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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학자료 > 등록일 2008-06-16
작성자 관리자 (admin)
3. 파라과이 선교의 현재 현황
6. 파라과이 선교를 위한 과제
5. 파라과이 현재까지의 선교 평가
4. 파라과이 선교 전망
3. 파라과이 선교의 현재 현황
2. 파라과이 선교 역사
1. 파라과이는 어떤 나라일까?


1) 사역하는 선교 단체들
현재 파라과이에서 선교하는 개신교 선교단체들은 장로교.침례교. 감리교,순복음.성결교.형제교단.영국 성공회등 여러 군소 교단들이 활동하고 있다. 장로교로서는 고신. 합동. 통합.대신.측 선교사들이 저마다의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현장에서 뛰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교단 선교사들이 교포교회와 관련을 가지고 파송받는 동기를 가졌다가 그후 직접 원주민 선교를 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 졌을때 원주민 사역에만 집중하게 되었고 그 교포교회 목회자의 공백을 또 다시 한국에서 파송받는 목회자(선교사)가 와서 교포교회 사역을 감당함으로 계속 선교사의 수효가 많아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렇지 않는 방법으로 파송받는 경우가 있지만 전자에서 지적한 방법으로 많은 선교사가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저 개인적인 솔직한 견해라고 밝혀 두는 바이다. 물론 파라과이에는 4곳의 도시에 한인교회들이 있으며 교포 선교와 원주민 선교를 병행하고 있다. 파라과이 전체에 줄잡아 많으면 약 8000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또 약17개의 한인교회들 (수도에 약10개)이 있다.

파라과이에 한인 교회를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은 교포를 통한 원주민 선교의 중심 역활이라는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효과적인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많은 내적, 외적 장애물들을 교포교회가 가지고 있다고 볼수 있다.원주민 교회를 병행하고 있는 교포교회의 선교의 모습은 담임하는 목회자가 직접 원주민 선교를 감당하기에 시간이나 그에 따른 준비들이 갗추어져 있지 못하기 때문에 원주민 사역자를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봉사케하는 것으로 간접 선교에 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종족의 복음화를 책임지는 원주민 사역자는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역을 뜨거운 사명감으로 하지 못하고 일상 생활의 한 분야로 너무 가볍게 생각함으로 원주민 교회가 자립되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원주민 사역자를 양성하는 신학 교육과 일꾼 훈련과정이 본질적인 사역으로 이 사역에 얼마나 중요하며 선교에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본인의 좁은 안목으로 살피건데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을 위한 원주민의 사역이 되기 위한 지름길,- 곧 선교의 신실한 사역은 원주민을 하나님의 사람 바르게 양육시키는 것이야 말로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핵심 사역을 잊어 버리고 가장자리 사역에 본의아닌 관심을 집중시켜 오지 않았는가 하는 자기 반성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현재 원주민 사역자를 양육하는 기관으로서 3개 교단의 연합으로 개혁주의 원주민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고신과 합동과 미주 총회(합동) 선교부 소속의 선교사들이 파라과이에 하나의 장로 교단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뜻을 모아 한 신학교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직 파라과이에는 장로 교단이 이 나라의 법 체제 아래 정식으로 등록이 되지 못했지만 3개 교단 연합으로 조만간에 이를 구성 조직하여 체계적인 장로교 선교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개혁주의 선교협의회가 조직이 되어 3개 교단의 선교사들(12 가정)이 2개월 마다 모여 파라과이 원주민 장로교 태동을 위한 연구를 위한 논의와 기도를 계속해 나가고 있으며 신학교 사역에 대한 제반 문제들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서 고신 선교부의 위치와 역활이 막중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 작업 가운데는 장로교 헌법을 편찬하는 일(말씀위에 교회의 권위와 질서를 세우는 것이야 말로 무엇보다 필요로함)과 원주민 통일 찬송가를 편찬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려움 가운데서 결실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외에도 현재 파라과이에서 활동하는 선교 단체 가운데는 밥티스타(침례교)를 빼놓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을 하였지만 파라과이 개신교 선교에 이들이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파라과이 곳곳에 자기 교단 소속의 교회들을 볼 수 있는데 아순시온에는 일반 학교와 큰 병원 그리고 원주민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타 교단 보다 이곳 파라과이에서 그나마 나은 선교의 뿌리를 내리게 된 원인은, 장로교 보다 오랜 선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 남침례교에서의 집중적인 파라과이 선교에 대한 지원과, 카톨릭으로 찌든 파라과이 사람들의 거센 심령에 인내로 사역을 감당한 결과라고 믿고 싶다. 물론 침례교 원주민 교회들이 질과 양으로 충분히 성장했다는 결론에는 아쉬움이 많지만 곳곳이 교회를 세우며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때 그들의 수고와 눈물과 땀을 짐작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현재 파라과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교단은 오순절 교단의 순복음교회들이다.물론 펜타코스타 안에도 여러 그룹이 있어 각기 특징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파라과이 심성에 가장 어울리는 교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들의 예배는 활기가 넘친다. 뭔가 틀에 짜여져 있다는 장로교의 예배 형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본인도 처음 원주민 교회를 개척하기 이전 파라과이 원주민 교회들을 배우기 위해 잠깐 순복음 교회를 출석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예배전 찬양을 통하여 예배하러온 자들을 이끄는 것을 보았는데 찬양의 첫 부분은 굉장한 흥을 돋울만한 강한 찬양, 뭔가 찬양의 분위기에 빠지면 그냥 앉아 있지 못하게 하는 생동감 있는 찬양으로 분위기를 리드하고 후반부는 좀 조용한 찬양으로 예배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활을 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헌금 순서가 있고 이어 목사가 설교하고 말씀 선포뒤에는 꼭 결단의 시간을 가져 그리스도를 초청하는 기회를 부여하고 이어 또 함께 간절한 기도 (물론 방언 기도와 안수가 함께 병행됨)그리고 뜨거운 찬양을 한뒤 축도 없이 자유롭게 교제하고 폐회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본인이 관찰한 교회는 순복은 교회가운데서도 잘 정돈된 교회라는 인상을 받았으며 실제로 파라과이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에서 제일 큰 교회였다. 물론 장로교에서 오랫동안 예배 생활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여간 거북하지 않았으며 굉장한 반감을 사고도 남았다. 그러나 남미 사람들과 특히 파라과이 사람들을 좀 경험하고 사고를 인식을 한 뒤에는 이들의 정서에 어울리며 그리고 그들의 갈급함을 예배로서 해결받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로교의 예배를 고집하고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라고 늘 생각해 왔던 고정 관념이 종족과 그 종족의 기질에 따라 변화를 가하는 것이 선교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 말씀으로 검증받은 후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장로교의 예배와 전혀 다른 형태로 선교하는 순복음 신학이 남미 전체를 힘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곳 파라과이에도 뒤늦게 그 바람에 편승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있다.

또 다른 파라과이 선교 단체로는 영국에 그 본부를 두고 있는 S.I.M. 단체이다. 한인 선교사 가운데에서도 S.I.M.소속의 선교사가 이곳에 두 가정이 있고 S.I.M.의 다른 선교사들은 주로 파라과이의 한 도시 빌야리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팀 사역에 열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파라과이 에서 활동하는 다른 선교 단체들은 현재 까지 팀 사역보다 개별 사역(원주민 교회개척)에 집중되고 있는 형편이며 앞으로 종합적이며 폭넓은 선교를 위해서는 팀 사역이 보다 효과적이며 포괄적인 선교를 할 수 있기에 개별 사역의 한계점을 연구검토하며 이를 실행하기 위한 선교사간의 상호 이해와 팀 선교의 구체적인 비젼을 나누며 실행에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S.I.M. 선교 단체의 사역을 통하여 도전과 좋은 모델을 제시 받고 있는 것이다.또 그들은 또 선교사 자녀 교육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며 구체적인 실행에 옮기는 것을 보았다.
감리교(Metodista)선교 단체도 파라과이에서 대체로 활발한 활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교단 중앙에서의 엄격한 지도 가운데 한인교회와 원주민 교회를 하나의 지도 체제로 묶어 교회를 감독하며 원주민 선교에 열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파라과이에는 많은 선교 단체들이 들어와 저마다의 사역에 열중하고 있지만 때로는 선교사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며 사역에 비난 받는 행동을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항상 바른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선교사의 인격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바이다.

정금태 이복래 선교사 사역지


2) 파라과이 고신 선교부의 사역 현황
현재 파라과이에는 고신 선교부 소속의 선교사는 3가정이며 자매 교단인 미주 고신 총회 파송 선교사 한 가정까지 합치면 4가정이 사역하고 있는 셈이다.

① 고신 선교사들이 파라과이에 파송 받게 된 배경
고신 선교부가 파라과이에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게 된 것은 교포교회를 통한 원주민 사역의 비젼을 가지고 출발한데서 부터 그 동기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이곳에 가장 먼저 파송을 받았던 이정건 선교사의 파송 동기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선교사는 지금 고인이된 박정덕 목사님이 남미 일대를 선교 여행하는 가운데 이곳 브라질과 인접한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 도시에 한인 교회가 있었지만 목회자가 없는 안타까움을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재창목사님(고신 16회 졸업생이었으며 충현교회 부목으로 계시다가 1979년경에 교포사역을 위해 파라과이에 오셨음)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 공감하게 되었고 귀국하시어 선교부에다가 이 사실을 설명하였고 그 당시 원주민 선교사로 파송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이 정건 목사가 흔쾌히 동의하여 먼저 이곳 파라과이 수도에서 약 320km 떨어진 델 에스떼시로 파송 받음으로 파라과이는 고신 선교부와 한국교회 선교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그 이전에 파라과이에는 약 30년 전부터 한국인들이 이민으로 많이 들어 오게 되었고 농업이민으로 들어 왔다가 재미를 보지 못한 자들이 수도 아순시온으로 몰려 들게 되었으며 또 파라과이로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 오게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파라과이 정부가 무턱대고 이민자들을 일정한 돈을 받고 받아들였으며 들어온 자들은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미국이나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다른 이민을 떠나게 되었으며 미국을 선호하는 많은 자들은 파라과이에서 장사를 하면서 미국 이민 비자가 발급되기를 학수 고대하며 기다리는 실정이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타국으로 이민가는 자들의 중간 정착지의 역활을 파라과이가 하게 되었고 이것은 미국이 최근 이민 규제를 강하게 하기까지 계속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파라과이에서 정착하여 삶을 영위해 볼려는 강한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파라과이의 특색가운데 하나가 이곳 저희들이 사역하고 있는 델 에스떼 도시가 자유 무역도시라는 점이다. 사실 파라과이는 정치 경제가 불안정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중, 남미 가운데 그런 나라가 없지는 않지만 적은 인구로 마땅한 경제 뒤받침이 될 만한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한 파라과이는 일부 권력자들이 밀수나 마약을 통해서 그 이익분으로 경제를 지탱하기 까지 하는 극히 불안정한 나라였다. 그래서 그 지하 경제를 엄연히 사실 경제로 발전시키 위한 하나의 제도로 이곳 델 에스떼시를 자유 무역도시로 정하게 되었고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인접 도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싼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하여 몰려들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혹자는 파라과이의 델 에스떼시를 남미의 홍콩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도시에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며 장사하고 있으며 한인교회들이 4개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이정건 선교사님이 1989년 5월경에 도착하여 오랫동안 목회자없었던 한인 평안교회에 사역하면서 첫 남미 고신선교에 깃발을 꽂게 되었다. 이 선교사의 처음 2년동안은 한인교회를 담임하며 현지 적응과 언어 훈련을 하는 힘든 사역이었다. 약 2년의 시간은 교포교회와 원주민 사역을 하기 위한 언어 훈련을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현지에 와서 적응해 보니 이 선교사는 이 모든 것을 열심히 감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2년의 시간이 흐르고 또 이정건 선교사가 교포교회를 통해 원주민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고 이제는 일꾼이 더 필요하다는 강한 도전을 가지고 선교부에 선교사 한두가정을 파송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었다.

선교사가 더 필요하다는 분위가 무르익고 한국에서도 선교사 파송에 대한 뜨거운 열정에 편승하여 드디어 최승렬 목사님이 파송받아 이곳 델 에스떼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때가 1991년 10월 쯤 이었다.그러나 최승렬선교사는 도착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 아순시온을 선교 목표점으로 삼았고 이사를 하여 수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수도 한인교회들이 7개 정도 있었고 한국을 포함한 많은 외국 선교사들이 사역을 하고 있었지만 유독 우리 교단 선교사가 한 사람도 없었다.
선교지에서도 그 나라의 심장부를 먼저 공략해야 된다는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지금까지 아순시온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는 최 선교사에 대한 논리는 충분히 납득이 되고도 남는다.그 이후 이정건 선교사의 안식년 문제가 제기 되고 교포교회에서는 교회를 장기적으로 비우면 어렵다는 뜻으로 이 선교사가 계속 담임하기를 원하였고 이 선교사는 앞으로 본격적인 원주민 사역을 위해서는 교포교회를 떠나야 할 형편이었다. 이와같은 어려움 가운데 이 선교사 후임으로 교포교회를 담임할 수 있는 선교사를 한 사람 더 파송받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급기야 부족한 본인이 파송받기에 이르렀다. 그 때는 1992년 12월 4일 이었다.처음에는 교포교회 담임교역자라는 명분이 강했지만 알지 못하는 교포교회의 불확실 때문과 궁극적으로 원주민 사역을 해야 된다는 막중한 사명 때문에 급기야 원주민 선교사로 파송 받게 되었다 이제 본인도 2년 정도의 교포교회를 섬기면서 그 훈련의 과정을 통해 원주민 선교에로 그 길을 빨리 열어 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아순시온에는 미주 고신 총회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김기석 선교사가 사역을 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이곳에 교포로 와서 원주민 신학을 공부하고 이정건, 최승렬 선교사의 추천을 받아 미국 미주 총회에서 직영하는 신학교에서 공부후 목사안수와 더불어 선교사 파송을 받고(1994년초) 다시 이곳에서 사역하게 되었고 현지 파라과이 고신 선교부의 회원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위의 사실로 인하여 파라과이에 선교사로 파송 받은 동기는 먼저 하나님이 이곳으로 부르심과 선교사의 헌신과 그리고 교포교회로 말미암았다고 볼 수 있다.

② 현재 고신 선교부 선교사들의 사역현황
ⓐ 이정건 선교사:1989년 5월에 파송을 받아 파라과이 자유 무역도시인 델 에스떼 시의 교포 교회인 평안 교회를 담임 하였고 평안 교회를 담임하면서 원주민 교회를 개척하였다.
개척한 원주민 교회는 현재 평안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라 파스 교회와 또 교회에서 약 16km떨어진 산 라몬 교회이다. 이제는 이 정건 목사님이 교포교회를 담임하지 않기 때문에 평안 교회 교우들과 통합측 선교사들이 원주민 교회를 돌보고 있다. 사실 이 정건 선교사야 말로 남미 선교를 위하여 많은 노력과 힘을 쏟았으며 선교사들이 남미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초석을 놓은 분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그가 1기 사역을 마치고 안식년을 보내고 돌아와서 1994년 초 부터 이 선교사의 거주지에서 약 16km 떨어진 에르난 다리아 시에서 원주민교회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섬기고 있다. 약 30여명의 장년과 50여명의 어린들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원주민들에 의한 원주민 교회를 건축할 수있도록 최선을 다하며 일하고 있다. 사실 이 선교사의 비젼은 학교 사역이었지만 사역에 따른 많은 재정으로 인하여 후원교회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많이 요구되는바 기도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편이다.

ⓑ 최승렬 선교사: 1991년에 파송받은 최 선교사는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을 선교의 거점으로 생각하여 처음부터 수도에 선교지를 정하게 되었다. 사실 최 선교사가 수도에 정착하기 전에는 많은 타 교단들이 수도를 공략하기 위하여 힘쓰고 있던 중 우리 교단은 늦은 감이 많이 있었지만 최 선교사를 통하여 이 나라의 중심부에 교회를 세우며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다. 최 선교사가 개척한 에스페란사 교회는 처음에 원주민 집을 전세내어 예배를 드리고 있었지만 3년 반이 지난 지금 어엿한 교회당을 건축하였으며 장년 30여명 주일학생 130여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였고 타 교단들이 부러워하는 예배당을 건축하여 제 2기 사역을 위한 새로운 발판을 만들었으며 구체적이고 내실이 있는 사역으로 달음질하고 있다.

ⓒ 김진호 선교사: 1992년 12월 달에 파송 받은 김 선교사는 처음에 이정건 선교사가 섬기던 교포교회의 후임자로 파송 되었다. 그래서 김 선교사는 교포 교회인 평안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언어훈련을 하며 앞으로 미래를 향한 본격적인 원주민 선교를 위하여 언어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이곳 시장 경기가 심히 어려운때에 도착해 보니 여러 모양의 교포 교회의 어려움들이 발견되었고 교인들을 말씀으로 바로 세우고 치료하는데는 장기간의 인내와 목회가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인이 내린 결론은 교포교회는 교포교회를 전담할 수 있는 목회자가 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앞섰고 본인은 원주민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기 때문에 원주민 선교를 위한 철저한 준비가 더욱 필요한차에 결단을 내려 급기야 1994년 12월 교포교회를 사임하고 원주민 선교를 위한 본격적인 언어 준비를 하여 1995년 6월에 김 선교사가정에서 약 15명(거의 아이들)이 참여 하여 개척 설립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제 6월 이면 설립 1주년이 되지만 원주민 보께론 교회는 아직 예배당이 마련되지 않아 김 선교사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편이다. 이 일을 위하여 기도를 하고 있지만 위로 부터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모이는 현황은 장년 약15명 주일학생들이 약 40여명 출석하는 교회로 자랐지만 이들의 신앙은 아직도 너무 어리기 때문에 신앙 성숙을 위하여 더 힘써야 할 형편이다.

ⓓ 김기석 선교사: 김 선교사는 교포 출신이고 이곳에서 생활한지는 약 20년이 넘는 이민 베테랑이었다. 그가 소명을 받아 수도 아순시온에서 원주민 신학교를 졸업을 하였고 합동측 소속의 아순시온 교회에서 전도사로 봉사를 하다가 이정건, 최승렬 목사님의 추천을 통하여 우리 자매 교단인 미주 고신 총회 직영 신학교로 유학을 가서 거기서 일년을 공부하고 다시 파라과이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 특히 김 선교사는 폭넓은 이민 생활의 경험이 선교에 많은 도움이 되어 아순시온 근교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교회 건축이 진행되고 있으며 미주 고신 총회 선교사로 전적인 지 원을 받고 있다.

출처 : 김진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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