에 유서 깊은 곳임을 미리 알고 온 탓인지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환영해주시고, 친절하게 “창립 100주년 기념 역사 자료실“을 안내해 주신 나택성 장로님.
비교적 좁은 자료실 공간에 레이놀즈선교사 부부, 데이트선교사 남매, 전킨선교사 부부, 데이비스 선교사 이상 호남지역의 선교와 개화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7인의 선교사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19세기말, 지금 부터 120여 년 전 이 땅 조선의 현실은 너무나 암울했다.
미국/영국/독일 등은 각 나라별로 괄목할만한 신앙의 부흥이 있었으며, 그 곳의 선교사들이 동양의 일본이나 중국은 쉽게 파송받기를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조선은 너무나 위험하고 망해가는 나라로 분류되어 몹시 주저 했다고 한다.
이러한 암흑기에 성령에 감동된 선교사들이 조선 땅을 밟았고, 이곳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선교사들을 받아 들였단다.
이들보다 먼저 조선에서의 어두운 현실을 경험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안식년을 맞아 고국인 미국에 돌아가 대학에서 조선 선교의 지원을 요청했고, 그 때 7명이 감동받아 이 곳 전주에 와서 사역을 시작했단다.
데이트 선교사는 30세에 이 땅에 와서 33년간 78개의 교회를 설립, 1500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조선에서 결혼한 부인 잉골드는 의과대학에서 수재였지만 전주에 선교사로 와서 지금의 예수병원을 세웠다고 한다.
레이놀즈 선교사는 6개 국어에 능통한 분으로 25세에 와서 1년 만에 한국어를 습득하고 성경번역 위원장을 맡아, 문맹률이 높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하며 한글을 보급하여 문맹퇴치에 힘썼다고 한다.
군산에 개복교회를 설립한 전킨 선교사, 당시 이곳에 허름한 초가집 한 간을 거처로 삼아. 복음을 전했는데, 흰 양복을 입고 찍은 당시의 사진은 매우 이채로웠다.

우리는 유서 깊은 전주 서문교회를 뒤로 하고 늦은 발걸음이지만 한국에서 가장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있는 안디옥교회(일명 깡통교회)로 이동했다. 교회근처에서의 전통 전주 비빕밥은 아니지만 열무비빔밥과 구수한 계란찜은 식당을 운영하는 중년부부의 풋풋한 인정이 물씬 풍기는 저녁밥이었다. 교회에서 제공한 아늑한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모든 재정의 60%를 선교에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미리 듣고 온 터라 전기, 수돗물을 사용하는데도 왠지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여행지의 첫 밤을 맞이했다.
피곤이 극도에 달했지만 이재무 형제의 찬양인도, 총 Leader이신 이영제 목사님의 말씀인도로 안디옥교회의 선교정책 나눔을 중심으로 경건회를 가졌다.
연 선교비 30억, 300명 선교사 후원, 구역별로 선교사와 선교지를 책임진다는 이 교회,
정말 깡통을 반으로 잘라 엎어 놓은 듯한, 교회 형상. 파송된 선교사와 선교비 충당을 위해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기도의 밤을 밝히고 있는 교회 성도들의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좀도리 선교”라고 어린 주일 학교 학생들까지 저금통을 깨뜨려 선교에 기쁘게 동참하는 교회, 이 교회야말로 우리 민족이 빚진 복음의 빚을 조금씩이나마 갚아가는 일에 앞장서고 있음이 분명하다. 구역이름이 온통 지구촌 국가 이름으로 명명된 교회, 정녕 우리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교회, 자체 운영 경비로 고심하는 각 교회의 현실과는 비교가 되었다.

금요일 아침 6시 40분,
숙소에서 단잠을 자고 눈을 뜬 우리에게 목사님은 경건회를 통해 “우리 크리스챤은 유다지파를 계승하고 유다에게 야곱이 예언한 것처럼 동물의 왕인 사자 새끼다, 우리의 근본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자긍심을 가져야 함을 말씀하시고. 힘을 주셨다. 이 교회 선교의 주역인 바울선교회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미루고 교회 숙소 건너편 식당에서 오늘 하루의 일정을 위한 에너지 보충을 하였다.

우리는 곧 다음 예정지인 전주대학교 박물관을 찾았다. 학교 중앙 도서관 3층에 위치한 박물관은 나름대로의 사적을 모아 놓았지만. 서문교회서 이미 경험한 터라 감동이 덜했다.
열심히 안내하는 훤칠한 여학생의 미모에 총각인 일행 형제가 관심을 가지는 듯 했으나 예수 믿지 않는다는 말에 실망한 듯한 눈치, 자료 유출과 훼손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담당교수의 불친절,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보고, 준비한 복음화지도를 선물로 전했다. 대학 박물관에 KCM의 작품의 전시되길 바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1시간여를 달려 논산 병촌성결교회에 도착했고 6.25때 66명이 순교한 현장을 생생히 증인하는 10분 분량의 영상을 봤다. 죽음의 총부리 앞에 믿음을 지키고 순교의 길을 간 수 많은 선배들, 작은 고난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교회 앞마당에 우뚝 선 순교자기념비. 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선배들의 믿음생활의 열매인양 주렁주렁 매달린 살구나무와 점심 값까지 봉투에 넣어주시는 목사님의 따뜻한 인정이 우리를 배웅해 줬다.

점심을 마다하고 혹여나 길이 서둘러 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곧장 대천항을 향해 떠났다. 도중에 반가운 소식이 왔는데 백목사님이 대천항에서 만나 동행키로 한 것이다.
대천항에서 늦은 점심을 찌개로 때우고(나중에 회를 먹기 위해 비용 절약?) 백목사님을 만나 모두 8명이 고대도에 도착했다(오후 4시 40분)
서해안 안면도 앞바다에 위치한 조그만 섬 고대도, 하지만 말기 조선의 관문역할을 톡톡히 해낸 이곳에 이 땅 최초의 유태계 독일인 귀를라프 선교사가 1832년 7월 17일 방문하여 25일간 머물면서 주기도문 번역, 포도주 제조, 감자재배법 등 을 전해주고, 떠난 것이다. KCM에서 공부하면서 처음 알게 된 한국 땅에 온 최초 선교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세워진 고대도교회(합신), 박완열 목사님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2자녀를 모두 입양해서 양육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은 나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물이 빠져나간 선착장에서 멍텅구리 대나무 낚시에도 쉼 없이 낚여지는 우럭, 놀래미를 보면서, 이렇게 잘 전도가 되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회와 매운탕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섬 뒤쪽에 자리 잡은 운치 있는 조그만 해수욕장,
작은 백사장에 죽어있는 작은 고래의 죽음을 보며 이 땅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수많은 선교사들이 희생이 생각났다.

토요일 아침 안개로 돌아가는 배가 뜨지 못해 가슴 조였는데. 오후에는 다행히 안개가 걷히고 늦었지만 고대도를 출발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일정인 제암리교회는 시간이 모자라 교회 목사님께 미리 연락하고 들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전했다.

6/14(토) 오후 5시 50분, KCM에 도착, 2박 3일의 정말 뜻 깊은 순례여행을 끝내고 감사예배를 드리고 여장을 정리 했다.
마지막 정간사님께서 잘 아는 삼겹살집에서 한 턱 쏘셨다. 끝까지 수고와 사랑을 아끼지 않은 간사님들께 감사드린다.
고생은 했지만 참으로 선조들의 믿음의 행전을 알고 각오를 재 다짐 하는, 가슴 뿌듯함을 간직하는 여행이었다.

⌀아침/저녁 경건의 시간, 영의 말씀을 공급하신 이영제 목사님.
⌀맛있는 간식과 분위기를 부드러움으로 채워주신 사모님
⌀회계와 찬양인도를 담당한 이재무 집사님
⌀탐방지 지도작성과 서기업무를 꼼꼼히 담당한 이훈 형제
⌀운전과 Time-Keeper를 담당한 정성균 간사님
⌀말없이 묵묵함으로 캠코더 촬영을 담당한 유완식 형제
⌀일정작성과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안내역할을 담당한 백은송 목사님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일정표작성, 방문지 연락, 가이드북 제작, 기도/재정 후원으로 동참해주신 모든 훈련생과, 간사님들께 감사드리며 2박 3일의 찐한 감동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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